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후의 한인사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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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후보의 당선으로 한인사회 인물들 간에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자신이 지지했던 후보의 당락여부에 따라 이들도 뜨는 해와 지는 해로 분류되는 셈이다. 특히 이명박 댕통령 당선자와 독대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히는 박희민 목사와 정진철 국민성공캠프 미서부 지역본부 상임의장이 가장 주목받는 ‘뜨는 해’로 꼽히고 있다.
반면 정동영 후보나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하한가를 치고 있다. 특히 정 후보를 지지해왔던 친북좌파 성향의 사람들은 그 세력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취재팀>


◆박희민 목사(LA 영락교회)


LA한인사회의 대표적 교회인 영락교회의 담임목사로 봉직했던 박희민 목사는 교계에서 일찌감치 ‘이명박 후원자’를 자처하며 주목을 받았다. 박 목사는 일찍이 올해 초 부터 ‘명박회’의 후원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사실여부를 문의하는 전화가 언론사로 쇄도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당사자인 박 목사도 당시 “이 전시장을 후원하는 것이 종교인의 정치참여로 비춰질까 두렵다”면서 “나라를 걱정하며 기도하는 목회자의 마음으로 너그럽게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며 한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가 남가주교계의 대표적 성직자란 이유로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한인사회는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목회자가 정치활동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난이 잇따랐다. 하지만 박 목사는 이런 비난을 감수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정치적 행보를 이어갔다. 박 목사는 ‘성직자도 정치적 소신을 밝힐 수 있다’면서 이명박 당선자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 지지활동을 벌이는 MB단체를 하나로 모으는데 큰 공헌을 했다.
서로가 ‘MB의 정통파’로 주장하는 단체들 관계자를 만나 설득하는 것만 2개월이 걸렸고 한다. 11개 단체 중 9개 단체가 하나로 뭉치는데 동의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조직체가 ‘국민성공캠프 미서부지역본부(상임의장 정진철)였다.
이명박 당선자는 박 목사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장로 신분인 이명박 당선자는 일찍부터 박희민 목사를 존경하고 있었다. 이명박 당선자가 앞으로 미주한인사회 문제에 있어 조언을 듣는다면 그 1순위는 박희민 목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박 목사는 MB를 후원하게 된 이유는 개인적인 인연과 지도자의 덕목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개인적인 인연은 박 목사의 친형인 박희소(현 뉴욕동부교회) 목사와 한국 소망교회의 곽선희 목사가 둘도 없는 친구이고 이 전시장이 소망교회의 장로로서 곽 목사와 관계가 있어 형과 곽 목사의 소개로 오래전부터 이 당선자를 알고 지내온 사이였다.
이같은 인연으로 박 목사는 공식 또는 비공식으로 MB를 여러 차례 만나 친분을 다졌다. 지난해에는 미국을 방문한 이 전시장을 위해 LA에서 대규모 조찬기도회를 마련하기도 했으나 당시 이 당선자가 ‘황제 테니스’ 스캔들로 LA방문이 취소되면서 기도회가 무산됐었다.
박 목사는 그러나 개인적인 친분도 있지만 MB의 지도자로서의 덕목이 지지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박 목사는 “이 당선자는 고생을 많이 하며 자수성가해 서민들의 아픔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그의 행정능력과 기업가로서의 추진력이야말로 현재 한국에 필요한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박 목사는 그 후 MB후원회 활동에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돕는 역할에 충실해왔다.













 
◆정진철 박사(로열 이멕스 회장)


