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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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 (언론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 펴낸 자전적 에세이집은 ‘여보, 나 좀 도와줘’입니다. 94년 9월에 출간됐으니까 대통령 출마용으로 출간한 책은 아닙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얘기, 고시공부하면서 겪은 고통과 스트레스, 인권변호사 시절의 애환, 봉하마을 뚝방을 거닐며 권양숙 여사와 연애하던 시절의 추억담 같은 에피소드가 노무현 특유의 진솔하고 꾸밈없는 서민적 언어로 쓰여 있습니다. 이 책엔 노무현다운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다음과 같은 글도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저 좀 도와주세요. 정말 정치다운 정치를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제 후원회 전화는 02-784-2245이고요, 주소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소기업회관 903호 노무현 후원회입니다….”
돈 없는 국회의원 노무현의 ‘놈현다운’ 정치자금 모금법입니다. 책 제목 ‘여보 나 좀 도와줘’는 애처가라는 노무현이 부인한테 바치는 일종의 사처곡(思妻曲)입니다. 헌데 정치다운 정치를 해보고 싶다며 책속에 후원회 주소까지 넣고 정치헌금을 호소하고 있는 것을 보면, 책 제목속의 ‘여보’는 어쩌면 부인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일반 국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무현은 대통령 퇴임 1년여 만인 2009년 5월 23일,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처자식이 관련된 재임 중 비리사건에 대해 대검중수부의 조사를 받던 중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이미 소환통고를 받고 있던 부인은 검찰에 불려나가는 수모를 피하게 됐고, 노대통령 일가 비리사건 수사는 공소권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종결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자살이후 온라인과 시중엔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직접적인 원인을 놓고 여러 가지 소문과 추측과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흘러 나왔다는 그럴듯한 소문이 여의도 증권가와 인터넷 등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지요. 노대통령은 권양숙 여사가 직접 관련된 비리를 처음엔 몰랐다고 합니다. 부인의 뇌물수수 커밍아웃을 나중에 듣고 심한 부부싸움을 했으며, 결국 ‘정치다운 정치’를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부엉이 바위로 올라갔습니다. 노무현 자살의 직접적 원인제공자는 부인 권양숙이었다는 얘기입니다.
2011년 6월 11일 인터넷에 어떤 누리꾼의 이런 글이 떴습니다. “…노무현 자살이유는 부부싸움이다. 부부싸움 끝에 권양숙은 발렌타인 30년산을 반병이나 마시고 쓰러졌다. 자책하다가 대통령은 자살을 선택했다….”
부인이 관련된 비리가 계속 드러나면서 노대통령은 부인을 향해 ‘여보 왜 이래, 제발 나 좀 도와줘’하며 읍소를 하지 않았을까요? 15년 전에 쓴 책 제목이 죽음을 앞둔 대통령과 그의 부인이 나눈 이승의 마지막 대화의 주제어(主題語)가 된 셈입니다.



