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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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2007년 정해년이 밝았다. 코리아타운은 ‘또 다른 100년을 위해’ 새해 번영을 꿈꾸고 있다.
무엇보다 동포들에게 꿈과 희망의 동력이 되어 타운 경제와 번영에 주춧돌 역할을 하는 일꾼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새해에는 이념과 세대를 아우르는 화합과 단합을 통해 동포사회의  에너지를 결집하여 모범적인 ‘코리아타운’으로 도약하길 모두가 바라고 있다. 새해를 맞아 본보는 ‘새해를 열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본다 <편집자 주>












 













 ▲ 남문기 LA한인회장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노력으로 미주 한인 사회에 한인 1.000만명을 이주시켜 미 대륙 곳곳에 튼튼한 뿌리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미국 대통령도 만들고 주지사도 만들고 그러고 싶네요. 미국을 온통 한국으로 도배하고 싶고요. 앞으로도 용기와 희망, 열정 그리고 끈기로 삶을 살아 가겠습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 조국 내 민족을 위하여…”
2007년 새해를 맞는 남문기 LA한인회장에게는 꿈이 있다.  새해 정해년이 600년만에 돌아온 “황금돼지해”이기에 부동산업이 전문인 남 회장에게는 남다른 야망이 있다. ‘한인사회를 부자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인회장 선거에 나서면서 내걸었던 캐치 프레이즈이다. 남 회장은 지난해 8월 ‘또 다시 맞는 광복절’이란 제목의 글을 적으며 ‘땅’에 대한 그의 상념을 비친 적이 있다. <나는 부동산업에 종사하며 20여년을 흘러왔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영토를 모두는 안되겠지만 기를 쓰고 사들이고 싶은 욕망이 있다. (중략) 감히 혼자 힘으로는 어렵겠지만 한국인들이 힘을 합하여 비좁은 한반도를 미국으로 향했으면 한다. 미국도 결국은 알래스카나 남부의 몇 주를 사들이지 않았다면 오늘의 미국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 당시에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최고의 금싸라기 땅으로 바뀌어지지 않았는가. 이 넓은 광활한 미국을 무대로 1,000만명만 들어와 영토 확장을 가져 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한정된 세계로 향하는 한국의 국토를 확장하는데 한인들의 힘을 합해 보자는 것이다>
남 회장의 이론은 미국 땅에 투자해 부를 축적하자는 것이다. 거의 무일푼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와서 그는 한인으로서는 최대의 부동산회사를 설립한 경험으로 그는 동포들에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투자하는 것이 내일 보다 빠르다”
남 회장은 지난 6개월 동안의 한인회장을 하면서 한인회의 위상을 높혀야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경상도 특유의 추진력을 앞세운 남 회장은 2007년 새해 LA한인회의 당면과제로  4가지를 선정했다.
첫째 민원봉사 기능 강화로 영어가 미숙한 동포들을 위하여 쇼셜서비스, 의료, 법률 특히, 젊은이를 위한 Job 트레이닝 센터를 통해 안정된 직업 창출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인회 정관 개정으로 모든 동포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정관을 만들기 위해 공청회를 통한 의견수렴으로 후세에 물려줘도 손색없는 정관을 만들겠다는 것.
그리고 셋째는 모든 단체활동 활성화로 크고 작은 단체들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면서 각 단체의 애로사항을 직접 청취하고 그들이 원하는 일들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 넷째는 참정권 회복운동 적극전개로 영주권자까지 확대해 나가도록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4가지 과제 중에서 정관개정 문제와 참정권 문제는 동포사회로부터 주목을 받을 사항으로 보여 진다. 현재 한인회 정관은 캘리포니아 법정에서 심리가 계류 중이고, 참정권 문제도 동포사회에서 여론이 분분해 전문적인 연구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여진다. 참정권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말 홍준표 의원을 초청해 추진대회를 열면서 LA한인회와 총영사관은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다.  홍 의원이 대회장에 슬며시 들어온 공관원을 내 쫓았기 때문이다.
남 회장은 총영사관이 한인회를 한갖 “친목단체”로 치부하고 있는 자세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공관원들이 이같은 입장으로 교민 단체를 본다는 것은 또 다른 권위주의의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남 회장은 2007년 새해부터는 총영사관과의 관계도 새로운 환경에서 검토하고 대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때 커뮤니티에서는 LA한인회장과 LA총영사를 동시에 단체 회합에 초청했을 때 누가 먼저 순서를 맡아야 하는 가를 두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이제 알만한 단체에서는 LA한인회장이 커뮤니티 대표성을 인정 받아야 한다는 것이 미주한인사회의 분위기이다. 2007년 새해 남 회장의 포부가 과연 인정받는 한인회로 위상을 넓혀갈지 기대해본다.


