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서동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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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포사회의 숙원 사업인 한미박물관 설립 청사진이 최근 발표된 것을 보며 박물관 설립 초창기에 창립멤버로 참가한 한 사람으로 너무나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랜만에 접하는 이 희소식이 우리로 하여금 흥분하게 까지 만드는 이유는 건물을 짓는 것 만이 아니라 건립 후에 박물관의 유지, 관리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려는 안 까지 매스터플랜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이다.
우리 동포사회의 성장,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필요한 기관이나 단체를 세우는 (hardware를 만드는) 일에는 남 보다 뒤지지 않는데 일단 세워 놓은 후에 그 하드웨어를 지탱하는데 필요한 소프트웨어 개발은 대체로 미흡한 경향이 있음을 종종 보아왔다.
언론에 보도된 청사진에 의하면 약 1000만 불을 들여 한미박물관을 건축 후에는 앞으로 영구 유지, 관리에 필요한 비용 창출을 위하여 2000만 불을 투자하여 100여개 아파트를 짓고 그 아파트 임대사업에서 발생하는 수입으로 유지와 관리비를 충당한다는 착상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착상은 표면상으로 매우 창의적이고 요즘 주류사회에서 회자되는 소위 “틀 밖의 사고 방식” (outside the box thinking)인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에 우선 고무적이다.
그러나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미박물관이 비영리 단체라도 영리사업을 하면서 그 영리사업 에서 발생된 수익금에 대한 세금을 따로 내면 세법상 별 문제가 없겠지만 공공이익을 도모하는 법인체라 해서 정부 땅을 거의 무상으로 빌려주었는데 그 빌려준 부지 가운데 40% 이상을 영리사업에 사용 한다면 정부차원에서도 곱지 않은 눈초리로 볼 수도 있다.
한미박물관 매스터 플랜이 발표되면서 세워지는데 일정 부분 큰 기여를 했다고 정치인답게 생색을 낸 허브 웨슨 시의회 의장도 계획안이 발표된 후 어떤 외부의 압력을 받았음 인지 아파트를 건립 하려면 일정 부분은 저소득 주민용으로 활당하라는,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완연히 다른 주문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 보다도 박물관 건립 후 필요한 유지비 창출 수단으로 아파트 임대사업을 하려면 최대한 수입을 올려야 하는데 그러자면 박물관 운영 하고는 완전히 다른 아파트 임대, 관리사업을 성공적으로 맡아할 수 있는 인력과 노하우가 박물관 안에 따로 있지 않는 한 이 부대사업은 별도로 외부 전문가 에게 운영을  맡겨야 하고 그럴 경우 박물관에 들어오는 순 수입은 그 만큼 줄어든다는 것도 한번 계산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한편 이번에 한미박물관측에서 발표된 계획안에 빠진 것 중에 제일 아쉬운 것으로  처음 발표된 매스터 플랜 안에는 아예 수장고가 빠져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말하는 수장고 (archive)는 물론 건물 구석, 귀퉁이에 물건을 수시로 분리, 보관하는 창고 (storage)가 아니고 온도, 습도가 조절되고, 통풍이 잘되며 먼지까지 제거하는 과학적으로 특수장치를 갖춘 시설을 말한다.
한미박물관은 이러한 특수 시설이 필수이기 때문에 수장고 없는 한미박물관은 상상할 수도 없다. 가장 필요한 알맹이인 수장고를 포함하지 않고 박물관을 짓는다는 것은 “신랑이 없어서는 안 되는 불(R)을 챙기지 않고 장가가려는 격”이다. 수장고 없는 한미박물관은 한낱 갤러리 밖에는 안 된다.
지난 2003년에 국민회관 건물을 개축하는 과정에서 신한민보를 비롯한 유물이 다락방에서 발견 되었는데 이 귀중한 역사적 자료를 모국의 독립 기념관으로 보내자는 쪽과 새로 발견된 유물은 우리 이민선조의 숨결이 들어 있고 그들의 혼과 얼이 담긴 우리만의 유산인데 우리 후세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이곳에 지니고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 대립이 되면서 해결점을 찾지 못하여 소송으로 현재 LA 법원에 계류 중에 있다.
한국으로 보내자는 쪽의 주장 가운데 하나가 그 귀중한 물건을 보관할 수장고가 없으니 다른 도리가 없지 않는냐 라는 논리인데 과연 앞으로 지을 박물관에 수장고가 없다면 이 소송도 지속할 명분 이 없어질 것이다. 수장고는 한국의 독립기념관에 있는 것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5000 sq. ft 정도면 충분하고 거기에 생활 체험장과 연구실 몇 개들이려면 지금 구상하고 있는 2층의 16000 sq. ft. 에 1층만 더 올려 건물을 3층으로 늘리고 추가되는 한 층의 건축경비는 박물관안의 부속건물의 명명권을 팔아서 충당해 보도록 노력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바램이다.

