◼ 쌍방울 대북 송금 수사 검사 박상용 시대적 영웅화 시도
◼ 수사 조작으로 교도소에 들어가도 모자랄 인물을 전면에
◼ 박상용 부친까지 언론 인터뷰하며 핍박받는 구도 만들어
◼ 12년 전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않는다’ 윤석열의 데자뷔
국민의힘이 또다시 ‘검사 영웅 만들기’에 나섰다. 검사들이 정권을 잡으며 당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는데도 다시 검사들을 중용해 판 뒤집기에 나서고 있다. 이번 주인공은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진술 회유 및 조작 기소 의혹으로 직무정지를 당한 박상용 인천지검 부부장검사다. 특검 수사를 받아 피의자로 입건되고, 국정감사 증인 선서마저 거부해 퇴장 조치 된 인물을 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그를 ‘피해자’이자 ‘의인’으로 포장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낯익은 풍경, 어디서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꼭 12년 전, 국정원 댓글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던 한 검사가 있었다. 그 검사는 바로 윤석열이었다. 국민의힘은 지금 그 판을 다시 짜고 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2013년 10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검찰청 국정감사장. 수원지검 여주지청장 윤석열은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에서 배제된 경위를 증언하며 수사 외압의 실체를 폭로했다.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이 “증인은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이냐”고 몰아붙이자, 윤석열은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라고 맞받았다. 그 한마디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유명한 어록 중 하나가 됐다. ‘정권에 충성하지 않고 법치주의를 따르는 강골 검사’라는 이미지로 보수층의 압도적 호감을 얻었고, 결과적으로 윤석열을 대통령까지 만들어 낸 발언이 됐다. 수사 외압에 맞선 ‘저항하는 검사’의 서사, 권력의 핍박을 받는 ‘의로운 외로운 영웅’의 이미지, 그리고 이를 열렬히 지지하고 옹호한 야당(당시 민주당)과 언론의 조명이 합쳐진 결과였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이 그 공식을 그대로 복사해 붙여 넣으려 하고 있다. 대상은 박상용 검사다.
한낱 부부장검사로는 불가능한 일
박상용 인천지검 부부장검사는 국민의힘 소속 특위 위원들이 별도로 주재한 청문회에 참석해 민주당을 비판하는 정치적 발언을 쏟아냈다. 국민의힘은 박 검사의 증인 선서 거부를 두고 나경원 의원은 “형사소송법, 국회법상 자기부죄 금지 원칙에 따라 선서를 거부할 권한이 있다”고 옹호했고, 윤상현 의원도 “국회 증언·감정법에 의하면 형사 소추나 공소 제기의 우려가 있으면 증인이 증인 선서를 거부할 수 있다”라며 적극 두둔했다.
이미 그가 국회에서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과 대화를 나누며 연락처를 주고받는 장면은 이미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다. 이 한 컷이 국민의힘과 박상용의 관계를 웅변한다. 이쯤 되면 국민의힘이 박상용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하다. 실제로 민주당 박성준 의원은 “국민의힘 위원들이 박상용 대변인인가”라고 직격했다. 더욱 주목할 것은 박상용이 단순히 국민의힘의 ‘피동적 영웅’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현직 검사 신분으로 직접 언론전에 뛰어들어 자신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박 검사는 최근 페이스북에 연일 진술 회유 의혹을 보도하는 언론 기사를 공유하면서 이를 반박하는 글을 올리고 있고,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에도 여러 차례 출연했다. 직무정지 명령이 떨어진 당일에도 예외가 없었다.
박 검사는 직무 정지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입장문을 올려 “직무집행정지 사유도 통보받지 못한 채 검찰청에서 쫓겨났다”며 즉각 반발했고, 녹취록 분석을 해준 지지자들에게 “진실을 지키는 데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라며 공개적으로 화답하기도 했다. 박 검사는 SNS를 통해 공개된 녹취가 “이화영을 선처해 달라는 변호사 요구를 거절하며 설명했던 내용”이라고 반박하는가 하면, 자신을 보도한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줄소송을 제기하며 재갈 물리기에도 나섰다. 수사 대상이 된 검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언론을 고소하고, SNS로 여론전을 펼치고,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지지를 호소하는 광경은 대한민국 검찰 역사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
검사에게는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다.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특정 정파의 청문회에 출석해 정치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그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다. 실제로 법무부 장관은 박 검사가 국민의힘이 단독 진행한 청문회에 참석해 발언한 것을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으로 보고 추가 감찰을 지시했다. 그러나 박상용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에게 지금, 이 순간은 법정이 아니라 무대이고, 수사는 소재이며, 언론은 도구다. 국민의힘이 만들어 준 무대 위에서 그는 스스로 ‘저항하는 검사’를 연기하고 있다.
