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사까지 총 2개 소대가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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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러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관련 북창동 술집 종업원 폭행사건의 충격파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하마터면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실로 크다. 경찰의 방조 의혹에 사건의 실체 규명에 앞장서야 할 유력 언론사들마저 침묵하고 있다. 한마디로 재벌총수의 ‘돈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인 것이다. 피해를 당한 종업원들은 산으로 끌려가 폭행당한 것도 모자라 일하는 술집 룸에서까지 무릎 꿇리고 폭행당하는 등 온종일 무시무시한 공포에 떨었다. 김승연회장은 아들 눈 주위가 다친데 분노해 가해 청년의 눈을 때리고 찔렀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에 사회 일각에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쥬의 실천은커녕 조직폭력배를 방불케한 김회장의 행태를 규탄하는 분위기다. <특별취재반>은 김승연회장이 주도한 일명 ‘북창동 초토화작전’의 전말을 집중 취재했다.













한화그룹 김승연(55) 회장 둘째아들 김동원(22)씨가 폭행을 당한데 격분해 그룹 경호원 등을 동원해 보복성 폭행을 한 사건이 전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별취재반>는 폭행사건의 진원지인 북창동 S클럽의 관계자를 비롯, 사건 관계자를 심층취재한 결과,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그 첫 번째는 김승연회장이 동원한 인원 수로, 경호원 등 17명이 아니라 2개 소대에 해당하는 60여 명이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특별취재반>의 취재에 응한 북창동 술집 종업원의 증언에 따른 것으로 실로 충격적이다.
종업원 A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김회장 일행이 가게로 들이닥친 뒤 상황은 빠르게 전개됐다. 우리는 처음엔 그가 한화그룹 회장인 줄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가게 문을 밀치고 들어온 김회장이 다짜고짜 사장의 뺨을 후려치고 둘러싼 험악한 표정의 사내들을 보자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그들이 ‘어깨’인 줄만 알았다. 이를 목격한 아이들이 방어 차원에서 비상을 걸었다. 하지만 SOS를 쳤는데도 우리 조직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고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우리 애들이 가게 입구에서 제지당한 걸 나중에 알았다. 가게 밖에 김회장이 동원한 ‘부대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특별취재반> 취재 결과 김회장 일행으로부터 보복 폭행을 당한 S클럽 종업원 중 일부는 목포 출신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단순한 종업원이 아니라 S클럽 외에 다른 업소도 관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북창동 일대에서 한 가닥을 한다는 이들이 맥도 못 추고 김승연 회장 일행에게 당한 이유는 2개 소대에 달하는 막강한 인원에 회칼 쇠파이프 등으로 중무장한 것을 목격한 상대방이 겁을 먹은 탓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북창동 일대 술집에서 만난 또 다른 종업원의 증언.
“김회장 사건이 알려지고 나서 비로소 깨닫게 된 사실이 많습니다. 이 바닥에서 눈치 하나로 먹고 사는 우리 같은 사람은 척 보면 알죠. 김회장이 데리고 온 일행 중에는 진짜 경호원도 있지만 조폭 출신도 분명 있었습니다. 경호회사 사람들은 그렇게 난폭하게 행동하지 않죠. 더군다나 회칼 같은 것은 차고 다니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분명 해결사가 동원됐습니다. 틀림없어요.”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른 목격자의 증언도 있다. 한 목격자는 “회칼을 든 걸로 봐서 전문 해결사가 동원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경호원의 경우 전자봉이나 가스총 등만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북창동을 장악한 목포출신 조직원을 일격에 제압하고 3시간 여 동안 룸 종업원을 공포에 떨게 한 김승연회장의 이날 행동은 말이 재벌 총수이지 흡사 조폭의 세계를 방불케 했다는 주장도 흘러나오고 있다.













사건 발생 원인
김승연회장 부자가 폭행사건에 연루된 당일의 행적은 살펴보자. 사건은 지난 3월 8일, 보복 폭행사건의 무대가 된 북창동이 아닌 강남의 청담동 사거리에 위치한 G가라오케에서 발생했다.
