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영권 편법 승계 대법원 무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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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노무현이 이건희를 살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린 지난 달 29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 60만명의 조문객들이 모여들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노 전 대통령의 운구가 서울광장을 빠져나가면서 시민들이 운구를 쫓기 위해 흩어지고 있었다. 이 때 시청 앞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에 뉴스 속보가 자막으로 떴다. ‘삼성 경영권 편법 승계 대법원 무죄’. 순간 시청 광장이 술렁였다. 스크린을 향해 물병을 집어던지는 조문객들도 있었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은 절묘한 타이밍에 이뤄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전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었고, 그 조문열기가 최고조에 이른 노제 시간에 맞춰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이 뉴스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과 북한 핵실험 소식에 묻혀 언론의 주목을 덜 받았다. 두 사건이 없었으면 대법원의 판결을 놓고 모든 언론 1면에서 찬반양론이 치열하게 전개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삼성 경영권 편법 승계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기까지 치열했던 법정 공방과 사회적 논란을 되짚어봤다.
                                                                                <한국지사 = 박희민 기자>



2000년 6월 법학 교수 43명이 이건희 전 회장 등 33명을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배임)로 고발하면서 기나긴 논란은 시작됐다. 29일 대법원 선고까지 꼬박 9년이 걸렸다. 삼성에버랜드 경영권 불법 승계로부터는 13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만큼 국내 최대 재벌을 조사해 법정에 세우는 일은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힘겨웠다.
검찰은 고발장을 접수하고 3년6개월이 지난 2003년 12월에야 허태학, 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기소했다.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그것도 “헐값 발행을 공모하거나 지시하지 않았다”는 말만 듣고 이 전 회장은 조사하지 않았다. 2007년 5월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선고되자, 검찰은 다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이 전 회장을) 기소할 수밖에 없다”며 결정을 미뤘다.
검찰과 법원이 삼성 사건에 미적이던 그해 10월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의혹 제기로 ‘삼성 특검’이 꾸려져 이 전 회장을 기소했다.
이를 계기로 에버랜드 사건은 삼성에스디에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의혹과 함께 다시 한 번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은 유사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기존 판례까지 부정해가며 이 전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에버랜드 사건은 대법원에서도 ‘특별대우’를 받았다. 지난 2월엔 에버랜드 사건을 맡았던 대법원 2부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부치기로 결론을 냈지만, 대법원은 회부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소부를 개편한 뒤 재논의하기로 방침을 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법원은 제일모직 소액주주들이 이 전 회장 등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실권한 제일모직 전·현직 이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심리하는 지방법원의 재판기록 문서송부 요구를 1년이 넘도록 거부하기도 했다. 2007년 5월29일 항소심이 선고된 지 정확히 2년이 지난 뒤 에버랜드 사건은 대법원의 판단을 받았다. 대법원은 통상 목요일로 잡는 선고 날짜를 바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리는 금요일 오후로 바꾸는 등, 이 사건은 고발에서 최종 판결까지 우여곡절로 점철됐다.



완전한 면죄부는 아니야


대법원이 지난 5월29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발행 사건을 유죄 취지로 고법으로 돌려보내면서, 삼성이 경영권 편법세습에 대해 완전 ‘면죄부’를 받는 데 제동이 걸렸다. 에버랜드와 SDS 헐값발행이 모두 이건희 전 삼성회장과 그룹 구조조정본부 핵심 임원간의 치밀한 사전공모에 의해 거의 같은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는 점에서, SDS 사건으로 이 전 회장 등에게 유죄가 확정되면, 아들인 재용씨로의 삼성 경영권 세습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해 4월 삼성특검 수사결과를 보면 에버랜드와 SDS의 헐값발행 과정은 거의 ‘판박이’다. 그룹 사령탑인 구조본에서 두 회사 경영진에게 사채발행을 직접 지시했다. 또 발행가격도 사실상 결정하고, 이재용씨 오누이를 포함한 인수자도 미리 통보했다. 재용씨 오누이의 사채 인수자금 마련도 구조본이 다 준비했다. 에버랜드 경우 이 전 회장이 불과 하루 전에 자녀들에게 48억원의 인수자금을 증여했다.
이 과정에서 핵심역할은 당시 구조본의 이학수 본부장과 김인주 재무팀장이 했다. 이 전 회장도 사전보고를 받고 계획을 승인했다. 지난 2007년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전 구조본 법무팀장은 두 사건을 이건희·이학수·김인주 등 3명의 공동연출로, 이재용씨가 주연, 에버랜드와 SDS 경영진이 조연으로 출연한 드라마에 비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일란성 쌍둥이’인 에버랜드와 SDS 사건에 대해 무죄-유죄취지 확정이라는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두 사건의 유일한 차이는 에버랜드가 형식상 주주배정(계열사)을 거쳐 제3자 배정(이재용 오누이)을 했다면, SD는 바로 3자배정을 한 점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법원이 SDS 사건을 정상적으로 판단하면 현재 증거만으로도 이 전 회장 등이 무죄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전 회장 등에 대한 유죄가 확정되면 재용씨는 에버랜드사건의 무죄에도 불구하고 경영권 불법세습에 대한 법적 책임에 다시 묶이게 된다. 사회적·도덕적 부담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전 회장과 이학수 전 본부장 등의 경영일선 복귀가 사실상 물건너가고, 재용씨로의 경영권 승계도 즉각 단행하기 어려워지면서, 그룹 전체의 불확실성도 커질 수 있다. 삼성 고위임원도 “승계는 그룹 내부의 필요성과 외부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벌써 이 전 회장 등이 막후에서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고, 경영수업 중이라는 재용씨가 실제로는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하는 현재의 비정상적 과도체제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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