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도 철저한 실체 규명 있어야…
“4.29 폭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주 한인 140년 이민 역사에서 최대 수난이었던 4.29 LA 폭동(Sa-i-Gu) 발생 25주년을 맞아 한인 단체를 포함해 흑인계, 라티노계 그리고 백인계 등 여러 기관 단체들이 “인종화합” 등을 외치며 다양한 기념행사를 릴레이 형식으로 펼친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잊고 있다. 4·29 폭동은 오랫동안 흑백 갈등과 인종 차별 그리고 빈부 격차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가 고조되어 오다가 1992년 4월 29일에 4명의 LAPD 소속 경찰이 흑인 택시 운전자 로드니 킹을 속도위반으로 체포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구타 등 폭력을 행사했음에도 무죄 평결이 내려지자 이를 계기로 LA시 전역에서 발생한 폭력적 항의였다. 55명이 숨졌고 전체 재산 피해는 10억 달러에 달했다. 한인사회는 1명의 사망자와 피해액은 4억 달러에 이르렀다. LA 폭동의 최대 피해자가 한인사회였다.
4.29폭동, 그로부터 25년이 지났다. ‘흑백 갈등’을 ‘한흑 갈등’으로 왜곡시킨 미 주류 언론, 폭도들로부터 비버리 힐스와 할리우드을 보호하기 위해 ‘코리아타운’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잿더미로 방치한 미국 정부와 제도권에 대하여 마땅히 책임을 묻고 사과와 보상을 받아내야 한다. 이것이 남은 우리들의 과제이다.
<성진 취재부기자>
4.29 폭동 1주년인 지난 1993년 4월 4일 자 <선데이 저널>에는 ‘성금 관리 문제로 또다시 진통’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다. 기사에는 “4.29 폭동 1주년이 다가오는데도 피해자 성금 문제로 동포 사회가 극심한 분열 현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폭동 이후 수없이 생겨난 각종 폭동 관련 단체들은 이전투구 형식으로 상대방을 헐뜯으며 자신들만이 피해자들의 대변 단체라며 자중지란을 벌이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당시 한인사회는 성금 분쟁 문제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미 주류 언론에서조차 성금 분쟁을 보도 했으며, 한국에서는 미주사회 성금 분쟁에 대해 “폭동 성금을 잘못 보냈다”라며 원망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주 한인 사회에서도 “내가 낸 성금을 돌려 달라”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처럼 4.29 폭동 성금은 미주 한인 사회의 이민 역사에서 최대 수치스러운 사건이 된 것이다.
갈기갈기 찢기어진 폭동 성금
요즈음 “코리아타운 밤 문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6가 거리에 MBC America 건물(3400 W. 6th St. LA, Ca 90020)이 있다. 이 건물은 원래 4.29폭동 성금 1,200만 달러를 두고 이리 찢기고 저리 찢기고 남은 기금으로 당시 4.29폭동 한미 구호 기금 재단 관계자들이 “그나마 남은 기금을 보전하려면 ‘폭동 기념관이라도 세우자”라는 결론에서 마련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이 건물도 운영 부실로 인해 결국 유지하지 못하고 매각했고 남은 폭동 성금도 투자 손실과 사기로 모두 날렸다.
LA에서 1992년 4월 29일 미증유의 대도시 폭동이 발생하면서 코리아타운을 포함해 도시가 불타자, 5월 3일 주 방위군과 연방군이 투입되면서 가라앉았다. 이어 ‘코리안들이 최대 피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엄청난 성금이 답지했다. 약 1,200만 달러로 추산됐다. 아마도 이런 성금은 다시는 없을지도 모른다. 4.29폭동 성금은 미국은 물론 한국과 전 세계로부터 LA 한인 사회로 밀려들었다.
4.29 폭동 후 남가주 한인 공인 회계사 협회가 92년 폭동 당시 5월 이후 10개월에 걸친 성금 감사 보고서를 통해 그나마 1,200만 달러로 추산되는 폭동 성금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 이 자료를 근거로 분석할 때 약 200만~400만 달러에 달하는 폭동 성금은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폭동 성금 배분이 시작되자 너도나도 피해자였다. 유리창 한 장 깨진 사람도 피해자를 자처했고, 사우스 LA에서 가게를 운영한 사람도 무조건 피해자로 나섰다. 누가 얼마나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확실히 파악할 자료가 없었다.
