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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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에서 여의도로 불어오는 검풍(檢風)이 심상치 않다. 검찰이 최근 야당 비례대표 의원들에 대해 잇따라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있는데다 대선 전 BBK관련 수사에도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본지가 계속해서 보도해 온 조풍언 씨에 대한 조사도 계속되고 있다. 조풍언 씨 기사에서 보도한 ‘5월 사정설’도 현실화 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전 정권 인사들이 자세를 바짝 낮추고 있다는 소문도 심상치 않게 들려온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야당에서는 ‘야당탄압’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는 힘든 분위기다. 자칫하면 ‘판’이 더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본국에서 불고 있는 검풍을 <선데이저널>이 따라가봤다.













5년 전 참여정부 초기. 서초동 검찰청사는 침울했다. 검찰개혁을 내건 참여정부는 판사 출신의 40대중반 여성인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검사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서열주의는 단칼에 무너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검찰 상층부를 믿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당시 김각영 검찰총장은 사표를 내야했다.
노 대통령은 평검사들과 공개토론에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라며 검사들의 무례함을 지적했다. ‘검사스럽다’(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 사람)는 유행어까지 생겼고, 국민 사이에서 졸지에 검찰은 구태의연한 ‘반개혁 집단’으로 전락했다.
그로부터 다시 5년이 흘렀다. 최근 검찰청사 주변에는 긴장감이 팽팽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직후 청사에는 정치인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대대적인 사정의 기운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총선이 끝난 지 보름도 안됐지만 이한정(창조한국당) 당선자가 21일 구속수감 됐고 정국교(민주당), 김일윤(친박연대) 당선자는 이날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와 양정례 당선자도 소환을 앞두고 있다. 전부 야당 당선자들이다.
검찰은 총선을 전후해 무려 63명의 당선자를 입건해 수사 중이다. 전체 당선자 299명의 21%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들은 선거법상 100만원 이상 벌금을 받으면 당선이 취소된다.
대선 직전 여야가 치고받은 고소고발도 눈에 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연관된 BBK의혹을 물고 늘어졌다가 피소된 민주당 의원들의 사법처리 가능성도 제기된다. BBK의혹이 검찰과 특검수사를 거쳤지만 별다른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정의 기운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곳은 정치인 비리수사를 담당하는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움직임이다. 특수3부는 최근 석탄공사가 M건설에 대해 1000억여원 이상을 부당지원한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중수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인 조풍언씨를 수사 중이다. 두 사건 모두 옛 정권 실세 연루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당·친박연대 반발


권위주의 정권시절 최고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했던 검찰. 그들은 탈권위주의 정권 등장과 함께 개혁 대상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맛봐야 했다. 이제 다시 5년이 흘러 공수가 바뀌었다. 자신들을 개혁 대상으로 몰아붙였던 옛 여권 정치인들이 대거 수사선상에 오르고 있다.
정치권은 “옛 정권에서 굴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검찰이 작심하고 덤빈다”고 반발한다. 검찰이 정치권을 부패집단으로 몰아붙이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비례대표 `돈공천’ 의혹 수사가 시작될 때만 해도 “지켜보자”며 한발 물러나 있던 민주당은 최근 검찰수사 흐름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듯 “야당탄압” “정치보복”이라며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된 정국교 당선자에 대한 검찰수사를 두고 “구시대적 작태”(손학규 대표)라고 날을 세운데 이어 그동안 `방치’ 상태에 놓였던 BBK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려 “정치보복”이라며 적극적 쟁점화를 꾀하고 있다.
손 대표가 24일 청와대 오찬회동 직후 BBK 사건과 관련해 불구속 기소된 정봉주 의원의 첫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재판정을 찾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손 대표는 기자들에게 “시위하러 왔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강경대응 선회는 일련의 검찰수사가 당 전체를 겨누고 있다는 의구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당 핵심 관계자는 “사태를 종합해보면 누가 봐도 야당 표적수사하는 것 아니냐”며 “순순히 당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정국교 당선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심상치 않다는 게 민주당 측 분위기. 고강도의 계좌추적을 진행 중인 검찰 수사가 결과적으로 정 후보를 추천한 손 대표를 겨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게 당직자들의 얘기다. 한 당직자는 “특별당비를 왜 민주당 쪽만 수사하느냐. 한나라당에도 같은 잣대를 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검찰이 친박연대의 비례대표 공천의혹 수사를 마무리 짓고 나면 `구색 갖추기’ 차원에서 손 대표를 다음 타깃으로 삼을 공산이 크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우려하는 또 한 가지 대목은 대규모 사정설.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5∼6월 공공부문 사정과 참여정부 권력 실세들의 비리의혹을 수사할 것이란 풍문이 그럴 듯하게 나돌고 있는 탓이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24일 밤 해운업체 S사의 국세청 로비의혹과 관련해 이광재 의원의 부인을 소환조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당직자들은 “사정설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표정이다. 그러나 이광재 의원은 “검찰이 공정히 수사해 진실을 잘 밝힐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BBK 고소.고발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의 향방과 수위도 몹시 신경쓰이는 눈치다. 여야가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려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전날 청와대 오찬에서 “계획적으로 음해한 사람은 여야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선을 긋고 나왔기 때문이다. 현재 정동영 전통일부 장관과 박영선 최고위원, 서혜석 의원 등은 검찰소환 일정이 잡혀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일련의 검찰수사를 `야당탄압’이라고 몰아세우며 `방어벽’을 치는데 가일층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 핵심관계자는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제1야당에 대한 검찰수사는 엄청난 정치적 역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는 “이번 (비례대표) 수사는 먼지털기를 해서 서청원 개인을 죽이려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해 검찰은 터무니없는 억측이라는 입장이다. 특수수사를 오랫동안 맡았던 검찰 고위관계자는 21일 “원래 정권이 바뀌면 투서나 첩보가 쏟아지기 때문에 정권교체기엔 자연스레 수사강도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옛 정권시절 일 때문에 (검사들이) 감정을 앞세워 수사하는 일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하지만 상당수 검사의 머릿속에 ‘굴욕’의 기억이 뚜렷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역시 특수수사에 정통한 한 지방청장은 “겉으로는 개혁적인 척하면서 검찰을 매도했던 386들이 어느 순간 호텔에서 고급와인 마시면서 흥청망청한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며 “솔직히 나에게 칼자루가 쥐어진다면 그들 전부를 내 손으로 (감옥에) 집어넣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검찰 과거회귀’ 우려도


검찰 분위기가 심상찮은 것으로 감지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의 오랜 속성상 새 정권의 입맛에 맞추려고 하지 않겠냐”며 “더욱이 옛 정권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검사들이 아무런 선입관 없이 수사에 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검찰의 과거회귀 가능성에 대한 걱정도 나온다.
보수성향인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검사 출신의 이종찬 민정수석과 김경한 법무장관이라는 지휘라인에 영향 받아 어렵사리 뗀 검찰개혁의 발걸음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우려다. 전례없이 빠르고 강도 높게 진행 중인 정치권 수사가 정치권과 검찰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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