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가정의 달’ 3회 양로병원의 우리 부모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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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의 마지막 인생이 바로 그곳에 있다’가슴에 새겨야

1년에 한두차례 방문은
흡사‘고려장’이나 다름없다”

■ “양로병원은 부모님들의 마지막 ‘안식처’이다”
■ “부모님 많이 찾아 갈수록 병원서도 관심둔다”

지난 15여년 동안 양로병원에 어머님(98)을 모셨다가 지난 1월에 모친 장례식을 치룬 K씨는 요즘도 틈만 나면 평소 어르신으로 모셨던 분이나, 동창 선배들이나, 직장에서의 선배들이 재활 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소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능한 시간을 내어 방문한다. K씨는“생전에 어머님이 양로병원에 계실 때 방문하면서 주위의 외로운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많이 보아 왔다”면서“그 분들에게 그냥‘어떻시냐’라는 말 한마디와 손을 잡아주는 것만이라도 크게 위로가 된다는 것을 체험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부모님을 양로원으로 보내 놓고도 일년에 한두 번 정도 방문한다면 그게 바로‘고려장’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LA코리아타운 인근에 자리잡은 중앙양로병원에 가면 K씨와 그의 누님과 매형은 ‘특별한 보호자’ 로 알려져 왔다. 이 세 사람이 번갈아 이 병원에 출입했던 기록을 보면 지난 15년 동안 거의 매일 가족들이 출근한 셈이다. 이들의 어머님은 거의 매일 식구를 만나는 셈이었다. 말이 15년이지, 일 수로 계산한다면 무려 5천 400일이 넘는다. K씨의 어머님이 중앙양로병원에 계시는 동안 병원의 스탭진들도 거의 K씨의 가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K씨 어머님이 간단한 감기 기운이 있어도 즉각 K씨나 그의 누님이나 매형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님이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다”라며 알린다. 당연히 K 씨나 누님 아니면 매형이 병원에 즉각 나타난다.

이 병원의 스탭진의 한 관계자는 “환자 보호자가 열심히 병원을 방문하게 되면 우리도 자연 그 환자에게 관심을 두게 된다”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자식들이 부모를 뜨믄 뜨문 방문하면 그만큼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로도 들렸다. K씨의 어머님은 원래 밸리 노인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지난 2006년께 굿 사마리탄 병원에서 심장수술과 흉부 수술을 마치고 8가에 위치한 그랜드 양로병원에 4일간 거주하다가 다시 노인아파트에서 지내다가 쇼셜워커의 조언으로 2007년에 중앙양로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15년 동안 그 병원에서 지냈다. 전에 노인 아파트에 어머님이 거주할 때도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어머님에게 문안을 드렸던 K씨는 중앙양로병원이 어머님의 상주 공간이 되면서 하루의 시작은 어머님 문안으로 일과를 시작 했다. 누님과 매형도 마찬가지였다. K씨의 매형의 장모 간병은 친 자식보다 더한 정성이었다. 지난 2005년 미 굴지의 항공 제작사에서 은퇴한 매형은 아고라 힐에서 버스와 전철을 이용하여 LA중앙양로병원까지 와서 장모와 소일하며 하루를 보낸다. 하루 교통 왕복 시간만도 약 5시간이다.

이 같은 자녀들의 어머님 방문이 거의 매일처럼 계속되면서 자연스럽게 병원의 한 식구와 같은 연대감이 병원 스탭진들에게도 퍼져 나갔다. 자녀들의 방문이 많아지고 지속적일 경우 병원측도 환자에 대한 관심은 다른 환자들보다 많아지게 된다. K씨의 누님은 간호원 출신이기에 양로병원의 환경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병원 측에 불평할 일이 있어도 직설적으로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을 처리했다. 병원의 주간 스탭진과 야간 스탭진들을 위해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만들어 소통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 같은 소통의 자리는 결과적으로 K씨의 어머님이 병원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 주었다. 지난 2020년부터 닥친 코로나-19 페더믹은 양로병원이나 요양원 등등의 시니어 케어 센터에 있는 노인들에게는 재앙이었다. 노인들도 확진자가 생겨났지만, 병원 직원들도 확진자가 발생해 일손이 절대적으로 딸렸다. 매일처럼 환자들이 사망하는 일이 속출했다.

