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에 나오는 한동훈 대세론은 본인의 ‘행복 회로’
◼ 여권엔 밉상, 야권 일각엔 배신자…활로 없는 韓동훈
◼ 계엄 반대했다지만, 한덕수와 손잡고 국정 접수 시도
◼ ‘급하면 동지도 언제든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인간’ 聲
이재명 정부가 부동산 문제로 지지율이 꺾이면서 악순환의 초입에 들어선 모양새다. 노무현, 문재인 두 전직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이 부동산과 싸우다 정권을 내어준 전철을 밟고 있는 셈이다. 여당의 전당대회가 끝나면 거의 곧바로 내년부터는 총선 국면으로 들어간다. 한 번 꺾이면 반등이 쉽지 않은 지지율을 감안했을 때 여차하면 이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런 상황은 곧바로 차기 잠룡들이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 준다. 여당에서는 김민석 전 총리나 조국 등이 거론되고 있고, 야당에서는 한동훈 의원이나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여러가지 여건상 내년 총선이나 대선에선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야권 주자들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린다. 그런데 오 시장의 경우 명태균 사건에 연루돼 1심에서 당선무효형이 나와서 대선까지 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지배적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한동훈 의원이 야권의 유력주자이자 차기 대통령처럼 주변에 사람이 모이고 있다는 소문이 본국 정치권에 파다하다. 하지만 한 의원이 그동안 보인 행보는 특정 팬덤을 제외하고는 여야 모두에게 비호감이란 평가가 많아 실제로 그가 대권의 꿈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한동훈을 둘러싼 한계와 가능성을 짚어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한동훈 의원은 본인이 윤석열의 비상계엄에 반대했다고 하지만, 정작 그는 내란에 참여한 한덕수 전 총리와 손을 맞잡은 인물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사실을 잊고 있다. 계엄의 총성이 멎은 지 닷새째, 탄핵안이 국민의힘 의원 105명의 집단 퇴장으로 투표함도 못 열고 주저앉은 바로 다음 날인 2024년 12월 8일 오전 11시.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두 한씨’가 나란히 섰다.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의 질서 있는 조기 퇴진으로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며 “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차질 없이 챙길 것”이라 했고, 한덕수 총리는 “여당과 함께 지혜를 모아 모든 국가 기능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고 화답했다.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못 박기까지 곁들였다. 탄핵도 안 됐고, 궐위도 아니고, 하야도 안 한 현직 대통령을 제쳐두고, 국민이 단 한 표도 주지 않은 여당 대표와 임명직 총리가 국정을 ‘접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헌법 어디에도 없는 ‘한덕수-한동훈 공동정부’였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긴급 기자회견으로 반발하고, 법조계에서 “위헌”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심지어 “2차 내란 행위”라는 말까지 나온 이유다. 더 고약한 건 타이밍이다. 전날 윤석열이 “임기를 포함한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한다”는 담화 한 장을 던지자, 국민의힘은 기다렸다는 듯 표결장을 빠져나가 탄핵을 무산시켰고, 다음 날 아침 담화가 나왔다. 내란 수괴로 지목된 자의 권력을 헌법 절차로 회수하는 대신, 제 식구들끼리 나눠 갖는 그림-탄핵이라는 최악을 피하려 대통령을 잠시 뒤로 물려놓는 ‘시간 벌기’였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훗날 헌법재판소는 한덕수 탄핵 심판에서 이 담화를 ‘일상적 당정협의’ 수준이라며 위헌은 아니라고 정리해 줬지만, 그렇다고 그날의 장면이 지워지는 건 아니다. 결국 한 전 총리는 내란우두머리방조 등 혐의로 징역 2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했는데, 재판부는 12·3비상계엄을 “윤 전 대통령과 그 추종 세력에 의한 내란, 친위 쿠데타”로 규정하며 가담자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못 박았다.-계엄 닷새 뒤 당사에서 “모든 국가 기능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라던 그 총리가, 1년 남짓 만에 내란 방조범이라는 사법부의 낙인과 함께 수의(囚衣)를 입게 된 것이다. 한 의원 역시 한 전 총리와 손잡은 데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이날의 장면은 한동훈 의원이 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모습보다는 나르시스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특히 검사 선배 윤석열이 간 길을 본인도 그대로 갈 수 있다는 걸 만천하에 과시한 장면이었다.
