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이사장 김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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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인권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면 인권운동 봉사는 할 수 가 없다. 꿈이 없으면 인권활동을 할 수가 없다.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이사장 김석우)은 북한동포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고,궁극적으로는 남북통일과 민족공동체 형성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시민연합은 특히 북한의 인권상황, 특히 정치범수용소 실태 자료수집 및 국내외 홍보 활동을 벌이는 동시에 정치범의 강제노동 실태를 국제기구 고발, 제소하는 일도 한다. 이와 함께 북한난민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사업으로 한국에 정착한 북한아동·청소년 교육에 중점을 둔 국내거주 탈북자 지원하고 이를 위해 각국 인권단체와 긴밀한 협조를 한다.

창립 25년을 맞아 후원자에 감사

▲ 김영자 사무국장

▲ 김영자 사무국장

시민연합은 지난 수년 동안 유엔 제네바 사무국과 뉴욕 본부에서 북한인권에 관한 유엔 결의안에 국제적 지지를 이끌어 내고,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임명과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설립에 큰 기여를 했다. 또한 북한의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Universal Periodic Review)를 포함 하여 유엔 인권이사회,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등과 협력해 전문가들에게 북한인권 상황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다. 올해 창립 25년을 맞아 시민연합의 실무 총책 김영자 사무국장은 본보에 후원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그동안 활동했던 한 장면 한 장면이 떠오르고 함께 동고 동락했던 분들이 생각 난다고 했다. 김영자 국장은 5년전 한 언론과 회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 등에서 인신매매 표적이 되고 있는 탈북 난민 여성들을 모른 척한다면 ‘현대판 위안부’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녀는 25년전 처음 활동 당시 사무실 없이 사안이 있을 때마다 빵집과 다방을 전전하며 일할 과제를 주고 받았고, 소식지나 계간지 발송을 위해서는 아는 분들의 사무실을 빌리거나 프란치 스코 교육회관 회의실을 빌려 사용했다. 1년, 2년 3년 이런 활동이 계속되니 재정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메아리 없는 활동을 계속하려니 정신적으로도 무척 힘들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윤현 이사장에게 ‘저는 인제 그만 두겠다’라는 말씀을 드렸더니, 윤현 이사장이 “나도 힘들다. 조금 더 견디면 안 되겠냐”라는 말씀에 지금까지 활동하게 되었다. 그 힘든 고비를 넘기자, 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외국에서도 우리의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되어, 이때부터 자원봉사자 교육, 국제회의 개최, 북한난민 구출에 힘을 다할 수 있었다. 물론 어떤 때는 너무 힘들어 목 놓아 울었고, 너무 기뻐 환호를 지르는 부침이 있었지만, 처음 고비를 잘 넘긴 덕분에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고 했다.

중국 떠도는 탈북 여성은 현대판 위안부

지금까지 활동하며 기억에 남는 그것은 1999년 중국 장백에서 탈북한 28세의 젊은이를 만났을 때, 그의 입에서 부모님은 굶다 2년 전에 돌아가셨고, 1년 전에는 여동생이 굶어 죽었다며, 더 있다간 자신도 굶어 죽을 것 같아 남동생 손을 잡고 압록강을 넘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 달 전 공안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니다 동생을 잃어버렸다며…, 북한에는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이 젊은이의 눈은 사냥꾼에 쫓기는 겁에 질린 짐승 같았다. 이때 이를 구하지 못해 많은 눈 물을 쏟으며, 이들의 삶을 외면하면 양심의 죄를 짓는 그것으로 생각해 지금까지 북한난민 구출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북한사람들그리고 한국에 입국한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국장님, 공개 처형하는 것 봤습니까?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봤습니다”라면서 그 처형 장면을 자세히 묘사해주는데 소름이 끼쳤습 니다. 한 학생은 지금도 꿈에서 그 처형 장면을 꿈을 꾸고 소스라치게 놀라 꿈에서 깨면 온몸이 땀에 범벅이 되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이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002년 9월 체코의 피플 인 니드(People in need)의 초청으로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을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우리를 대하는 인자한 하벨 대통령은 우리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질문하였다. 우리는 유엔에서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임명되기를 희망하며 이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2003년 3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되었고, 2004년 특별보고관이 임명되었다. 우리가 처음 설정한 목표를 상당히 이른 시일 내에 달성,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고, 북한 주민 들이 곧 자유를 누릴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 이후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2013년에는 유엔인권조사위원회 설립되었고, 그 이듬해 보고서도 출간됐다. 북한인권문제가 전 세계에 큰 화두를 던지게 되었다.

숨어 있는 북한난민 구출에 최선 다할 것

25년이란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 속된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우리의 활동이 유엔 인권 이사회, 유엔 총회, 유엔 안보리까지 미치게 됐을 뿐 아니라, 북한난민을 구출 활동과 국내 입국한 탈북 동포들의 사회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에서도 선구자적 역할들을 해왔다.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북한 인권침해에 관련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조사 활동을 벌이고, 북한 인권 유린 책임자 처벌을 위한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입국한 탈북 대학생들에게는 통일, 그 이후 맞이할 전환기를 대비하여, 2005년부터 리더십 교육했고, 몇 년 전부터는 폴란드, 독일, 네덜란드를 방문하여 동유럽의 전환기를 배우고, 이 배움을 통해서 남북전환기에 젊은이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유-브릿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 한 10년 동안 열심히 활동하면 북한주민들도 우리와 같은 권리를 누리게 되리라 생각했는데, 25년이 지나도 북한은 여전히 암흑이고 자유 없이 노예처럼 살고 있다. 앞으로 우리의 할 일은 더 많아지겠지만, 하루 빨리 북한인권시민연합이 문 닫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그날이 바로 북한주민의 인권이 꽃피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북한난민 구출은 중국은 물론 동남아에서도 이동이 무척 어려워 걱정이다. 이에  숨어 있는 북한난민 200명에게 생활비를 보조하고 있다.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등으로 행사도 많고 감사해야 하는 날이 많지만, 저희도  5월은 잊을 수 없죠! 시민연합 탄생일이 5월 4일이니까요.  우리가 이 활동을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시간이 흘러 25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늘 아낌 없는 격려를 해 주신 후원자님들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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