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철수’와 ‘독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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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지난 4일부터 6.4 지방선거에 나서는 시-도 지사와 교육감 후보들의 예비등록이 시작됐습니다. 7일부터는 소치 동계올림픽이 개막됩니다.
소치 올림픽에서는 안현수가, 한국의 지방선거에서는 안철수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름 석 자 중 가운데 한 글자만 틀리는 안씨 가문의 ‘잘 난’ 두 남자가, 공교롭게도 함께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소치 올림픽 한국 팀 최대의 경계대상은 한국의 간판 쇼트트랙 선수였다가 얼마 전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지형을 흔들어 놓을지 모를 6.4 지방선거의 최대 변수로 떠오른 사람이 가칭 새정치신당의 안철수입니다.


안현수 버리고 개고생…한국 빙상


올림픽 3관왕, 세계선수권 5연패의 대기록을 보유한 안현수는 한국 스포츠의 고질적 병폐이며 치부인 한체대(한국체육대학)파와 비(非)한체대파 간의 파벌싸움에 시달리다 몇 년 전 고국을 떠났습니다, 그는 지금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소치 올림픽 러시아 국가대표로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팀은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5개 이상의 금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지요.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 여자 쇼트트랙의 떠오르는 별 심석희 정도가 비교적 확실한 금메달 감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상화가 다관왕이 될 수 있을지, 남자 쇼트트랙에서 한 두 개의 금이 나올 수 있을지 여부가 목표인 종합10위권 진입의 관건입니다.
한국 팀 최대의 적은 하필이면 안현수입니다. 그는 지난 달 유럽선수권대회에서 4관왕에 오르는 등 요즘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지요. 미국대표 출신 방송해설자인 안톤 오노는 “기술 경험 능력에서 안현수는 발군의 선수”라며 “이번 소치에서 다관왕에 오를 것”이라고, 한국팀 ‘염장 지르는’ 전망을 내놨습니다. 박세영 이한빈 신다운 등 한국의 젊은 선수들이 과연 ‘안현수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안철수 인기 거품 빠지는 소리


한국의 2014년은 ‘정치의 해’입니다. 2017년의 19대 대선-어쩌면 2022년의 20대 대선까지 이어질지 모를 정치지형과 선거구도가, 올 한해 각종선거에서 판가름 납니다. 6월엔 지방선거, 7월30일엔 상반기 국회의원 재보선, 10월엔 하반기 재보선이 연달아 치러집니다. 한국의 정치가 기대대로 선진 형 새 정치로 환골탈태 할 수 있을 지의 여부는 올 해 치러질 각종 선거 결과와 곧 창당될 안철수신당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요즘 안철수의 인기는 여전히 높지만 상승세는 꺾이고 있습니다. 설 연휴기간에 실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신당 지지율은 22.1%를 기록했습니다. 민주당을 여전히 앞서기는 했지만 전 주 대비 무려 5.5%나 지지가 빠졌습니다. 심상찮은  민심 때문인지 요 며칠 새 안철수 진영에서는 그동안 목소리 높여 외쳐 온 민주당과의 ‘야권연대 ’절대불가’ 빗장을 조금씩 푸는 기미가 엿보이고 있습니다. 지지율 하락, 지방선거 여당 승리 때의 책임론, 인물영입난 등이 겹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는 분위기입니다.
당의 지지율이 높으면 사람이 모여야 하는데 안철수신당은 파리를 날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모은 거물급 영입인사들의 면면은 참신성은 물론 공유하는 가치나 정체성조차 찾기 어려운 인물이 대부분입니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에서 용도 폐기된 올드 네임들이 ‘감히’ 새 정치를 표방하며 안철수 진영에 모여들고 있습니다.
안철수신당은 지향하는 가치가 중도보수인지 중도진보인지 조차 모호한데다, 새정치를 구현할 정강정책이 뭔지, 중장기적 정책 비전이 어떤 것인지, 국민 앞에 내 놓은 콘텐츠가 없습니다. 민주당과의 연대 없이 17개 광역단체장 후보 모두를 내겠다고 큰 소리를 치더니, 당선 가능성이 가물거리자, 슬그머니 정치공학적 연대 카드를 꺼내 들기 시작했습니다. 혁신과 성찰 없는 야권연대로 광역단체장 한 두석이라도 쉽게 건져 보겠다는 ‘안철수답지 않은’ 꼼수가 엿보입니다.
안철수에 다수 국민이 열광한 것은 기성정치인과는 다른 존재방식을 보여줬기 때문인데, 정치입문 2년 만에 그는 ‘간철수’라는 닉네임처럼, 기성 정치인 뺨치는 구시대 정치인의 일탈적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낡은 정치문법을 충실히 따라, 호남에 가서는 호남지역정서를, 영남에 가서는 영남지역정서를 자극하는 데에 사뭇 익숙해졌습니다. 서울시장 박원순에게는 “시장자리를 당신이 양보할 차례”라고 대놓고 욱박질러 ‘독(毒)철수’라는 별명 하나를 더 얻었습니다.
새정치추진위의 윤여준 의장은 “안철수가 상당히 터프해졌다”고 말합니다. “과거엔 잘못하면 깨질 것 같은 연약함과 순수함을 느꼈는데, 한국정치가 사람을 오염시켰는지 굉장히 강인해졌더라. 현실정치를 보는 눈도 많이 달라지고 굉장히 변했다”고 했습니다.
변한 안철수를 바라보는 열성 지지자들은 불편하고 당혹스러워하며, 변화된 그를 무연(憮然)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광역단체장 출마 승부수를


