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취재] 박근혜 탄핵재판 막가파 변호로 유명세 탄 김평우 변호사의 미스터리 과거사 大 해부

■ 느닷없이 나타난 김평우의 출현과 거침없는 행보 속셈은

■ 朴 탄핵재판 무임승차로 전 국민에 이름 알린 홍보 귀재

■ ‘김평우 부인은 동부그룹 딸 김명희’ 보도는 사실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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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우변호사는 누구?… 베일에 숨겨진 그의 모든 것

김평우의 검은 두 초상화

만만한 보수골통 밑반찬 삼아 혼자만 진수성찬 밥상 챙긴 돈키호테

박근혜전대통령 탄핵으로 가장 유명해진 사람은 김평우변호사다. 일부에서는 그의 변호를 ‘세계적인 명변호’라고 치켜세웠고, 일부에서는 ‘사법사상 최대 깽판’이라고 비난한다. 현재 김 변호사에 대한 언론보도 중 그 개인에 대한 일부보도는 명백히 잘못됐고 그 또한 탄핵와중에 일부 거짓말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충격적인 과거를 가진 사실도 드러났다. 김 변호사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라며 탄핵반대집회에서 직접 소개한 사람도 어떤 이유에선지 김 변호사를 사실과 달리 과대 포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변호사가 공인인 만큼 그의 행적을 추적해 의도적으로 잘못 알려진 점, 비의도적으로 잘못 알려진 점 등을 모두 바로 잡으려 한다.
안치용(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김평우박근혜 전대통령 탄핵을 통해 그의 아버지 김동리 선생만큼이나 유명해진 아들 김평우변호사. 미국에 머물다 지난 1월말 한국에 귀국, 한 달도 안 된 2월 중순, 모든 대한민국국민이 그를 알게 됐다고 할 정도로, 그는 최단기간에 가장 큰 인지도를 획득한 인물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유명해지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한국인일지도 모른다. 의도됐든 의도되지 않았든,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급소’를 ‘귀신’처럼 찾아내 ‘사정없이’ 자극했던 그의 ‘장내 변호’와 ‘장외 변호’는 장안의 화제가 됐고, 언론의 집중취재대상이 됐다. 하지만 김 변호사에 대한 보도 중 그 개인에 대한 보도 중 일부는 명백한 거짓으로 드러났다.

부인 김명희 동부그룹 딸과는 이혼

지난 2월 주요일간지를 비롯해, 대부분의 한국의 언론들은 혜성처럼 나타난 김 변호사를 집중보도했다. 그들 대부분이 ‘김평우변호사의 부인은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의 딸 김명희씨로, 동부그룹의 사위’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에 따라 나무위키 등 인터넷 백과사전류의 사이트에도 김 변호사는 동부그룹의 사위이며, 현재도 김준기 동부그룹회장의 여동생 김명희씨의 남편이라고 기록돼 있다.

김준기 동부그룹회장의 고교동창이며, 현재 김명희씨가 부인이라는 것이다. 김준기 동부그룹회장이 경기고 60회, 김변호사가 59회로 고교동창인 점은 맞지만 그러나 김 변호사의 현재 부인은 김명희씨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지난 1월 26일 출판된 김변호사의 책 ‘탄핵을 반대한다’. 228페이지분량의 이 책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돼 있다. ‘이 책을 쓰도록 항상 나를 보살펴준 나의 사랑하는 아내 한연금에게 나의 생애 첫 책을 바친다’.

그렇다. 김변호사는 자신의 아내가 김명희씨가 아니고, 한연금씨 라고확실하게 밝힌 것이다. 네이버 인물검색란에도 배우자는 ‘한연금’으로 기재돼 있다두 사람이 언제 결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 변호사의 주장 등으로 김 변호사의 아내가 김명희씨가 아니며, 따라서 지금은 동부그룹의 사위가 아닌 것이다. 김명희씨는 김 변호사의 전 부인이며 현재는 한연금씨가 부인인 것이다.

▲ 김평우변호사의 부인은 김명희씨라고 한국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 김평우변호사의 부인은 김명희씨라고 한국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김 변호사의 아내가 한연금씨라는 사실은 김 변호사가 미국에 구입한 주택매매관련 서류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김 변호사는 지난 2013년 4월 1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버리힐스의 한 아파트를 118만9천달러에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등기소 확인결과 이 아파트는 은행모기지 없이 전액 김 변호사의 자체 자금조달로 매입됐다.

김 변호사가 이 아파트를 매입한 당일 한연금씨가 자신의 지분일체를 김변호사에게 넘겼다. 캘리포니아주는 기혼자가 부동산을 매입할 경우, 자동적으로 배우자가 절반의 소유권을 가진 것으로 인정한다. 이에 따라 기혼자중 한명의 단독재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배우자가 다른 배우자에게 이 주택의 소유권을 넘기는 별도 매매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소유배우자간 지분을 넘기는 큇클레임디드를 작성하며, 한연금씨가 이 아파트에 대한 지분을 김 변호사에게 무상 양도함으로써, 이 아파트는 온전히 김 변호사 단독소유가 된 것이다.