 












 













 ▲ 민수봉 윌셔은행장


“코리아타운은 앞으로 10년~15년이 1세에서 2세로 전환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완전한 ‘한국권’도 아니고 ‘영어권’도 아닌 공백기가 될 위험성도 있지요. 동
윌셔은행의 민수봉 행장이 전망한 포인트는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코리아타운에서는 영어 한자 몰라도 출생에서부터 묘지까지 갈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우리말로 모든 것이 통한다. 하지만 70년대 오늘의 코리아타운(Korea Town)을 개척한 1세대들이 하나 둘 물러가고, 영어를 구사하는 1.5세와 2세들이 타운에서 비즈니스를 활발히 전개하면서 양상이 달라져 가고 있다.
민 행장은 ‘타운에 은행들이 너무 많아 문제가 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거침없이 “아직도 여백이 많다”면서 “커뮤니티의 경제 규모와 발전 속도에 비하면 많은 것이 절대로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에는 블럭마다 은행 지점이 있다며, 이곳의 한인계 은행은 서울의 은행 지점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간의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도  “윌셔은행의 금융상품이 고객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할 것”이라면 자신감을 내보였다.
코리아타운의 중심부 2대 교차로인 윌셔와 버몬트 코너에 우뚝 선 윌셔은행은 수익면에서 가장 짭짤한 한인은행으로 소문이 나있다.  최근 통계상 성장률이 미국내 전체 8,000여개 은행 가운데 30위, 지난해 9월 USA 뱅킹 잡지에서 미 전체 은행 가운데 3위를 차지하는 등 최근 3년간 초고속 성장을 기록 은행가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가장 실속있는 이익을 내고 있는 은행이다. 그래서 윌셔은행 주주들은 어깨 춤을 추고 있다. 투자를 잘했기 때문이다.
이런 윌셔은행의 선장역을 맡고 있는 민 행장의 특유의 기질과 탁월한 감각이 초고속 성장을 이끌고 있다. 그는 달라스 지점을 개척한지 불과 6개월만에 흑자를 기록해 은행가를 놀라게 했다.
남들이 감히 도전치 못하는 “자이언트 컨트리” 택사스주를 멋지게 공략했다.
또 그는 지난 5월에 뉴욕의 리버티은행을 성공적으로 합병해 뉴욕주에 역시 성공적인 상륙과 함께 뉴저지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그리고는 로얄뱅크와 상호 지점 인수 방식을 통해 윈-윈 작전을 구사했다. 이바람에 윌셔은행은 자산규모가 19억 달러를 넘어서 한인계 은행 2위인 나라은행을  추격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화제를 돌려 재미있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만약 한국 대선에서 다시 좌경화가 된다면 코리아타운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는 “반미성향을 보이고 있는 좌파가 정권을 잡게 될 경우, 미국의 한인사회는 입지가 약화되고 경제도 침체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국이 좌경화가 되면 일시적으로 자금이 코리아타운으로 갑자기 밀려 들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타운의 공황이 닥칠 정도의 심각성에 직면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민 행장의 은행 경력은 화려하다. 한국에서의 은행 경력과 미국에서의 행장 경력으로 한인계 은행장으로는 적격이라는 설명이 따라 다닌다. 1937년 황해도 신천 출생했으며 은행가의 엘리트 코스인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해 59년 옛 상업은행에 입사했다.  그는 30대 중반에 일본 도쿄지점장이 되어 화제를 모았고, 이후 본점 비서실장과 국제부장을 거쳐 시카고 지점장으로 미국에 진출했다. 상업은행LA지점장으로 코리아타운을 직접 알게 되었으며 본점 이사. 상무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92년 계열사인 상업증권 사장을 맡아 회사 규모를 2배로 키워 제일은행에 매각하는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지난 94년 4월 LA 한미은행장에 취임해 4·29폭동으로 침체된 은행경영을 쇄신하고 특유의 친화력과 공격적인 경영으로 한미은행을 최고의 한인은행으로 성장시켰다. 민 행장은 한미은행장으로 두번째 임기가 10개월이 남아 있는 중에 1999년 7월 윌셔은행장으로 취임해 코리아타운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한미은행 이사진의 부조리한 영향력에서 벗어 나려는 민 행장 특유의 결정이었다.  2007년 새해 민 행장이  어떤 기록으로 우리 앞에 나설지 기대가 된다.


