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에 걸린 미꾸라지 崔순실
이번에도 빠져 나갈 수 있을까?
<선데이저널>이 특종보도한 최순실 씨의 문화재단 미르 개입 의혹이 본국에서 이른바 ‘미르 게이트’란 이름으로 비화되고 있다. 본지는 8월 18일과 8월 25일 이어지는 보도를 통해 미르 및 K스포츠 재단의 거액 모금 배후에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최순실 씨가 있다는 의혹과 함께 K스포츠 재단 이사장이 스포츠 마사지 전문가라는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본지 보도는 9월 본격적으로 시작된 국정감사와 함께 정국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야당은 ‘최순실 게이트’란 이름으로 박근혜 정부를 향한 십자포화를 퍼붓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와 관련된 증인은 단 한 명도 부를 수 없다는 뻔뻔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1000억에 달하는 거액모금에 청와대 실세 수석이 동원됐고, 그 배후에는 대통령 측근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그야말로 이를 덮으려는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본지가 지적했던 것처럼 두 재단은 전두환 정권 시절의 일해재단 불법 모금 과정과 판박이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루되었으나 끝내 모르쇠로 일관했던 BBK와도 비슷한 양상이다. 청와대는 이번 의혹에 대한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모르쇠 하지만, 정확한 반박 논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마치 자신은 청렴한 것처럼 유체이탈 화법을 해대지만, 정작 주변에서는 재벌들에게 빨대를 꽂고 호가호위한다는 정황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조만간 시작될 본국 정기국회 국정감사의 최대 이슈는 최순실 씨가 개입된 것으로 알려진 문화재단 미르와 K스포츠 재단 관련 의혹이다.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의 K스포츠재단 관여 의혹을 일제히 쟁점화하고 나섰다. 본지가 2007년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경선 때부터 문제 삼아왔던 최 씨는 과거 박 대통령의 멘토였던 고 최태민 목사의 다섯째 딸로, 의혹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은 2014년 말 ‘정윤회(최씨의 당시 남편) 비선 실세 문건’ 사건 이후 두 번째다.
사건의 흐름은 본지가 보도한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본지는 재벌들이 1000억 가까이 기부해서 세워진 두 재단의 배후에 최순실 씨가 있고, 케이스포츠 재단의 경우 마사지 전문가가 초대 이사장에 오를 정도로 석연치 않은 의혹들이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TV조선 등에서 두 재단의 존재 사실과 그 배후에 안종범 청와대 수석이 있다고 보도하긴 했지만, 최 씨와의 연관성을 처음 제기한 것은 본지가 처음이다. 본지는 재벌들이 단순히 안 수석만 보고 1000억에 가까운 돈을 선뜻 내놨을 리가 없다고 보도했다. 야당도 이런 흐름 가운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안 수석보다는 최 씨에게 초점을 맞춰 십자포화를 날리고 있다.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을 일컬어 전두환 정권 시절의 ‘일해재단’에 빗대는 것까지 똑같다.
본지 제기한 의혹대로 흘러가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두 재단이) 설립 몇 개월 만에 약 900억원의 기부금을 모금했다. 특혜의혹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설립 허가 및 모금 뒤에 청와대 모 수석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교문위 간사인 송기석 의원도 “통상 일주일에서 한 달이 걸리는 법인 설립 인허가가 하루 만에 났고, 두 재단의 정관과 창립총회 회의록도 대부분 똑같다”며 “이 정도면 5공 시절 일해재단이 떠오른다”고 지적했다.
노회찬 의원의 경우 탄핵까지 거론하고 나서는 중이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20일 재단법인 미르·K스포츠재단의 박근혜 정권 실세 개입 의혹과 관련, “이 모든 정황이 사실로 확인 된다면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것으로 탄핵소추 사유에 해당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정면 겨냥했다. 노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대통령이 권력을 사유화 하고 개인적 이익을 위해 공적인 권력을 행사한 직권남용이 아닐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 씨의 사이를 입증해줄 만한 정황들도 잇따라 제시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20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에서 황교안 국무총리를 불러 “우병우 수석은 온갖 의혹 속에서도 사퇴를 거부한다. 그런데 우병우 민정 비서관 발탁, 윤전추 행정관의 청와대 입성에도 최순실 씨와의 인연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우병우 수석이 2014년 5월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하는 과정에서 최순실 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주장이다.
