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특집4> 타임지, 독재자의 딸 박근혜 후보 표지모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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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오는 17일자 미국의 유력 시사주간지 타임(TIME)의 아시아판 최신판의 표지모델로 선정됐다. 타임지는 ‘독재자의 딸'(The Strongman’s Daughter)이라는 제목과 함께 ‘박 후보가 한국의 다음 대통령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부제를 달았다. 타임지 미주판에서는 박 후보를 표지모델이 아닌 14페이지에 박 후보의 전면 사진과 함께 박 후보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다. 박 후보의 상반신 모습을 표지 사진으로 쓴 타임은 기사에서 박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살아온 과정과 주위 평가, 박 후보의 정치 비전 등을 소개했다. 기사는 “만약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한국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시작한다”고 전했다. 또 “박 후보는 그동안 재벌, 기득권층을 대변한다고 인식돼온 새누리당을 바꿔 국민들이 요구하는개혁을 하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아시아판 표지모델로 선정되면서 박 후보를 ‘the strongman’s daughter’라는 표현을 쓴 것을 놓고 한국에서 해석의 논란이 일자 타임지 미국판과 인터넷판에서 ‘The dictator’s Daughter’(독재자의 딸)로 제목을 수정했다. 타임지 아시아판의 ‘The Strongman’s Daughter’의 해석을 놓고 한국에서 ‘실력자의 딸’이냐 ‘독재자의 딸’이냐는 논란이 일었다. 보수진영에서는 ‘실력자의 딸’이 정확한 해석이라고 한 반면 진보언론 등 진보 진영에서는 미 언론들이 김정일을 표현할 때 ‘strongman’을 사용했고 시리아의 바샤르 알사아드 대통령에게도 ‘strongman’이라고 한 사실을 들어 독재자로 해석해야 맞다고 했다. 타임지는 이 같은 논쟁이 일자 인터넷판과 미국판에는 제목을 바꿔 The Dictator’s Daughter’라고 의미를 정확히 표현했다. 타임지의 박 후보에 관한 전문을 소개한다. 
조현철(취재부기자)
 
추운 11월의 어느 저녁, 광주에서는 중년의 그룹이 기차역에서 60세의 대통령 후보 박근혜를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강남 스타일” 노래가 나왔고 박근혜의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상징인 붉은색의 짧은 반바지를 입은 4명의 젊은 여성들이 플랫폼 위로 올라왔다. 그들이 “강남 스타일” 의 특징인 말타기 춤을 추자 군중의 대부분은 유투브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전세계적으로 대한민국과 동의어가 된 이 춤을 본 적이 없는 것 처럼 놀란 듯이 보였다.
박근혜의 보수적인 지지자들은 강남 스타일이 반영하는 젊고 불경스런 한국 사회와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박근혜도 마찬가자다. 유세 연설 중에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지지자들과 악수하면서 그는 진지하고 냉철해 보여 비판자들은 그를 ‘얼음 여왕(ice queen)’이라고 부른다.


독재자 딸의 새독재 탄생 예고


박근혜는 사람들과 보다 편안해져야 한다. 대한민국을 18년간 통치한 독재자 박정희의 장녀로써 그는 늘 대중의 주목을 받아왔다. 여론조사는 작은 격차지만 꾸준히 그의 경쟁자인 59세의 인권 변호사 출신인 진보 진영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앞서고 있다. 박근혜는 그의 이미지를 매력적으로 만들어 그만의 강남 스타일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광주에서 그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위해 저를 도와달라”고 호소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12월 19일의 대선에서 박근혜가 승리한다면, 최소 한 측면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성적 평등 면에서 다른 서방 국가에 비해 뒤쳐지는 나라에서 최고위 관직에 오르는 최초의 여성이 될 것이다. 박근혜는 과거 권위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의 당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시도하고 있다. 박근혜는 새누리당을 보다 대중적으로 변화시키려고 한다. 최근 박 후보는 중소기업인들과 저소득층 가정들을 위해 나설 것을 약속했다. 일부에서는 그가 당선을 위해 영합한다고 생각하지만 박 후보는 그의 약속은 진실이라고 강조한다. “정치인이 약속을 한다면, 그 약속은 지켜져야만 한다”고 타임지에 서면 응답으로 밝혔다.
 