4.29 폭동 성금은 1992년 5월 이후 1년 동안 2,000여 명의 피해자들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에게 한 가구당 500~2500달러씩 수차례 지급됐다. 또한 정부 상대 소송 명분, 피해자 단체 활동비, 방범 단체 활동비 등으로 포함해 이런저런 명목으로 지출돼 1년이 지난 1993년 6월에는 약 170만 달러 정도만 한미 구호 기금 재단에 남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구호 기금 재단 이사회는 21명이었다. 당시 이사회는 이 기금에서 20만 달러는 대정부 소송비용에 지출하고 150만 달러를 ‘폭동 기념관’ 성격의 커뮤니티 센터 건립기금으로 동결키로 했다.
어수선한 한 해가 저무는 1993년 그 해 12월 28일 재단 이사회는 타운 내 호반 식당에서 정기 이사회를 개최해 성금을 계속 분배할 것인가 아니면 폭동 기념관을 위한 커뮤니티센터 건물을 구입할 것인가를 두고 집중적인 논의를 벌여 건물 구입 안을 재확인 결의했다. 커뮤니티센터 구입 안은 폭동 관련 자료를 보전하고 피해자들에게 지속적인 도움을 준다는 취지로 재단 이사회가 그 해 6월 14일 결의한 바 있다.
당시 재단의 관계자는 ‘성금을 분배하려 해도 과거 사용했던 피해자 명단에 변동 사항이 있고 너도나도 피해자를 자청해 성금을 달라고 했기 때문에 자칫 성금 때문에 또다시 말썽이 일어날 소지가 컸다’는 이유로 센터 구입 안을 성안했다고 밝혔다.
이사회는 이 작업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5인 전담 위원회를 구성했는데 조용직 부이사장, 안응균, 이정, 김재열, 유성겸 이사 등이다. 이들이 적절한 건물을 물색하기로 했다. 당시 재단의 4대 이사장은 이민휘 재미 체육 회장이었는데 성금 단일화를 완료한 직후 물러나 이사장직이 공석이었다.
재단 이사회가 ‘폭동 기념관’ 명분으로 구입한 커뮤니티 센터라는 현재의 MBC 건물은 애초 예상과는 달리 폭동 관련 피해 단체들이 무상으로 입주해 사용하여 임대 수입에 지장을 주었으며, 자주 고장 나는 엘리베이터 수리비 등 노후 된 건물의 막대한 유지비 등으로 자칫 은행에 압류 될 위기였다. 할 수 없이 건물을 매각하기에 이른다.
200~400만 달러 폭동 성금 여전히 행방 묘연
커뮤니티센터 건물을 매각하고 난 후 기금이 불과 22만 달러였다고 재단의 마지막 이사장인 전주찬 5대 이사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기금을 우선 한미은행에 예치했다고 전 이사장은 밝혔다. 전 이사장은 “그나마 22만 달러라도 유용하게 사용하려고 여러 방법들을 강구했다”라고 말했다. 그중 한 가지 방법이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차라리 4.29 장학 재단에 기증하는 것이 보람 있는 일로 생각해 이사회의 의결을 거처 기증했다.
그런데 4.29 장학 재단 측은 한미 구호 기금 재단으로부터 기증받은 22만 달러를 자신들의 계좌에 일단 입금 시켰다. 하지만 장학 재단 측은 다음날 22만 달러를 다시 구호 기금 재단 측으로 되돌려 보냈다. 성금 시비에 몰리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전주찬 당시 구호 기금 재단 이사장은 “건물을 팔고 난 후 남은 기금에서 10만 달러는 미래은행에 투자했고, 나머지 12만 달러는 임경자 전 여성 경제인 협회장이 관계한 ‘ABC(Alternative Business Capital) 투자 회사에 투자했다”면서 “그러나 임 씨에게 투자한 기금은 전액 사기를 당했고, 미래 은행에 투자한 것도 지난해 미래은행 파산으로 손실됐다”라고 말했다. 전 이사장 개인도 임 씨에게 투자해 큰 손실을 보았다고 했다.