국민성공캠프 미서부지역본부에서 상임의장을 맡았던 정진철(64)박사도 LA한인 사회에서 주목할 인물로 꼽히고 있다. 볼 수 있다. 그는 LA한인사회에서 11개로 난립되어 활동하던 MB지지단체들 중 9개를 연합시켜 국민성공캠프미서부지역본부를 출범했다. 국민성공대장정LA대회를 성공적으로 출범시켜 텍사스와 뉴욕 그리고 워싱턴DC까지 바람을 일으켜 그의 진가를 나타냈다.
특히 그는 LA한인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인사들을 대거 MB지지로 영입해 “경제적으로 한국을 부강하게 만들겠다”고 공언한 이명박 이미지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 박사는 “MB연합체를 구성하는데 박희민 목사의 노력이 절대적이었다”고 말했다.
중앙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정 박사는 지난 1978년에 미방무역회사의 부사장 시절 도미해 1980년 로열 이멕스를 설립해 교역활동을 통해 재력을 모았다. 그는 불우아동 후원에도 관심을 갖고 지원했다. 2000년 새천년을 맞아 정박사는 세계한인무역협회 회장에 선출되면서 글로벌 시대의 해외한인무역인들의 활로를 열고, 고국의 경제번영을 지원하기 위한 세계한상대회를 최초로 출범시켜 그의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으며, 국내외로 그의 활동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는 고려대 선후배 관계이며, 한상대회 관계로 더욱 밀접해 졌으며, 여러모로 코드가 맞아 이명박 당선자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독대를 통해 두 사람 사이가 동지적 관계로 상승되어갔다. 그는 커뮤니티 봉사활동에도 열성적이었으며, 남모르게 기부활동도 베풀어 많은 단체들의 활동을 도와주고 있다. 그는 남가주중앙고교동문회장, 고대 교우회장, 남가주불우아동 후원회이사장, 이민100주년 기념사업회 100주년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남가주 한국학원 이사, 도산기념사업회 자문위원, 고려대학교 국제재단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1999년부터 중앙은행 이사로 활약해오고 있으며, 대한상사중재위원, 한국정부 해양수산부장관으로부터 해상왕 장보고 평가사업 추진위원회 위원 위촉을 받았다.
그는 2005년 동서대학교 (DONGSEO UNIVERSITY) 명예 경영학 박사 (Ph.D.) 취득한 이래 현재까지 동서대학교 객원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제5차 세계한상대회 대회장을 맡아 다시 한 번 그의 리더십을 확인받았다.
그는 1999년 모국경제 발전기여한 공로로 한국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 수령했으며 1998년에는 상공업 진흥 및 국가 산업 발전 공로로 1998년에 한국 산업 자원부 장관 표창장 수령했다. 2005년에는 세계한인무역인 대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그는 한국과 미국에서 경제발전과 커뮤니티 봉사로 각계로부터 많은 공적상을 수상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 박사가 ‘정계진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정 박사는 “우리의 지지운동은 이 당선자의 탄생으로 목적을 다했다”면서 “그 동안 밀렸던 회사 일에 다시 돌아가 평상의 비즈니스맨을 살아갈 것이며 절대로 정치에 진출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이명박 당선자나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성공시대를 위한 국민운동에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는 사람도


◆ 에리카 김(전 변호사)













17대 대선 중 후보자 이름들을 다 외우지 못하는 사람들도 ‘에리카 김’이란 이름은 너무나도 잘 알려졌다. 그녀는 특히 대선 정국의 핵으로 등장했던 ‘BBK사기사건’의 주인공 김경준씨의 누나로, 또한 김경준 가족의 대변인으로 나섰기 때문에 그녀의 이름은 국내외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주자로 나설 때 부터 그녀의 이름은 언론이나 정계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 후 이명박 당선자가 한나라당 경선과정과 대선기간 중에는 그녀의 입은 이 당선자를 낙마시킬 수 있는 ‘한 방’의 입”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김경준씨가 송환되면서 “이면계약서”와 함께 ‘이명박 후보와 관련한 김경준 가족의 기자회견’을 마련하면서 LA한인사회 역사상 전대미문의 취재진들이 몰리는 해프닝으로 그녀의 이름은 국내외로 다시 맹위를 떨쳤다.
여권과 여당 편향의 TV방송들과 일부 언론들은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오는 소리로 이명박 후보를 맹타하는 자료로 사용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러한 에리카 김씨의 화려한 언론플레이에 일부 언론들은 춤추기에 날이 새는 줄 몰랐다.  
그러나 검찰의 ‘BBK 사건’ 발표와 함께 그녀에게도 서서히 추락의 모습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두 번째 기자회견의 취소와 함께 “에리카 김의 범인인도송환을 미국정부에 요청하겠다”라는 한국검찰의 발표로 그녀의 활발한 입은 잘 열리지 않았다.
그녀가 절대적으로 바라지 않았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이 현실로 나타나자, 그녀는 계속 추락하는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검찰은 ‘BBK사기사건’과 관련해 그녀를 김경준씨와 공범으로 보고 미국정부에 범인인도요청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미국 사법당국에 체포되어 동생처럼 한국으로 송환될 시기가 언제일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우선 그녀는 내년 2월 LA연방지법에서 돈세탁 혐의 등으로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다.
범인인도요청서가 빨리 미 정부에 도달할 경우, 그녀는 자칫 선고공판에서 법정구속되어 송환재판을 받을지도 모른다.
지난 90년대 당시 그녀는 미국의 명문대를 졸업한 1.5세 성공한 여성 변호사 재원으로 미주한인 사회와 국내에서 기대를 모은 “자랑스런 한인 젊은이”였다. 그러나 동생 김경준씨를 한국에서 이명박 당선자 등을 포함 정계요인들에게 소개시키면서 BBK 회사 운영에 직간접으로 참여하면서 그녀의 행적은 “의혹사건”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이번 ‘BBK사기사건’을 두고 위조로 점철된 사건발표로 그녀의 위상은 여지없이 추락되고 있다. LA코리아타운은 ‘이번 일로 1.5세 한인의 위상이 함께 추락되어 마음이 아프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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