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재산 불리기는 이재용 판박이
5월9일 시행되는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간의 공방이 점차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양강을 이루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간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문 후보의 경우 아들 준용 씨의 특혜 취업 의혹과 부인 김정숙 씨의 고가 가구 구입 의혹에 대해 상대후보들이 물고 늘어지고 있다. 안 후보는 지난주 본지가 보도한 안랩 미주 법인과 관련한 의혹들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일부 종편기자들이 직접 안랩 미주법인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을 급파하는 반면, 문재인 캠프 쪽에서도 사람을 보내 의혹을 취재하고 있다. 안랩 미주 법인처럼 안철수 후보 관련 의혹들은 대부분 안 후보가 창업주이자 대주주로 있는 안랩(구 안철수 연구소)와 관계가 깊다. 그가 안랩을 통해 재산을 증식하는 과정이나, 안랩의 대주주로서 전횡을 휘두른 것 아니냐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999년 2월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저가로 인수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해 10월 안철수가 안철수연구소의 BW를 인수할 때 안철수연구소의 2대주주가 삼성SDS였다. 이런 의혹의 한 가운데에는 결국 안철수 후보가 기존 한국의 재벌들과 다르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심어린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본국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안랩의 BW(신주인수권부사채) 의혹은 향후 대선의 향방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 <선데이저널>은 안랩 BW 의혹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BW(신주인수권부사채)는 고정된 이자를 받는 회사채와, 일정기간 뒤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함께 붙은 금융상품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에게 B 회사가 자사의 신주를 5000원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만약 B회사 주식이 확 올라서 1만원이 되었다하더라도 A라는 사람은 이 권리를 사용해서 5000원에 주식을 살 수 있다. 주식이 오르면 이 권리를 이용해 주식을 싸게 사고, 오르지 않으면 권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상당수 재벌 3세들이 1990년대 말 비상장 계열사의 BW를 헐값에 인수하는 수법으로 막대한 자본이득을 얻어 재벌의 편법·불법 상속수단으로 널리 알려졌다.
치밀한 계획 속에 진행
삼성이 1999년 삼성SDS의 BW를 이재용 부회장 등에게 헐값으로 발행했다고 배임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안랩 BW사건의 발단은 안 후보가 1999년 10월 자신이 대주주인 안랩이 발행한 만기 20년짜리 BW 25억원어치를 전량 인수한 것에서 시작됐다. 연 10.5%의 할인율이 적용돼 안 후보가 실제 회사에 지급한 돈은 3억4000만원이었다. 즉 안랩이 안 후보에게 10%가 넘는 이자를 주고 3억 4000만원의 돈을 빌린 셈이다. 이와 함께 안 후보는 또 안랩 주식 25억원 어치를 주당 5만원에 살 수 있는 권리를 함께 얻었고, 실제 1년 뒤 권리를 행사했다.
안 후보의 신주인수가격 5만원은 외부기관이 평가한 3만1976원에 비해 높고, BW 발행 직전 유상증자 때 발행가액인 주당 5만원과 같았다. 안랩은 이후 주주에게 주식을 거져 나눠주는 무상증자를 하고, 주식 액면가를 5천원에서 500원으로 쪼겠다. 주당 가치가 낮아지면서, 안 후보의 주식인수가격도 1710원으로 하향 조정됐다. 안 후보는 1년 뒤인 2000년 10월 25억원을 주고 안랩 주식 146만여주를 추가 취득했다. 이어 2001년 9월 안랩이 코스닥에 상장됐다. 주식가격이 치솟아 오르지 처음 공모가가 2만3000원이었는데 6개월동안 계속 올라서 한 때 8만원을 넘어가기도 했다. 즉 당시 주식을 8만원 가격으로 계산하면 안 후보는 2000억이 넘는 평가가치를 가진 재력가 반열에 올랐다. 이후에는 배당을 통해서 매년 100억원 정도를 벌어들였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안랩이 회사채를 발행한 후 1년 만에 돈을 상환했다는 점이다. 즉 돈이 필요해서 회사채를 발행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안 후보의 BW 단독인수(1999년 10월)→무상증자(1999년 10월)→주식액면 분할(2000년 2월)→안 후보 신주인수권 행사 및 지분 확대(2000년 10월)→안랩 상장(2001년 9월)→안 후보와 다른 투자자 자본이득 순으로 이어지는 일들이 처음부터 치밀한 계획 속에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즉 안 후보 측이 해명하듯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이는 당시 유행했던 재벌들의 재산 부풀리기 수법과 매우 유사한 점을 보이고 있다.
