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오후 7시 30분 성삼한인천주교회(1230 N. San Fernando BL.)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한 故 박인택(세례명 이냐시오) 중앙일보 미주본사 사장의 입관기도 예절이 거행됐다. 이날 해당 센터 주차장에는 100개 이상의 수많은 조화가 마치 성벽처럼 둘러싸여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약 1000여 명의 조객이 참석한 가운데 “인생은 언제나 외로움속의 한 순례자, 찬란한 꿈마저 말없이 사라지고 언젠가 떠나리라”라는 애절한 ‘순례자의노래’로 예절이 시작됐다. 곧이어 인류의 죄를 구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묵상하는 ‘묵주의 기도’<고통의 신비>가 신도들의 경건한 합송으로 약 20분간 진행됐다. 이윽고 연단에 장례예절을 집전하는 배기현(콘스탄틴) 신부가 등장했다. 배 신부는 먼저 장례식에 참석한 조객들 중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천주교 의식이 여러분들에게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라며 정중하게 이해를 구했다. 배 신부는 차분한 목소리로 “오늘 이 자리에 오면서 나는 저 밖에 놓여진 수많은 조화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아마도 100개는 족히 넘을 것으로 보인다”며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배 신부는 “저 많은 조화들 중에는 박 사장에게 진정으로 애도를 표하는 조화도 많을 것이며 그 중에는 언론이라는 권력에 의한 것도 있으리라 생각된다”고 말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박 사장과는 최근 5개월 동안 남다른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배 신부는 “그분(박인택 사장)이 자진해서 자신의 삶을 정리했다”며 “그 분이 자살을 선택해야 했을 정도의 고민을 옆에서 함께 지켜주지 못해 안타깝다”는 심경을 밝혔다. 이어 배 신부는 “어쩌면 그분의 자진이, 그분이 생을 마감한 그날 일요일 아침 미사의 내 강론(설교)이 어떤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고민도 했다”면서 “그날 오전 8시30분 주일미사에서 내 강론의 내용 중에는 최근 한국 정세에 대한 걱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된 내용이었다고도 덧붙였다. 배 신부는 “오늘 장례순서에 선택한 복음성서 말씀은 기도하는 예수님과 잠든 제자들의 모습을 기록한 성서 구절을 택했다”면서 “우리는 박 사장의 고민과 아픔을 몰랐다. 십자가상에서 피 흘리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성모님의 애통처럼 우리도 박 사장의 아픔을 나눴어야 했다. 이제는 사랑과 용서로 일치를 도모하자”고 호소했다. 이날 배 신부의 강론은 박 사장의 죽음 지속적으로 은폐하려 시도한 중앙일보와 이를 비호하는 보이지 않는 세력에 대한 ‘외침’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별취재팀> |
입관예절 다음날인 12일 오전 10시 성삼한인천주교회에서 거행된 장례미사에는 유족·친지, 신자, 중앙일보 전현직 직원, 동포사회의 각계인사 등 약 1000명의 조객들이 마지막으로 고인을 위한 예절에 참석했다. 장례미사가 끝난 후 이 자리에 참석한 중앙일보 미주지사 관계자들과 전직 직원들도 삼삼오오 모여 울분을 터트렸다. 뉴욕, 워싱턴DC, 시애틀, 시카고, 애틀란타 지국 등 각지에서 온 관계자들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중앙일보 본사에 대한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특히 박 사장과 함께 일했던 P모 전직 간부는 “XXX들, 가만 안두겠다. 두고 보자”며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또 다른 전직 직원은 “박 사장의 명예회복을 위한 소송이라도 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한 참석자는 “오늘 장례미사에 신문사 대표가 참석치 않는 것도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라며 분개했다. 지난호(제 693호, 2009년 6월14일자) 선데이저널을 본 타운의 많은 동포들 사이에서는 “중앙일보 박인택 사장이 단순히 숨진 것으로 알았는데 자살이었다니 놀랐다”면서 “왜 이런 사실을 중앙일보는 은폐를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중앙일보는 갖가지 방법으로 ‘박 사장의 자살’을 은폐하려는 노력을 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경찰은 박 사장의 자살사건이 발생하자 처음 박 사장이 한인사회의 대표적 언론사의 하나인 중앙일보의 미주본사 상장임을 알지 못했다. 중앙일보는 경찰 당국과 심지어 LA카운티 검시소 당국에까지 선을 대 한인 기자들의 취재에 불응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국자는 “법에 의거 정당한 취재에 사실을 밝히는 것이 공공기관의 의무”라는 점을 상기해 거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 취재진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2007년부터 박 사장에 대해 감사를 벌여온 중앙일보는 그가 자살하기 직전인 지난 6월 4일 전문 변호사까지 동원해 박 사장을 궁지로 몰아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사장은 회사 측이 자신에게 민·형사 소송 등 법적대응을 내세워 제거하려는 속셈을 파악하고 자신의 결백을 어떤 형태로든 밝히려고 작정했다는 것이다. 박 사장은 이후 친분이 있던 서울 본사 모 인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알아서 하라’가 다였다. 결국 그는 자신의 결백을 밝혀줄 자료와 함께 유서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경찰에 “기자들 정보주지 마라”