바로 이 큇클레임디드에서 한씨가 김변호사의 부인임이 드러난다.
로스앤젤레스카운티등기소 문서번호 20130537303 에는 한연금씨가 ‘SPOUSE OF GRANTEE’, 즉 양도받는 사람의 배우자라고 명시돼 있는 것이다. ‘HUSBAND AND WIFE’라고 기재돼 있지는 않지만 ‘SPOUSE’라고 표기됨으로써 한씨가 김 변호사의 배우자임을 알 수 있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8월 10일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의 한 아파트를 한 채 더 사들였다. 윌셔블루버드의 한 아파트 11층을 88만달러에 매입한 것이다. 역시 은행대출 한 푼 없이 자체자금으로 매입했다.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등기소 확인결과 이때도 김 변호사가 이 아파트를 매입한 당일 한연금씨는 이 아파트 절반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김 변호사에게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 네이버 검색에 게재된 김평우변호사 약력

▲ 네이버 검색에 게재된 김평우변호사 약력

로스앤젤레스카운티등기소 문서번호 20160944798에는 한연금씨가 ‘A SPOUSE OF GRANTEE’라고 기재돼 있다. 역시 김 변호사의 배우자라는 뜻이다. 이 서류에서 김 변호사는 ‘A MARRIED MAN’ 유부남이라고 표기된 것을 감안하면, 유부남의 배우자라고 표기된 한씨는 김씨와 혼인한 배우자로 볼 수 있다. 한국의 거의 모든 언론이 김 변호사의 현재 부인이 김명희씨라고 보도했지만 사실이 아닌 만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김 변호사는 ‘탄핵을 반대한다’는 책의 서문과 김 변호사 자신이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네이버 인물검색란에 배우자가 ‘한연금’씨라고 표기된 점으로 미뤄, 부인이 한씨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주택매매관련서류를 통해서도 부인이 한씨라는 사실이 입증된다. 하지만 ‘부인이 김명희’씨라는 각 언론의 보도에 대해 사실을 바로 잡아달라고 요청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부인이 김명희씨’라고 보도했던 언론사중 이를 바로 잡은 곳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쩌면 김 변호사는 이를 바로 잡아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 순회강연에 나선 김 변호사 곁에 적지 않은 나이차이가 나는 미모의 중년여인이 종종 눈에 띄며 이 여인은 김변호사와 20년의 나이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부인 한연금씨로 확인됐다.

부친은 30년 연하, 김변호사는 20년 연하 부인

김 변호사의 아버지 김동리선생의 세 번째 부인인 소설가 서영은씨는 지난 2014년 ‘꽃들은 어디로 갔나’라는 자전적 소설을 출판한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동리선생님은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해 필요이상으로 노력하고, 그래서 남에게 인색한 모습도 종종 드러냈다. 그러나 애지중지했던 골동품은 80%가 가짜였다’라고 밝혔었다. 김동리선생은 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냉정했던 것 같다. 김동리선생이 1995년 사망하자 김 변호사 등 자식들은 서영은씨를 상대로 재산싸움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아버지의 부인이자 어머니인 서씨의 상속권 일부를 부인했고 인세 등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해 김 변호사측이 상당부분 승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에서는 서씨가 본처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쫓겨났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이는 정확한 사실은 아니며, 소송결과 인세 등에서 서씨의 지분이 어느 정도 인정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영은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변호사 등 자식들이 자신에게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폭언을 했다고 밝혔었다. 글로 옮기기에 힘들 정도다. 아버지의 부인, 즉 법적 어머니를 상대로 재산싸움을 할 정도로 돈에 대해서는 자식들도 냉정했던 셈이다.
김 변호사의 배우자 한씨가 김 변호사가 미국에 산 주택 2채에 대해 소유권을 포기한 것도 비슷한 모양새다. 김변호사는 배우자가 있고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배우자에게 절반을 소유권을 인정해 주지만, 김 변호사는 ‘집은 내 것이다’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 김평우변호사가 2013년 4월 11일 매입한 베버리힐스 아파트 매매계약서

▲ 김평우변호사가 2013년 4월 11일 매입한 베버리힐스 아파트 매매계약서

그렇다면 김 변호사는 언제 어떤 이유로 김명희씨와 이혼했기에 아직도 대부분의 언론들은 김변호사와 김명희씨가 부부관계로 파악하고 있을까. 지금의 부인인 한씨로서는 꽤나 섭섭할 만한 일이다. 더구나 김 변호사는 책과 인물검색 등에 부인이 한씨라고 밝혔지만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부인이 ‘아니 이럴 수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김변호사는 김명희씨와 결혼, 동부그룹의 사위가 됐고 슬하에 아들 3명을 뒀다. 2007년 11월 3일 장남 병직씨가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결혼할 때 각 언론의 ‘화혼’보도에는 병직씨는 ‘김평우-김명희의 장남’으로 명시됐다. 이때까지는 부부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뒤가 문제였다.