 












 













 ▲ 왕정덕 사장


“80년대나 지금이나 우리 용궁의 음식 맛은 한결같습니다. 그래서 한번 오신 분이 또 찾아 옵니다. 80년대 예약 단체가 아직도 우리 용궁에서 모임을 같습니다. 우리는 코리아타운의 한 가족이니까요”
최근 한국의 TV 드라마 ‘환상의 커플’에서 유난히 자장면 먹는 장면이 많이 나와 서울의 중국집 고객이 늘어 났다고 한다. 코리아타운에서도 자장면 하면 생각나는 집이 있다. 바로 ‘용궁’ 식당이다.
왕덕정 용궁식당 사장이 현재의 버몬트와 올림픽 불러바드에 지난 1980년에 자리를 잡았으니 2007년 새해로 벌써 27년째를 맞이한다.
왕 사장은 “2007년 새해에도 변함없는 ‘용궁’의 맛을 이어 갈 것”이라고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화교인 그를 많은 고객들은 한국인으로 생각할 정도로 친화력이 높다. 또 그는 손님들의 취향을 기가 막히게 잘 안다. 그래서 대부분 고객들은 ‘알아서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용궁’식당에 들어서면 왼쪽 벽에 예약  안내판이 있다. 그날의 예약 손님이나 모임을 적어 놓은 굵직한 장부를 뒤적이면 단골손님이 많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용궁’에서는 10년 정도 단골은 수두룩하고 20년 단골도 많다. 20년 정도 단골을 이어 온 한 동창회의 회원은 “용궁의 음식 맛은 이제 중독이 되어 다른 집에는 가기가 어렵다”고  말할 정도이다.
20년 단골이라는 한 고객은 “용궁의 모든 음식들엔 ‘장인정신’이 배어있다”며 “주기적인 식당 리모델링 등을 통해 청결함은 유지하면서 수십년동안 음식맛은 변하지 않는 ‘맛깔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고객은 ‘용궁’의 입맛 돋우는 여러가지 메뉴중 으뜸으로 ‘깍지 완두볶음’을 꼽았다. 그는 “한인타운내 중식당은 물론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정통 중식당에서도 어지간해서는 접하기 힘든 이색메뉴”라며 “몸에 좋은 콩으로 만든 ‘웰빙’음식인데다 기름에 볶은 중국음식답지 않게 담백하고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일품”이라고 칭찬했다.
식당은 광고를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맛이 없으면 돈을 주더라도 가지 않는 것이 식당이다.
맛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 집을 찾기 마련이다. 그것이 식당의 기본이다. ‘용궁’ 식당은 다른 식당에 비해 주차장이 복잡하다. 어떤 경우는 짜증이 날 때가 많다. 그런데도 손님들이 짜증나는 주차장으로 몰려들 때가 많다. 왜 그럴까?
친구들끼리 점심을 해야 하는데 마땅히 갈데가 생각나지 않을 경우가 있다. 그럴때 ‘용궁’은 편하게 점심을 떼울 장소이다. 아이 돐 잔치를 해야 하는데 비용도 문제고 그렇다고 적당히 할 수도 없는 경우에도 ‘용궁’의 왕 사장과 의논을 하면 골치 아픈 문제가 술술 풀려 나간다.
왕 사장의 사업 모토는 ‘내 가족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만든다는 자세로 ‘용궁’을 운영한다’는 것. 그 자신이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손님의 취향에도 맞추기 위해 생각을 많이 한다. 그는 음식 재료를 고르는데도 신경을 쓴다. 무엇보다 한결같은 맛을 내려면 재료도 한결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맛도 한결같지만 시대에 따라 다양한 메뉴도 개발해 손님들에게 “새로운 미각”을 선사하기도 한다. ‘자장-짬뽕’ ‘유니 자장’ 등등을 비롯해 캐더링 등 메뉴 개발에서 시작된 것이다. 또 음식 개발 뿐만 아니라 손님들에 대한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계절마다 종업원들의 유니폼을 변화시키는 등 세심한 면까지  왕 사장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리고 크레딧 카드 고객들을 위해 요금 내역을 살펴 볼 수 있도록 카드 영수증과 음식 영수증을 보여 확인을 받도록 했다.
왕 사장은 항상 손님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코리아타운의 대소행사에도 나름대로 참여해 후원금도 내는 등 ‘용궁’의 이미지도 높이고 있다. ‘용궁’을 찾아오는 동포들에 대한 사회환원 차원에서 가능한 열심히 커뮤니티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코리아타운의 가족으로서 당연한다는 것이다.
2007년 정해년  새 아침에도 변함없이 ‘용궁’ 주방에서 왕 사장은 ‘한결같은 맛’을 내고 있다.


