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3] 장재민 미주한국일보 회장 안팎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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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재구 전회장, 동생 장재민 회장 95억 해외도피 재수사촉구
■ 장재구 전회장 아들 ‘그랜트 장’ 미주한국에서 전격 해고 조치
■ “장재민의 패륜행위가 도를 넘어서 형제애도 말살” 울분 토해
■ 미주중앙일보, 비상식적 운영 한미박물관…‘투명한 재정’ 촉구

미주한국일보의 장재민 회장은 요즘 친형이자 미주한국일보 창간사주인 장재구 전 회장으로 부터 ‘동생 장재민 회장의 95억원 불법해외도피 의혹’ 수사를 촉구하는 1인 시위로 국내외에 비상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또한 한미박물관 이사장으로서 부실운영을 하고 있다는 한인사회 여론에 휩싸이고 있다. 장재구 미주한국일보 전 회장이 ‘1인 시위’가 시작되면서 날아 든 첫 소식은, 장 전 회장의 아들인 그랜트 장이 미주한국일보로부터 전격 해고 통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장재구 ‘1인 시위’에 장재민 회장이 ‘보복작전’ 으로 풀이된다. “아버지 형제들 간의 싸움이 아들에게 번진 격”이다. ‘장재구 전 회장 VS 장재민 회장’ 사태는 이제 국내외적으로 언론계는 물론 동포사회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장재구 전 회장은 이번 계기에 ‘미주한국일보의 정체성 회복에도 노력할 것’이라고 밝혀 미주한국일보로 복귀를 시사하고 있어 긴장감이 돌고 있다. 한편 미주한국일보사의 전직 사우들의 모임인 ‘녹우회’는 3월중 모임을 갖고 입장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별취재반>

서을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장재구 전미주한국일보 회장은 20일 “한국 검찰에서 재조사에 나설 때까지 1인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하며 동생 장재민 회장과 일전을 불사하고 있다 . 장재구 전 회장은 본보 기자와의 카톡 문자 메시지로 인터뷰를 통해 “형제애와 가족애까지 짖밟은 장재민의 죄과를 끝까지 추궁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재구 전 회장은 오래전부터 장재민 회장이 하기환 회장과 동업 투자 등을 비롯한 비 상식적인 투자 행위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윌셔와 카타리나 코너부지의 텍사코 빌딩 (지금은 제미슨프라퍼티의 아파트)인수와 관련, 하기환 회장과의 공동 투자에 대해 장 전 회장은 애초부터 장재민 회장의 투자 행태를 못 마땅해 했다. 언론사를 이용한 투자행태였기 때문이다. 장재민 회장과 하기환 회장의 동업투자가 깨지면서 수십년 동안 두 사람 사이는 악감정으로 비화됐고 철천지 원수가 되면서 급기야 미주한국일보 지면에서 ‘하기환 회장’의 이름과 사진을 비롯해 활동 사항은 지면에서 사라졌다. (차후 기사 예정)

동생의 배신에 치를 떠는 형님

장 전 회장은 생전에 자신이 ‘1인 시위’에 나서리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시위에 나서기까지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많은 고심을 했다”면서 “한편으로 동생이 약정서를 헌신짝 버리듯하고, 더 나아가 치밀하게 음모까지 꾸밀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언론사 회장의 직위를 이용해 법망을 빠져나가고, 형제간의 신뢰를 저버린 장재민의 행위는 상식적인 설득의 범위를 벗어났다”면서 “나를 믿어주는 가족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고 ‘끝까지 동생의 95억 해외 반출 의혹을 밝히겠다’며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장 전 회장은 “장재민의 패륜행위가 도를 넘어섰다며, 모든 책임을 지고 감옥까지 가서 옥살이를 했던 나게게 출소한 후 회사 소유의 차량도 회수하고 모든 경제적 지원을 차단했으며 그로 인해 급기야 은행 대출금을 못 갚아 살던 집까지 압류돼 경매로 넘어갔다”면서 “그래도 장재민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지난 6년간 수십 차례 요구했는데도, 마지막에는 개인파산 요구와 ‘서울경제신문 주식을 사줄 테니 그 자금으로 횡령금을 지불하라’고 강요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고검은 지난해 12월 장 전 회장을 불러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 현재 장 전 회장의 항소 요지는 세 가지다. 1. 피고발인인 장재민은 언론사 회장 지위를 이용해 검찰의 직접 조사를 안 받았음, 2. 검찰은 재산의 국외도피 사건 수사의 핵심인 자금의 출처를 장재민에게 확인하지 않았으며 3. 회계장부를 이중으로 조작한 적이 있는 경리담당 실무자의 거짓 진술을 근거로 무혐의 처분을 했다는 것이다.