일반국민들은 잘 몰랐지만 김 변호사의 이혼스토리는 법조계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김변호사는 2009년 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제45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냈고, 선거운동은 2008년부터 시작됐다. 이때 김 변호사의 이혼이야기가 터져 나왔고 김 변호사는 이 과정에서 입에 거론할 수 없을 정도의 추문으로 큰 곤란을 격었다는 것이 법조계 인사들의 말이다. 특히나 이혼사유를 둘러싼 말들이 김변호사를 더욱 곤혹스럽게 했고, 과연 변협회장이 될 자격이 있느냐는 말까지 나왔다는 것이 복수의 법조인 증언이다.

이 사유역시 너무 충격적이어서 입에 담고 글로 옮기기에 곤란하다는 것이 그를 아는 사람들의 말이다. 그러나 당시 상대후보가 클린선거를 하자며 이를 불문에 붙였고, 김 변호사가 당선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남 결혼식 이후 어느 시점에, 어쩌면 변협회장 당선 전에 김명희씨와 이혼했을 가능성이 있다. 변협회장 자격 운운하는 말이 나왔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선거 때면 후보자를 둘러싼 온갖 소문이 다 나돈다는 점에서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대체로 증언은 일치했다. 이와 관련, 김 변호사의 절친인 한 고교동기동창의 발언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재벌과 이혼하니 국물도 없더라, 그 친구 발가벗겨지듯 몽땅 내주고 몸만 나왔다’고 말했다. 왜 몽땅 빼앗겼을까, 정말일까? 고교동창의 주장이니 사실여부를 알 수 없지만 그와 김 변호사의 친분관계를 고려하면 전혀 사실무근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또 법조인들의 전언과도 맥락이 사실상 일치했다.

거꾸로 말하면 홍상수감독이 김민희와 사랑에 빠지고 이혼을 결심한 것처럼, 아버지 김동리선생이 30세연하의 소설가 서영은씨와 결혼, 그녀를 세 번째 정식 부인으로 인정하고 백년가약을 맺었던 것처럼, 김 변호사 또한 많은 것을 집어던지고 소중한 사랑을 쟁취한 이 시대의 진정한 로맨티스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면에서 김 변호사는 책임감이 투철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래서 김 변호사는 J비자를 얻어 미국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UCLA 모자 쓰고 다니며 졸업생 행세

김 변호사의 트레이드마크는 ‘UCLA’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모자다. 김 변호사에 대해 UCLA비지팅스칼라[교환교수-방문교수]라고 보도되고 있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UCLA 로스쿨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 프로그램에는 3가지 카테고리가 있다. 비지팅스칼라, 비지팅리서처, 비지팅주리스트로, 비지팅스칼라는 다른 대학의 교수, 비지팅 리서처는 다른 로스쿨의 학생 등에게 적용되며, 비지팅주리스트는 다른 나라의 전문법조인단체회원, 말하자면 다른 나라의 변호사협회 회원 등이 지원할 수 있다.

▲ 김평우변호사의 배우자 한연금씨는 2013년 4월 11일 김변호사가 매입한 베버리힐스 아파트에 대해 가족간 양도서류인 큇크레임디드를 통해 자신의 지분을 김변호사에게 모두 양도했다 - 이 서류를 통해 김변호사의 부인은 김명희씨가 아니라 한연금씨임이 확인된다.

▲ 김평우변호사의 배우자 한연금씨는 2013년 4월 11일 김변호사가 매입한 베버리힐스 아파트에 대해 가족간 양도서류인 큇크레임디드를 통해 자신의 지분을 김변호사에게 모두 양도했다 – 이 서류를 통해 김변호사의 부인은 김명희씨가 아니라 한연금씨임이 확인된다.

UCLA로스쿨 홈페이지에는 김 변호사의 이름이 ‘김평우-피터’로 표기돼 있으며, 비지팅스칼라가 아니라 비지팅주리스트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변호사나 측근들의 주장하거나,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비지팅스칼라는 아니다.
김 변호사는 지난 2월 25일 탄핵반대집회에서 자신이 아끼는 미국변호사라며 장수덕 변호사를 소개하고 연설할 기회를 제공했다. 장변호사는 그로부터 3일 뒤인 2월 28일 한 언론에 출연, 대담을 하며 ‘김 변호사가 최근 4년간 UCLA 명예교수로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또한 명백한 허위사실이며 과대포장이다. 김 변호사가 적을 둔 UCLA로스쿨 비지팅주리스트 프로그램은 명예교수가 아니라, 지원자 본인이 돈을 내고 로스쿨에 다니면서 연구를 하는 것이다. 절대 교수가 아니며 오히려 학생 쪽에 가까운 것이다. 특히 이 프로그램의 이점은 미국비자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학교 측은 교환비자로 잘 알려진 J비자를 스폰서해 주고, 학생들은 이 비자를 받아 미국에 입국,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것이다.

