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력취재1> 한국일보 사태 전말과 미주한국일보와의 역학관계 대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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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구 회장.
59년 역사의 한국일보가 끝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0여년동안 악순환과 고전을 거듭했던 한국일보는 지난 15일 한국언론 역사상 최초로 언론사 편집국이 강제로 폐쇄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일제강점 시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이 강제로 일제에 의해 폐쇄된 적이 있었고, 유신체제였던 1975년 3월17일 새벽 편집국에서 농성 중이던 동아일보 기자들이 군부정권에 사주를 받은 술취한 폭도들에게 끌려 나왔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뤄진 세상에서 언론사 회장이 외부 용역 직원(한국일보 노조에서는 이들을 “깡패”라고 지칭)들을 이끌고 편집국에 들어가 신문제작하던 기자들을 쫓아내고 편집국을 폐쇄시킨 일은  한국 언론사상 처음 있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사태 해결에 비상한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또한 이번 한국일보 사태의 불똥이 미주한국일보(회장 장재민)로 까지 튈 공산이 커 자칫하면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도 적지 않아 경영진들이 좌불안석이다.
한국일보 노조는 지난 4월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을 200억대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자, 회사측은 즉각적으로 편집국장을 비롯해 노조에 동조하는 기자들을 전격해고하고, 이 과정에 폭력배까지 동원되는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이번 사태의 여파가 미주에까지 번질 경우 한국일보는 또 한번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주한국일보는 골드만삭스에서 대출받은 9천만달러 자금의 행방과 지난 해 7천만달러를 탕감받는 과정에서 재무구조상의 문제로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어 사태 불똥이 미주로 비화될 조짐을 안고 있다. 이번 한국일보 사태의 파장의 전모와 문제점들을 <선데이저널>이 추적 취재해 보았다.
<특별취재반>
 












 ▲ 지난달 21일 오후, 인사위원회에 참석하려던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오른쪽)을 정상원 비상대책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을 비롯한 비대위 기자들이 가로막고 있다.

언론이 언론을 봉쇄하는 세계적으로도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한국일보 노조비상 대책위원회 (비대위)는 회사측의 불법 편집국 폐쇄 조치에 대해 18일 법원에 ‘불법직장 폐쇄금지 가처분신청서’를 제출해 노사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비대위는 지난15일 발표문을 통해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이 6월 15일(한국시간) 서울 중구 남대문로 2가 한진빌딩 신관 15층 편집국을 폐쇄하고 편집국 안에서 일하던 당직기자를 편집국 밖으로 강제로 몰아냈다”고 밝혔다. 졸지에 거리로 쫓겨난 기자 130여명은 현재 서울 중구 소공동 한국일보 본사 앞에서 편집국 개방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따라서 한국 일보는 17일자 월요일 신문 제작에도 차질을 빚었다. 이같은 초유의 사태에 대해 드디어 한국의 전체 언론들이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경영진의 폭거에 비난을 가하기에 이르렀다. 경향신문 등 일부 언론들은 사설까지 게재했다.



그동안 한국일보의 사태에 대해 극히 일부 언론들만 한국일보 사측과 언론사 노조간의 갈등으로 보도 해왔는데 이번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조선일보를 포함해 전국 일간지 들은 물론 SBS 방송 등을 비롯한 방송사들과 인터넷 매체까지 모두 한국일보 사건을 일제히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20년전까지 한국일보는 한국의 4대 일간지에 들어가는 명성을 지녔으나 고 장기영 창업자가 사망한 이후 2대 후손들이 방만하고 무능한 경영으로 신문사를 망쳐 놓았다.
이번 한국일보 본사 사건은 미주의 한국일보와도 무관하지 않다. 서울 본사 편집국을 폐쇄시킨 장재구 회장은 미주 한국일보의 지분도 50% 정도를 보유하고 있으며 미주한국일보의 장재민 회장은 본사 지분의 약 30%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번 사태의 영향이 직간접적으로 미주에 까지 불똥을 튈 공산이 커 노심초사하고 있다.


