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窓] 박경재 LA총영사 ‘깜짝귀임’ 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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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애잔한 귀국길이
자꾸만 생각나는 까닭

2박경재 LA총영사가 지난 1일 ‘특임공관장’ 임무를 떠나 한국으로 귀임했다. 박총영사는지난 2020년 5월 17일 ‘특임 공관장’으로 부임해 약 1년 7개월만에 귀임한 셈이다. ‘특임공관장’은 직업 외교관이 아닌 사람을 대통령이 직접 발탁하는 제도로 외국어를 비롯한 실무능력은 물론 리더십에 문화적 소양과 식견까지 까다로운 자격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공무원 중에서도 가장 엘리트 의식이 높은 직업 외교관들사이에서 ‘초짜외교관’이 고생을 겪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박총영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총영사라는 직분은 국교가 있는 나라에 머물면서 자국민을 보호 감독하고 통상, 문화교류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최상급의 영사 직분이며 대사급이다. 대한민국 해외 공관중 5대 공관에 들어간다는 LA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LA는 대한민국 나라 밖에서 해외 한인이 가장 많이 밀집돼 거주하는 지역이다. LA총영사관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1948년 11월 21일에 해외공관으로서는 최초로 설치된 공관이다. 총영사관 개관관할 지역의 한인이 통상 100만으로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환태평양 시대’라는 국제 환경에서 LA는 태평양의 관문이며 대미수출의 교두보라는 점에서 이 지역 공관의 중요성은 그 어느 곳 보다 막중하다.

무엇보다 LA총영사관은 여러면에서 한인사회와 불가분의 관계다. 그렇다 보니 LA 총영사라는 자리는 만만치 않은 힘든 자리로 이름나있는 것 같다. 일 잘하고 무난했던 총영사들도 있었지만 개중에는 한인사회 분열을 조장하는데 한 몫 거들기도 했으며 한인사회에 군림하려는 권위적 위세를 부렸던 이들도 있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짧은 재임기간이었지만 한인사회를 위해 적극 적으로 많은 일을 한 총영사도 있었다. 박총영사는 비록 1년 7개월 짧은 기간이었으나 열성적인 활동을 보여준 공관장이었다. 대한민국과 LA한인사회, 그리고 미주류사회간에 정직하고 튼튼한 교량 역할을 다짐하고 떠났다고 볼 수 있다.

열성적인 활동상 보여준 공관장

박총영사는 지난해 마지막해인 12월 중 활동을 보면 거의 초인적인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나타 났다. 재임중 마지막 공식 관저 오찬회를 광복회 미국서남부지회(3기 회장 김준배)와 오찬 간담회 개최, 한미과학기술학술대회(US-Korea Science & Tech Confernece) 참석, 2021 AIR TAXI & RENEWABLE ENERGY SUMMIT 개최, 미주 3·1 여성동지회와 오찬회를 포함해 관할 지역인 멀리 애리조나 주를 방문해 애리조나 한인회 만찬 간담회, 애리조나 청소년 에세이/미술 공모전 시상식 개최, 이어서 뉴멕시코주를 방문 참전기념비(New Mexico Veterans’ Memorial)를 방문하여 참전용사들 추모 행사를 가졌으며, 미셸 루한 그리샴(Michelle Lujan Grisham) 뉴멕시코 주지사 면담과 뉴멕시코 대학교(University of New Mexico) 학생 대상으로 강연도 했다.

특히 뉴멕시코주에서도 한국전 참전용사 오찬 위로연을 개최하여 감사를 표명하였다. LA한인사회 원로이며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미주국군포로송환위원회장인 정용봉 박사는 “박경재총영사는 어느 공관장보다도 특히 한국전쟁의 역사 알리기와 참전 용사에 대한 예우를 성의를 다하여 활동한 총영사이다”라고 기억하며 평가하고 있다. 박총영사는 지난 1일 KAL편으로 귀국하기 하루 전날 밤인 구랍 31일 본보 연훈 발행인에게 전화를 통해 “동포사회 여러분들에게 일일히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떠나게 됨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면서 “2022년 새해는 LA동포사회가 코로나-19에서 치유되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라고 말하며 “그동안 여러가지로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박총영사는 “짧은 재임 기간이었으나 소중한 보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통 외무부 출신의 직업외교관이 아닌 교육부 장학관 출신의 박 총영사는 처음 LA부임했을 때도 LA총영사관 직원들을 포함해 그 어느 누구도 LA 한인사회에 대하여 조언이나 안내를 받지 못해 매우 답답했던 기억도 많았다. 부임 당시가 코로나-19가 창궐할 때라 더더욱 답답하고 어려운 점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박총영사 특유의 인내심과 진정성으로 이겨 나갔다.

충격받은 부인의 병간호 위해 상신

그러나 박총영사의 이번 귀임은 지난 번 투서사건의 물의로 인한 귀책전보가 아니고 ‘개인 사정’으로 본인의 청원으로 이뤄진 것이다. 공관 직원들의 투사사건으로 논란이 야기됐던 지난해 10월 갑작스럽게 적지않은 충격을 받은 박총영사의 부인이 지병이 발생해 급거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입원하는 일이 발생했다. 평소 부부애가 남다른 박총영사에게는 서울에 남겨둔 부인을 간호할 수 없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파했다. 그러나 공직자로서 임무를 다 해야하는 외교관으로서 가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함에 뼈아픈 고뇌를 하다가 부인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고는 정부에 ‘귀임 시켜달라’고 수차례나 청원을 하기에 이르렀다.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 외무부출신이 아닌 교육부 출신’이라는 비아냥 소리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동안 박 총영사는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 동분서주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삿짐도 제대로 챙기지지 못한채 서둘러 귀국길에 올라야했다.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어 온 박 총영사의 애잔한 귀국길이 계속 마음에 꺼리는 이유는 그가 너무나 세상물정을 모르고 순진한 의욕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미국 공직자들에게는 가정사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아무리 높은 직책을 준다해도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공직자들은 가정을 지키는데 최우선을 두고 있다.

한편, 박경재 전총영사 후임으로 4일 한국 외교부는 김영완(51) 국무조정실 외교안보정책관을 LA총영사에 임명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김영완 신임 총영사는 외무고시 27회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학사, 버지니아대 국제정치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동안 외교부 소속으로 주이라크 참사관, 주중국 1등 서기관, 외교부 기획조정실 조정기획관을 지냈다. 김 신임 총영사는 두번다시 한인사회 토호세력들에게 놀아나지 않기 바라며 박경재 총영사와 같은 비극의 전철을 되풀이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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