UCLA는 최대 60개월, 즉 5년간 J비자를 스폰서 해준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가 UCLA로스쿨에 돈을 내고 2012년부터 최소한 지난해까지 줄곧, 이상하리만치 오랜 기간 동안 비지팅주리스트로 있었던 것은 바로 이 J비자 때문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UCLA는 교환프로그램 대상자는 J1비자, 대상자의 부양가족인 배우자와 21세미만의 미혼자녀도 J2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김 변호사는 돈을 내는 학생에 가까운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김 변호사가 극찬한 장수덕변호사는 ‘김변호사가 UCLA 명예교수’라며 한국국민들을 오도한 것이다.

UCLA 로스쿨 교환교수 아닌 프로그램 학생신분

김변호사는 ‘탄핵을 반대한다’는 책의 서문에서‘(대한변호사협회장)임기를 무사히 마친 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국에 와서부터 본격적으로 미국의 헌법, 증거법, 소송법등을 다시 공부하면서 법치주의에 대한 나의 신념은 더욱 굳어졌다’ 고 적고 있다.
김 변호사는 2009년 2월 제45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 당선돼 2011년 2월 임기를 마쳤으며 그 뒤 ‘개인적인 사정’으로 2012년 중반, 미국에 가기 위해 UCLA 로스쿨 익스체인지프로그램에 등록한 뒤 J비자를 받아 미국에 입국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개인적 사정’이란 새로운 사랑과 관련됐을 가능성도 있다.

▲ 스탠포드대 로스쿨 교환프로그램 웹사이트에 김평우 변호사는 비지팅 주리스트로 기재돼 있다.

▲ 스탠포드대 로스쿨 교환프로그램 웹사이트에 김평우 변호사는 비지팅 주리스트로 기재돼 있다.

김 변호사 당사자의 주장 등에서도 거짓이 드러난다. 김 변호사는 지난 2월말 탄핵반대집회에서 ‘법치수호를 위한 국제변호인단’을 출범시켰다고 밝혔다. 국제적인 ‘법치와 애국변호인단’을 이미 구성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 2월 15일 ‘인터내셔널 로여스 포럼’이라는 단체의 서신을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이 단체를 비영리법인으로 설립을 이미 마쳤다’고 주장했다. 이 서신은 지금도 유투브 등을 통해 전문이 공개돼 있으며 가입을 권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적지 않은 변호사들에게도 이 서신이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설립자는 김 변호사와, 김 변호사가 2월 25일 탄핵반대집회에서 자신이 아끼는 미국변호사라고 소개했던 장수덕 변호사 등 2명이라며 서명까지 돼 있다. 설립자는 김평우-장수덕이라고 돼 있지만, 서명은 1개여서 누구의 서명인지는 알 수 없다. 김 변호사와 장변호사명의의 2월 15일자 서신에서 ‘인터내셔널로여스포럼을 이미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설립을 마쳤고 한국은 관련 법인을 설립 중에 있다’고 주장한 만큼 설립 시기는 2월 15일 이전이 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그러나 본지가 캘리포니아주 국무부에서 법인내역을 검색한 결과, ‘인터내셔널 로여스 포럼[INTERNATIONAL LAWYERS FORUM INC]’은 지난 3월 28일에야 법인등록이 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제변호인단’등으로 번역 가능한 이 법인의 번호는 ‘C4009595’, 법인주소는 ‘5850 CANOGA AVE STE 400, WOODLAND HILLS CA 91367’ 이며 등록대리인은 장수덕변호사로, 3월 28일 등록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김변호사가 2월 15일자 서신에서 캘리포니아주에 법인설립을 이미 마쳤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박전대통령이 3월 9일 탄핵당한 것을 감안하면 탄핵당하고도 20일이 지난 뒤이며, 이 서신의 날짜보다 40여일이 지나서야 법인이 설립된 것이다. 탄핵반대집회에서 명백한 거짓을 말하며 참가자들을 선동한 셈이다. 혁명가의 ‘아지’였던 셈이다.

국제변호인단법인 설립은 장수덕변호사가 주도

캘리포니아주 국무부 확인결과 ‘인터내셔널로여스포럼’과 비슷한 이름의 법인이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법인은 ‘인터내셔널로여스PC’로 2008년 12월 16일 설립됐으며, 주소는 ‘인터내셔널로여스포럼’과 동일했다. 지난 2013년 8월 9일과 2015년 11월 14일 캘리포니아주 국무부에 제출된 이 법인 문서를 확인할 결과, 이 법인의 CEO는 장수덕 변호사이며 CFO는 장인서씨였다. 장수덕씨가 운영하는 변호사사무실이 바로 ‘인터내셔널로여스’였던 것이다. 김변호사와 장변호사는 장변호사가 운영하는 로펌과 비슷한 이름으로 ‘국제변호인단’법인을 설립한 것이다.