한인과 연관된 중요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 언론에 직접 공표해왔던 경찰도 관례를 무시하고 이번 사건을 제때 알리지 않은 점 역시 의혹이다. 이에 대해 사법기관의 한 관계자는 사건을 취재한 본지 취재팀에게 “중앙일보측이 LA경찰 당국에게 필요 이상의 것을 요청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박 사장의 즐겨 다녔던 성삼한인천주교회도 난감한 입장을 밝혔다. 성당의 한 신자는 지난 9일 “중앙일보의 과잉 조치로 우리 신자인 박 사장의 죽음을 제대로 외부에게 알리지 못했다”면서 “성당 관계자들도 곤혹스러워했다”고 중앙일보에 대해 거친 불만을 토로했다. 본지 취재팀이 성당 사무실에 전화로 관련 사실을 확인하자 한 담당자 는 “갑자기 돌아가셨다”고만 답했다. 이에 취재진이 ‘갑자기 어떻게 돌아가셨는가, 심장마비라도 당했는가’라고 ane자 이 담당자는 “그렇다”며 황급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중앙일보는 박 사장의 자살에 대해 처음부터 한인사회 각 언론사에 여러 방법을 동원해 사실을 축소 보도할 것으로 요청했다. 자살 대신 ‘자택에서 별세했다’정도로만 기사를 작성해주기를 여러 경로를 통해 요구해온 것이다. 결국 본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인 언론들은 박 사장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에 입을 다문 꼴이 됐다. 대부분 언론사들도 난감한 입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중앙일보는 자사 직원들에 대해서도 박 사장의 사인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회사 내에서 어느 누구도 박 사장의 사인과 관련된 말을 입에 담을 수조차 없었던 것. 고위 간부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 까지 박 사장의 사인이 자살이라는 것을 전해 들었지만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은 ‘자택에서 별세’가 다였다. 중앙일보 기자들은 독자나 광고주들의 문의에 대해 회사 전화로 제대로 답변할 수 없었다. 직원들도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지침도 주지 않은 회사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다. 이처럼 중앙일보는 그들의 직원에 대해서도 진실을 감추는데 연연했다.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나, 이들은 그 사명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이 같은 회사의 이상한 방침에 심지어 일부 직원들은 ‘박 사장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다’라고 믿는 직원도 생겼다. 본지가 박 사장의 죽음을 엉뚱하게 보도했다고 오해하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진 것이다. 실제 ‘박 사장 자살 내막’이 게재된 본지 신문이 지난 11일 타운에 일차로 배포되자 중앙일보의 일부 직원들은 “기사가 오보다”면서 타운에 배포된 본지를 훔쳐가는 사태도 발생했다. 과연 직원들이 충성심에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무색해진 ‘회사장’
중앙일보는 지난 10일자 신문을 통해 “박인택 사장의 장례식은 중앙일보 회사장으로 엄수됩니다”라는 전면광고로 게재했다. 하지만 박 사장의 장례는 고인이 생전에 다녔던 성삼한인천주교회에서 천주교 의식으로 이미 거행된 터였다. 장례 일정이 치러진 교회에서 배포된 안내장 어디에도 “중앙일보 회사장”이란 문구는 발견할 수 없었다. ‘중앙일보 회사장’이라고 했던 것은 중앙일보가 억지로 외부에 공표하고 싶었던 사항이 아닌가로 보여 지는 대목이다. 고인의 동창회인 중동고등학교동창회, 성균관대학교동창회 그리고 고인의 고향동우회인 충청향우회 등은 부고조차 낼 수 없었다며 일부 관계자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한편 박 사장의 죽음 뒤 본지에는 많은 제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중앙일보가 무언가 속이고 있다” “박 사장의 원통한 죽음을 헛되게 만들지 말아달라” “박 사장의 자살은 중앙일보의 강압이었다.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한 경우다” “도대체 중앙일보는 왜 박 사장의 자살을 은폐하는지 파헤쳐 달라” 등등 억울함과 울분이 뒤섞인 투고들이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다른 신문과 방송들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있으니 선데이저널이 이를 제대로 보도하기를 기대한다’고 요청했다. 본지에도 중앙일보 고위 간부들을 포함해 일부 직원들까지 직·간접적으로 관련 보도를 자제해 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해왔다. 이때마다 본보 발행인을 포함해 편집 관계자들은 “중앙일보 사장은 공인이다. 공인의 죽음에 대해 사실보도는 언론의 기본이다. 독자에게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라며 설득해왔다. ‘박 사장 자살 내막’이란 제목으로 본지 보도가 처음 나간 후, 선데이저널 편집국에는 11일자 소인이 찍힌 한 우편물이 배달됐다. ‘박 사장의 자살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제목의 편지였다. 편지를 쓴 당사자는 “중앙일보 개혁파의 목조르기에 박 사장은 자살했다는게 정설이다”라며 “개혁파는 변호사까지 고용해 민·형사소송을 제기해 박 사장을 제거하려 했다”고 폭로했다. 컴퓨터 활자로 한 장에 빼곡히 적힌 글에는 박 사장을 몰락케 한 과정이 적혀 있었고, 박 사장을 자살로 몰고 간 장본인들의 이름들도 낱낱이 열거되어 있었다. 또한 박 사장이 배신감을 느꼈다는 관계자들의 성명과, 박 사장을 지지하다가 신문사에서 쫓겨난 전직 간부들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본지는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관련자의 신원 공개는 당분간 하지 않는다) 이 같은 내용들을 분석해 볼 때 제보 편지는 중앙일보의 내부 사정에 매우 정통한 사람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내용은 본지 특별취재반의 수집내용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했다. 중앙일보는 어째서 박 사장의 죽음에 대해 진실을 은폐하려 했을까. 이제는 중앙일보측이 대답을 할 차례다. 누군가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타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까닭이다. 박 사장의 장례 일정이 끝난 직후 13일 본지는 유족 측 관계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취재진은 이 관계자에게 본지가 ‘박사장의 자살 내막’ 기사를 게재하게 된 동기에 대해 설명 했다. 이 관계자는 본지 기사를 읽었다고 했다. 그는 잘못된 내용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은 고인의 장례 마무리가 우선이다”면서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