안철수신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호남과 수도권에서 1~2명의 광역단체장을 내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윤장현(광주)과 김효석(전남) 등에 기대를 걸지만, 냉정히 봐서 ‘광역 전패(全敗)’가 정답입니다. 안철수의 인기는 여전한데 그의 아바타들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당이 살려면 안철수 바람을 다시 일으켜야 합니다. 안철수가 직접 전장(戰場)에 뛰어들어  글자 그대로 일진광풍(一陣狂風)이라도 일으켜야, 꺼져가는 ‘안철수 현상’의 불씨를 다소나마 되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헌데 안철수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서울시장을 양보하라고 박원순을 다그칠 때 “내가 직접 나서겠다”고 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지도 모릅니다. ‘택도 없는’ 이계안 서울시장 카드로 양보를 겁박했으니, 평생 시민운동을 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박원순이 “딴 데 가서 알아 보슈!”하고 콧방귀를 뀐 겁니다.
 서울이 부담스러우면 부산 같은데서 승부를 걸어볼 수도 있습니다. 부산은 무소속 오거돈과 새누리당 후보가 맞붙게 돼 있는데, 안철수가 3파전 승부를 걸고 나서면 승산이 충분합니다. 부산에서 바람을 일으키면 수도권과 호남에서 맞바람이 불 수 있고, 230여개나 되는 전국적 규모의 시장 군수 구청장 등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안풍(安風)이 몰아칠 수 있습니다.
‘간철수’는 이제 ‘독철수’로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띄울 때가 됐습니다. 안철수의 광역단체장 출사표에 문제와 리스크가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대선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에게 광역시의 시장이나 도지사가 썩 어울리는 자리는 아닙니다. 만에 하나 낙선했을 때의 리스크도 물론 고려해야겠지요.
 허지만 더 이상 ‘간만 보며’ 야권연대니 후보단일화니 하는 안철수답지 않은 구태의 꼼수정치로 지지자들을 실망시키면, 2017년 대권을 향한 그의 그랜드 플랜 자체가 뒤죽박죽이 될 수 있습니다. 엊그제 중앙일보에 실린 한 정치부 기자의 칼럼은 끝머리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안철수 신당엔 세 가지가 보이지 않는다. 첫째 사람이 없다. 둘째 감동이 없다. 셋째 그러니 기존과 다름이 없다–.”
같이 하면 죽고 달리해야 산다. 동즉사(同卽死) 이즉생(異卽生)이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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