13억원 돈상자의 비밀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1차적인 동기는 부인 권양숙 여사였다. 문재인 전 실장에 따르면 노무현은 부인이 박연차에게서 거액을 받은 것을 알고 격노했다고 한다. 그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런 참에 검찰이 자신이 주도한 일이라고 몰아붙이니, 노무현은 억울함을 외치려 뛰어내린 것이다….”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 2월 20일자 칼럼>
“…대통령에게 큰 실수를 하게 된 권 여사님은 우리들에게 너무 면목 없어 했다…. 대통령과 같은 공간에 있는 걸 피했다. 우리와 함께 계시다가도 대통령이 오시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문재인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 중에서>
대통령 부인 권양숙은 청와대 총무 비서관 정상문을 매개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딸 정연씨는 뉴저지주 허드슨 강변에 있는 고급 아파트를 재미 변호사인 경연희한테 샀는데, 그 대금 240만 달러 전액을 어머니한테서 받았습니다. 권양숙은 정상문이 박연차한테서 받은 것으로 드러난 3억원과 100만 달러를 빚을 갚는데 썼다고 남편한테 둘러 댔습니다. 그러나 그 돈이 딸의 미국 아파트를 사는데 쓰인 것을 알고 노무현은 불같이 화를 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2009년 6월 1일, 노대통령 자살 며칠 후,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정 비서관이 받았다는 3억원과 100만 달러의 성격을 제대로 몰랐다. 그 돈이 그냥 빚 갚는데 쓰인 게 아니고 아이들을 위해 미국에 집 사는데 쓰인 것을 알고 충격이 굉장히 크셨다. 그런데도 홈페이지에는 (검찰) 수사를 정치적 음모로 보고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비호하는 글들이 올라오니까 ‘그건 아니다.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당시 수사검찰은 권양숙이 100만 달러를 여행용 가방에 넣어 2007년 7월 과테말라로 출국하는 대통령 전용기에 실어 미국에 잠시 기착했을 때 (딸에게) 전했으리라고 추측했습니다.
대통령 전용기에 실어 보낸 아파트 구입자금 선수금 외에 13억원의 잔금을 보낸 수법도 상상이상입니다. 최근 ‘13억원 돈 상자’ 사건을 폭로한 재미교포 이달호 씨 형제가 검찰에서 진술한 얘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파트를 판) 경연희가 노정연과 통화한 후 지정한 장소인 과천 전철역 출구 앞에 2009년 1월 10일 오전 10시쯤 갔다.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나이 지긋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의 안내로 간 비닐하우스에 13억원이 든 사과 라면 박스 7개가 있었다. 13억원 환치기는 나(30만달러)와 수입자동차 딜러인 은모(54), 그리고 경연희가 맡아 처리했다….”
이달호 씨 형제가 최근 귀국해 검찰에 밝힌 의혹은 지난달 말 시민단체인 국민행동본부가 대검에 수사의뢰하면서 본격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동안의 대통령 친인척 비리는 대통령의 아들과 형제들이 관련된 게 대부분입니다. 영부인이 나서 이렇게 첩보영화에나 나올법한 수법으로 막대한 불법자금을 빼돌린 건 권양숙이 처음입니다. ‘여보, 나 좀 도와줘’라고 호소하는 대통령 남편한테 영부인은 전혀 도움이 안되는 존재였던 셈입니다.



자살만 하면 무죄되는 나라



노무현 전 대통령 본인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검찰수사는 그가 자살해 공소권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종결됐고, 수사기록은 밀봉된 채 지금 검찰 문서보관소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가족에 대한 검찰의 공소권은 시효가 남아 있습니다. 시민단체가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했고, 사건 관련자들의 새로운 증언이 나오는 등 국민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통령 전용기로 불법자금을 실어 나르고, 범죄적 환치기로 막대한 외화를 빼돌리는 등 범죄수법도 동정의 여지가 없습니다. 검찰은 사실을 규명해 법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민주당은 노정연 모녀에 대한 재수사를 “야당 죽이기, 이명박 비리 물타기”라고 비난하며 수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부관참시 하는 것”이라는 격렬한 반응을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임신 중인 전직 대통령의 딸한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라며 국민의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감성적 접근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 ‘코미디 닷컴’ 대표 이성주 씨가 어떤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의 제목이 ‘고인의 명복을 빌지 맙시다’ 였습니다. 망자(亡者)를 일방적으로 두둔하고 미화시키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가 자살대국을 만들었다는 내용입니다. 그의 글에는 없지만 법을 어긴 사람도 자살을 하면 있던 범죄가 없어지고 공소권 자체가 소멸되는 특이한 사법관례가 존재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이를 알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자살로 가족을 지켰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은 자살로 기업을 지켰습니다. 자살을 해도 수사가 계속된다면 어쩌면 노무현도 정몽헌도 자살의 유혹을 뿌리쳤을지도 모릅니다.
“자살한 고인의 명복을 빌지 맙시다. 자살한 사람보다 자살의 유혹을 뿌리친 사람을 존경하는 문화를 만듭시다.” 이런 캠페인은 어떨까요.


<2012년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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