전 이사장은 임 씨에게 사기를 당하자 한미 구호 기금 재단 측은 이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강구했으나 사법 당국의 비협조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재단 사무국을 관장했던 오봉균 목사는 임 씨의 ‘사기 행위’에 대해 “2006년 당시 LAPD에 고발 조치했으며 나중에는 경찰 당국의 의뢰로 FBI에까지 신고했으나 구체적 진전을 보지 못했다”면서 “우리로서는 피해 보상 조치를 최대한 강구했다”라고 말했다.
임 씨에게 투자한 배경은 2004년 8월 17일 월셔 플라자 호텔(당시 래디슨 윌셔 호텔에서 열린 한미 구호 기금 재단 이사회에서 결의됐다는 것. 당시 전주찬 이사장의 긴급 소집으로 개최된 재단 결의서에 따르면 <지금 미래은행에 있는 6,009주를 매각하여 임경자 금융회사에 투자하면 많은 이익이 있다고 논의하였다. 이에 모두 찬성 통과됨>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한편 당시 4.29 장학 재단은 본국 국회에서 1992년 11월 의결한 한인 사회 폭동 지원금 10억 원(당시 미화 123만 달러 상당)으로 설립된 재단이었다. 당시 김항경 LA 총영사는 이 10억 원 지원금을 폭동 성금처럼 분배하지 않고 커뮤니티 장기 발전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폭동 성금 분쟁의 고통을 더 이상 당하지 않으려는 고육책이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4.29장학 재단(현재 한미 동포 장학 재단)이었다.
이 같은 장학 재단은 초기에 박희민 목사를 이사장으로 하여 안응균(작고) 부이사장, 김인환, 길옥빈, 김양일, 이영희, 임춘훈 이사 등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재단은 장학금 대상으로 한인 폭동 피해자 자녀들을 최우선적으로 하고 인종화합을 위해 흑인 및 히스패닉 계 학생 그리고 타운 방범을 맡고 있는 치안 관계자 자녀 등 타 인종을 20-30% 선에서 선발키로 했다.
그런데 이 한미 동포 장학 재단도 나중 기금 운용의 난맥으로 크게 문제가 된다. 장학기금 대상자가 4.29 폭동 피해자 가족이나 흑인 사회 수혜자가 대상인데, 수혜 대상에 끼지 못하는 당시 한인사회의 이름 있는 전, 현직 단체장들이 장학금을 타가는 행태까지 벌어져 어안이 벙벙해졌다. 여기에 흑인 장학생이 받은 수표가 부도가 나는 등 부조리가 만연했다.
부도 성금도 10만 달러, 언론기관 걷은 성금도 의혹
4.29 폭동이 발생한 지 1년 후인 1993년 2월 28일 남가주 한인 공인 회계사 협회(당시 회장 최상봉)는 산하 폭동 성금 감사 위원회 (위원장 오영균)가 4.29 폭동 성금 접수 기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위원회는 1992년 5월 1일부터 1993년 2월 28일까지의 미주 한국일보, 미주 중앙일보, 라디오 코리아, KTE(현재 KBS 아메리카), 미주 한인 방송, 미주 한인 복음 방송 등 언론기관들의 성금 관리 현황을 감사했던 것이다.
이 감사 결과 보고서에서 본국이나 세계 다른 나라에서 모은 성금을 제외한 미주 지역에서만 모금된 성금이 500만 달러가 넘는 총 5,055,553달러(이자 27,968.93)였으며, 이중 지출 총액은 3,725,987.78불이며, 잔액은 감사 마감일 현재 1993년 2월 28일 1,779,565.43센트였다고 밝혔다.