나르시스트 한동훈
본지는 한동훈 의원의 당원게시판 글의 거의 전문을 최초로 공개한 바 있는데, 당시 게시글에서도 드러난 건 다름 아닌 대통령병 걸린 나르시스트의 면모다. 본지가 공개한 글의 내용을 다시 한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동훈, 이러니 한동훈 한동훈 하는 겁니다. 한동훈 파이팅!”(2024-06-25 16:00)
“김건희 전대 개입하여 한동훈을 무너트리려고 하네. 그렇게 아쉬우면 지금이라도 사과하지 그래? 무슨 말 같은 소리를 해라. 윤통아~~~이쯤에서 한동훈을 밀어라~~~당 대표는 한동훈밖에 없고 다음 대선 후보는 한동훈밖에 없다. 그리고, 이재명을 이길 후보는 한동훈밖에 없다. O.K.?”(2024-07-06 9:46)
“트로이목마 스파이 좌파 윤석열 김건희 부부 탈당하고 꺼져라. 국힘 코스프레 이제 그만해라 역겹다.”(2024-08-13 11:10)
익명성 뒤에 숨어 남긴 글을 보면 그의 나르시스트적 면모와 대통령병에 걸린 환자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한 의원은 사실 윤석열의 발탁과 지원이 아니었다면 본인의 역량이나 경륜으로는 오를 수 없는 자리에 연달아 올랐다.그러나 정권이 흔들리자, 더불어민주당의 폭주에 맞서 싸우기보다 총부리를 내부로 돌리면서 몰락하는 보수의 구원자인 양 행세했다. ‘당원게시판’ 사건은 이를 극명히 보여줬다. 한 의원이 출세를 위해서 언제든 누구든 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장면도 있다. 2024년 7월 17일,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방송토론회. 한동훈 의원은 나경원 후보를 향해 대뜸 이렇게 물었다. “저한테 본인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해 달라고 부탁한 적 있으시죠.” 자신이 법무부 장관이던 시절 나경원이 2019년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의 공소 취소를 청탁했다는, 사실상의 내부고발이었다.
문제는 그 사건의 성격이다. 패스트트랙 사태는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과 보좌진 수십 명이 공수처법 강행에 맞서 몸으로 부딪히다 무더기 기소된, 보수진영이 ‘야당 탄압 보복 기소’로 규정하고 함께 싸워온 사건이다. 말하자면 보수의 ‘훈장’이자 ‘상처’였다. 그걸 같은 당 경선에서, 그것도 생중계 토론회에서, 동지의 약점 카드로 꺼내든 것이다. 당은 벌집이 됐다. 나경원은 “자기 정치 욕심을 위해 교묘하게 비틀어 보수진영 전체를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다”고 격노했고, “법무부 장관으로 수많은 정치인과 대화했을 텐데 나중에 불리해지면 캐비닛 파일에서 꺼내 약점 공격에 쓸 것인가”라는 그의 반문은 한동훈 전 의원을 따라다니는 주홍글씨가 됐다.
원희룡도 “동지 의식이 없는, 훈련 안 돼 있는 분이 이 당을 맡을 수 있을까 심각하게 우려한다”라고 가세했고, 소속 지자체장들까지 비난 행렬에 동참했다. 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 이를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고발하며 즐겼다. 역풍이 거세지자 한동훈은 “신중치 못한 발언이었다”라며 사과로 물러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훗날 경찰이 나경원 고발 건을 각하 불송치하면서 나경원이 되레 “터무니없는 정치 공세였다. 한동훈은 사과하라”고 역공하는 처지가 됐으니, 폭로의 실익은 없고 낙인만 남은 셈이다. 검사 시절 몸에 밴 ‘급소 찌르기’가 정치판에서는 어떻게 부메랑이 되는지, 그리고 왜 보수진영 일각이 그를 “언제든 제 편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인물”로 의심하는지-이 7분짜리 토론 장면 하나에 다 들어 있다. 그가 대권으로 가는 길에 ‘배신자 프레임’과 함께 반드시 넘어야 할, 스스로 만든 산이다.
차라리 윤석열이 낫다.
한동훈의 대권 가도에는 네거티브도 복당도 아닌, 더 근본적인 장벽이 하나 있다. 바로 윤석열이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윤석열은 개척자였다. 살아있는 권력의 정점을 수사하다 좌천되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한마디로 대중의 심장을 때리고, 검찰총장직을 던진 지 1년 만에 정치 경력 제로의 몸으로 대통령이 됐다. 문재인 정권 심판이라는 시대의 파도가 그를 밀어 올렸고, ‘정치인이 아니라는 것’ 자체가 상품이던 유일무이한 시기였다. 한동훈은 어떤가. 윤석열의 최측근 검사로 크고, 윤석열이 만든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이 되고, 윤석열이 꽂아준 비대위원장으로 정치에 데뷔했다. 검사 출신, 직설 화법, ‘엘리트 스타 검사’라는 상품성까지 비슷하지만, 어쩌면 윤석열의 하위호환 버전이다.
문제는 본인을 이끌어 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계엄이라는 파국으로 임기를 마감한 지금, ‘검사 대통령’이라는 상품 자체가 대중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주고 있다. 한동훈이 아무리 “나는 계엄에 반대했다”고 외쳐도, 유권자의 눈에 그는 윤석열이라는 실패한 실험의 조수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다. 윤석열은 정치 신인이라는 무기와 정권교체라는 순풍을 안고도 0.73%포인트 차로 겨우 신승했다. 그리고 윤석열은 자기 사람이라면 확실히 챙겼다. 하지만 한동훈은 앞서 말했듯 자신의 목표에 방해가 된다면 언제든 등을 돌린다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혔다. ‘윤석열의 하위호환’이라는 세간의 조롱이 아프게 들리는 이유는 그것이 인신공격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정치권에 들어선 이후 보여준 행보 때문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려면 윤석열을 밟고 넘어서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윤석열이라는 참조점 자체를 지우고 ‘한동훈이라는 독립 상품’을 새로 발명해야 하는데-검사의 옷을 벗은 지 3년이 되도록, 그가 윤석열 없이 설명되는 문장을 만들어 냈다는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