역사의 짐(The Burden of History)


박근혜의 아버지는 1960년대에 역사상 위대한 경제성정을 이끌어낸 선구자 중 한사람으로, 나라를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수출 산업을 지원했다. 이 발전 모델은 소위 아시아 타이거라 불리는 다른 나라들도 채택해 이 지역의 경제 기적을 이끌었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 11위의 경제 규모이다. 정치 활동은 세계적인 족적을 남기고 있는 최고 기업들처럼 활발하다. 삼성 전화기에서 빛나는 K-POP 까지 한국은 소프트 파워는 일본을 제치고 동아시아의 대표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그리고 내부적인 문제들에 둘러쌓여 있다. 한국은 불량 국가인 북한, 오랜 적수인 일본, 그리고 큰 시장이면서도 자원과 영향력 경쟁을 하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한국의 침체된 경제는 게열사를 서로를 먹여 살리는 소수의 재벌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 박근혜의 배경이 있다. 1962년 쿠테타로 권력을 잡은 그의 아버지가 많은 한국인들이 존경하고 있는 반면에 한편에서는 그의 노골적인 권력 남용으로 그를 경멸한다. 통합의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박 후보는 복잡한 그의 과거를 극복해야 한다.


독재자 딸로서의 죄값치고는


박정희 암살 시도로 박 후보의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사망했을 당시 박 후보는 파리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1974년 8월 15일, 박정희가 군중으로 꽉찬 서울국립극장에서 연설하는 도중 한 북한 동조자가 총을 쏘았다. 첫 발은 빗나갔고 두 번째 총알은 영부인이 맞아 그날 사망했다.
당시 박정희의 저격사건에 대한 반응은 전설이 됐다. 육 여사가 무대에서 실려나가자 박정희는 마이크로 돌아와 “여러분, 연설을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22세였던 박근혜는 사실상의 영부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독재자의 딸로써 값을 치뤄야만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통제를 강화했고, 1979년 저녁식사 자리에서 중앙정보부장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총격을 가해 숨졌다. 1970년대에 가혹한 보안 규정으로 수천 명의 반대파들이 체포되고 때로는 고문을 당했다. 박정희와 그의 후계자인 폭력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자유를 위한 투쟁은 몇십 년만에 처음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대통령 선거가 치뤄진 1987년까지 지속되었다.



아버지의 암살 이후, 박 후보는 스폿라이트에서 사라졌지만 결국 정치인으로 돌아왔다. 1998년에 국회의원이 되었고, 이후 4번 재선됐다. 2006년 유세 도중 군중에서 뛰어 나온 한 전과자가 커터칼로 그의 얼굴을 그었다. 박 후보가 오른쪽 뺨의 4인치 상처를 을 침착하게 지혈하고 있는 장면이 텔레비젼 화면에 보여졌다. 최근의 TV 광고는 아직도 보이는 흉터를 희생과 국가의 치유의 상징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 후보는 광고에서 “그날 입은 상처는 저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남은 인생을 여러분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과가사 사죄 진정성 의심


박 후보는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남긴 상처에 대해 분명하게 비판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9월에 여론의 압력이 높아지자 TV 연설에서 “한국의 급격한 경제성장 과정의 그늘에서 당국에 의해 행해진 인권 유린과 고통, 부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상처를 입은 개인과 정부의 권력 남용으로 인한 희생자의 가족들에게 깊이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박 후보의 연설에 만족한 사람은 소수였다.
보수주의자들은 박 후보가 항복했다고 비난했고, 진보 진영에서는 그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그러나 그가 그 문제에 대해 말하려고 준비했던 것은 그것이 다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박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유권자들이 과거에 대해 용서하거나 잊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아마도 그러면 한국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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