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정국1> 피보다 진한 물도 있다더니만…박지만, 정윤회에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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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2년 간 나라를 술렁이게 했던 정윤회와 박지만 간의 권력투쟁 스캔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용두사미로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수사는 정윤회씨와 관련된 모든 의혹은 ‘실체 없음’으로, 박지만씨와 관련된 의혹 역시 ‘근거없음’으로 마무리되는 수순으로 가고 있다. 사건이 불거졌을 때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권력투쟁은 실체가 없으며, 문건유출이 국기문란 행위라고 언급하면서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분위기다. 수사가 시작되기 전 본지가 우려했던대로 검찰이 알아서 대통령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건이 이대로 마무리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 일단 정윤회와 십상시로 대표되는 비선세력과 관련된 의혹은 아직 손도 대지 않았다. 10인회니 7인회니 하는 모임들의 실체가 없다는 것으로 그 근거를 대지만, 모임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배후에서 인사문제 등을 쥐고 흔들었다는 것을 밝혀내야 한다. 선데이저널이 제기했던 정윤회 씨의 인도네이사 방문설도 그 근거가 될 수 있지만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다. 또한 정윤회와 박지만 간의 권력투쟁도 마찬가지다. 권력투쟁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남재준 국정원장과 이재수 기무사령관의 경질 등에 대해서도 검찰은 들여다보지 않고 있다.
결국 이번 수사는 정윤회와 3인방에게 대통령의 신임이 얼마나 있는지를 보여주며, 그들에게는 더욱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국정을 농단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기게 됐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본지 등에서 지난 2년 간 꾸준히 제기해 온 정윤회 – 박지만 권력투쟁설이 본격화 된 것은  최근 본국 세계일보의 ‘십상시’ 문건 보도다. 검찰의 수사방향을 보면 이 문건의 작성에서 외부 유출, 언론사 제보에 이르기까지 박관천 경정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 경정은 올 초까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행정관으로 일했는데, 대체로 박지만 EG회장쪽 인맥으로 이해된다.
정권 첫 해인 2013년에만 해도 각종 인사에서 박 회장과의 친분이나 연고가 있는 인사들이 다소 약진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2014년 들어 청와대의 견제가 시작되면서 박 회장의 인맥이 힘을 잃었다.  뒤에는 정윤회씨와 ‘문고리 3인방’이 있었다. 그러자 행동에 나선 것은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이었다. 검사 출신인 조응천 비서관은 1993년 박지만 회장의 마약 상습 투약 혐의를 조사한 뒤 선처한 인연이 있다. (본지 최초 단독보도)

권력투쟁 둘러싼 치졸한 알력

조 비서관은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해 정씨와 ‘문고리 3인방’에 대한 경고음을 울렸다. 이 ‘문건’에는 정 씨가 ‘문고리 3인방’ 등 ‘십상시’ 멤버들과 정기적인 회동을 했고,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끌어내리기 위한 모의를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 문건을 받아본 김기춘 비서실장은 오히려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의 경질을 지시한다.
올해 4월에는 조응천 비서관까지 경질됐다. 그러자 언론을 통한 공세가 시작됐다. 이른바 청와대의 문건을 토대로 한 세계일보의 보도가 나왔고, 뒤이어 ‘박지만 미행설’이 시사저널에 보도됐다. 박 회장측은 자신과 관련된 문서들이 대거 유출되었다며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에게도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실패였다. 게다가 남재준 원장마저 5월 전격 경질된다. 이후 물밑으로 들어간 대통령 측근 사이의 암투는 11월 말에 다시 부각됐다. 11월 28일 세계일보가 ‘십상시’ 문건 자체를 폭로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 씨가 국정 개입을 한 것은 사실일까? 정 씨는 2004년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가 되면서 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2007년까지도 ‘삼성동팀’을 이끌며 박 대통령을 도왔다는 이야기는 한나라당 주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박 대통령은 정 씨와 일을 하지 않는다면서도 정 씨에 대해서는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계속 했다. 그러다보니 정 씨의 주변에는 민원인들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정 씨는 ‘정윤기’라는 이름으로 박근혜 대통령 팬클럽인 ‘호박가족’ 멤버들과 함께 독도를 방문했는데, 이 행사는 한 재벌그룹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정 씨를 의식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라는 게 재계의 평가다. 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도 정 씨에게 줄을 대려고 애를 썼던 흔적들을 심심치 않게 포착할 수 있었다. 공기업 인사 과정에서도 정 씨의 이름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인도네시아 비밀회동 수사선상서 제외