200억 배임과 골드만삭스 대출금


한국 언론사상 초유의 사태로 벌어진 이번 ‘한국일보 편집국 폐쇄 사건’은 지난 4월 29일자로 한국일보노조지부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장재구 회장을 ‘200억원 배임’ 혐의로 고발하면서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여기에 다시 장 회장이 지난 1일 일방적으로 현재의 이영성 편집국장을 다른 직책으로 발령하고 새로 하정오 전 사회부장을 편집국장으로 발령하자 기자들이 이에 전면 반발하면서 사실상 편집국이 ‘2원 체제’로 비정상적 운영에 빠지면서 촉발된 것이다.  장 회장에 대한 검찰 고발은 중학동 사옥 재개발과 매각 과정에서 장 회장이 개인 빚을 갚는데 회사 자산인 신사옥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해 결과적으로 회사에 2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사태에서 미주 한국일보도 비켜갈 수 없게 됐다.






한국일보 매각 협상 진행 중…
 “확정된 것 없다”

국내 언론계 안팎에서 한국일보의 매각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인수 계약 직전’이라거나 ‘MOU(양해각서) 체결’ 등의 소문과 함께 구체적인 대상 기업들도 물망에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노사 양측은 ‘확정된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한국일보는 최근 수 년 동안 꾸준히 매각설에 오르내렸다. 해마다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부채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이 회사를 매각한다는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일보는 지난해 말 유명 회계법인에 의뢰해 회생계획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일보 측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장재구 회장이 지분을 처분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회사 안팎의 관측도 나왔다. 
구체적인 인수 대상자도 물망에 올랐다. 중견기업인 H건설과 S제분 등이 유력한 인수 대상자로 거론됐던 것이다. 최근에는 H건설과 ‘인수 계약 직전’이라는 루머가 돌았고, S제분과는 ‘MOU를 체결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밖에도 제조업 중견기업과 한 건설사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한국일보도 매각 추진 여부에 대해 부인은 하지 않지만 ‘확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일보 관계자는  “(최근의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지금은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조 관계자도 “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일보의 경영권이 장재구 회장과 장재민 미주본사 회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신문발전 위원회 최근 조사서에 따르면, 한국일보 지분은 장재구 회장이 63.43%, 장재민 미주본사 회장이 29.07%, 서울경제신문이 7.5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한국일보 계열인 서울경제의 경우 장재구 본사회장이 36.92%, 장재민 미주본사 회장이 27.69%, 장중호(고 장강재 아들) 전일간 스포츠사장이 18.46%, 한일시멘트 7.69% 등으로 구성됐다.
한국일보 본사는 경영난이 계속 악화되자  미주한국일보의 일부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도 고려한 적이 있다. 장재구 회장은 2002년 1월, 장재국 전 회장이 경영난과 불법 해외 원정도박 등을 이유로 주총에서 해임된 직후 1997년 이후 두번째 회장에 취임했다. 막대한 부채와 지속적인 경영난에 시달리던 한국일보는 그해 9월부터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장 회장은 이에 앞서 같은 해 6월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면서 미주 한국일보 지분 매각 등을 통해 500억원을 증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미주한국일보는 수년전  골드만삭스로부터 8,000여만 달러의 융자를 받았다. 이같은 융자 이면에는 서울 본사 장재구 회장이 한국일보 본사와 미주의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해결과 채널 18 매입과 라디오스테이션 매입과정에서 빌린 융자금이다. 지난동안 미주한국일보는 여러 곳의 엄청난 부채에 시달려 왔는데 이를 골드만삭스 한 곳으로 몰아 융자를 받아 이중 약 2천만달러 이상을 한국일보 본사 워크아웃 개선자금으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숨통이 튼 미주한국일보는 더욱이 지난 2010년에 채권자인 골드만삭스가  파격적으로 전체 융자금에서 3000만 달러(추산금액)를 탕감해주는 바람에  다시 크게 숨통이 튀었으나 이를 제대로 활용치 못했다. 당시 미주한국일보 직원들은 봉급이 15-20% 정도 삭감된 채 수년간을 고통으로 지내왔다. 하지만 직원들은 골드만삭스의 융자금 탕감 소식에 “이제 20% 삭감된 봉급이나마 원상회복이 되겠다”고 기대했으나 지금껏 소식이 없다.  자연히 회사를 떠나는 기자들이나 직원들이 늘어났다. 여기에 탕감받은 금액에 대한 TAX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탕감받은 금액은 소득으로 간주해야하기 때문에 30%를 세금을 납부해야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도 관심사다.
업계에서는 골드만삭스로 부터 받은 융자금 일부를 장재구 회장 일가가 회사와 무관하게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추후 보도 예정)


