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삐라 전쟁’ 신경전 남북갈등 이슈 ‘대북 전단’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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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단체 삐라살포…남북관계 ‘치명타’ 되나

70년간 계속되는 ‘삐라전쟁’
남북 ‘밀월관계’완 별개 문제

한국 고대사에서 삼국통일의 명장 김유신은 ‘비담의 난’ 때 별이 떨어져 선덕여왕도 이를 두려워 하고 군중이 어지러워지자 “별이 떨어지는 것은 그저 자연 현상일 뿐 인간사와는 관계없는 일” 이라며 제사를 지낸 후 불을 단 연을 띄워 별이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연출해 아군을 고무하고 비담군의 사기를 떨어뜨린 일화가 전해진다. 이른바 심리전의 한 단면이다. 삼국지를 보면 여러 형태의 심리전이 나온다. 심리전의 으뜸 도구는 “삐라”이다. 최근 북한의 김여정이 느닷없이 고약 한 말로 남쪽을 비방하는 욕설중에 ‘대북전단 막지 못하면 본때를 보여주겠다’라고 나오자 몇 시간도 안되어 남쪽에서 ‘대북전단 규제하겠다’라고 맞장구(?)를 치는 형태를 보여주었다. 남북간의 ‘삐라 전쟁’은 한국전쟁 초기부터 시작되어 벌써 70년을 지내고 있다. 총 칼보다 더 무섭다는 남북 간의 삐라 전쟁’을 조명한다. <성 진 취재부 기자>

미군은 걸프전 당시 두 대의 제트기를 사용해 하늘에 흰색 연기로 이라크 국기문양을 그렸다가 그 위에 다시 X자를 그삐라려 이라크군의 사기를 꺾었다고 한다. 또 미군은 이라크 부대 인근에 데이지 커터(6.8t 정도 되는 당시 최강의 재래식 폭탄) 한 방을 터트렸다. 이 폭탄은 폭발시 마치 원자폭탄처럼 버섯 구름이 생긴다. 한방 터트리고 나서 ‘까불면 너희쪽으로 폭탄 날린다’라는 삐라를 뿌렸더니 이라크 군인들이 당장 항복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전설이다. 삐라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UN군과 북한군이 상대방에게 심리전 목적으로 살포하면서 부터다. 한국전쟁 당시 UN군은 약 25억장의 삐라를 북한지역에 살포했으며, 실제로 당시 위협적이던 북한공군의 미그기를 8일간 지상에 묶어놓는 등 상당한 심리전 효과를 보게 됐다고 한다.

정전직후 양측 28억장 전단지 살포

BBC방송 한국어판은 남북간 전단 살포는 한국 전쟁을 시작으로 활발히 이뤄졌다며 당시 유엔군이 심리전 차원에서 북측에 전단을 뿌렸고, 북한도 유엔군을 대상으로 전단을 살포했다고 밝혔다. 휴전 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까지 뿌려진 전단은 총 28억장. 남한과 유엔군이 25억 장, 북한, 소련 등이 3억 장을 뿌렸다. 한반도 전체를 20번 이상 덮을수 있는 분량이다. 전단 색깔은 대부분 눈에 잘 띄는 빨간색이었고, 주로 투항을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전단을 가져 오면 신변을 보호해준다는 ‘안전보장 증명서’도 있었다. 북한인 연합군에게 뿌려진 대남전단중에는 미군 내 흑인 병사를 대상으로 백인 병사들과 차별을 받으며 헛되게 죽지 말고 미국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이 실렸다.

전단 살포는 휴전 후에도 계속됐다. 내용은 각 지도자와 체제를 비난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1960~70년대 북한은 당시 발전한 평양의 모습을 부각하고, 김일성의 업적을 선전하는 내용을 담았다. 1970년대 북한이 대남용으로 보낸 ‘월북 장병들에게’라는 제목의 전단에는 “공화국 공민의 권리와 자유 보장, 직업‧직장 알선, 고급주택 무상 배정, 생활보장금 1억 1100만 원~3억 3300만 원(미화 약 10만–30만 달러), 상금 185억 원까지(미화 약 1천5백만 달러)”라고 적혀 있다. 당시엔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 사정이 훨씬 좋아 전단을 보고 월북하는 사람도 있었다. 1980년대까지 한국에서 학생들이 북한 측이 날려 보낸 전단을 줍는 일이 일상이었다. 이를 학교나 파출소에 가져가면 자, 책받침, 공책 등 각종 학용품을 포상으로 받을 수 있었다. 관공서에는 간첩 및 간첩선 포상금 지급과 대남 전단 수거에 대한 공고가 붙었다.