감사 위원회 측은 “본국 성금을 이관 받은 폭동 피해자 협의회가 자체적으로 미국의 공인회계사의 감사를 받는다는 이유로 감사위원회 감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여 부득이 할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공인회계사 협회의 감사 결과 발표는 그나마 성금창구의 단일화와 함께 잡음을 일으켰던 성금 모금과 사용 내역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당시 감사위원회는 한인 언론 기관들의 모금 상황을 감사하면서 일부 방송사의 경우 구두로 성금을 내겠다고 약속해 놓고 내지 않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도 수표와 지불 정지 수표도 많았다고 밝혔다. 위원회 측은 성금을 약정하고 이행치 않은 액수가 8만여 달러에 이르고, 부도 및 지불정지된 수표 액수가 2만여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당시 부도 수표를 낸 사람 중 한인 사회의 이름 있는 사람도 많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는 50달러 수표에서 1만 달러 수표까지 부도를 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폭동 성금 감사를 위해 당시 한인 공인 회계사 협회의 30여 명 회원들이 자원봉사로 감사를 담당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미주 한인 언론사 가운데 가장 많은 성금을 모은 언론사는 미주 한국일보로 총 297만 2천7백53달러 89센트였다.
다음이 라디오코리아로 117만 7천7백91달러 98센트, 이어 미주 중앙일보가 49만 5천5백70달러 19센트, 미주 한인방송이 25만 9천5백59달러 76센트, KTE 방송(현재 KBS 아메리카)은 17만 4천4백21달러 47센트, 복음방송이 4만 7천9백50달러였다.
그리고 LA총영사관과 한미구호기금재단이 받은 성금이 43만 7천5백5달러 92센트(이자 2만 7천 968달러 93센트 포함)였다.
그 후 감사위원회에 따르면 라디오코리아의 경우, 감사 마감 후 4월 20일에 보관했던 32만 달러를 한미 구호 기금 재단으로 이관했다. 그리고 당시(2월 28일 현재) 미주한국일보가 51여만 달러를 보관하고 있으며, 한미 구호 기금 재단에서도 95여만 달러를 보관하고 있다고 발표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3년 2월 28이 현재 미주 지역에서 언론사가 모금한 성금에서 지출된 액수를 제하면 한미 구호 기금재단에서 보유한 금액은 177만 9천5백65달러 43센트로 나타났다.
감사에는 본국 성금이나 폭동 피해자 협의회가 한국으로부터 1차 전달받은 445여만 달러는 제외되었기에 2차 성금 현황과, 실제로 1993년 2월 28일 현재 남은 성금을 합친다면 적어도 2백만 달러 내지 그 이상 4백만 달러까지도 추정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시 말하자면 성금 400여만 달러의 행방에 의혹이 남겨진다는 것이다. 이 400여만 달러의 행방은 폭동 발생 직후 1992년부터 파헤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1992년 7월 당시 한국일보는 미국 본사에서 250여만 달러, 국내 본사에서 모금한 성금이 270여만 달러라고 밝혔다. 당시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언론사들이나 교회, 적십자사 등에서도 엄청난 성금을 모았으며, 일본이나 유럽 등에서도 성금을 모았다. 지금은 작고한 전설적인 코미디언 이주일 씨도 죽기 전 일지를 통해 “4.29 폭동 소식을 듣고 미주동포를 생각해 2억 원(미화 약 20만 달러)을 보냈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 성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행방은 지금도 모른다.
앞으로 폭동 성금은 금융기관들의 협력을 포함한 관련 기관단체들의 협조로 성금 수표 행방과 사법 당국의 조사로 성금의 내역이 밝혀져야 한다는 과제가 한인사회에 남아있다. 본지는 관련 자료들이나 단체나 인사들을 계속 추적해 성금의 진상을 밝혀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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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차별”과 “자본주의 병폐”가 4·29 폭동 주범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며 살아가자”
4.29 LA 폭동 25주년을 맞아 LA 지역 LA 한인회를 포함해 LA 시 등 정부기관 등을 비롯한 여러 기관 단체들이 기념행사를 펼치고 있다.
4.29 행사의 시작은 지난 22일 이경원 리더십 센터(이사장 김도형 변호사) 등 주최로 LA 폭동 패널 토론 행사가 열렸다.
이날 LA 홀만 연합 감리교회에서 열린 “4·29 리믹스” 다민족 행사에서 다수의 연사들이 소수 민족들이 가장 오래 차별을 받아온 흑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힘을 모을 것을 촉구했다.
한인타운 및 LA 남부의 각종 단체의 리더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는 “인종차별”과 “자본주의”가 4.29사태를 불러온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일부 연사들은 이러한 사회적 경향에 맞서는 “혁명”이 필요함을 설파했다.
