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승 몰카 파문」 계기로 본 한국 언론자유실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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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 목적 몰카제작」 취재원 보호 타당성여부 논란 분분
SBS「불법적 정보도 공익에 부응」 검찰 「공공 명분없다」

‘청와대 양길승 몰래카메라’를 두고 검찰의 “내놔라”와 SBS방송의 “못내놓겠다”를 두고 한국 언론계 안팎에서 논란이 분분하다. 비디오 테이프를 SBS 방송국측으로부터 받아내겠다는 한국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내 주어야 한다”는 측과 “취재원 보호상 안된다”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지난 92년 LA흑인폭동의 원인이기도 했던 ‘로드니 킹 구타사건’도 ‘몰래카메라’ 덕분이었다. 백인 경찰들이 야밤에 교통단속에 걸린 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장면을 한 백인이 찍어 CH-5 방송국에 보냈으며, 이 장면이 TV로 방영되는 바람에 나중 폭동의 단초가 됐다.
이 ‘몰카’ 덕분에 백인경찰의 흑인인권 탄압이 세상에 더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언론자유가 헌법정신처럼 세계 최고수준으로 보호 받고 있다는 미국에서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검찰의 수색을 거부하고 판사의 명령에도 따르지 않고, 언론인이 교도소로 가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검찰 자신이 언론사를 대상으로 취재원을 캐고 들으려 하지 않고 있으며 판사도 그런 명령을 내리기를 꺼려한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많은 언론기관들이 매년 수차례나 법원으로부터 취재원 관련 사실의 공개 혹은 취재자료의 제출을 명령받고 그 위반으로 인해 처벌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러한 사례가 단 1건(한겨레 사태)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한국의 언론기관들이 이번사태에 쓸데없는 논쟁을 하려는지 이해가 안 된다. 과거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정권 시절 보도지침 등에 아무말 못하고 따라왔던 언론이 자기반성과 자체개혁은 전혀 무시한 채 언론자유만을 외치는 것을 보면 한국의 언론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성진 (취재부 기자) [email protected]

언론수준 의심

이번 ‘몰카카메라’에 대한 SBS측 입장은 검찰의 압수수색영장 집행을 물리력으로 저지하지는 않겠으나, 자발적으로 테이프를 내놓지는 않겠다는 입장으로 해석되고 있다. 즉 검찰이 SBS를 수색해 테이프를 찾아내는 것은 막지는 않겠으나, ‘취재원 보호’라는 언론 원칙을 훼손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SBS는 문제의 비디오테이프를 지난달 5일 이 사건의 제보자로부터 제공받아 보관해 오다가 한국일보가 이 사건을 보도한 직후인 7월말 이를 방영했고, 이에 검찰은 사건 수사를 위해 SBS에 테이프제공을 요구했으나 SBS측은 테이프 가운데 모자이크 처리가 된 일부만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SBS 자세도 바람직스럽지 못했다. 애초 테이프를 받아놓고 망설이다가, 한국일보에서 보도를 하자 그제서야 ‘영상보도특종’인양 보도를 하는 것은 SBS가 아직도 선정적인 상업방송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검찰에서 테이프를 요구하자 이에 강력하게 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압수수색은 막지 않겠으나, 자발적으로 테이프를 내놓지는 않겠다”고 했다. 이는 언론자유를 자발적으로 수호할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늉만 내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SBS가 뉴스를 보도할 자격이 있는 방송국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검찰의 수색을 허가한다는 것은 SBS 보도국을 개방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수색과정에서 다른 취재원 자료가 있을 것인데 그 것이 노출될 경우 이미 거기에는 취재원 보호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SBS는 압수수색을 허가치 말고 법적대응을 했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테이프를 두고 일부에서는 “범인이 불순한 목적으로 제작한 것이기에 그것은 이미 ‘취재원보호’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다”라는 견해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은 SBS의 취재원 보호라는 논제의 평론을 게재했는데 이를 근거로 분석해본다.