삐라는 심리전의 대표적인 도구

이후 남북의 경제적 상황이 역전되면서 남한은 이 부분을 대북전단에 활용했다. 특히 88 서울올림픽 개최를 중심으로 ‘배불리 먹고 싶지 않습니까’등 직접적으로 이를 표현했다. 그러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2000년 남북 상호비방 중지 합의에 따라 양측의 전단 살포가 공식 중단됐다. 2007년에는 경찰청이 북한 불온선전물 수거‧처리규칙을 폐지해 학용품 등을 지급하는 포상도 사라졌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상호 비방과 심리전이 재개됐고 양국 간 전단 살포도 다시 시작됐다. 2000년대 이후는 민간 단체들이 대북전단 전면에 나섰는데 이들은 전단 외에도 컵라면, 1달러 지폐, 소책자 등의 물품도 함께 날려보냈다. 대북 전단은 특히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확대됐다.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리고 남북간 대화 분위기가 펼쳐지던 2014년에도 전단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됐다. 이후 박근혜 정부가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대응 차원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도 재개했다.

당시 방송에는 인권 탄압 등 북한의 내부 소식 외에 한국에서 유행하는 아이돌 음악도 실렸다. 이에 대응해 북한은 대남 전단 살포를 본격적으로 재개했다. 미국의 대북정책이나 한국 내 정치 상황을 비난하는 전단이 대부분이었다.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과 박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진행중인 2016년 말에는 ‘현 정부는 각성하라’며 ‘촛불민심을 외면한다면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는 문구가 담긴 전단이 뿌려졌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말폭탄을 주고받을 때도 전단은 계속됐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간의 ‘판문점 공동선언’을 통해 “5월 1일부터 군사 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기로 했다. 군사분계선 지역에 설치된 확성기도 모두 제거됐다. 이와 맞물려 2018년 5월 5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이 경기 파주 일대에서 전단 살포를 시도하다 제지를 받았다. 하지만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대북 민간 단체들의 전단 살포는 계속됐다. 그러다 지난 6월 4일 북한 김여정(노동당 제 1부부장)이 탈북자 단체의 전단 살포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대북 전단 살포 문제가 남북 관계의 주요 현안으로 등장했다.

북한 정권이 가장 신경쓴 대북전단

대형 풍선이나 패트병을 통해 북한에 외부 정보를 보내는 단체들은 대북풍선단과 자유북한 운동연합, 큰샘, 탈북민 유모씨 등 개인 2명, 기독교 선교단체인 한국 삐라2순교자의 소리(VOM)등으로 파악되고 있다. 민간에서 삐라가 제작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삐라에 더는 정치인이나 체제 선전용 그림이 아닌 연예인이나 라면 등 대중문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에서는 당시 남한의 연예인 사진을 도용하여 삐라를 제작하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엔 몇몇 민간단체에서 북한 지역엔 장마당에서 주로 사용되는 화폐인 미국 달러나 라면, 초코파이와 한국 드라마가 담긴 DVD 등이 삐라와 함께 북한지역에 살포하곤 한다고 한다. 삐라는 그저 종이로 된 작은 심리전단물이 아닌, 한국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의 사회‧문화가 서로 어떻게 다르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로도 보여진다. 현재 한국의 DMZ박물관에 소장된 남북한 삐라가 그런 것을 보여준다. 김여정은 당시 개인 명의로 낸 담화문에서 한국 정부가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 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하지 못하면 남북관계는 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한국 통일부는 김여정의 담화문이 공개된지 불과 몇 시간만에 대북 전단 살포를 중단시킬 수 있도록 법률 정비를 계획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일부 탈북자들은 김여정이 직접 나서 대북 전단을 보내는 탈북민들을 ‘배신자’, ‘쓰레기’등으로 부르며 강도 높게 비판한 만큼 이런 북한 지도부의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여당인 민주당 소속의 국회의원들도 잇달아 관련 법안을 내놓았다. 17일까지 대북전단 관련 총 4건의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있다. 전단 등의 살포에 대해 통일부의 승인을 받게끔 하는 개정안부터 ‘대북 적대행위’에 대해 최대 7년의 징역으로 처벌하는 개정안까지 있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며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데 이어, 대남전단을 뿌리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대해 강원도 접경 지역인 양구, 화천, 철원군은 22일 주민들에게 “북한 대남전단 발견시 안전을 위해 전단이나 살포 장치에 전급하지 말고 즉시 경찰이나 안보지원사령부에 신고해 달라”는 재난 문자를 발송했다. 탈북민 단체들은 정권 성향과 관계없이 대북 전단, 이른바 ‘삐라’를 지속적으로 뿌려 왔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5월 31일, 북한 김정은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전단 등을 대형 풍선에 달아 북으로 날려 보냈다. 당시 이 단체는 김포에서 대북전단 50만장과 소책자 50권, 1달러 지폐 2천장, 메모리카드 1천개를 대형 풍선에 매달아 북한에 날려 보냈다. 눈에 띄는 대북전단은 ‘7기 4차 당 중앙군사 위에서 새 전략 핵무기로 충격적 행동하겠다는 위선자 김정은’이라는 문구와 함께 김정은의 모습을 합성한 현수막이다. 이 대북전단엔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 핵미사일, 김정은의 사진을 합성해 빨간 고딕체로 김정은을 ‘위선자’로 지칭했다.