장인서씨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등기소 서류를 확인한 결과 장씨의 부인이었다. 장수덕변호사는 지난 2012년 7월 13일 변호사사무실소재지인 우드랜드힐스에 88만달러를 주고 주택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같은 날 약 62만5천달러의 은행모기지를 얻은 것으로 확인됐다. 약 25만5천달러의 현금과 62만5천달러의 은행 대출로 주택을 구입한 셈이다.

▲ 스탠포드대 웹사이트에는 교환프로그램대상자는 최장 60개월까지 J1비자를 받을 수 있으며, 대상자의 배우자와 21세 미만 미혼자녀도 J2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적고 있다.

▲ 스탠포드대 웹사이트에는 교환프로그램대상자는 최장 60개월까지 J1비자를 받을 수 있으며, 대상자의 배우자와 21세 미만 미혼자녀도 J2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적고 있다.

현재 로스앤젤레스카운티내에 장씨가 소유한 부동산은 이 주택 단 1채로 확인됐으며, 매입계약서에 장수덕과 장인서가 부부관계로 명시돼 있었다. 장변호사는 김 변호사처럼 이 집의 소유권절반을 부인에게 넘겨받지 않고 공동소유로 하고 있다.

장변호사는 2월 28일 한 인터넷방송에 출연, ‘오랫동안 미국에서 변호사생활을 해서 여유가 생겨서 한국에 왔다 갔다 한다’고 밝혔다. 그는 행정고시 11회에 합격한 뒤 도미, UCLA 로스쿨을 졸업한 뒤 1981년 5월 29일자로 캘리포니아주변호사협회에 변호사 등록을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부동산만으로 보면 그리 여유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변호사 사무실 웹사이트[http://www.sudeokjang.com/]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장수덕 미국변호사 미국로펌’이라고 돼 있으며 ‘국제용역무역의 일환으로 전 세계적으로 자문과 의견을 제공한다’며 국제소송, 해외투자, 무역통상등의 메뉴를 볼 수 있다. 한국기업이나 한국인의 미국소송을 담당하고 있고 또 그같은 소송을 맡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방법원 소송사건검색에서 장변호사가 대리한 소송을 찾기는 힘들었다.

한 가지 재미난 것은 장변호사가 ‘김평우변호사가 자기 로펌의 고문’이라고 밝힌 점이다. 장변호사는 2월 28일 대담에서 김 변호사가 자기회사 고문이라고 털어놨다. 오래 전부터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김 변호사가 장변호사 로펌 고문도 맡고, 김 변호사가 탄핵반대집회에서 장변호사를 소개시켜 연설하게 하는 등 친밀한 관계인 것으로 추정된다.

김변호사의 고교동기생은 ‘김 변호사가 LA에서 플랙티스를 하고 있다. 돈을 잘 번다’고 밝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LA에서 변호사로 플랙티스를 하기 위해서는 변호사면허가 필요하다. 패러리걸 등 변호사 보조원은 변호사자격이 필요치 않다. 그러나 정작 김 변호사는 뉴욕주나 캘리포니아주 변호사협회에 변호사로 등록돼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일리노이주 변호사라고 보도됐지만 일리노이주 변호사협회에도 김평우란 이름은 등록돼 있지 않았다. 물론 변호사로 등록돼 있지 않다는 것이 해당주의 변호사자격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김 변호사가 어느 주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지금은 이 3개주 변협에 현재 변호사로 등록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변호사시험을 통과해도 등록을 하고 계속 갱신을 하지 않으면 변호사협회등록이 유지되지 않아 회원자격을 상실하며. 변호사협회에 등록되지 않으면 변호사 활동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김변호사가 적어도 1년전까지는 J비자 상태였을 가능성이 커 노동, 즉 돈을 벌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앞 뒤 맞지 않은 헌법재판소 최후 변론 순서