언론이 언론에 재갈 물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4대 일간지’로 꼽히던 한국일보는 90년대 후반, IMF를 거치며 휘청거렸다. 1999년 금융권 부채가 5590억원에 달했고, 2007년 말에야 5년4개월 동안의 워크아웃 ‘터널’을 빠져 나왔다.  지난 2001년 한국일보 노조는 사주 회장 일가의 전횡과 독선 경영 문제를 지적하는 한편 사주 일가의 배임 의혹을 제기하며 전면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일보 본사는 지난해 매출액 감소에도 불구하고 2006년 이후 처음으로 당기순이익(3억6645만원)을 낸 바 있다.

이번 한국일보 편집국 폐쇄 사건은 그 형태에 있어 언론사가 언론에게 재갈을 물린 격으로 한국 언론의 추락상을 그대로 세상에 보여주었다.
한국일보 비대위는 이번 편집국 불법점거 사태가 장재구 한국일보 사주의 배임 의혹과 편집국장 경질에 따른 기자들의 반발에 대해 사측이 16일 편집국을 폐쇄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약 15명의 외부 용역이 동원됐고 편집국에 있던 기자 두 명은 강제로 편집국 밖으로 쫓겨났다. 당시 편집국에는 당직 근무를 하던 사진부 기자 1명과 개인적 용무 때문에 편집국을 들렀던 경제부장이 있었다고 한다.



회사측은 편집국에 있던 기자들에게 ‘근로제공 확약서’라는 문서를 보여주며 이 문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편집국에 들어갈 수 없다며 서명을 요구했다. 근로제공 확약서에는 ‘본인은 회사의 사규를 준수하고 회사에서 임명한 편집국장(직무대행 포함) 및 부서장의 지휘에 따라 근로를 제공할 것임을 확약합니다.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퇴거요구 등 회사의 지시에 즉시 따르겠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기자들이 서명을 거부하자 사측은 15층 편집국 출입문을 봉쇄했고, 15층으로 통하는 엘리 베이터를 수동 조작해 엘리베이터 4대 중 1대만 가동되게 만들었다. 15층 비상계단과 신관과 구관 사이를 연결하는 연결통로도 폐쇄했다.

비대위는 회사측이  신문 지면 제작을 위해 기사를 작성하고 송고하는 전산시스템인 한국일보 기사 집배신도 전면 폐쇄해 기자들의 정당한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회사측은 기자들 개개인의 이메일로 인사관리부 명의의 서신을 보내 근로제공 확약서 작성을 종용했다. 여기에 더해서, 회사 측은 5월 1일 실시된 불법부당 인사를 거부하고 정상적으로 신문 제작을 해 온 편집국 간부 4명에게 6월 16일자로 자택대기발령 명령을 내렸다”고 했다.
이들은 “6월 15일 밤 10시 현재 한국일보 편집국은 사측 인사와 용역들에 의해 장악된 상태이며, 사측에서 이 같은 폐쇄를 계속한다면 6월 17일(월요일)자 신문의 정상적인 제작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이같은 조치는 대한민국 언론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유의 일로서, 언론 자유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자 기자들의 정당한 취재 권리를 방해한 불법 조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사측의 편집국 폐쇄 및 기자 아이디 삭제 조치에 ‘사원 지위 확인 가처분 신청’ 등 강력한 법적 대응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한국일보 노조 비대위는 지난 4월 29일 장재구 회장이 개인적 빚 탕감을 위해 회사에 2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며 장 회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어 사측이 지난달 1일 이영성 편집국장을 보직해임하자 편집국 기자들이 이를 보복인사라고 반발하면서 사측이 조직한 편집국과 기존 노조 편집국 등 ‘이중 편집국’ 체제로 운영돼왔다. 