지난 89년 ‘서경원 의원 밀입국 사건’때 한겨레신문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당시 한겨레 기자는 서 의원을 만나 밀입북 사실에 대해 인터뷰를 마쳤지만, 서 의원이 “당에 보고할 때까지 보도를 유보해 달라”고 했고, 취재원 보호를 위해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서 의원이 당국에 자수한 뒤 취재기자는 ‘즉각 보도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로 입건됐고, 서 의원의 방북 취재 수첩을 압수하기 위해 편집국에 대한 압수수색이 강행됐다. 물론 한겨레는 이를 거부했고, 당국도 취재기자와 한겨레를 기소하지는 못했다.

SBS도 문제

SBS의 사례는 당시 한겨레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게 기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당국은 89년 서경원 의원의 방북사건을 재야 농민운동가가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국회에 침투한 뒤 밀입북해 북한에 정보를 제공하고 공작금을 받은 ‘국회의원 간첩사건’이라고 규정지었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마다 안기부가 터뜨린 굵직한 ‘간첩단 사건’의 하나였던 만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취재원을 보호해야 하는 언론사를 공권력이 침해한 경우라는 것이다. 반면에 SBS의 경우 과연 ‘취재원 보호’의 당위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SBS의 ‘원본 테이프 제출 불가’ 입장을 놓고 취재원이 불법적으로 얻은 정보라 하더라도 보도내용 자체로 볼 때 청와대 공직자의 향응을 고발해 공익에 부응했으므로 언론은 취재원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취재원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선의를 갖고 정보를 제공한 것이 아닌 데다 정보를 취득한 방식도 불법적인 것이기 때문에 검찰의 테이프 제출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조사 결과 양 전 실장은 공무원으로서 받아서는 안 될 향응과 접대를 받았다. 이것은 말 그대로 이 사건의 결과다. 하지만 지금 국민의 관심사는 이미 양 전 실장이 받은 향응이 아니다.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해 몰래 카메라로 찍은 뒤 집요하게 ‘언론 플레이’를 해 온 주체가 누구이고, 왜 그랬냐는 것에 관심이 기울어져 있다. 국민의 알 권리가 바로 이점에 집중돼 있는 데 반해 해당 언론사는 이 점을 밝히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최후의 규명 주체는 검찰이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다. 즉, 국민의 알권리를 실현시키기 위해 원본 테이프를 검찰에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는 어떤가? SBS가 ‘취재원 보호’라는 이유로 수사를 거부하는 데 설득력을 가지려면, 문제의 원본 테이프 안에 취재원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들어 있어야 한다. 즉, 원본 테이프를 검찰에 넘김으로써 바로 취재원이 공개돼야 한다. 하지만 SBS는 5일 밤 미디어 오늘과의 통화에서 “제공받은 원본 테이프의 내용이 10분 정도밖에 안 되고, 그 가운데 쓸만한 부분은 이미 골라 쓴 상황이라 원본 테이프를 가져간다 해도 나올 게 거의 없다”며 “테이프를 본다고 취재원의 신원이 노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쓸만한 것들만 편집해 방영한 테이프는 제공할 수 있는데, 원본은 줄 수 없다? ‘쓸만한 것들’에 ‘쓸데없는 것들’이 추가된 것 뿐인 원본 테이프를 왜 줄 수 없다는 것인가? 원본에 취재원이 드러나 있는 것도 아닌데, 취재원 보호라는 명분 때문에 줄 수 없다? 원본 테이프 안에 취재원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내용이 없다면, SBS가 보호해야 하는 취재원은 사실상 없는 것 아닌가?