수장고 설치는 필수

우리의 미주이민 역사는 130년 남짓하다. 1945년까지의 우리 이민 이야기는 주로 나라 잃은 백성이 나라 밖에서 잃은 나라를 되찾겠다고 몸부림 친 독립운동 역사가 우리 이민선조들의 이야기다. 그 후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고 앞으로 박물관에서 무게 있게 다루어야 할 대목은 4.29 LA폭동사건일 것이다. 
결국 한미박물관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 그 가운데서도 해외에서 펼쳐진 독립운동에 대한 기록, 자료를 수집하고 간직하는 곳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민 선조의 삶 자체가 독립운동에 의한, 독립 운동을 위한 삶이 전부였기 때문에 우리 박물관은 나라 밖에 세워지는 해외의 독립기념관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LA와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캘리포니아는 해외 독립운동의 본고장 이고 해외 독립운동의 생생한 기록과 유물이 모두 이 곳에서 모여져 있기 때문에 한미박물관은 그러한 기록과 유물들을 보관하고 관리를 해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다.
박물관이면 대개 역사적 기록과 더불어 당시 살았던 이민자들의 유품, 유물 들이 간직 되어있는 것 이 정상인데 우리의 경우 유품들을 간직할 만한 수장고 같은 시설이 없었던 까닭으로 많은 유품 들이 이미 한국에 옮겨져 있다. 간단한 예로 두 번에 걸친 올림픽 영웅 세미리 박사가 입던 수영 팬츠, 도산선생 의 자필 편지, 수기 또는 몸소 쓰시던 물건, 필라델피아 기념관에 오랫동안 간직 되었던 5000여 점 의 서재필박사 개인 유품 등이 이미 오래 전에 천안에 있는 한국의 독립기념관에 옮겨져 있다. (옮겨진 많은 유품들이 대개는 독립기념관 지하실에서 낮잠 자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듯 우리가 지니고 있어야 할 많은 유품들은 이미 한국으로 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한미박물관이 보관 간직할 유물들은 유품 보다는 역사적 기록물이다. 이 기록물 대부분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이었기에 본국에서는 보도되지 못한 기사들, 역사적 자료들이 이곳에서 발행된 신한민보를 포함한 간행물들이다. 특히 신한민보에 담겨있는 자료는 국내 외 어느 곳에서 발행된 간행물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자료가 담겨 있기에 독립운동사, 이민역사 연구에 필요한 자료의 보물창고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의 근세사, 특히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국내외 학자들은 필요한 자료를 찾아 대한인국민회 기념관과 남가주대학 (USC)의 한국전통도서관을 찾는 이유이다. 이러한 귀중한 자료를 앞으로는 우리 박물관이 수집하고 보관할 임무가 있는 것이다. 박물관에 유치되는 유품 들은 대개는 전시가 목적이고 그 때문에 유품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관객 이 그 유품들을 관람 하느냐에 있지만 역사적 기록물은 전시 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 특히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 들이 그 기록을 연구하느냐에 진가가 있다.

건축비 염출 ‘윈-윈’ 작전

수장고 이외에 한미박물관이 갖추어야 할 시설이 또 있다. 앞으로 짓는 박물관 안에는 작은 규모라도 연구실 몇 개는 꼭 있어야 한다. LA는 이미 우리의 근대사, 독립운동사를 연구 하는 학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그러기에 아예 박물관 안에 부속 이민사 연구소를 두고 연구원 들이 항상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또는 미국 내 타주에서 LA를 방문하여 독립 운동사, 이민사 연구를 원하는 학자들을 위한 숙소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구상되고 있는 아파트사업에서 지어지는 아파트 일부 몇 채를 방문하는 연구원 숙소로 활당 한다면 해결 될 것이다.
박물관 부대시설과 프로그램 운영도 중요하지만 박물관을 지은 후에는 관객동원에 특별한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박물관이 건립되면 사람들 특히 2세, 3세 젊은 학생들이 많이 찾아오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그 들을 동원하려면 그들을 끌어드릴 수 있는 프로그램과 시설의 개발이 필요하고 그들의 맛에 맞게 모든 이야기는 되도록 디지털화 하고 영상화 하는 것은 기본일 것이고 유적지 같은 것은 디즈니랜드처럼 스케일을 축소 현장을 재현함으로 견학 오는 학생들로 하여금 산 체험을 하도록 꾸미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예를 들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을 재현하면서 사탕수수를 벨 때 쓰던 낫도 마련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그 당시 쓰던 개량된 낫을 써 보게 하는 것이다. 1905년 1000여명의 조선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노예로 팔려가서 짐승만도 못한 모진 삶을 살다가 1910년 일제강점으로 4년 고용계약이 끝나고도 돌아갈 고국이 없어져 버려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결국에는 멕시코 사회에 흡수되어 지금은 그 후예가 아예 “잊혀진 동포”( forgotten people)로 되어버린 멕시코 이민역사를 조명하면서 가장 슬픈 이민역사가 당긴 에네껜 농장도 재현하여 그 들의 삶은 역사도 배우는 산 역사의 체험장을 박물관 안에 만드는 것이다.    
한편 한미박물관 건립에 막대한 예산이 들지만 주류사회에서 모금하는 방식을 본 딴다면 아주 불가능 한 일이 아니지 않느냐 싶기도 하다.
요즘 흔히 보는 일로 대 도시마다 스포츠 구장을 짓고 그 구장의 명명권을 대 기업체에게 매각함으로 필요한 예산을 만드는 것이다. LA에서는 Lakers와 Clippers의 두 농구 팀에게 경기장을 빌려주고 그 경기장 이름을 Staples Center로 명명한 것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듯, 우리가 필요한 수장고는 우리 독립운동의 구심체였던 대한인 국민회가 1990년 초에 해산되면서 남은 재산을 흥사단에게 넘겼는데 국민회 후신으로 남아 있으며 현재도 알찬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흥사단으로 하여금 필요한 수장고를 짓게 하고 그 수장고를 “도산수장고”로, 하와이 사탕수수밭 재현은 삼성에게 맡겨 “삼성 화와이 관”, 멕시코 진출에 큰 관심을 보인다는 LG에게는 “LG 에네껜 에레지”를 이민역사 연구실을 따로 마련하여 “현대 이민역사 연구실”로 명명권을 준다면 한미 박물관 건립에 동포의 기업으로 기부만 하라고 조르는 것 보다는 서로의 ‘윈-윈’을 위하여 도와 달라면 대화가 수월해 지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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