김변호사의 거짓말의혹은 또 있다. 지난 2월 27일 헌법재판소, 최후변론순서를 둘러싸고 다툼이 있었다. 이정미 재판관이 ‘피청구인께서 최종의견을 진술하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대표대리인께서 일단 먼저 진술하십시요, 대표대리인께서는 3분 모두 다 하시겠습니까, [네] 그러면 이동흡변호사님 먼저 하시고 그다음 전병관변호사님 하시고 이종환 변호사님 하시겠습니까, [중략] 순서는 다 정하셨습니까. 저희가 조금 생각을 해보니까 종전부터 변론에 조금 참여하신 분이 먼저 진술을 해주시는 쪽이 저희가 이해하기가 쉽고 쌍방대리인께서도 이해하시기가 쉽지 않겠나 생각이 됩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변호사가 ‘이의가 있습니다, 저희들끼리 합의를 했습니다, 맡겨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이정미재판관이 ‘대표변호사님께서 말씀하시죠. 합의하셨습니까’ 라고 물었고 이종환변호사가 ‘합의는 되지 않았습니다, 재판장님 말씀하신 순서대로 해주십시요’라고 답했다. 김 변호사는 ‘정기승변호사가 첫 번째, 자신이 두 번째 변론을 하기로 변호인단간에 합의했다’고 말했지만, 이변호사는 합의가 없었다고 말한 것이다. 의견이 상충된다. 누군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재판부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종환변호사는 김 변호사말이 거짓이라고 말한 셈이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인 셈이다. 이에 따라 변론은 3회의 준비철자와 17회의 변론기일에 계속 참여한 이동흡 변호사부터 시작된 것이다.

▲ 장수덕변호사는 2008년 12월 16일 캘리포니아주에 INTERNATIONAL LAWYERS PC 라는 법인을 설립했다[캘리포니아주 국무부 웹사이트 검색]

▲ 장수덕변호사는 2008년 12월 16일 캘리포니아주에 INTERNATIONAL LAWYERS PC 라는 법인을 설립했다[캘리포니아주 국무부 웹사이트 검색]

그렇다면 왜 김변호사가 이같은 주장을 했을까. 이를 설명해 줄 법도 한 일이 3월 1일 탄핵반대집회에서 발생했다. 탄핵심판 때 박전대통령 측 변호인으로 활동한 조원룡 변호사는 ‘애국시민여러분, 제가 오늘 이 손에 들고 나온 것은 여러분들이 조금 전에 그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신 대통령의견서 원본입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원래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원래 김평우변호사님이 대독하라고 대통령님께서 지시하셨습니다. 그런데 뭐 날치기, 예 이점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방송에 누가 대독했는지 그런 부분이 다 나왔고요’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가 변호인단간 합의까지 됐다고 법정에서 주장하며 가능한 다른 변호사보다 먼저 변론을 하려 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김 변호사가 이에 대해 밝히지 않고, 박전대통령 또한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음에 따라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김 변호사가 조 변호사에 대한 신임을 거듭 밝힌 점을 감안하면 김 변호사가 하고 싶은 말을 조변호사가 대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 변호사가 재판부에 순서를 합의했다고 주장하며 조금이라도 먼저 변론을 하려했던 이면에는 대통령 의견서를 자신이 읽고 싶은 욕망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없었을까. 조변호사의 주장이 이에 대한 이해를 조금 도우는 것이 사실이다.

김 변호사가 장내와 장외를 오가며, 숱한 발언을 남겼지만, 그중 한 가지 발언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김 변호사는 지난 2월 25일 탄핵반대집회에서 ‘헌재 결정에 복종하면 노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재결정에 복종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그는 적어도 이 같은 말을 한 다음에는 헌재재판에 참석하지 말았어야 했다. 대중 앞에서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재판의 권위를 스스로 부정하고, 불복종을 선동한 사람이 이틀 뒤인 2월 27일 또 다시 그 재판정에 출석한 것은 자가당착적 행동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 같은 헌법불복종선언을 한 다음에는 변호인 사퇴를 선언하고 헌재에 가지 않았어야 했다. 왜? 그는 바로 그 재판 피고인의 변호인이었기 때문이다.

▲ 장수덕변호사의 웹사이트

▲ 장수덕변호사의 웹사이트

‘변호사보다 혁명가로 불러달라’ 돈키호테식 발언

김 변호사의 막말변론 등을 둘러싸고 변협이 징계를 검토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일부에서는 김 변호사가 이 발언만큼은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을 알 길은 없다.
현재 김 변호사는 미국과 캐나다 방방곡곡들 돌며 시국강연에 나서고 있다. 4월 6일 LA를 시작으로 8일 뉴저지, 10일 뉴욕, 12일 토론토, 15일 워싱턴DC를 돌았고 18일에는 극과 극인 밴쿠버로 향했다. 20일에는 새크라멘트, 21일 샌프란시스코, 22일 산호세, 그리고 25일에는 다시 정반대인 애틀란타, 27일 휴스턴에서 강연을 한다고 한다. 미국과 캐나다를 갈지자로 오가고 있으며 가는 곳마다 뜨거운 박수를 받는다고 알려지고 있다.