이어 “최순실 씨가 심야에 청와대를 드나들었다고 보도됐고, 대통령 취임식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입었던 340만 원짜리 한복을 직접 주문해준 당사자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는 목걸이, 브로치 등도 최순실 씨가 청담동에서 구입해 전해준 것이라고 한다”고 최 씨와 관련된 각종 의혹을 제기했다.
본지가 지난 정윤회 국정농단 사건 때 이미 보도했듯이 최순실은 스타 벤추럭을 타고 수시로 청와대를 드나들며 박대통령이 즐겨먹는 미국산 시리얼까지 직접 공수해 박대통령의 식탁에 공급할 정도로 주도면밀하게 보살피고 있다.
후안무치한 청와대, 뻔뻔한 변명만
사실 박근혜 정권에서 제기된 각종 대통령 사생활 관련 의혹들은 최 씨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최 씨가 개입됐다고 가정을 해야만 모든 의혹들이 하나로 꿰진다. 예를 들어 최 씨의 딸은 국가대표 승마선수로 딸이 대표 선발전에 나섰을 때 문화부에 외압 의혹 등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는 딸이 선수로서 활동하지는 않지만 스포츠 분야에 종사해왔음을 감안할 때 최 씨가 이 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또한 2014년 국감에서 문제가 됐던 윤전추 트레이너를 청와대 행정관 채용 과정에서도 최 씨가 중간에 다리를 놓았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문화 체육 분야 관련된 의혹들에는 모조리 최 씨가 배후에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뻔뻔한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씨의 청와대 실세설과 관련해 “일방적인 추측성 기사에 제가 언급할 가치가 전혀 없다”고 답했다. 아프리카 3개국 및 프랑스, 이란 등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에 동행한 바 있는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에도 최씨가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있다는 보도 역시 “전혀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기된 의혹에 제대로된 반박은 못하고 근거없는 변명만 내세우고 있다.
21일 정 대변인의 해명도 똑같다. 다음은 정 대변인과 기자들이 21일 나눈 티타임 전문이다.
(국회에서 조응천 의원 최순실씨 주장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 사실이 아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조응천도 비서관인데 전혀 그런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언급할 만한 일고의 가치도 없다.
(최순실이 자꾸 거론될까) 글쎄요.
(한번도 만나지 못했나) 전혀 듣질 못했다.
(비선에 있는 사람이 국정에 언급되는 것은 이상한 상황?) 그러니까.
(조응천씨가 적어도 브로치에 대해서는 착용했다고 했는데 그 가게에서는 아니라고) 언급할 가치가 없다.
(두 개 재단 출연했다는 것은. 대통 순방에도 동행했고)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
(조사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는 것인가?) 사실이 아닌데 일고의 가치도 없다.
이는 정윤회 문서 유출 사건 당시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당시 박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정윤회씨가 청와대 ‘문고리 3인방’ 등과 결탁해 ‘비선 실세’ 노릇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교롭게도 정윤회씨는 최순실씨의 전 남편이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새누리당 민경욱 의원)은 언론 보도로 의혹이 불거지자 “정윤회 의혹으로 보도된 내용은 근거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에 불과한 것이고 사실이 아니다. (언론사 대상) 고소장 제출 등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경 대응했다. 박 대통령도 직접 나섰다. 박 대통령은 보도 나흘 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청와대에는 수많은 루머와 각종 민원이 들어온다. 그런 사항들을 기초적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외부로 유출시킨다면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진다”면서 “이번 문건 유출도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철저 수사를 지시했다.
