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진영 ‘함락’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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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마선언을 하기 엿새전 안철수후보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찾았습니다. 광주5.18묘역을 찾는등그의 출마낌새가 무르익던 지난 9월13일이었습니다. 정치권과 언론계는물론 일반국민 대부분도 안철수의 대선출마선언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믿었습니다. 두사람의 회동은 출마뜻을 굳힌 안철수가 진보좌파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운명적 정치짝패인 박원순에게 출마결심을 통보하면서,시민단체등 범좌파진영에 아직도 일정몫의 정치적 지분을 갖고있는 박시장의 협조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헌데 30여분동안  단독회동을 마치고나온 두 사람은 딴청을 부렸습니다. 정치얘기는 한마디도없었고 억지로라도 정치얘기는 안하려했다고 잡아뗐습니다.   
정치엔 별관심이없는 내아내가 텔레비전뉴스를 보다 이 두 정치짝패의 ‘노는 꼴’이 객쟎아보였던지 한마디 퉁기더군요. “거 참 이상한 사람들이네. 정치얘기 안하고 30분동안이나 문걸어 잠그고 두 사람이 뭘하다 나왔대요?” 나도 얄망궂은 심사에 퉁겼습니다. “정치얘기를 안했으면 뭘했겠어.싸이처럼 문걸어 잠그고 말춤이나 추다 나왔겠지-.”
엿새후 안철수는 예상대로 12월대선출마를 공식선언했습니다. 엿새전에 있었던 비밀회동에서 안철수는 박원순에게 출마결심을 알리고 협조를 요청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박원순은 그날 안철수가 떠나자마자 소속당인 민주당 이해찬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안철수 출마확정사실을 알렸다고 하지요. 안철수가 박원순시장과 정치얘기대신 말춤이나 추고 헤어졌으리라는 내 어리석은 추측(?)은 물론 비참하게 빗나갔습니다.


신뢰못할 신뢰의 아이콘


정치의 세계에서는 때로 사실을 눙치거나 은폐시키며 연막을 피워야 할때가 있습니다. 거짓발표나 거짓증언과는 다른 얘기입니다. 흔히쓰는 ncnd나 노코멘트 수법이지요. ncnd는 neither conform nor deny의 머리글자로 “시인도 부인도 안함”이란 뜻입니다.
언론사 기자들은 단독회동을 마치고 나오는 유력대선주자 안철수와, 그의 가장 가까운 정치적 멘티라는 서울시장박원순의 예사롭지않은 만남에 주목하고 회담내용을 캐물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실을 밝히든가 싫으면 노코멘트나 ncnd로 연막을 피워야했습니다. 허지만 며칠후면 밝혀질일을 대한민국의 가장 정직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과  수도 서울의 현직  시장이라는 사람은 외눈하나 깜빡이지 않고 정치얘기는 전혀 없었다고 잡아뗐습니다.
박원순은 원래  진보시민운동 한답시고 거짓 위선놀음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그렇고 그런 사람이라고 보수진영에선 삐딱하게 보는 인물입니다. 헌데 요즘보면 2030세대들에게 세인트 찰스로 추앙(?)되며 메시아 신드롬까지 일으키고 있는 안철수도 그짝입니다. 박원순이 그날 “정치의 정자도 안꺼냈다”고 거짓말을 할 때 안철수는 “시민의 한사람으로 서울시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고 눙쳐댔습니다. 앙드레 김을 닮은 여리고 착한 그 중성(中性)의 목소리로, 안철수는 특유의 고상하고 우아한 거짓증언을 또 했습니다. 지지율 50%를 넘나드는 열혈적인 ‘안철수 팬덤’ – 이른바 안철수 현상의 핵심은 국민의 청치불신입니다. 헌데 신뢰의 아이콘인 안철수 자신이 잇단 거짓말로 도덕적 불신의 대상이 되고있는 대선판의 아이러니는 많은 국민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줍니다.


박근혜캠프는 봉숭아 학당


지난 두 주사이 새누리당 대선후보 박근혜의 영혼은 지옥과 연옥을 넘나들었습니다. 그의 지지도는 바닥까지 곤두박질쳐 안철수한테는 물론 한때는 문재인한테도 뒤졌습니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몸값이 컨벤션효과로 상종가를 치고 있을 때 박근혜진영은 잇따라 터져 나오는 각종 악재로 멘붕 그자체였습니다.
박근혜의 역사관, 아버지 박정희시대를 바라보는 과거사 인식이 발목을 잡았지요. 5.16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했고 유신은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고 했습니다. 급기야 그는 한국 현대사에 기록될 가장 수치스런 사법살인인 인민혁명당 재건위사건과 관련해 “두개의 판결이 있다”고 억지주장을 펴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건피해자 가족들을 격분시켰습니다.