당시 평소에 자신들의 부모들이 있는 요양원, 양로병원 등에 달려왔지만 얼굴 보기는 커녕 부모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떤 가족은 어느날 느닷없이 병원 측으로부터 환자의 사망 통보와 함께 ‘정부 시책 에 의거 화장을 하게 되니 나중 유골을 수거해 가시라’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지서로 인생 끝장을 맛보게 했다. 그 험악한 와중에도 K씨와 누님 그리고 매형은 어머님의 용태를 그날 그날 알 수 있었다. 병원 측으로 부터 “우리들이 어머님을 잘 모시고 있다”라는 전화도 받았다. K씨의 어머님은 한번 코로나에 감염 됐으나, 특별 병동에서 지내며 거뜬하게 코로나를 극복했다. 자식들 덕분에 부모가 크게 덕을 본 셈이었다. 한편 양로병원에 거주하는 부모님들을 방문하는 자식들의 성향을 보면 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또한 며느리가 자식보다 더 많이 시부모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병원 스탭진들은 이구동성 으로 말했다. K 씨도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양로병원을 방문하는 자식들 중에서 딸들이 아들 보다 많은 경우를 보아왔다”고 말했다. 아들 선호 행태는 더 이상 인생사에 중요한 삶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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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요양원에 계셨던 어느 할머니의 시

오래전 북아일랜드의 한 정신의학잡지에 실린 할머니의 시를 소개한다. 스코틀랜드 던디 근처 양로원 병동에서 홀로 외롭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소지품 중 유품으로 단 하나 남겨진 이 시는 양로원 간호원들에 의해 발견되어 읽혀지면서 간호원들과 전 세계 노인들을 울린 감동적인 시다. 이 시의 주인공인“괴팍한 할망구”는 바로 멀지 않은 미래의 여러분 자신들의 모습 일지도 모른다. <편집자>

“괴팍한 할망구”

당신들 눈에는 누가 보이나요,
간호원 아가씨들.
제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묻고 있답니다.
당신들은 저를 보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나요.

저는 그다지 현명하지 않고 성질 머리는 괴팍하고…
눈초리마저도 흐리멍텅한 할망구일테지요

먹을 때 칠칠맞게 음식을 흘리기나 하고
당신들이 큰소리로 나에게 “한번 노력이라도 해봐욧!!”
소리 질러도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 노인네.

당신들의 보살핌에 감사할 줄도 모르는 것 같고
늘 양말 한짝과 신발 한짝을 잃어버리기만 하는 답답한 노인네.
목욕을 하라면 하고, 밥을 먹으라면 먹고…
좋든 싫든 당신들이 시키는 대로 할일 없이
나날만 보내는 무능한 노인네.

그게 바로 당신들이 생각하는 “나”인가요.
그게 당신들 눈에 비쳐지는 “나”인가요.
그렇다면 눈을 떠보세요.
그리고 제발, 나를 한번만 제대로 바라봐 주세요.

이렇게 여기 가만히 앉아서 분부대로 고분고분 음식을
씹어 넘기는 제가 과연 누구인가를 말해 줄께요

저는 열살짜리 어린 소녀였답니다.
사랑스런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 언니. 동생들도 있었지요.

저는 방년 열여섯의 처녀였답니다.
두 팔에 날개를 달고
이제나 저제나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밤마다 꿈 속을 날아다녔던.

저는 스무살의 꽃다운 신부였네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면서 콩닥콩닥 가슴이 뛰고 있던
아름다운 신부였답니다.

그러던 제가 어느새 스물다섯이 되었을 땐
아이를 품에 안고 포근한 안식처가 되고
보살핌을 주는 엄마가 되어 있었답니다.

어느새 서른이 되었을 때 보니
아이들은 훌쩍 커버렸고
제 품에만 안겨 있지 않았답니다.

마흔살이 되니 아이들이 다 자라 집을 떠났어요.
하지만 남편이 곁에 있었기에
아이들의 그리움으로 눈물로 지새우지만은 않았답니다.

쉰살이 되자 다시금 제 무릎 위에 아가들이 앉아 있었네요
사랑스런 손주들과 나, 난 행복한 할머니였습니다.

암울한 날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남편이 죽었거든요.
홀로 살아갈 미래가 두려움에 저를 떨게 하고 있었네요.

제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들이 없답니다.
난 젊은 시절 내 자식들에게 퍼부었던
그 사랑을 또렷이 기억하지요.

어느새 노파가 되어버렸네요.
세월은 참으로 잔인하네요. 노인을 바보로 만드니까요.
몸은 쇠약해져 가고, 우아했던 기품과 정열은 저를 떠나버렸어요. 한때 힘차게 박동하던 내 심장 자리에 이젠 돌덩이가 자리 잡았네요.

하지만 아세요?
제 늙어버린 몸뚱이 안에 아직도 16세 처녀가 살고 있음을요.
그리고 이따금은 쪼그라든 제 심장이 콩콩대기도 한다는 것을요.

젊은 날들의 기쁨을 기억해요.
젊은 날들의 아픔도 기억하고요.
그리고 이젠 사랑도 삶도 다시 즐겨보고 싶어요.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너무나 짧았고
너무나도 빨리 가버렸네요.
내가 꿈꾸며 맹세했던 영원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서운 진리를 이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모두들 눈을 크게 떠보세요.
그리고 날 바라보아 주세요.
제가 괴팍한 할망구라뇨.
제발, 제대로 한번만 바라보아 주어요.
“나”의 참모습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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