 












 













 ▲ 김남권 의장
“30여년동안 미국 땅에 살아 오면서 꿈과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았던 것은 가족들의 힘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정의 중요성을 알게 해 준 것은 집사람이었습니다. 올 한해 새로운 각오로 커뮤니티를 위한 봉사의 길을 찾고 있습니다”
2007년 정해년은 김남권 의장으로써는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해이다. 지난해 그는 LA한인회장에 도전해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길이 한 길만이 아님을 알고 있다.
이제는 지난해의 아픔을 거울삼아 나름대로 커뮤니티에서 봉사할 길을 찾고 있다. 
그는 1997년 코리아타운번영회장 당시 ‘타운 살리기 운동’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그는 코리아타운에서 베버리 힐즈까지 연결될 수 있는 운동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문화를 미 주류 사회에 알릴 수 있는 시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류사회 사람들에게 우리문화를 서비스 할 수 있도록 교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모든 것이 주류사회에 ‘코리아타운’을 알리겠다는 것이다. 또 주류사회 고객을 코리아타운으로 유치를 위해 식당 메뉴 통일과 타민족 고객들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서비스 문화 개발을 강조했다.
그에게는 타운에서 봉사했던 경험이 많다. 그러기에 그는 지난동안의 경험을 1.5세나 2세들에게 전해주고 함께 일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풀 뿌리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 주민의회에서 코리아타운 지역을 관장하는 ‘윌셔지역-코리아타운 주민의회’ 초대의장으로서 기초를 닦는데 일조 했다. 원래 지난해 의장직을 물려 주어야 하는데 주민의회가 수 차례 선거 과정에서 갈등이 야기되어 인계를 하지 못했는데 올해 들어 조만간 화합의 길이 열려 무난히 인계를 할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는 재미대한체육회장을 맡을 당시 처음으로 본국 대한체육회로부터 66만 달러 지원금을 타내는데 성공한 것도 30여년 재미체육회 역사상 새로운 기록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커뮤니티 봉사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적으로 한국의 날 축제행사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LA 코리아타운에서 매년 개최되는 ‘한국의 날 축제’는 이제 해외 700만 한인동포사회의 최대 축제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 축제는 남가주 지역의 약 100여개 소수민족 커뮤니티가 벌이는 축제 중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의 일류 국제적 기업인 삼성, 현대,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등등을 포함해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인 포드를 비롯한 미 주류사회의 기업들과 단체들도 참여하고 있다.
‘한국의 날 축제’의 성장은 바로 미주한인사회의 성장과도 일치한다. 미주한인사회의 성장은 미주한인들의 위상을 격상시켰다. 한인들의 위상제고는 미 주류사회에서 한인 2세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날 축제’는 우리 한인들의 자랑스런 문화 유산이고 내일의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시키는 터전이다.
‘한국의 날 축제’가 미 주류사회와 해외동포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성장한 이면에는 축제재단을 지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6년 동안 이끌어 왔던 김남권 전축제재단 이사장의 애착과 뚝심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한국의 날’ 축제행사를 위해서 그는 개인사비도 아낌없이 내놓았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공금보다도 별도로 들어가는 지출이 많았다. 그가 축제재단을 이끌면서 이루어 놓은성과 중의 하나는 사무국 체제를 연중 가동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는 사무국 스탭진을 1.5세와 2세 중심으로 구성해 미 주류사회와 타 인종 커뮤니티와의 협조체제를 구축했다. 이들 스탭진의 노력으로 ‘한국의 날 축제’에는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김 전이사장이 책임을 맡을 때는 사무국이 파트타임 역할이었으나 임기 동안에 축제를 1년 동안 준비하는 ‘풀 타임 시스템’으로 발전시켰다.
 그 결과의 하나로 착실하고 계획성 있는 준비로 1996년에 이사장을 맡았을 당시 11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으나 그가 맡은 이후로는 6만 달러 이상의 흑자예산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는 6년 동안 축제재단 이사장으로서 임기를 지내 오면서 ‘한국의 날 축제’를 전세계 동포사회와 미 주류사회에 뚜렷하게 인식시켰다.
2007년 새해, 김남권 의장에게 지난날의 커뮤니티 단체장으로서의 역량을 다시 한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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