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향군인의 날> 끝나지 않은 6.25 전쟁 참전 용사들 ‘침묵의 군번’

이 뉴스를 공유하기

 ▲ 매닝 병장(왼편) 매닝병장 어머니 리지매닝 여사

한국전 미군 참전용사의 유해가 64년 만에 돌아와 그를 그리던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지난 7일 잉글우드 공원묘지에서 미국방부와 유족들의 공동으로 한국전 참전용사 리 헨더슨 매닝 병장(Army Sgt. Lee Henderson Manning)의 안장식이 엄숙히 거행됐다. 이날 안장식에는 매닝 병장의 유족인 누이동생 캐리 엘람을 포함한 동생들과 조카들, 친지들과, 미국방부 관계자, LA시 관계자, 한인사회 인사들과 그리고 한, 미 언론 취재진 등 1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희생을 추모 했다.  <성 진 취재부 기자>

매닝 병장은 1950년 의무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중공군과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포로가 되어 북한군 포로수용소에 인계되었으나 치료미비와 영양실조 등으로  1951년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최근 북한 측이 미국에 인계한 유해들 중에서 매닝 병장의 유해도 있어 가족과 유전자 감식에서 매닝 병장으로 확인이 되어 가족에게 통보됐다.
이날 안장식은 오전 10시 미국방부 영현의전부 소속 6명의 장송병들에 의해 운구 된  매닝 병장의 관이 어머니 리지 매닝 여사가 잠들어 있는 체리 블로섬 묘역 88 번지에 도착하면서 로니 존슨 박사의 집례로 거행 됐다. 묘역 안장식장에는 매닝 병장의 영정과 그가 수여한 기장 등과 한인 사회에서 보낸 조화 등으로 장식됐다.

미국 정부 헌신적 노력의 결과

 ▲ 미국방부 영현의전부 소속  6명의 장송병들이 펼치는 성조기 접기는 무도의 예술이다.

기도순서에서 리사 맥 목사는 “나라의 명을 위해 전선에서 숨진 매닝 병장은 이제 어머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았다”고 기도했다. 이어 아메리칸 아이돌 가수인 재콥 러스크가 ‘고향에 돌아오리라’를 힘차게 불렀다.
집례자인 로니 존슨 박사는 조사에서 “매닝 병장은 이 땅에서 20세라는 아주 짧은 삶이었으나, 그의 생은 의미 있는 삶 이었다”면서 “군복무라는 명예로운 삶을 통해 이제 60여년을 지내고 생을 마감하면서 그가 남긴 유산은 가족들에게 영원히 사랑 속에서 기억될 것” 이라고 말했다.
특히 존슨 목사는 “1950년대 당시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투표권조차 거부되는 현실에 좌절하던 그는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헌신하면 언젠가는 정당한 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꽃다운 나이에 전쟁터에 나갈 결심을 한 것”이라며 “이제 그는 복무를 마치고 ‘재향군인의 날’ (11월 11일)을 앞두고 그리운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고 추모했다.

이날 안장식에서 버락 오마바 대통령은 매닝 병장에게 기념장을 추서했으며, LA시 에릭 가세티 시장은 LA시를 대표하여 추모장을 수여했다. 한국정부와 LA한인사회도 조의를 표했다. LA총영사관(총영사 김현명)은 이혜경 영사를 파견해 국가보훈처와 대한민국재향군인회를 대신 하여 ‘평화의 사도’ 메달을 유가족에게 수여했다. 이날 유가족에게 국가 보훈처의 메달을 전달한 LA 총영사관의 이혜경 영사는 인사를 통해 “20세의 어린나이에 전사한 뒤 64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매닝 병장과 그 가족들의 오랜 기다림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유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영원히 그의 희생과 용맹함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인 6.25참전용사를 대표하여 정용봉 박사 (국군포로송환위원회장)는 인사말을 통해  “60여년전 한국전에서 함께 싸웠던 전우로써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면서 “매닝 병장을 위시한 참전용사들의 희생으로 오늘날 한국은 경제부흥과 민주주의를 이룩했다”며 매닝병장을 추모했다. 이날 최학량 목사는 한인사회를 대신한 기도를 했다.
이어  소프라노 캐로린 위테이커가 매닝 병장의 혼을 위로하듯 ‘주의 기도’를 애잔하게 노래를 불렀다. 이날 안장식은 마지막으로 미군 6명의 장송병에 의해 관 위에 덥혔던 성조기를 거두어 유족에게 전하며 조총과 함께 영결나팔로 1시간 만에 종료됐다.
이날 안장식에는 LA한인사회에서 미주국군포로송환위원회 회장 정용봉 박사를 위시하여 김봉건 자유대한민국지키기국민운동본부 미서부지회장, 김복윤재미남가주육군동지회장, 최창준 한미 친선협회미주연합회장, 최남수 애국동포연합회공동회장,민병국애국동포연합회 공동회장, 최학량 목사, 권명하 애국동포연합회 공동회장, 유의근 목사, 그레이스 유 한미연합회(KAC)남가주사무국장 등을 포함 다수의 한인 인사들이 참석했다.
한편 매닝 병장의 유족인 여동생인 캐리 엘람은 “오늘 오빠를 위해 한인사회에서 조화도 보내주고 직접 여러분들이 참석하여 준데 대하여 너무나 감사하다”면서 “오빠가  60여년 만에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하게 되어 마음이 흐뭇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오늘을 내 기억 속에 평생 간직할 것이다. 60여년 만에 오빠를 찾을 것이라고는 꿈속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부상포로, 치료받지 못해 전사

미국방부 포로 및 실종자 담당국(DPMO)은 2014년 10월31일 보도자료를 통해 매닝 병장의 경력을 소개했다. 그는 1950년 말 미 제 2보병사단 9연대 위생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그의 부대는 1950년 12월 1일 북한 땅 평양 북쪽 군우리 지역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받았다. 그 전투에서 매닝 병장을 실종자(M.I.A)로 보고됐다.