‘의로운 검사?’ 소가 하품할 일
국민의힘의 프레이밍대로라면 박상용은 ‘민주당의 사법 농단에 맞선 용기 있는 검사’다. 그러나 사실관계는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본지도 한 차례 보도했지만 이미 공개된 녹취록에는 박 검사가 “이화영 씨가 법정까지 유지해 줄 진술이 필요하다”, “이재명 씨가 완전히 주범이 되고 이 사람(이 전 부지사)이 종범이 되는 식의 자백이 있어야 공익제보자니 이런 것들도 저희가 다 해볼 수 있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겼다. 수사 검사가 피의자 변호인에게 원하는 진술의 방향을 제시하며 읍소에 가까운 대화를 나눈 것이다.
박 검사는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수사 당시 수원지검 청사 내에서 ‘연어·술 파티’를 벌여 핵심 피의자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등의 진술을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특위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고 검찰이 여러 건의 허위 조서를 작성하고 진술을 강요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수원지검이 면담보고서 등을 허위로 작성한 것이 많게는 100여 건으로, 서울고검 인권침해점검 태스크포스 감찰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을 수사했던 박상용 검사가 국민의힘 의원들이 연 청문회에서 발언하던 그 며칠 후, 권창영 2차 종합특별검사가 박상용 인천지검 부부장검사를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 법무부는 대북송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직무상 의무 위반, 수사 공정성에 의심이 가는 언행 등의 비위로 감찰 중인 박 검사에 대해 직무 집행의 정지를 명했다. 또한 법무부 장관은 박 검사가 국민의힘이 단독 진행한 청문회에 참석해 발언한 것도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으로 볼 수 있다며 추가 감찰을 지시했다. 영웅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던 국민의힘 앞에 현실이 냉정한 고지서를 들이민 셈이다.
‘윗선’을 향한 수사의 칼날
더 주목할 대목은 이 사건이 박상용 한 개인의 일탈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공된 취재 자료에 따르면, 권창영 종합특검팀은 윤석열 정권의 대통령실이 당시 검찰 수사에 개입하려 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종석 전 국정원장은 특위 기관보고에서 당시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대북 송금 수사에 관여한 정황이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종합특검은 박 검사 외에도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과 국가정보원이 이 전 부지사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 개입을 시도한 정황을 근거로 당시 해당 기관에 근무했던 관련자들을 수사선상에 올렸다. 일개 부부장검사가 홀로 이러한 수사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다고 보기 어렵다. 수사의 칼날이 박상용을 넘어 수원지검 지휘부, 그리고 대통령실을 향해 향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윤석열은 파면 이후 이철우 경북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이 되면 사람을 쓸 때 가장 중요시할 것은 충성심인 것을 명심하라”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바로 그 인물의 말이다. 발언의 처음과 끝이 이처럼 처참하게 뒤집힌 경우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지금 그 실패한 서사를 박상용에게 덧씌우려 하고 있다. ‘탄압받는 검사’, ‘권력에 굴하지 않는 의인’, ‘야당의 표적이 된 수사관’이라는 프레임이다. 12년 전 야당이 윤석열에게 그랬듯, 지금 야당이 된 국민의힘이 박상용을 같은 방식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윤석열의 2013년 발언은,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권력의 외압에 맞선 내부 폭로였다. 박상용의 2026년 행보는, 증인 선서를 거부하고 야당 단독 청문회에 출석해 정치 발언을 쏟아내는 것이다. 외압에 저항한 게 아니라, 한쪽 정치 세력의 무대에 자발적으로 올라선 것이다.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박 검사는 이제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 수사를 받게 됨에 따라 ‘정치 검사의 몰락’을 상징하는 사례가 될 위기에 처했다. 국민의힘이 박상용 영웅화에 공을 들이면 들일수록, 이 당이 아직도 윤석열 시대의 문법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만 선명해진다. ‘제2의 윤석열 만들기’는 제1의 윤석열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잊은 사람들의 프로젝트다. 국민은 그 결말을 이미 목격했다. 국민의힘만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몽상에 사로잡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