노조, 경영파탄 책임 퇴진 요구


한편 지난 4일 저녁 7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제57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열렸다. 장재구 회장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행사라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열리기 직전 대회장 밖에서는 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가 장 회장이 한국일보 경영파탄과 편집국 독립 훼손에 책임이 있으며 고발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는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미스코리아대회가 시작되기 30분전 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조합원 50여명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장재구 회장을 향해 2백억을 돌려놓고 물러나라고 규탄했으며 검찰에게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장재구 본사회장         ▲장재민 미주본사회장
이번 장재구 회장이 편집국 폐쇄를 감행한 것에 대해 별도의 인원을 꾸려 신문을 제작하려는 회장의 구상이 실행에 옮겨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고 미디어오늘이 보도했다.
비대위는 지난 7일 창간기념일 이후 장재구 회장이 ‘회장 뜻에 동참하겠다는 사람과 퇴직 사우 등을 이용해 따로 신문을 제작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한 바 있다. 당시 사측은 “사실무근” 이라고 밝혔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회장의 구상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비대위 측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파업을 하거나 제작거부를 하지 않으니 이런 방식을 선택한 것 같다”며 “회장은 한국일보를 제대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명맥만 유지하며 신문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쁜 수를 뒀다고 본다. 회장이 스스로 자신의 목을 죄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일보 노조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16일 오전 9시 사옥 1층에서 총회를 열었다. 노조는 편집국 폐쇄 및 기자 아이디 삭제 조치에 대해 ‘사원 지위 확인 가처분 신청’ 등을 내는 등 법적 대응을 하고, 장재구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검찰에 추가고발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사태에 대해 한국일보 사측은 ‘편집국 정상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한국일보 박진열 사장은 “회사는 편집국을 폐쇄하지 않았다”며 “인사 발령에도 불구하고 편집국을 장악하며 정상제작을 방해해온 전 편집국 간부 같은 외부 인사의 출입을 선별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불가피 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 사장은 “정상적인 신문 제작에 동참하겠다는 편집국 간부나 기자들은 누구나 편집국 출입”을 할 수 있고 “회사는 충돌을 막기 위해 남대문 경찰서에 10명의 사설경비요원을 사전 신고하는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말했다.
 
언론사상 초유사태 비상한 관심













 ▲ 편집국을 점령한 용역인들.
한편 지난달 2일자 한국일보 신문 1면에는 <회장의 불법 인사를 거부한다>는 비대위의 성명서가 게재됐다. 앞서 장재구 회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비대위는 장 회장의 회사 자금 횡령 혐의 등에 대해서도 추가 고발에 나설 것을 논의하는 비상총회를 개최했다.
비대위는 지난달 1일 밤 성명을 내어 “1일 기습적으로 자행된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의 편집국 인사를 거부키로 했다”며 “편집국장 이하 편집국 전 간부는 이번 인사와 무관하게 기존 체제를 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성명서는 5월2일자 한국일보 아침신문 1면에 그대로 게재됐다. 이영성 편집국장은 5월 1일 단행된 인사에서 창간60주년 기획단장으로 발령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일보 사측은 이후 판갈이 과정에서 이 부분을 도려내고 신문을 내보냈으나, 1만5천부 가량의 신문은 그대로 배달된 것으로 회사 측은 파악하고 있다.