그러나 1953년 한국전쟁 휴전협상을 통해 송환된 미군포로들이 1950년 12월 1일 군우리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로가 된 매닝 병장이 북한군에 인계되어 북한 제 5포로수용소(Camp-5)에 수용됐으나, 부상으로 인한 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영양실조 등으로 1951년 5월 31일에 수용소에서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한편 북한 측은 지난 1991년부터 1994년 사이에 발굴된 미군 유해 208상자를 미국에게 송환 했는데 이중에는 약 400명의 참전 군인들의 유해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북한 측이 제공한 서류에 따르면, 이들 유해는 매닝 병장이 사망한 포로수용소 인근 지역에서 발굴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유해 감식반은 매닝 병장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매닝의 형제자매들의 DNA를 수집하여 검사한 결과 2014년 매닝 병장과 일치하였음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유족 측과 협의하여 11월 7일 매닝 병장의 어머니가 잠들고 있는 잉글우드 공원묘지 에서 안장식을 거행키로 한 것이다.

LA한인사회에서도 조의 표명

매닝 병장은 의료전투기장, 포로기장, 한국전참전기장, UN참전기장, 미방위기장, 대한민국 대통령한국참전기장 등을 수여했다.
20세 꽃다운 나이에 국가의 부름으로 이름도 몰랐던 한국 땅에 참전했다 사망한 매닝 병장은 64년 만에 생전에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던 어머니와 함께 영원히 평화롭게 잠들게 됐다. 그의 어머니 리지 매닝 여사는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10여일 만에 까만 머리카락이 흰머리로 변했으며 끝내 아들의 시신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지난 7일 오전 잉글우드 공원묘지에서 거행된‘한국전참전 미군용사 군 장례식’을 취재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여러 명의 한인 인사들은 미국 군인에 대한 장례 행사를 지켜보며 “미국 군인으로 죽는 것은 영광이다”이라면서 “그러기에 미국의 젊은이들은 나라의 부름에 전선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며 “우리 한국도 군인에 대한 예우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TV뉴스나 영화를 통해서 미군 장병에 대한 장례식 광경을 시청할 때마다  그 경건함과 전사자에 대한 예우 등에 대해 부러움을 느끼곤 했는데, 이번에 20세 나이로 한국전에서 싸우다 포로가 되어 북한 땅 수용소에서 숨진 리 핸더슨 매닝 병장의 유해가 64년 만에 돌아와  거행된 장례식을  취재 하면서 더욱  새롭게 느껴졌다.
20세 나이의 앳된 새파란 젊은이가 책에서도 배우지 못했던 ‘코리아’라는 나라에 국가의 부름에 싸움터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고 더구나 수용소에서 혹독한 처지에 놓였다가 숨졌다. 그에게도 꿈과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피지도 못하고 이국땅에서 숨졌다는 점에서 우리들이  새삼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미국정부는 전쟁에 나가 숨진 장병의 유해를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가 찾고 있다. 61년 전에 휴전(1953)된 6.25 전쟁은 물론이고, 69년 전에 끝난 2차대전(1941-45)에서 전사했으나 유해를 찾지 못한 미군 병사들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기 위해 전 세계로 군 발굴팀이 파견되어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미국방부 측은 현재 까지도 한국전에서 실종된 7,875기의 참전군인들의 신원을 계속 찾고 있다.
이날  매닝 병장의 안장식이 거행된 잉글우드 공원묘지에는 매닝 병장이 잠들 체리브로솜 묘역 입구 도로변에는 성조기들이 게양되어 있었다. 공식  안장식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 오전 9시에는 시신안치소에서 미국방부 영현부 소속 6명의 장송병들이 매닝 병장의 관을 영구차에 운구했다. 이어 잉글우드 지역 미재향군인회 소속 회원들이 모는 오토바이들의 선도로 안장지로 향했다.
안장식은 그야말로 경건하고 엄숙했다.
특히 안장식 말미에  단정한 미군 제복의 미국방부 6명의 장송병들이 관에 덮인 성조기를 절도 있게 걷어 고이고이 삼각형으로 접는 마지막 의식은 한마디로 예술이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전사한 군인에 대한 예의 극치였다. 국기를 한자 한 줄을 슬로 아주 천천히 정성을 담아 마치 무예를 하듯 국기를 접고 접어 두 손바닥 크기로 만드는 예절은 감동 그 자체였다.
이윽고 장송병 5명은 물러가고 남은 장송병 팀장이 접은 국기를 한 손으로 가슴에 품고 다른 한 손을 떨구어 앞뒤로 움직이며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보행 스텝으로  유가족들 앞에 걸어가 부동자세로 섰다. 참례자 모두가 일어섰다. 팀장은 유족들 앞에 무릎을 꿇고 가족의 손에 성조기를 헌정했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일어나 엄숙히 유족들에게 경례를 했다. 이어 조총이 울렸으며, 영결나팔의 애잔한 음률이 묘역을 감돌았다.
이제 6·25 전쟁이 일어난 지도 64년이 된다. 우리나라도 조국을 지키다 희생한 군인들에 대해 국가적으로 존경과 예우를 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 조국이 풍전등화에 처해있던 시절 나라를 지키고자 참전한 우리의 국군용사는 더 이상 ‘이름 없는 영웅’이 아닌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하는 ‘자랑스러운 영웅’이 되어야 한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선데이-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