박근혜 정권 결정적 최대위기
이번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 청와대는 말도 안 되는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최 씨와 관련된 의혹은 본지가 보도했던 것처럼 청와대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밖이 아니라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내부단속은커녕 오히려 뻔뻔한 변명만 일관하고 있다. 이번 게이트는 BBK 사건과 유사하다는 특징도 있다. BBK 사건 역시 본지의 특종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깊숙하게 개입했으면서 대선 정국에서 자신은 발뺌한 사기 사건이다. 이번 사건 역시 자신의 최측근이 깊숙하게 개입해 거액의 돈이 모였으면서도 정작 문제가 불거지자 모른체로 일관하고 있다.
야당은 최순실 관련 의혹들이 박근혜정권에 결정타를 날릴 사안으로 보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더민주는 두 재단의 법인 설립 및 모금 과정과 최순실씨의 재단 운영 관여 의혹 등을 파헤치기 위한 당내 TF를 구성키로 했다. 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뿐 아니라 운영위원회와 정무위원회에서도 관련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기로 했다. 국민의당은 의혹이 해명되지 않을 경우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하겠다고 압박했다. 더민주도 협조의사를 밝혔다.
최태민은 박 대통령의 영육을 지배하더니, 이제는 딸 최순실까지 박대통령의 국정을 농락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두 가문의 불가분의 관계가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최순실의 힘의 뿌리는 과연 무엇일까? 이번 사태에서도 미꾸라지처럼 또 빠져나갈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한겨레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최순실 관련 보도> 유감
최순실 개입 의혹
지난 8월 본지에서 단독 보도한 기사
최순실 씨와 문화재단 미르의 커넥션 의혹을 처음 보도한 것은 본지다. TV조선에서 미르와 케이스포츠의 수상한 모금 관련 보도가 몇 차례 된 적은 있었지만 두 재단과 관련해 최 씨의 개입 의혹을 처음 제기한 것은 본지의 8월 18일 기사를 통해서다. 본지는 당시 보도에서 “최근 본국에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문화재단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모금 과정에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가 개입되어 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그 다음 주인 8월 25일에는 마사지 치료 전문가인 정동춘 씨가 케이스포츠 재단 이사장이란 사실을 연이어 보도했다. 그런데 한겨레는 본지 보도 1개월 후인 9월 20일 1면을 통해 마치 정동춘 씨 관련 사실이 자신들의 특종인양 보도했다. 본지와 한겨례의 기사를 비교해보면 이런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5월 13일 다시 대표를 맡은 사람이 정동춘씨, 알고보니 정씨는 스포츠 맛사지 전문가였다. 정씨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운동생리학박사로 지난 2004년 ‘머리맛사지’, 2005년 ‘발을 자극하라 허리가 좋아진다’등 외국인이 저술한 스포츠 마사지책자를 한국어로 번역해 출판했던 사람으로 확인됐다. 이들 책에서 정씨는 자신의 약력을 한사랑병원 운동처방과장, 국민체력센터 운동처방실장 등으로 기재했다.>
– 선데이저널 8월 25일 보도 중 일부
<지난 5월13일 새로 취임한 정동춘(55) 케이스포츠 재단 이사장은 그 직전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운동기능회복센터(CRC)’라는 이름으로 스포츠마사지 센터를 운영했다. 정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사범대 체육교육과 출신으로 <머리 마사지> <발을 자극하라, 허리가 좋아진다> 등 외국인이 쓴 스포츠마사지 책자를 번역한 이 분야 전문가다.>
– 한겨레 9월 20일 보도 중 일부
한겨레는 정 씨가 운영하는 마사지 센터가 최순실 씨의 단골 의혹이란 의혹을 추가로 제기했지만 K스포츠 재단 초대 이사장 정동춘 씨가 마사지 전문가라는 본지 취재를 뼈대로 작성한 기사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지 보도를 인용하지 않은 채 마치 자신들이 처음 확인한 ‘팩트’인양 보도하는 것은 정직한 언론을 자처하는 한겨레마저 본국의 다른 언론과 윤리적인 측면에서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어 유감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