G가라오케는 연예인과 강남의 부유층 젊은 층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김회장 차남 김 씨도 여러 차례 이곳을 이용한 단골인 것으로 알려졌다. S클럽 종업원들도 이곳 단골이었다.
서울 북창동 S클럽에서 일하던 종업원 A씨 등 8명은 가게 일을 끝낸 뒤 G가라오케에 가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아침 동이 틀 무렵 A씨 등이 지하 1층 술집을 나오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김 회장 아들(미국 유학중) 일행이 술집으로 들어왔다.
이들 일행 가운데 한 명이 김 씨와 어깨가 부딪치며 시비가 붙었다. 승강이를 벌이던 중 김 씨가 떠밀리며 계단에서 굴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시비가 벌어지고 서로 주먹이 오갔다는 것.
주먹이 오가는 과정에서 김씨는 “니들 내가 누군지 알아?, 니들 실수를 하는 거야”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하지만 술들이 취한 상태에서 이런 소리는 무의미했다. 시비는 계속됐고 이 과정에서 김 씨는 눈두덩이 크게 찢어졌다.  이때 S클럽 종업원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달려온 G클럽의 종업원이 “그만해라. 이 분은 한화그룹 자제분이다”고 싸움을 말렸다. S클럽 종업원들은 김씨가 한화그룹 자제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됐다고 한다. 이에 맏형인 A씨가 ‘시비가 길어져 우리 애들한테 맞으면 사건이 커지겠다’는 생각하고 김씨에게 “술 곱게 먹어라”고 충고를 하고 끝냈다고 한다. 이 날 폭행으로 김 씨는 눈 주위를 10여 바늘 꿰 메는 상처를 입었다. 집으로 간 김 씨는 김 회장에게 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린 뒤 “고소를 하겠다”고 했다. 이에 격노한 김 회장은 직접 가해자 색출에 나섰다.


가해자 색출해 납치 폭행
3월 8일 오후, 김 회장과 김 씨는 A씨를 찾기 위해 차량 7,8대에 나눠 타고 3~40여명의 경호원을 대동한 채 G가라오케를 찾아갔다.
김회장은 이곳 사장과 지배인에게 가해자 신분을 물은 뒤 데려오라고 했다.
당시 G가라오케에선 사태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S클럽에 전화를 해서 가해자에게 “문제가 생길 것 같다. 한화 쪽이 찾아와 사과를 요구한다. 이쪽으로 와서 사과를 해라”고 했다. A씨는 G가라오케로부터 전화를 받고 “사과를 하면 조용히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청담동 G가라오케로 갔다. 그러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김 씨를 폭행한 사람은 가지 않고 다른 사람을 내세워 종업원 5명만 갔다.
이날 새벽에 술을 마셨던 일행은 총 8명이었다. B씨는 사람 수를 채우기 위해 G가라오케 종업원 3명을 끼워 넣었다.
저녁 8시경에 B씨 등은 G가라오케에 도착했다.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김 씨와 경호원으로 보이는 건장한 사람들에게 붙잡혀 청계산 근처의 한 창고로 끌려갔다.
누군가 잠깐 라이터로 불을 켜더니 “좀 맞아야 겠다”고 하고는 수십 분 동안 B씨 등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폭행이 멈춘 뒤 김 회장은 “폭행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A씨의 후배인 C씨가 자신이 폭행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며 나섰다. 그러자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C씨의 양팔을 경호원들이 붙잡았다. 김회장은 “내 아들 눈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너도 눈을 맞아봐라”며 C씨의 눈을 때렸다.
C씨의 눈은 만신창이가 됐다. 또한 쇠파이프와 전기 충격기를 든 경호원들도 일행을 위협하며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김 회장에게 눈을 맞아 만신창이가 된 C씨가 울부짖으며 “나는 때린 사람이 아니다”고 실토했다. C씨를 폭행하던 김 회장의 주먹이 멈췄다. 그리고 김 회장은 진짜 때린 사람을 찾아야겠다며 BMW, 체어맨 등의 승용차에 나눠 타고 북창동으로 향했다.