김 변호사는 2월말 탄핵반대집회에서 ‘변호사가 수천이지만 혁명가는 기백명, 나에게 변호사대신 혁명가라는 호칭이 붙여진다면 사이비라는 전제가 있더라도 일생일대 최대의 영광으로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소망은 이미 이뤄졌다. 다만 그가 혁명가로 불리고 싶다는 말에 진정성이 더해지려면 미국이 아니라 한국으로 가야한다. 지금이 혁명가가 그토록 바라는 ‘혁명의 적기’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만큼, 기존질서를 엎으려는 혁명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시기는 없다. 재외선거인 6만9천명, 한국의 작은 선거구 하나에 불과한 미국에서 강연할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강연을 해야 하는 것이다. ‘멍석’이 제대로 깔려져 있다. 하지만 혁명가는 이상하게도 이 중차대한 시기에 치명적인 ‘전략적 미스’를 범한 척 하고 있다. 왜일까,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장수덕변호사는 지난 17일 낮1시쯤 전화통화를 통해 ‘사실 김평우변호사를 안지는 얼마되지 않았으며 그분이 미국에서 [한국에] 왔기 때문에 우리 미국로펌의 고문이라고 소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변호사를 UCLA 명예교수라고 소개한 부분에 대해 ‘UCLA에 교환프로그램이 있다고 하기에 명예교수라고 했지만 그 프로그램에 어떤 범주가 있는지 모른다. 기왕이면 좋게 소개하는 게 낫겠다 싶어 그렇게 했고 명예교수인지는 모른다.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또 국제변호인단과 관련, ‘처음에 김변호사와 함께 시작했으나, 서로 따로 활동하기로 했다. 지금은 김변호사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5일자 서신에서 소위 ‘국제변호인단 인터내셔널로여스포럼인크’ 법인이 캘리포니아주에 설립됐다’고 기재한 데 대해 ‘당시 법인설립을 준비중이었고, 캘리포니아주는 법인설립전후 기간을 법인의 활동으로 인정한다’고 주장했다.

▲ 김동리선생의 부인 서영은씨가 지난 2014년 출간한 자전소설 ‘꽃들은 어디로 갔나’의 표지, 서씨는 1990년대부터 ‘한 남자를 사랑했네’, ‘내 사랑이 너를 붙잡지 못해도’등 자전소설을 계속 출판하고 있다.

▲ 김동리선생의 부인 서영은씨가 지난 2014년 출간한 자전소설 ‘꽃들은 어디로 갔나’의 표지, 서씨는 1990년대부터 ‘한 남자를 사랑했네’, ‘내 사랑이 너를 붙잡지 못해도’등 자전소설을 계속 출판하고 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정부는 이 법인은 3월 28일 설립됐다고 밝힘으로써 2월15일 이전에 이미 설립됐다는 주장은 사실과 배치된다. 특히 이 서신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는 이미 설립됐고, 한국은 설립중에 있다’며 기설립된 법인과 설립준비중인 법인을 명확히 구분했음을 감안하면, 미국에 설립되지 않은 법인이며 준비중이었을 가능성은 있는 법인을 준비중이라고 하지 않고 이미 설립됐다고 기재한 것은 사실을 왜곡했다는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장변호사가 어떤 의도에서 설립되지 않은 법인을 설립됐다고 기재했는지 알 수 없다.

장변호사는 당시 서신에서 ‘한국법인은 설립을 준비중이며 김평우변호사가 맡을 것’이라고 기재한 부분에 대해 ‘당시에는 김변호사가 맡기로 합의했으나 결국 김변호사가 맡지 않기로 함으로써, 한국법인 설립은 무산됐다’고 밝혔다. 장변호사의 이름이 명시된 지난 4월 14일자 미공익법인 국제변호인단명의의 ‘언론게이트로 주권국가가 위태롭다’는 제목의 보도자료에는 ‘대한민국은 완전 공산화의 문턱에 서 있다. 조기대선이 그 분기점이다. 그것은 즉시 취소해야 한다. 이건 이미 국내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나토가 당연히 관심써야 할 사안이다’라고 명시, 외세개입을 촉구하는 듯한 문구를 담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동리선생의 부인인 서영은씨는 문학계의 이념논쟁에서 선봉에 섰던 김동리선생을 ‘비오듯이 날아오는 화살을 온 몸으로 맞았고 그 화살을 자기 손으로 뽑으며 고군분투한 분’이라고 표현했다. 김변호사도 찬사와 동시에 그에게 쏟아진 화살과 표창을 뽑아내며 돈키호테처럼 진군하고 있다. 모든 면에서 아버지를 빼다 박았다. 돈에 냉정한 점, 로맨티스트인 점, 문학과 법조계에서 큰 족적을 남긴 점, 걷잡을 수 없는 격정 등에서 그렇다.
김평우변호사, 그는 아버지인 김동리선생만큼 유명해지는 데 성공했다. 다만 그 유명세가 칭송으로 남을지, 오명으로 남을지는 오롯이 그에게 달렸다. 그는 과연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의 이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 뒤, 그의 후손과 우리의 후손에게 무엇으로 남겨질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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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컷

‘간통죄 피소 전력 인정하느냐?’질문에

‘모두 옛 이야기, 지금 말하고 싶지 않다’