이런 인사 개입의 분명한 실체가 드러난 사안이 바로 박 대통령의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 좌천 인사 지시였다. 대한승마협회가 승마 선수인 정윤회씨 부부 딸(18)의 특혜설과 관련해 잡음이 커지고 있을 때, 청와대는 직접 문체부에 승마협회를 콕 찍어 조사를 지시했고, 정씨 부부와 친한 전직 승마협회 간부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이름까지 불러줬다. 뒤이어 박 대통령이 수첩을 보고 문체부 국·과장 2명의 이름을 직접 불러주며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증언까지 나왔다. 누가 봐도 대통령의 정상적인 통치행위로 보기 석연찮은데도, 청와대는 지금껏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는 뒤늦게 “박 대통령이 해당 공무원들의 ‘소극적이고 안이한 태도’를 지적하는 민정수석실의 감찰 보고서를 보고 지시한 것”이라는 취지의 해명을 했다. 하지만 당시 해당 감찰에 관여했던 청와대 인사는 “윗선에서 감찰 지시가 내려왔고, 조사해 올린 보고서 내용엔 특별한 것이 없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그 ‘윗선’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밝히지 않고 있고, 정씨 부부의 인사 관여에 대한 이런 구체적인 의혹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얼마 전 논란이 됐던 연예인 트레이너 윤전추 씨의 청와대 행정관 채용도 마찬가지다. 윤 씨의 채용과 관련해서는 최순실 씨의 이야기가 나왔다. 청와대의 답변은 오히려 윤전추 행정관에 대한 의혹만 증폭시켰다. 윤 행정관을 누가 추천했는지, 공직경험이 전무한 그가 어떻게 제2부속실에 배치될 수 있었는지 등 의혹이 잇따랐다. 윤 행정관 채용에 비선이 개입된 것 아니냐는 말도 나돌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비선 관련 운운은 모두 헛소문”이라면서도 “윤전추 행정관이 어떻게 청와대에 들어왔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인사가 있을 때마다 이처럼 두 사람의 이야기가 계속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인사개입 부분에 대한 소명은 손도 대지 않은 채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이번 파문의 배경에 정윤회씨와 박지만 회장의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는 관측도, 두 사람이 사이가 나쁘다는 점만 확인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사안에 개입해 어떤 부분들로 충돌했는지 확인된 게 없다.

박지만 강경태도 돌연 바꾼 배경 의문

정씨의 박 회장 미행설도 흐지부지 끝나는 분위기다. 하지만 박지만 회장과 정윤회씨가 껄끄러운 사이라는 점은 양쪽 모두 부인하지 않았다. 청와대 내부 보고서에 등장하는 ‘박 회장 주변 ×파리’의 양태가 어떠했는지, 단순히 3인방이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박 회장을 경계했는지, 그렇다면 박 회장과 친분있는 이들의 잇단 몰락은 그저 역차별이었는지도 규명되지 않았다. 검찰에 나간 박 회장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와 관련해 정치권에선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거쳤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검찰은 지난 해 10월 박대통령 인도네시아 순방기간에 정윤회씨도 극비 방문한 중대한 사안을 비껴가고 있는 것도 수상쩍다.

십상시에도 면죄부

대통령에게 이뤄지는 모든 보고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를 거쳐야 한다. 즉 그들이 하고 싶은 보고만 대통령에게 한다면 자연스럽게 대통령은 그 보고에 의해서 상황을 판단하게 된다. 적극적으로 국정에 관여하지 않는다하더라고 3인방이 자연스럽게 국정에 관여할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조차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3인방’의 역할도 제대로 규명된 게 없다. 이번 파문 와중에 이들 3인방이 공식적인 업무 외에 ‘월권’을 행사한다는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몇년간 만난 적 없다”는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정윤회씨의 통화 사실이 드러났고, 이 비서관이 문체부 인사에 개입했다는 당시 장관의 증언도 나왔다. 정호성 비서관은 유출된 문건을 전달받아, 조사를 공직기강비서관실에 맡기는 ‘창구’ 역할을 했다는 점도 확인됐다. 안봉근 비서관은 다른 수석실(민정수석실)에 근무할 파견 경찰의 명단을 단수로 통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최근 이들을 가리켜 “심부름하는 비서일 뿐”이라고 감싸고 나서면서 3인방에 대한 외부의 지적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검찰도 이들 3인방 문제에 대해선 수사 대상도, 사건의 본질도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외부에서는 십상시를 잘라내야 한다고 하지만 십상시들의 위치가 흔들릴 조짐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 이번 사건은 검찰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권력투쟁에서 비롯된 인사개입을 법적으로 처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를 검찰에 떠넘김으로서 상처를 최소화했다. 정작 국민 앞에 진실을 밝혀야 할 청와대의 꼼수에 청와대를 제외한 다른 모든 기관과 국민들만 고스란히 그 피해를 입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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