비대위는 성명에서 “장 회장은 불법적 방식으로 한국일보 지분을 취득한 뒤 한국일보의 자산을 빼돌리고 한국일보에 손실을 끼친 혐의로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다”며 “이번 인사는 장 회장이 검찰 수사를 모면하기 위해 인적방어망을 구축하려는 간계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1일 하종오 전 사회부장을 편집국장에 임명하는 등 주요 부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이에 대해 노조 지부는 “장 회장은 노사가 합의한 ‘한국일보 편집강령규정’ 조차 일방적으로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편집국장 임명 시 5일 전에 내정자를 조합과 편집평의회에 통보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인사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4월 29일 한국일보지부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장재구 회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중학동 사옥 재개발과 매각 과정에서 장 회장이 개인 빚을 갚는데 회사 자산인 신사옥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해 결과적으로 회사에 2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에서다.



지부는 또 “장 회장은 2002년부터 한국일보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700억 증자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여러 곳에서 돈을 빌려 한국일보 증자에 참여하고 한국일보 돈을 빼돌려 이를 갚는 식으로 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사 대상에 포함된 한 편집국 간부는 2일 통화에서 “노조가 고발한 것 이외에도 온갖 횡령 혐의가 확인된 게 있어서 추가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저를 비롯해 인사 대상이 됐던 사람들은 대주주 자격이 없는 장 회장의 경영권과 인사권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인사권을 거부하기로 결의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노조 구성원과 비노조원, 편집국과 비편집국 구성원 등으로 구성되는 비대위는 2일 오전 10시를 조금 넘겨 비상총회를 개최해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장 회장은 문제의 ‘200억원’에 대한 노조의 문제제기가 이어지던 2011년, 자신의 자산을 팔아 이를 되갚겠다고 약속했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한국일보는1980년대 초반 매출액ㆍ발행부수 1위를 기록하던 한국의 대표 일간지였다. 당시 미국에서도 1위였다. 그러나 2009년 한국 ABC협회에의 신고에 따르면 발행 부수는 국내 한국일보는 고작 29만2천55부였다. 부산의 지방지보다도 떨어진다는 수치였다.
한국일보의 실질적 위기는 외환위기와 더불어 시작됐으나, 1993년 창업자 장기영  사주의 장남 장강재 전 회장이 1993년 숨진 이후 4남 장재국 전회장이 경영을 맡고 난 이후 2남 장재구 회장간에 본사 경영권 쟁탈이라는 소위 “형제의 난”이 한국일보를 추락시키는 계기도 몰고 왔다.
“형제의 난”으로 장재구 회장과 장재국 전회장에 줄을 선 기자들의 행태도 신문사를 망치는 원인 이 되었다. 이는 미주본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자사관학교에서 기자 대기소 오명


