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한인축제 사무국장<윤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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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한인축제 100일작전
‘성공을 위해 달려 간다

▲ 윤한나 사무국장(왼쪽)이 배무한 이사장과 함께 축제장도면을 보면서 행사 부스 예약 관계를 점검하고 있다.

해외한인사회에서 세계 최대 다문화 축제로 알려진 올해‘제49회 LA한인축제’는 메모리얼 데이 연휴를 끝내고 나서 지난 6월 10일부터‘100 일 성공작전’에 돌입했다. 코로나-19 펜더믹으로 쉬었다가 다시 열리는 올해 제49회 LA 한인 축제는‘한류의 힘으로 회복과 화합’ 이라는 주제로 오는 9월 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 서울 국제 공원에서 열린다. 이번 한인축제에서 총괄 실무 업무를 맡고 있는 윤한나 사무국장을 만나 보았다.

19살소녀시절의 추억의 장터

윤 국장은 LA한인축제와 아주 색다른 인연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LA에 오기전 미국 동남부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당시 한국인들이 많이 없어서 어머니가 보는 한국어 TV방송이나 쇼 프로를 보면서 마냥 한국을 그리워했던 소녀였다. 그러다가 19살 때 LA로 혼자 이사 와서 살게 되었는데 LA한인축제를 만났다. 그녀에게 다가온 축제는 너무나 신나는 장소였다. “저는 그때 “장터”를 처음 갔어요… 그때는 정말 공원에 포장 마차 랑 테이블들이 깔려있고… 무대 도 크게 있었던거 기억이 나요… 너무 좋았죠… 꼭 한국에 있는 느낌? 지금 생각하면… 그때 정말 단순하게 친구들이랑 떡볶이를 먹고 “바로 이거야~~”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그렇게 그녀는 축제와 처음 만남이 20여년 전인데 아직도 그때가 생생하다. 그녀가 2003년도쯤에 처음 축제와 만나면서 무조건 축제가 좋아 매년 축제를 찾아가 ‘장터’와 무대를 오갔다. 2005년도에는 동생들이랑 함께 아예 청소년 태런트 쇼에까지 진출(?)하여 상도 받았다. 그후 LA를 떠나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로 있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LA로 다시 돌아오게 됐다. 그녀는 LA에서 대학을 다닐 때 이정임 무용단에서 알바도 하였는데, 그 당시 만난 마크(Mark) 선생의 학원에서 매니저를 하면서 대학교를 다녔다. 그녀가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로 있다가 다시 미국으로 와서 지난날 일했던 학원의 마크 선생에게 인사차 들렸는데 그것이 축제와의 또 다른 만남이 되었다. 그때 Mark선생은 그녀에게 “한인축제 재단에서 일하는 사람 찾는다”면서 “이력서 들고 나오라”고 하여 만난 축제재단 관계자가 2013년도 당시 허상길 사무총장이었다. 축제가 마냥 좋기만 했던 그녀가 축제 재단의 일꾼이 된 것이다. 축제를 구경할 때도 재미가 넘 많았다는 윤 국장에게 재단의 스탭진의 일원이 되면서도 그녀에게 축제는 그냥 즐거움이었다. “그냥… 같이 일했던 분들이랑 너무 재미있었던거 같아요… 매일 마다 즐거웠었던게 기억나요~ 새벽에 나와서 행사 오프닝 준비하고… 축제 끝나고 다들 끝날 때까지 늦게까지 같이 고생했던 기억… 그래도… 모든게 다 즐겁고 다 추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냥 다 좋았어요~~~”라고 말하는 윤 국장은 “축제장에서 연예인을 보는게 항상 신기한 거 같아요. 바로 앞에서 연예인들이 공연하는 거… 예전에는 구경꾼에게는 금지되었던 백 스테이지도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는 거… 공연들이 다 추억이였던거 같에요~ㅋㅋㅋ…”라고 기억을 되살렸다. 윤 국장에게는 아기가 태어나면서 축제 재단에서 떠나 아기를 키웠다. 아기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축제를 못잊어 축제장에 딸을 데리고 나와 함께 즐거워했던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소녀 시절에 매년 축제 ‘장터’를 찾아간 것처럼, 그녀의 딸을 2살때도 축제에 데려 갔고 3살 때도, 4살 때도 데리고 간 기억이 생생하다. “제 딸이 축제에서 먹을 거 사주고, 공연도 보고 했는데 즐거워 하는게 너무 좋았서요…”라고 말했다.

“축제는 우리 모두의 추억”

2대에 걸친 축제 사랑을 지닌 윤 국장에게 코로나-19 재난이 덮치면서 축제도 휴무에 들어갔다. 2년의 축제 공백기간이 지나고 올해 집에서 아기를 키우는 그녀에게 축제재단에서 연락이 왔다. ‘축제에 나와 일해 줄 수 있나요?’ 라는 요청이었다. 이 제안을 듣고서 그녀는 남편 얼굴을 처다 보았다. 남편은 “yes라고 대답할 거 아닌가”라고 했다. 남편도 그녀가 축제장으로 가고 싶다는 것을 이미 간파한 것이다.

세번째로 축제와 인연을 맺게 된 윤 국장에게 축제를 정말로 자신의 분신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제가 축제 사무국장이라서… 축제를 다르게 보게 되더라구요… my responsibility 책임감… 대신… 더 부담도 되면서… 불안감도 생기더라구요… 그래도… 잘 해야지 하면서… 예전에 축제 glory days으로 다시 재기하는 날로 고고~~ I hope that I can make this festival memorable for others just as I was from the beginning.” 이처럼 한인축제를 소녀 시절 그처럼 가슴 설레게 만든 축제의 기쁨을 동포사회로 선사하고 싶어 오늘도 그녀는 축제 사무실에서 9월의 오프닝을 준비하고 있다. 윤한나 국장을 처음 축제재단에 입단 시킨 허상길 전축제사무총장(현재 미셀 박 스틸 연방 하원 의원 보좌역)은 “그녀는 과거 재단에서 스탭으로 일하면서 임신을 하게 됐는데 쉬라고 했는데도 책임감을 완수하기 위해 산후 2개월된 아기를 들어 업고 나와 일을 마무리 할 정도로 성실함에 놀랐다”고 말했다. 1974년 올림픽가의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출범한 LA한인축제는 내년 50주년을 앞두고 반세기 가까이 해외 한인사회 최대 종합문화 예술 잔치로 성장했다. LA소방국 공식 집계로 4일간 열리는 축제에 3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 한국 밖에서 최대 규모의 한인 주최의 다문화 축제이다. 120개 한국 도, 시, 군의 지원을 받아 참여하는 한국 농수산 엑스포가 한국 전통 농수산 상품의 맛 을 전한다. 95개의 일반 상품 판매 부스, 홍보 부스, 전시 공간이 마련돼 다양한 살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4일간 한국 문화를 비롯된 다인종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무대 공연이 매일 펼쳐진다. 여기에 축제의 백미인 음식 부스, 스낵 부스가 먹거리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LA한인축제는 한인들이 사랑하는 국민 먹거리부터 세계 여러 나라들의 음식까지 다양한 즐거움을! 안겨 줄 것이다. 윤한나 사무국장이 소녀 시절에 흠뻑 취하게 만든 그 떡복기 “바로 이거야!”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올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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