이날 폭행을 당했던 D씨는 “김 회장이 설마 보복 폭행이 발생할 것이라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TV에서만 보던 대기업 회장이 자신의 아들과 싸웠다고 설마 보복 폭행할까 싶었다. 사과를 하면 모든 문제가 마무리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D씨는 이날의 폭행 후유증으로 20여일간 통원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특별취재반> 취재 결과 파악됐다. 그는 아직도 그날의 공포심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목포출신 관리하는 북창동 S클럽 장악
3월8일 12시 무렵. 김 회장 일행은 북창동에 도착했다. 그전에 검정색 정장 차림의 사내 수십 명이 먼저 S클럽 주변에 배치되었고 출입을 통제했다. 그 뒤 김 회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두 명의 경호원이 밀착 경호를 하며 가게로 들어섰다. 이들은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며 S클럽을 들이닥쳐 순식간에 클럽을 장악했다.
목포출신 조직원들이 관리하던 S클럽은 한 순간에 김 회장 일행에게 접수된다. 종업원들을 한쪽의 룸에 들어가게 한 뒤 무릎을 꿇게 했다.
북창동을 무대로 2~3곳의 술집을 관리할 만큼 실전 싸움에는 도가 텄지만, 외마디 비명도 못 지른 채  무릎을 꿇게 된 데는 정예 부대처럼 훈련된 경호원과 신분을 알 수 없는 건장한 청년들이 일사분란하게 술집을 습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술집을 접수한 김 회장은 사장을 찾아내 “아들을 때린 자가 누구냐”며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이날 현장을 목격한 한 종업원들은 이렇게 증언했다. “김 회장은 금장식 손잡이가 달린 권총 혹은 권총 모양 가스총을 꺼내 들고 업소 사장 머리를 겨눈 뒤 ‘내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으면 당신은 죽어’라고 말했다”
이날 S클럽은 한마디로 폭행이 난무하는 무법천지였다. 김 회장은 술집을 장악한 뒤 룸 안으로 들어가 “아들 때린 자만 데리고 오라”고 하고는 술을 시켰다.













“회칼 든 경호원 2~30명 S클럽 장악”
S클럽이 순식간에 장악되자 급보가 북창동 일대에 날아들었다. 인근에서 활동 중이던 호남조직들이 라이벌조직에 의한 ‘전쟁’으로 오인하고 몰려들었다. 긴장된 순간도 잠깐, S클럽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과 조직원으로 보이는 한 명이 나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호남 조직들은 한화그룹 김 회장이 관련되었다고 말 한마디에 끔벅 죽었다. 이뿐 아니라 경호원들의 위세에 눌려 S클럽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
룸안에서는 김 회장 일행이 계속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던 도중 김 회장은 다시 열이 뻗쳐는지 수행한 경호 간부를 가리키며 “너희들은 도대체 뭘 했냐”면서 폭행했다.
 술집 안은 공포의 분위기가 지속됐다. 경호원은 술집 사장과 종업원을 협박하여 A씨를 찾아오라고 했다.
김회장 아들 김 씨가 다소 늦게 도착했다. 종업원들은 얼굴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김 회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직후 김 씨를 때린 A씨가 나타났다. S클럽 사장이 김 씨를 때린 A씨에게 “네가 나가야 상황이 끝날 것 같다”며 김 회장 일행이 진을 친 방으로 들여보냈다. 술을 마시던 김 회장이 A씨를 보고 벌떡 일어나 때리려 하자 김 씨가 말렸다. 대신 김 회장 아들은 자기가 맞은 만큼 때렸다. 김 회장이 보는 앞에서 A씨는 김 씨에게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얻어맞았다. 맞다가 쓰러지면 경호원들이 일으켜 세워 다시 맞았다. 다른 종업원들도 경호원들로부터 마구잡이로 맞았다. 룸 밖으로 ‘퍽퍽’ 소리가 날 정도였다.













가해자 폭행 뒤 위로 폭탄주 돌려
3월 9일 새벽. 김 회장에게 점령당한 S클럽의 출입이 통제된지 3시간이 넘자 누군가 경찰에 신고한다.