장 전 회장은 “장재민이 2003년부터 2010년까지 개인 재산을 해외로 반출한 95억원의 자금출처 조사이다. 증거자료와 직원의 녹취록도 검찰에 제출했다. 장재민에게 확인만 하면 되는 간단한 조사다. 서면조사라도 해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했다.”면서 “장재민은 수사를 기피하려 귀국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편 장재민 회장은 현재 한인사회의 30년 숙원사업인 한미박물관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10년전 LA시로부터 박물관 부지를 제공받았지만, 아직도 삽질을 하지 못해 LA시로부터 지원금도 약속 받은 350만 달러도 지급 보류상태이다. 그동안 한국일보를 통해 모금활동을 수차례 개최하고서도 투명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설계도도 수차례 변경하면서 낭비한 돈만 200여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한미박물관 건립 재정 전횡 ‘의혹’

끝내 50년 경쟁지 미주중앙일보로부터 올해 신년초부터 작정한 듯 집중적으로 지적을 당하는 의혹의 기사가 터져나왔다. 해당 매체는 올해 신년기획 시리즈 기사를 통해 “의문점 가득한 재정 기록의 한미박물관”이란 제목에서 불완전한 세금보고에 부채 1만% 증가에 비영리단체 등록조차 연체되고, 특히 2018년 순자산이 70% 급감했으며, 그동안 설계 변경에 수백만 달러의 헛돈을 썼으며, 재단 사이트는 “구축할 예정”이란 공지만 부착되어 있고, 박물관 재단 사무실은 외부인들이 방문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라 고 보도했다. 이 의혹 보도가 사실이면 한미박물관은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사무국을 관장하는 윤시내 국장은 미주중앙일보의 수차례 문의 요청에 일체 대꾸조차 하지 않은 비상식적 자세를 고수하고 있는데, 한인사회 공익 비영리단체의 사무국장의 이 같은 태도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의문스럽다고 꼬집었다. 혹여 박물관 이사장이 현재 미주한국일보의 장재민 회장이라 언론사의 배경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문제는 이 모든 의혹의 중심에 한미박물관의 장재민 이사장의 자세이다. 박물관의 대표자로서 현재 한인사회에서 가장 이슈화 되고 있는 ‘한미박물관의 부조리’ 행태에 마땅히 입장을 밝혀야 할 공인의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한미박물관(Korean American National Museum, INC)의 비영리 단체 등록 상태는 현재(2023년 1월 17일 기준)까지 ‘연체(delinquent)’로 표기돼 있다. 비영리 기관에 대한 감독권은 가주 검찰이 관장하고 있는데, 한미박물관 같은 자선 단체 등이 매 회계연도에 관련 서류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을 경우, 해당 기관의 상태가 ‘연체’ 등으로 표시된다. 연체 상태가 지속되면 ‘유예 (suspended)’ 또는 ‘폐지(revoked)’ 상태로 변경될 수도 있다. 이대로 간다면 한미박물관은 정말로 “파산”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지경에 도달했는데도, 한미박물관의 최고 책임자인 장재민 이사장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것은 한마디로 한인 커뮤니티와 관련 LA 시정부, 캘리포니아 정부 그리고 연방정부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박물관 비밀운영으로 일관

당초 한미박물관 이사회는 10년 전인 지난 2012년 10월 6가와 버몬트의 시 소유 주차장 건물 부지를 매년 1달러에 50년간 장기 임대하는 계약을 체결한 후 6개월 뒤 3층 규모의 단독 건물 형태로 짓기로 했다. 그 후 “아파트 박물관”이라는 비난도 당한 박물관 건립 등을 포함해 수차례 설계를 변경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20년 9월 23일 한미박물관은 이사회는 시공업체는 선정 했지만, 계약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것도 이상한 점이다. 시공업체를 선정하고도 지금까지 계약을 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당시 이사회 사무국에 따르면 시공업체는 스위너톤(swinerton) 이다. 1888년 설립 한 이 업체는 LA,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굵직한 공사를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물관 설계는 모르 포시스(Morphosis)가 맡았다. 1972년에 설립된 Morphosis는 창립자 톰 메인이 디자인 디렉터로 재직하면서, 이 회사는 현재 60명 이상의 전문가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협업 기업으로서 건축의 실천에 전념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가운데, 회사의 업무는 주거용, 기관용, 시민용 건물에서부터 대규모 도시 계획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규모가 다양하다고 밝혔다.