김평우2김평우변호사는 지난 4월 18일 낮 12시쯤 전화통화를 통해 자신과 관련 제기된 의혹과 문제에 대해 비교적 차분하게 설명했다. 김변호사는 18일 강연을 위해 밴쿠버에 체류 중이었다. 4월 17일 전화통화가 이뤄지지 않아, 이날 오후 카톡과 문자메시지를 통해 신분을 밝히고 ‘여쭤볼 말이 있다’는 문자를 남겼고, 이날 밤 ‘서부시간 9시에 통화하자’는 답신을 받았고 동부시간 새벽 1시에 전화가 왔으나 받지 못했다. ‘통화가 편한 시간을 알려달라’고 문자를 보냈고, 18일 낮 12시쯤 서로 동시에 전화를 걸었고 김변호사가 ‘지금 다시 전화를 걸어달라’고 말해 통화가 이뤄졌다. 김변호사와의 통화를 준비하면서 난처한 질문을 하면 그 질문이후 대화가 끊길 것을 우려, 무엇을 먼저 질문할지 고민했다. 미주순회강연으로 바쁜 일정중임을 감안, 가능하면 길지 않게, 그러나 확인이 필요한 부분은 반드시 물어보는 것으로 정했다. 다음은 김평우 변호사와의 전화 인터뷰 전문이다.
안치용(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김변호사는 시종일관 차분하면서도 정중하게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이혼과정의 형사 문제등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답변했다. 자신의 배우자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려는 남자임이 전화 통화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문] 변호사님, 저희들에게 제보들어 온 게 있어 몇 가지 확인을 하려 합니다. 국제변호인단이 4월 14일 배포한 성명서의 말미에 ‘조기총선이 즉각 취소돼야 한다. 미국과 나토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국제변호인당은 김 변호사님과 같이 운영하시는 걸로 압니다만?
[답] 제가 그 단체와는…, 제가 그 제 이름을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거기가 장수덕변호사라는 분이 하시는 건데, 그분이 한국에서 저와 만났어요. 처음, 이런 아이디어를, 국제변호인단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저도 좋다 그랬어요, 만들어보시라고, 저도 같이 협조하기로 했는데, 그 뒤에 이분이 보니까 한국 실정을 잘 모르고, 생각이 사회활동을 안 하셨던 분 같아요, 조금은 저랑 대화가, 내용이 잘 맞지 않고, 이 양반이 또 조금 사실이 아닌 말을 자꾸 해서 다시는 내 이름을 쓰지 말라고 주의를 드렸어요, 그런데 그분이 재단을 만들어서 제가 고문인 것처럼 말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 양반 재단이나 로펌에 어떤 고문직도 맡은 적이 없습니다, 그분이 조금 오버, 미스리딩[misleading:오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그런 이야기를 하셔서 해명을 하고 있는데, 공개적으로 해명하면, 너무 나오는 것 같고, 남 보기가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개인적으로 주의를 줬어요, 하지 말라고, 그분이 자기 생각인데, 이걸 제 생각인 것처럼 조금, 제 이름을 사용하는 것 같아요, 주의를 좀 해주세요, 절대 관련이 없습니다. 저와는…

[문] 네 네…그런데 왜 김변호사 이름이 거론되는 겁니까?
[답] 그리고 혹시 제가 생각하는 것은, 제가 라디오방송에서 선거에 관련해서 ‘나라의 안보와 외교를 많이 걱정해야 할 때다, 너무 국내문제가지고 서로 선거이슈를 삼고 하는데 말이 되느냐, 나라의 운명이 지금 크게 걸려있는데, 왜 이 조금만 문제를 가지고 서로 내부싸움을 하느냐, 조선말기와 뭐가 다르냐’ 제가 그런 발언을 뉴욕에서 라디오 인터뷰 때 한말이 있어요.

[문] 아 네, 그거랑 무슨 문제가 관련있나요?
[답] 그거와 이 사람[장변호사를 지칭]이 하는 자기 단체이름으로 하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 양반 자기생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문] 지금 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계십니까
[답] 제가 일리노이에 변호사시험[bar exam]에 어드미티드[admitted]가 돼 있습니다. 저는 일리노이주에서 개업을 안했어요, 자격증만 있고, 제가 일리노이에 가서 변호사개업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연구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문] 한가지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저기 변호사님, 이게 참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혹시 변호사님, 2008년내지 2009년에 형사사건에 피소된 적이 있습니까
[답] 저는 없는데요, 2008년과 2009년, 저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요, 2008년, 2009년에 저는 선거에 나갔는데, 변협회장선거에

[문] 네네, 혹시 간통죄로 고소된 사실이 있으신가요?
[답] 아 글쎄요, 뭐 그거는 저는 지금 뭐 옛날 옛날 옛적의 이야기고 음, 그거는 뭐 우리 저기, 지나간 이야기니까, 그거는 제가 뭐, 뭐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문]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답] 네네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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