장재구 현 회장을 포함한 전 현 경영진이 한국일보에서 가져다 쓴 ‘가지급금’은 2001년 당시 460억원(약 5천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이 돈은 대부분 대손충당금 등의 방법으로 ‘탕감’됐다. 그 밖에도 소위 ‘장씨 일가’는 빌린 돈의 이자를 회사에 떠넘기거나 근무하지 않으면서도 봉급과 해외출장비 등을 챙겨갔다는 게 비대위와 회사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더 한심한 일도 있다. 한국일보 직원들의 퇴직금을 위해 교보생명에 예치된 270억원 중 약 199억원을 불법적으로 인출해 사용하는 바람에 직원들이 퇴직을 해도 퇴직금을 바로 지급을 하지 못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와 비슷한 행태가 미주본사에도 있었다.
1954년 창간한 한국일보는 창업주인 고 장기영 전 경제부총리가 1977년 사망한 이후, 장남 장강재 전회장이 맡다가 1993년에 사망하면서 4남 장재국 전회장과 2남 장재구 회장 등이 번갈아 가며 회사 경영을 맡아오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경영주가 라스베가스 도박으로 유죄판결까지 받아 회사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이처럼 ‘사주일가’의 방만한 경영과 전횡이 매각협상과 사주고발과 급기야 편집국 폐쇄라는 상황 까지 한국일보사를 내몰았다는 분석이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일보의 위상은 ‘추락’을 거듭했다. 장재국 전 회장은 90년대 초반까지 증면 경쟁을 주도하며 은행권 대출을 대폭 늘려 대규모 부실을 낳았고, 장재구 회장은 수 백억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때 ‘기자사관학교’라는 별칭이 자랑처럼 여겨졌지만, 이제와서는 ‘기자 대기소’, ‘기자 세탁소’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변했다. 1998년 IMF 이후 한 차례 ‘퇴사 선풍’을 겪은 이후에도 수많은 한국일보 기자들이 꾸준히 회사를 떠났다.
장재구 회장은 2002년 1월, 장재국 전 회장이 경영난과 불법 해외 원정도박 등을 이유로 주총에서 해임된 직후 회장 자리에 올랐다. 1997년 이후 두 번째 취임이었다. 막대한 부채와 지속적인 경영난에 시달리던 한국일보는 그해 9월부터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장 회장은 이에 앞서 같은 해 6월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면서 미주 한국일보 지분 매각 등을 통해 500억원을 증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장 회장은 8월과 9월 각각 100억원을 증자한 이후, 나머지 300억원은 여러 차례 약속을 어긴 끝에 2005년 6월에 가서야 완납했다. 이후 장 회장은 2006년 채권단과 2차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사옥 매각과 인력구조조정, 200억원 추가 증자 등의 조건이 붙었다. 그러나 200억 추가 증자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창간 당시부터 머물렀던 ‘중학동 14번지’의 사옥 매각 과정에서 배임 혐의가 불거졌다. 노조 비대위가 이번에 장 회장을 고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창업주 장기영의 식견과 자식들의 무능


1954년 ‘태양신문’을 인수한 고 장기영 사주는 그 해 6월 9일자부터 제호를 ‘한국일보’로 고쳐 창간하였다. 장 사주는  창간에 앞서 영어일간신문 《코리아타임스》를 발행하고 있었다. 한국일보는 초창기부터 장 사주의 선구자적인 식견과 안목으로 한국의 독자들의 시야를 크게 넓히는 신문으로 사랑을 받았다.
한국일보는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한국언론사 최초로 공개기자 채용제도를 실시해  많은 기자를 양성하였다. 자매지 ‘주간한국’은 한국 신문사들이 주간지를 발행하여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1960년대 중반 이후 주간지 붐을 일으킨 시초가 되었다. 또한 ‘일간스포츠’를 창간해 스포츠와 연예 분야에 독보적인 언론이 되기도 했으며 연예계를 주무르기도 했다.
사업을 하는 언론사로 6.25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한국 사회에 최초 ‘홀리데이 온 아이스 쇼’를 경복궁에서 벌여 공전의 히트를  쳤다.  한국일보사가 벌인 사업으로  1957년부터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시작하여 매년 세계 6개 대회에 파견하고, 1980년에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여 전세계에 컬러로 방영하였다. 이 밖에도 1961년 1월부터 시작한 ‘10만 어린이 부모 찾아주기운동’, 1976년 7월에 시작한 ‘1000만 이산가족 친지를 서로 찾자’ 등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또 1973년 6월 창간 2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대한산악연맹과 공동으로 한국 에베레스트 등반계획을 세워, 1977년 9월 15일 고상돈이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에 성공하였다.
1979년에는 국내 최초로 한글 자동문선 및 자동식자 컴퓨터 시스템을 완성한데 이어, 1981년 10월에는 한글과 한자자동편집기를 개발하여 인쇄기술 개발에도 노력하였다. 또한 해외판 발행에도 노력하여 1969년 6월9일부터 LA지사에서 현지판을 발행하다가 1978년 1월 미주본사도 설립했다. 특히 1986년 6월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서울ㆍLA간의 신문 동시 발행을 시작하였다.
1991년 12월 16일에는 석간을 발행하여 조ㆍ석간 양간제 시대를 다시 열었으나 1년만에 실패했다. 1998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출범했으나 사세가 기울기 시작한 한국일보는 계속 추락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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