S클럽에 도착한 경찰은 “신고한 사람이 누구냐”며 신고자를 찾았다. 공포에 떨고 있던 종업원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경찰은 대충 룸 몇 개를 열어서 확인했다. 이때 사장이 나서 “직원들끼리 싸웠다”고 둘러댔다. 그러자 경찰은 더 조사를 않고 나가버렸다.
당시까지 김 회장 일행은 룸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그 방은 확인하지 않았다.
경찰이 돌아간 뒤 김 회장은 클럽 사장 등과 폭탄주를 마시며 화해를 하자고 청했다. 김 회장은 사장에게 치료비로 쓰라고 돈을 줬다. 뺨을 맞고 기분이 상한 사장은 “치료비 정도는 낼 돈이 있다”며 받지 않았다는 것. 그러자 김 회장은 술값이라며 카운터에 100만원을 집어던지고 나갔다.
그 직후 경호원들 중 상급자로 보이는 사람이 “이 일을 절대 신고하거나 소문나게 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한 뒤 500만원이 든 봉투를 놓고 클럽을 나갔다. 이날 폭행을 목격한 E씨는 “아들이 맞았다고 보복 폭행한 김 회장이 재정신이냐고 묻고 싶다. 특히 보복 폭행을 한 뒤 폭탄주를 돌려 위로를 하는 폼이 조폭 보스와 다를바 없었다 ”고 말했다.
이날 김 회장 일행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했던 일행 가운데는 지금까지 정신적인 후유증을 앓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10여 명이 다쳤는데 이가운데 청계산에 끌려가 맞았던 B씨의 상태가 가장 심각하다고 한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피해자들은 대부분 20여일 동안 병원에 다니면서 통원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S클럽 사장이나 목포 조직원 출신으로 알려진 A, B씨 등도 사건이 커지면 가게에 타격을 줄까 두려워 사건 확대를 경계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S클럽 종업원들의 반응은 조심스러웠다. 한 종업원은 “김회장 사건 이후 1개월 이상 장사를 못했다. 이제 정말 잊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5일 남대문경찰 장희곤 서장도 기자회견을 통해 “청계산과 청담동, 북창동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일부 시인했다. 그 자리에 회장도 함께 있었다는 진술을 받았다”면서 “현재까지 확인된 인원은 회장과 아들 포함해 17명이었다. 이들은 비서실 직원과 수행원, 그리고 기업 단지에 있는 경비원 등이다. 모두 6대의 차량을 동원해 움직였다”고 발표했다.
또한 “폭력혐의가 드러나면 폭력처벌법으로 처리될 것”이라며 “감금 부분에 대해서는 심층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의 이날 발표에도 허점이 보인다. S클럽 종업원과 인근 상인들에 따르면 고급 승용차와 승합차 등 동원된 차량이 모두 13대로, 1대에 4명씩 탑승해도 50명은 족히 동원됐을 거라고 증언했다. 이 같은 증언과 달리 경찰이 인원을 축소한 이유에 대해 17명 이외에 동원된 인원이 해결사였을 것이라는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만약 김 회장이 경호업체 직원이 아닌 해결사를 고용했을 경우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창동 K클럽의 한 임원은 “조직폭력배가 동원되었다는 말도 있다. S클럽 종업원을 제압하는 과정에 회칼을 든 건장한 사람들이 있었던 점이 이를 입증한다”면서 “보통 건설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조직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한화그룹도 한화건설이 있기 때문에 조폭동원 의혹을 받기 충분하다. 조직들은 회장과 경영진에 대해 경호와 신변보호를 해주는 대가로 재개발 등에서 이권을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26일 당초 회장 경호원만 가담 했다는 설명과 달리 경찰 조사에서 용역업체 직원들까지 동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김 회장 부자의 폭행 가담 여부 외에 해결사 동원에 대해서도 수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뿐만 아니라 폭행에 수반된 권총, 가스총, 전기 충격봉, 회칼 등에 대해서도 밝혀내야 할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10대 재벌그룹의 총수가 벌인 이번 보복 폭행사건이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은 크다. 재벌 총수라고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술집 종업원을 함부로 폭행하는 일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넘어간다면 그것은 분명 사회 정의에 반하는 일일 것이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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