삼성 BW 사건과 유사한 형태
BW와 관련한 편법 승계의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삼성이 1999년 삼성SDS의 BW를 이재용 부회장 등에게 헐값으로 발행했다고 배임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다. 삼성SDS BW사건의 쟁점은 네 가지다. 첫째는 삼성SDS의 주주인 삼성 계열사들이 그룹 미래전략실의 지시로 BW 인수를 포기하고 이재용 부회장 오누이에게 몰아주기를 한 점이다. 둘째는 장외시세가 주당 5만원을 넘는 상황에서 7000원대의 헐값으로 BW를 준 점이다. 셋째는 BW 헐값인수를 통해 얻은 부당이득이 2014년 말 삼성SDS 상장시점 기준으로 5조원에 육박한다는 점이다. 넷째는 삼성SDS의 BW 발행목적이 애초부터 이 부회장의 이득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안철수 후보의 재산 증식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산 증식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BW를 발행한 시기다. 규모 면에서 당시 삼성과 안랩은 차이가 크지만 두 회사를 포함해 거의 100개 이상의 대기업이 BW를 발행했다. 즉 안 후보의 BW 인수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해도 다른 재벌과 마찬가지로 대주주의 지분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볼 여지가 많은 것이다. 게다가 이 부회장은 1999년 2월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저가로 인수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해 10월 안철수가 안철수연구소의 BW를 인수할 때 안철수연구소의 2대주주가 삼성SDS였다.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 진영이 안랩 BW발행 논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모두 대선공약으로 재벌개혁을 강조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안 후보는 특히 상법개정을 통한 재벌총수의 전횡 차단과 함께 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 엄단 등 재벌의 편법상속에도 엄격한 제재를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BW 사건은 본지가 이미 2주 전에 보도했던 ‘재벌의 친구가 서민 대통령 되겠다고’ 기사에서 짚은 브이소사이어티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더 이해가 쉽다. 안 후보는 지난 2001년 9월 재벌가 2·3세 및 벤처기업인들과 함께 만든 ‘브이소사이어티’에 자신의 명의가 아닌 부인 김미경 이화여대 명예교수 이름으로 지분투자를 했었다. 또한 브이소사이어티에는 김미경 교수 외에도 안랩(구 안철수연구소)의 대표인 김홍선 씨도 지분을 갖고 있었다. 안 후보는 자신의 이름으로는 지분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부인 김 교수의 지분(3.88%)과 김대표의 지분(1.08%)을 합하면 사실상 안 후보 측 인사들이 브이소사이어티의 최대주주라고 할 수 있었다.
브이소사이어티는 재벌가 자제들과 젊은 벤처기업인들의 연구모임이자 그들이 공동으로 투자했던 주식회사다. 브이소사이어티의 주주명단을 자세히 살펴보면 안 후보가 2001년 당시 만해도 재벌 2·3세들과 가깝게 어울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단 브이소사이어티에 참여한 재벌들의 면면을 보면 그가 실명으로 비판했던 기업의 재벌들이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 브이소사이어티 지분을 가지고 있는 10여명의 재벌가 자제들은 삼성, 현대, SK, LG, 롯데 등 국내 5대 기업 창업주들과 혈연관계에 있는 인사가 상당수였다. 즉 안 후보가 BW 발행이나 재벌가 자제들과 어울렸던 것을 보면 그가 재벌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 후보는 브이소사이어티를 통해 재벌들과 정기적으로 교류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처음 설립될 당시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포럼’ 형식의 모임을 갖고, 경영 사례를 공유하고 친목을 다졌다고 한다. 안 후보는 2001년 6월에 열린 1차 브이소사이어티 CEO포럼에서 최태원 SK 회장과 함께 첫 연사로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후보는 브이소사이어티 이외에도 재벌들과 꾸준히 다른 사업을 시도했었다. 그는 브이소사이어티 회원들인 SK와 롯데, 코오롱, 신세계 등 대기업 및 벤처기업 20여 곳과 함께 자본금 1000억원 규모의 인터넷 전용 은행 ‘브이뱅크’를 설립하기로 하고 ‘브이뱅크 컨설팅’이라는 회사 설립에 참여했다. 대기업의 은행업 진출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기업들의 오랜 염원이었다. 안 후보는 당시 안철수연구소의 자회사인 ‘자무스’를 통해 증자 과정에서 3000만 원 정도를 투자했다. 그러나 당시 브이뱅크는 SK나 롯데 등 대기업의 은행업 진출 발판을 마련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자금 확보와 금융실명제법 문제 등에 부딪히며 설립이 무산됐다.
직원들 집안대소사에 동원도
안 후보의 여러 가지 행동이 재벌들과 유사하다는 본지의 2주 전 보도는 이어지는 본국 언론들의 후속보도로 어느 정도 증명되고 있다. 특히 안 후보의 과거 정치 및 개인 활동에 안 후보가 창업한 안랩의 일부 직원이 동원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안랩 직원들이 장례식장에 나와 잡무를 보는가 하면,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당시 쓰던 사무실을 정리하는 일도 도왔다는 내용이다. 4월11일 KBS는 김기인 안랩 전무가 2013년 재보궐 선거 당시 안 후보가 쓰던 사무실을 계약하고 해지하는 과정을 대신 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사무실 컴퓨터와 의자 등 비품도 안랩이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도에 따르면 김 전무는 이듬해인 2014년 안 후보의 장모상에도 등장했다. 안랩 직원들과 장례식장에 나와 부의금 접수와 신발 정리 등 잡무를 도왔다. 특히 김 전무의 부인인 박모씨는 2013년 재보궐 선거 당시 회계 책임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12년 재무 업무는 안랩의 또 다른 김모씨가 지원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또 안 후보의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의 운전기사에도 안랩 직원이 맡았다. 2012년 대선부터 2013년 재보궐선거와 이후에 발생한 개인적인 대소사 등 필요할 때마다 안랩의 직원 및 가족이 동원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