박근혜는 9월25일 기자회견을 갖고 5.16과 유신 그리고 인혁당사건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안한것보다는 낫겠지만 이 사과가 피해당사자들이나 친야성향의 다수국민들에게 진정어린 사과로 받아들여질것 같지는 않습니다. 추석민심을 다독여 바닥을 친 박근혜의 지지도를 극적으로 다시 반등시켜줄 것 같지도 않습니다.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최소한 안철수의 출마선언이 있기전에 이문제를 정리했어야지요. 안철수의 공식등판으로 자신의 인기가 떨어지자 이를 만회하기위한 꼼수로 마음에없는 역사수정카드를 꺼내들었다고 많은 국민들은 믿게됐습니다. 선거판의 분위기와 판세를 읽는데는 나름의 빼어난 동물적 감각이 있다는 박근혜가 이번엔 전술전략상 치명적 패착을 뒀습니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했지요. 박근혜가 역사의 덫에걸려 허우적대고 있을 때 선거캠프내에선 잇단 사고가 터져나왔습니다. 박근혜 선거캠프는 마치 아무일도 안하는 ‘무위도식파’와 일 한답시고 표만 깎는 ‘사고뭉치파’로 나뉘어 ‘죽기경쟁’을 벌이는듯 했습니다.
홍사덕 선대위원장의 뇌물관련 자진사퇴는 어마지두 캠프에 드리우기 시작한 10년전 이회창캠프의 불길한 데자뷰였습니다. 정준길공보위원의 안철수 불출마 협박사건이 터지고 이어서 송영선 전의원과 현영희의원의 정치자금관련 스캔들이 폭로됐습니다. 김종인 국민행복특위장과 이한구 원내대표는 사사건건 부딪히고, 황우여대표는 과연 당사에 출근은 하고 있는건지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없어졌습니다.
두 명의 대변인이 박근혜의 과거사 사과문제로 혼선을 빚다 사퇴하고,급기야는 이들 후임으로 발탁된  김재원대변인이 술자리 실언과 추태로 임명장도 받기전에 중도사퇴하는 최악의 인사사고가 터졌습니다.

김재원은 박근혜를 가장 잘 안다는 그의 ‘복심’입니다. 후보확정이후 이른바 대통합 광폭행보를 이어온 박근혜는 가급적 눈에띄는 친박인사에겐 캠프내 요직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2007년 경선때 대변인을 맡았던 김재원을 다시 불러들인건 완전 봉숭아 학당이 돼버린 당과 캠프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고육책이었지요. 헌데 믿었던 이 복심이 대형사고를 친겁니다. 김재원은 당대변인 내정첫날 저녁 기자들과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여기서 그는 내일 박근혜후보가 과거사와 관련해 새로운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고 운을뗀 후 박근혜를 예수를 세 번 배신한 베드로에 비유했습니다. 박근혜가 정치를하는 것은 아버지박정희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라고도 했습니다. 이 발언은 다음날로 예정된 박근혜의 과거사관련 사과의 진정성을 훼손시켰습니다. 저마다 충성경쟁을 벌이며 보스의 심기를 헤아리기에만 열심인 박근혜캠프의 현주소를 드러내보인 사건입니다. 박근혜 캠프는 이렇듯 총체적 아노미 상태입니다. 이렇게 나가면 대선승리는 어렵다는 전망이 힘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안철수는 박근혜에 약해?


‘박근혜스타일 2012’라는 책이 며칠전 출간됐습니다. 정치평론가 고성국박사가 쓴 책으로 박근혜의 일기등을 통해 부모의 비극적인 죽음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치인 박근혜는 무슨 생각으로 움직이는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그가 안철수 문재인과 벌이게 될 올해 대선은 어떻게 전개될지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고성국은 안철수가 박근혜의 가장 손쉬운 상대라고 색다르게 풀이합니다. 그에 따르면 박근혜는 단아하고 조신해 보이지만 피할수없으면 터프하게 맞서 싸우는 인파이터형입니다. 반면에 안철수는 상대와 떨어져서 싸우는 아웃복서형입니다. 안철수는 네거티브 공격을 받아도 정면대응하지 않고, 기존 정치권과 일정한거리를 둡니다. 따라서 링밖에서 아웃복싱을 하던 안철수는 링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현란한 아웃복싱을 펼치기가 쉽지않아 고전할것이라고 고성국은 박근혜의 비교우위를 주장합니다.













12월 대선구도는 어떤면에서는 한결 단순해졌습니다. 야권후보가 단일화되면 그쪽이 이깁니다. 문재인이되든 안철수가되든 이길겁니다. 단일화가 실패해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3자대결이되면 박근혜가 우세합니다. 하나의 변수는 안철수에 대한 혹독한 검증입니다. 추석연휴가 끝나면 우선 언론과 시민단체등이 세 후보에 대한 검증의 불을 지피겠지요. 정기국회의 국정감사는 안철수 검증으로 한바탕 소란을 빚게 될겁니다. 공세는 새누리당이 펴겠지만 민주당도 애써 안철수를 방어해주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후보 단일화 싸움에서 이겨야하는 문재인계는 새누리당의 안철수 공격을 ‘불감청이나 고소원’의 심정으로 방관하며 즐길수도있습니다. 05년전에도 한번 검증의례를 거친 박근혜나, 상대적으로 검증꺼리가 많지 않아보이는 문재인보다는 역시 안철수가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안철수의 대권꿈을 한방에 날려버릴 초대형 악재는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이 쓴 많은책과 청춘 콘서트등 강연에서 그는 너무도 많은 언행 불일치와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안될 거짓말을 했습니다. 안철수와 관련한 거짓 증거중엔 초중고교의 교과서에 실린것도 있다고 들립니다. 박원순시장한테 대선출마를 상의하고 나오면서 그는 기자들에게 “서울시 살림걱정을 했다”고 태연하게 뻥을 쳤습니다. 사소한 거짓말은 덮어주자는 쪽으로 민심이 움직이면 안철수는 검증의례를 통과해 대통령 꿈을 이룰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사소한 잘못이나 거짓이라도 그것이 가랑비에 옷젖듯, 국민의 마음에 도덕적 불쾌감과 불편함으로 각인되면, 맷집약한 안철수는 치명적인 내상을 입고 좌절하게 될지 모릅니다.
현란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아웃복서도 좁은 링안에 갇혀 작은 잽을 계속 얻어맞으면 넉다운될 수 있습니다. 고성국박사가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박근혜가 상대하기 수월한 후보로 안철수를 꼽은 까닭이 짐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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