이 사태는 커뮤니티에 따라 “경찰 폭력에 맞선 민중 항쟁”, “인종 폭동” 등 평가가 엇갈렸으며 그에 따라 커뮤니티마다 다른 명칭을 사용했으며, 이를 아우르는 표현으로 “4·29 사태”라는 표현이 사용되어 왔다.
이날 주최 측 이경원 센터의 김도형 이사장은 “우리 모두 인종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오늘부터 한 가지씩 변화시켜 나가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라는 말로 환영사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처음으로 흑인 및 한인 커뮤니티가 한자리에 모인 4·29 기념행사이다.
이번 행사는 이경원 센터, 남부 크리스천 리더십 컨퍼런스(SCLC), 커뮤니티 코얼리션, UC 리버사이드 대학 부속 김영옥 코리안 아메리칸학 센터가 주최했으며, 그 외에 민족학교와 한인타운 노동연대 등 8개 단체들이 참여했다.
4월 25일에는 LA 시청에서 에릭 가세티 시장 주관 각 커뮤니티 리더 모임이 개최된다. 이어 26일에는 로욜라 매리 마운트 대학에서 27일에는 UC 어바인에서 4.29폭동 25주년 패널 토론과 포럼이 각각 열렸다.
또 28일에는 오전 10시 LA 시청에서 기념행사가 열리고 이날 정오에는 참가자들이 손에 손잡고 화합을 도모하는 행사를 갖는다. 이날 오후 3시에는 전국 한인 위원회(CKA) 주최로 UCLA에서 역시 4.29 관련 학술 심포지엄에 이어 기념 만찬 행사가 열리게 된다.
LA 폭동 25주년 당일인 29일에는 오전 11시 LA 한인타운 평화대행진에 이어 오전 11시 30분부터 LA 한인회 등 주최 4.29 25주년 기념행사가 흑인 커뮤니티의 중심인 FAME 교회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또한 이날 오후 3시 동양 선교교회에서는 4.29 행사가 펼쳐진다.
데이비드 류 LA 시의원은 25일 LA 시청 행사에서부터 29일까지 개최되는 여러 행사에 참가한다고 밝혔다.
한편 LA 한인회(회장 로라 전) 측은 이처럼 22일부터 29일까지 릴레이로 진행되는 4.29 25주년 행사에는 한인과 흑인, 히스패닉, 유대계 커뮤니티 등 40여 개 단체들이 함께 한다고 밝혔다.
LA 한인회는 한인들의 이민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큰 아픔이자 잊지 못할 기억인 4.20폭동 발발 25주년을 기념하고자, 지난해 10월부터 한인단체와 흑인, 라티노, 유대계 단체 등 타 인종 단체, 그리고 데이비드 류 시의원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 등 약 42곳의 관계기관 단체들이 참여하는 연합 행사를 준비해왔다.
4.29 폭동을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여러 학술 대회와 심포지엄, 2세 자녀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위한 4.29다큐멘터리 관람과 에세이 콘테스트, 평화대행진 퍼레이드, 종교계 조찬 기도회 등 남녀노소, 인종 구별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이 준비, 진행 되어왔다.
특히 오는 29일(토)에 개최되는 제25주년 4.29폭동 기념식은 흑인 커뮤니티의 중심 FAME (First African Methodist Episcopal) Church에서 개최하게 되는데, 이는 인종 간, 커뮤니티 간 진정한 화해와 화합을 위한 자리로 이번 4.29 연합 행사의 핵심이다.
또한 기념식에는 사회활동가로 활동 중인 로라 킹(*4.29 폭동 발발의 원인이 되었던 로드니 킹의 딸)과 폭동 당시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던 안젤라 오 변호사, 폭동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파해 주었던 라디오 코리아, 폭동 피해 복구를 위해 노력한 CPA 협회 등 관련 단체 관계자, 그리고 4.29 폭동 피해자 등 관련자들을 포함하여, 한인 사회, 흑인 사회, 라티노 사회 등 여러 커뮤니티가 함께 참석하여 화해와 화합, 평화를 기원하는 기념비적인 행사를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