당시 박물관 이사회 측은 시공업체와 정식 계약을 앞두고 건축물 시공에 필요한 비용 등 전 과정을 시뮬레이션 하고 있다고 했다. 윤 사무국장은 “이사회는 건립비용이 낮아지길 바란다. 공사를 시작하면 완공까지 18~20개월이 필요하다. 현시점에서 2022년 개관 가능성은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당연히 2022년 개관은 물 건너 간지가 옛날이다. 박물관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들은 사람들의 세대가 특정 장소나 사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배양하는 곳이다. 미국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부터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까지 수많은 주목할 만한 박물관들의 본거지이다. 박물관은 문화적, 역사적, 종교적 중요성 이 있는 물건들과 자료들의 컬렉션을 보존하고 보관한다. LA에는 이미 일본 커뮤니티가 자랑하는 ‘일미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방문객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이 소장하고 있는 귀중품들을 보완하기 위해 지어지는데, 이 과정은 창의성과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큰 관심을 필요로 한다. GC Magazine은 박물관 건립과 관련해 특집을 통해 고품질의 기술과 강력한 고객 서비스에 대한 실적이 입증된 미국 기업의 상위 25개 박물관 계약업체를 소개했다. 이 목록을 큐레이션하기 위해, 박물관 건설, 업계에서의 수년, 수상한 상, 그리고 그것들이 등장한 출판물에 대한 각 회사의 능력을 고려했다. GC Magazine은 박물관 건립을 생각하는 단체가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항으로 각 건축 업자의 면허증을 현지 인허가 위원회에 확인하고, 과거 거래처와 이야기하고, 입찰 시스템을 이용해 최소 3개 업체로부터 경쟁력 있는 견적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여러 개의 입찰을 받는 것이 공정한 가격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입찰에는 전체 작업 범위가 포함된다.

“모금한 돈 투명성 밝혀야 한다”

한미박물관은 진행 과정이 대부분 비밀로 추진됐다. 시공업체 스위너톤(swinerton)은 GC Magazine이 소개한 미국내 박물관 건설업체 25위 회사에도 포함되지 않았고, 최소 3개 업체로부터 경쟁력 있는 견적을 받는 것이 일반적 관행임에도 이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박물관의 초창기 시절 부회장을 역임했던 서동성 변호사는 한미박물관 사태에 대해서 “한미박물관 측에서 지난 2015년에 발표된 계획안에 빠진 것 중에 제일 아쉬운 것으로 처음 발표된 매스터 플랜 안에는 아예 수장고가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라면서 “단순 창고(storage)가 아니고 온도, 습도가 조절되고, 통풍이 잘되며 먼지까지 제거하는 과학적으로 특수장치를 갖추어야 하는 수장고 시설이 필수이기 때문에 수장고 없는 한미박물관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한미박물관의 장재민 이사장과 한 때 공동 이사장을 맡았던 고 홍명기 회장은 생전에 주위 인사들에게 “장재민 이사장의 박물관 건립 목표가 정식의 박물관이 아니라 단순 전시장 역할의 박물관 정도로 인식하고 있어 함께 일하기가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고 한다. 결국 홍 회장은 이사 장직을 사임했으며, 얼마 후 별세했다. 서동성 변호사는 “가장 필요한 알맹이인 수장고를 포함하지 않고 박물관을 짓는다는 것은 ‘신랑이 없어서는 안 되는 불(R)을 챙기지 않고 장가가려는 격’이다”면서 “수장고 없는 한미박물관은 한낱 갤러리 밖에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서 변호사는 한미박물관 건립의 이념을 똑바로 세워야 한다고 특히 강조했다. 우리의 미주이민 역사는 140년 남짓하다.

1945년까지의 우리 이민 이야기는 주로 나라 잃은 백성이 나라 밖에서 잃은 나라를 되찾겠다고 몸부림 친 독립운동 역사가 우리 이민선조들의 이야기다. 그 후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고 앞으로 한미박물관에서 무게 있게 다루어야 할 대목은 4·29 LA폭동사건일 것이다. 결국 한미박물관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 그 가운데서도 해외에서 펼쳐진 독립운동에 대한 기록, 자료를 수집하고 간직하는 곳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민 선조의 삶 자체가 독립운동에 의한, 독립 운동을 위한 삶이 전부였기 때문에 한미박물관은 나라 밖에 세워지는 해외의 독립기념관이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LA와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캘리포니아는 해외 독립운동의 본고장이고 해외 독립운동의 생생한 기록과 유물이 모두 이 곳에서 모여져 있기 때문에 한미박물관은 그러한 기록과 유물들을 보관하고 관리를 해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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