이에 대한 의견은 언론 학자들과 기자들끼리도 서로 엇갈린다.김재범 방송학회장과 김민환 한국언론학회장, 이상기 한국기자협회장 등은 취재원 보호의 원칙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부 기자들도 이같은 의견에 동의한다. 한 신문사의 법조 출입기자는 “누군가 나, 혹은 내가 소속된 언론사를 믿고 정보를 제공했다면 그에 대한 최소한의 신의는 지켜줘야 한다”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누가 위험을 감수하면서 제보를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정치부의 다른 기자는 “언론이 제보를 받아 보도를 한다면 그 자체는 이미 공익적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언론사라면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제보를 했는지보다 제보한 내용이 사실에 입각한 것이고, 공익적 가치가 있느냐는 것에 더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국은 취재원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취재원을 보호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아주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수사 협조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SBS에 제보한 사람은 불법으로 촬영한 테이프를 넘겨준 것이므로 이 경우 취재원 보호의 명분이 없다”고 말한다. 한 신문사의 정당 출입기자는 “특정 사안에 대해 의도를 갖고 정보를 제공할 경우 기사 자체가 공공의 이익에 복무한다 하더라도 불법적인 방식을 이용한 범죄자(혹은 집단)에 대한 보호를 어느 선까지 할 것인가는 언론사가 책임질 문제”라고 말했다. 또 “현재로서는 양 전 실장이 몰카에 찍힌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은 도대체 누가 왜 찍었는지에 관심이 쏠려 있고,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면 언론사는 이에 대해 공개 의무가 있고, 스스로 공개하기가 어렵다면 정당하게 법의 절차에 입각해 밝혀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기자는 취재원을 보호해야 하는 언론사의 의무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대신 재판 등을 통해 피의 사실이 확정되기 전까지 취재원과 소스를 보호해달라고 검찰에 요청할 수 있고, 이는 검찰과 언론 사이에 얼마든지 조율이 가능하다”며 “테이프를 넘겨도 기술적으로 취재원 보호가 가능하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과연 한국의 현실상 검찰과 언론사이에서 서로 협조적인 조율이 가능한가? 이 문제는 기자들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항이다. 한 신문사의 편집국장은 “양 전 실장의 몰카 테이프는 사회 고발 차원의 제보가 아니라 언론사를 이용하려는 집단의 장물이기 때문에 언론사는 이 장물을 보호할 의무가 없다”며 “향응 그 자체도 문제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더 문제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문제도 언론사가 보도전에 문제의 테이프 성격을 파악하고 보도해야 하는 것이고 일단 보도를 했으면 그 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언론사라면 취재원은 무조건 보호해야 하는 것인지, 그 내용이 공공성이 있다 하더라도 정보 취득 과정이 불법일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보 자체는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이지만 특정인에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해를 끼치기 위한 의도였다면 이 경우에도 취재원을 보호해야 하는지…. 기자와 언론전문가들의 여러 이야기에서도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논점만 분명해질 뿐이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서 백욱인 서울산업대(정보사회학) 교수가 지난 4일 중앙일보에 기고한 <’양길승 몰카’가 남긴 것들>이라는 칼럼이 눈길을 끈다. 백교수는 이 칼럼에서 다른 언론에서는 지적하지 않았던 것을 비판했다. “장물아비는 도둑질한 물건을 사서 되판다. 도둑처럼 몰래 찍은 영상을 방송했으니 이 또한 장물아비다. 해당 방송사는 ‘몰래 카메라 장물아비’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언론의 자유와는 궤를 달리하는 문제다. 선정적인 쇼를 방영하여 시청률을 높이는 상업 방송의 타성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이 비판에도 문제가 있다. 이것은 SBS에 건네진 테이프를 범죄적 테이프로 단정짓고 하는 말이다. 아직까지도 문제의 테이프가 100% 범죄적 테이프로 법정에서 확정된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재판에서 확정 판결전까지 무죄로 추정된다’라는 법의 정신을 생각한다면 이런 비판은 잘못된 것이다. ‘몰래카메라’ 자체가 도둑처럼 몰래 찍는 것인데 그것을 두고 확정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장물아비”로 단정한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리고 비판논제와는 상관없는 “선정적인 쇼를 방영하여 시청률을 높이는 상업방송의 타성” 운운은 SBS를 두고 한 것으로 보인다. 장물테이프인지 아닌지도 SBS가 판단했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고해소에서 신부가 범죄자로부터 범죄사실을 들었더라도 이를 비밀로 간직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길승 몰카 용의자 2명 긴급체포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에 대한 ‘몰래 카메라’ 사건을 수사중인 청주지검 특별전담팀은 12일 유력한 용의자인 N씨와 H씨를 긴급 체포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인 K나이트클럽 사장 이원호씨(50)의 인척인 N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N씨,H씨의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두 용의자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비디오테이프, 컴퓨터디스켓, 장부 등을 입수해 정밀 분석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N씨와 H씨가 몰래카메라 촬영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데다 검찰이 뚜렷한 단서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구속영장 청구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N 씨는 올 4월부터 J볼링장 소유권 분쟁과 관련, 홍모씨와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으나 볼링장 전 소유자인 K나이트클럽 사장 이씨가 홍씨측을 지원해 불만을 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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