탈북자 주도 대북전단 인권 강조

지난 6월 5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이 파주에서 ‘대북전단 살포 행사’를 대신해 진행한 기자 회견장에 내걸린 대형 현수막에는 ‘핵 미치광 김정은 놈 때려부셔요’라는 글귀가 들어가 있다. 해당 현수막에는 ‘북극성’ SLBM, ‘화성’ ICBM을 양손에 들고 인상을 쓰고 있는 김정은의 얼굴과 함께 ‘잔인한 살인독재자 김정은의 거짓 대화 공세, 위장 평화 공세에 속지말자’고 적혀있다. 이외에도 ‘굶주린 인민의 피땀으로 핵 로케트 도발에 미쳐버린 김정은을 인류가 규탄한다’는 내용 의 대북전단, ‘맏형 김정남을 잔인하게 살해한 인간백정 김정은’과 같은 문구가 새겨진 대북 전단 등도 있다. 대북전단 살포를 주도하는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는 “대북전단은 북한 동포들에게 탈북 민들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다. 이것을 막겠다는 것은 북한 김정은 정권에 머리를 조아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은 6월 4일 담화문에서 “남조선에서 공개적으로 반공화국 삐라를 날려 보낸 것이 5월 31일이지만 그전부터 남측의 더러운 오물들이 날아오는 것을 계속 수거하며 피로에 시달려 왔다”면서 “우리는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적은 역시 적이라는 결론을 더욱 확고히 내렸다”고 전했다. 남측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제재하지 않을 시 금강산 관광을 폐지하고, 개성공단을 완전 철거하고, 9‧19 남북 군사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언급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는 와중에도 자유북한연합 등 탈북민 단체들은 대북 전단 살포를 또다시 시도 했다. 단체삐라3들은 6월 5일 강화 석모리에서 대북 전단을 날리려 했다. 북한의 보복 조치를 우려 한 지역 주민들은 통행로를 막아서며 반대했고, 결국 전단을 날리지 못했다.

VOA방송에 따르면 풍선과 패트병을 통해 북한에 보내는 정보는 역사적 사실과 국제 현실에 근거해 작성된 것이라고, 탈북민 등 민간단체들이 밝혔다. 외설적이고 저급한 내용을 보낸다는 일각의 비판은 왜곡된 것이라며, 6‧25 한국전쟁과 한국의 경제 발전사, 성경 내용이 중심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03년부터 대형 풍선을 통해 대북 전단을 보내고 있는 이민복 대북풍선단 대표는 3일 VOA에, 탈북민들이 외설적이고 저급한 내용을 북한에 보낸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한 것”이라고 말했다. 17년 동안 전단을 보내면서 북한의 김 씨 정권을 직접 욕하거나 저급한 내용을 담은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최고 존엄 건드리는 전단 문구가 문제

이 단체 박상학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한국 육군사관학교 교재 내용을 그대로 발췌해 북한에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가 대북 전단을 보낼 때 뭐 음란물을 보내니, 터무니없는 얘기를 하거든요. 제가 보내는 대북 전단은 첫째, 진짜 용이된 나라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경제, 문화, 발전 역사를 간추려서 이거(책을 보이며) 육군사관 학교의 교재로 쓰고 있는 겁니다… 괄호 안에 조선 인민해방전선이라고 꼭 밝혀서 팩트에 기초해 대북 전단을 보내는데. 이걸 갖고 찌라시, 음란물을 보내니 폄하합니다.” 한국의 일부 언론은 북한 수뇌부가 미-한 연합군사훈련 보다 최고 존엄을 건드리는 것에 더 크게 반발해 왔다며, 탈북민들의 전단 내용이 김씨 정권의 최고 존엄을 건드리는 게 문제라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단체들은 신앙과 표현의 자유 탄압, 전쟁 등 역사적 사실만 제기해도 최고 존엄 모독 으로 비난한다면 북한 주민들은 계속 폐쇄사회에 노예로 갇혀 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정오 큰샘 대표는 “한 사람의 존엄이 귀중합니까? 2천 500만의 존엄이 귀중합니까? 저희는 2천 500만 북한 주민의 존엄이 더 귀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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