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22일은 한미수교 134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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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참전, 민주화 경제발전의 주역

자유여신상오는 22일은 한미수교 134주년이 되는 날이다.
1882년 5월 22일. 조선은 제물포(인천)에서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특히 조약 제1조에 제3국으로부터 ‘불공경모(不公輕侮-불공정하거나 깔보고 업신여김)하는 일이 있을 경우 필수상조(必須相助, 서로 돕는다)한다는 규정을 두어 조선은 미국과 연대, 당시 조선을 괴롭히던 청일을 견제하려 했다.
우리 한민족에게 있어, 특히 재미한인들에게는 한미수교가 갖는 의미가 각별하다.
19세기 당시 조선왕조는 중국의 이홍장의 거중조정으로 미국과 수교함으로써,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오늘날 세계 제 10위의 한강의 기적을 성취할 수 있었고, 미주 한인들은 이를 발판으로 한민족의 세계진출 이라는 큰 축복의 도약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미수교는 1882년(고종 19년) 당시 조선과 미국이 국교와 통상을 목적으로 체결한 조약에서 출발했다. 1876년 조일수호조약이 체결되자, 미국의 상원의원 아론 사전트(Aron A. Sargent)가 조선 개항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미국에 의한 조선의 개항은 경제적으로는 대아시아 무역 팽창정책을 구현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는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저지할 수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조선의 개화운동을 도와줄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조약체결에 따라 이듬해인 1883년 5월초 대미국 전권공사 H. 푸트가 입국해서 비준서를 교환하고, 조선정부에서도 같은 해 6월 전권대신 민영익, 부관 홍영식을 미국에 보냄으로써 양국의 역사적 교류가 시작되었다.
사실 한미수교 이전, 양국 간의 첫 접촉은 1866년(고종 3년)에 발생한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1871년(고종 8년) 미 함대가 통상조약 체결을 강요하기 위해 강화도를 침범한 신미양요 사건이 있었다.  함포외교에서 시작된 한미수교는 미국의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3.1 독립운동, 일본이 시작한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민족해방 지원, 한국전 참전 등 한미 간의 우호 관계가 우리 민족의 부흥과 세계적 비상에 결정적 요인이 되어왔다.
1903년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의  단체이민역사도 바로 이 한미수교에서 비롯된 사건 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들은 특히 한미수교의 최대 수혜자들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민 100년을 뛰어넘어 새로운 100년을 향해 미국 주류사회에서 원대한 이상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 비상하고 있다. 이곳 미국에서 당당히 자리잡아 가고 있는 재미한인들은 한민족의 최대의 자산이며 자랑이다. 우리의 조국 한국도 미국의 진정한 파트너로서 세계의 번영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 것 또한 우리의 긍지를 한껏 높여주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교역, 안보, 경제, 민주주의 등에 관해 강한 동맹관계이며 미주 한인들의 주류 진출 은 한미 간의 관계를 전례 없이 가까운 파트너로 승화시키고 있다.
또한 한인 1세대들은 어려운 희생 등으로 시작했지만 그다음 세대들은 현재  미 주류사회에서 많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때에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타 커뮤니티와 교류하고 주류사회로의 전진을 계속하여 자랑스러운 ‘코메리칸’의 위상을 정립할 때가 되었다.
한미수호 조약134주년은 이런 우리의 비전을 저 광활한 내일의 지평에 건설하기 위한 각오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한미수교 134주년을 맞아SF 한미노인회(회장 김관희)가 한미수교 기념식을 오는 21일 (토) 오전 11시 클레이 스트릿과 데이비스 스트릿이 만나는 샌프란시스코 페리빌딩앞 수 비어만 공원 에서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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