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LA 한인사회 원로 정용봉 박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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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포로송환운동’에 헌신한 인권운동가
■ 미주한인은행 대형화 기초를 닦은 경제인
■ ‘미주한인의 날’ 제정에 힘쓴 숨은 공로자
■ 60년대 한국 효자 수출 상품 가발 선구자

LA 한인사회의 원로이며, 인권운동가이고 경제인, 그리고 6ㆍ25 한국전 참전 영웅인 미주국군포로 송환위원회 회장 정용봉 박사(토마스 정, Thomas Y. Chung)가 지난 6일 오전 시더스 사이나이 메디칼 센터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LA한국교육원에서 고인을 위한 분향소가 설치됐다. 고인의 장례식은 LA향군단체 합동장으로 오는 10월 30일(일) 오후 2시 로즈힐 메모리얼 팍 스카이 채플(Rose Hills Memorial Park, Sky Chaple)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유족으로 부인 Chany Chung여사가 있다. <성진 취재부 기자>

정용봉 박사의 별세 소식에 민병수 변호사는 “평소 정 박사를 정말로 많이 존경해 왔다”면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민변호사는 국군포로송환위원회의 부회장이다. LA에서 향군 회장을 지낸 조봉엽 회장은 “우리 한인사회의 큰 별이 떠나셨다”며 애도했다. 미국에서는 매년 1월 13일을 ‘미주한인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정용봉 박사는 2003년 미주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 행사 당시 100주년 기념사업회 공동회장으로 활동했으며, 당시 로즈 퍼레이드에 한국 이민역사를 표현한 꽃차를 출품해 수상도 하는 등 미국인들에게 한인 이민역사를 알렸다. 그런 결과로 미국 정부는 ‘미주한인의 날’을 제정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으로 불려져 왔다. 그는 국군포로송환운동을 통해서 미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린 승리의 전쟁이라고 알렸다.

이제는 미국에서 한국전쟁을 “잊을 수 없는 전쟁”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박사는 한국전쟁에 초급 장교로 참전하여 큰 부상을 당한 유공자로, 자신의 부하들이 북한에 부당하게 장기간 억류 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전쟁포로의 인권문제를 전세계적으로 알린 인권 운동가이다. 전쟁포로 뿐만 아니라 탈북자와 납북자 그리고 난민 문제에도 함께 했다. 이를 위해 사재를 털어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했다. 그는 2004년 LA에서 국군포로송환위원회를 설립해 워싱턴 DC의 수잔 솔티 디펜스 포럼 회장과 협력하여 미의사당에서 미국 정부 의회, 외교관, 역사학자 등 400여명을 초청해 ‘한국전쟁 포로포럼’을 개최하여 6ㆍ25전쟁의 국군포로가 북한에 장기간 억류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세계에 알렸다.

그는 미국 의회 청문회에 탈북 국군포로들을 초청하여 전쟁포로 문제를 제기하였으며 UN과 국제 형사법정 (ICC)에도 북한 공산정권의 포로 학대를 역사상 최초로 고발했다. 이런 결과로 미국 의회는 세차례나 국군포로에 관한 청문회와 납북자 청문회 등도 열려 관련 결의 안들을 통과 시켰으며, UN에서도 전쟁 포로문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한국에서는 탈북 국군포로에 대한 대우 문제가 개정되는 계기도 마련했다. 무엇보다 정박사의 노력으로 한국전쟁의 국군포로의 인권문제가 한국과 미국 그리고 UN사회에 처음으로 알려지고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국군포로 문제 최초로 알린 참전용사

정박사는 2015년에 한국전쟁과 국군포로문제를 담은 저서 <메아리 없는 종소리>(부제: ‘우리는 왜 국군포로송환 운동을 벌였는가)를 펴냈으며, 2019년에 이를 영문판 <The Bell Tolls, No Echo>(번역 John Cha)를 간행하여 후세들에게 참고하도록 했다. 이 책은 한국전쟁 국군포로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 기록을 담은 유일무이한 문헌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메아리 없는 종소리> 출판기념회에서 자신이 한 명의 국군포로도 데려오지 못했음에 회한과 통한의 눈물을 뿌리기도 했다. 정박사는 2009년에 국군포로송환운동 활동으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받았다. 정박사는 미주 한인사회 금융경제 발전에도 기여했다. 오늘날 미주최대 한인은행인 뱅크오브 호프의 전신인 나라은행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한인은행들의 대형화에 기초를 닦는 등 주력 했다. 또한 그는 LA한인회를 포함해 여러 한인 단체들에게 남모르게 많은 후원을 해왔다.

정박사는 오래전부터 LA에 한국전참전기념비가 없다는 사실에, 사재 100만불을 기증하겠다면서 미국재향군인회 측과 공동으로 기념비 건립을 추진해 왔으며, 최근에는 한인사회 단독으로라도 이를 추진하는 계획도 세웠다. 정박사는 1927년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에서 태어났다. 서울 체신고를 졸업하고 국민대학교 2학 년에 재학중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 24사단 민간통역관으로 근무했다. 50년 8월 전시사관 학교인 육군종합학교 장교 모집에 응해 두달 간의 훈련을 받고 8사단 중대장으로 중동부 전선에 참전했다. 화천 전투에서 다리에 큰 부상을 입고 후송되어 52년 초 전역했으며 58년 미국 유학 시험에 합격하여 몬태나 주립대학과 칼스테이트 롱비치 대학을 거쳐 서던 일리노이 대학(SIU)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UCLA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거쳤으며 모교 SIU에서 명예 경제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그는 62년 LA에서 가발업을 시작, 60년대 한국의 효자 수출 상품이었던 가발 수출의 선구자의 한 주인공이었다. 한때 가발 과당 경쟁으로 위기도 겪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가발업에 도전, 오늘날의 His&Her Corp.를 설립해 미국 최고의 가발 회사의 하나로 키웠다. 그 후 이 자본을 토대로 당시 위기에 있던 나라은행에 투자로 성공을 거두어 오늘날 뱅크오브 호프의 기초를 닦은 최대 주주이기도 했다. 정박사는 부인과 함께 모교인 서든 일리노이 대학교에 ‘Thomas&Chany Chung Scholarship Fund’ 설립해 장학금 150만 달러를 기증해 후학들의 장학사업을 키워왔다. 매년 장학생들은 정박사 부부에게 장학금이 얼마나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를 진솔한 감사편지를 보내오고 있다. 이들 편지들에서 Dana Pietrusiak라는 경제학 전공자는 장학금 덕분으로 자신이 원하던 Pathway 과정을 이수할 수 있어 연방정부 공직자로 일할 수 있게 됐다고 감사를 전했다. Emily White라는 학생은 시골에서 태어나 이 대학에서 비즈니스를 택하였는데 장학금 덕분에 복수 전공을 하여 자신이 원하던 경영학도 연구할 수 있었다고 감사해 했다.

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 수여

지난해 한국전쟁 휴전기념일인 7월 27일에 LA총영사관저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한 박경재 총영사는 정용봉 박사에게 71년전 6ㆍ25전쟁 중에 결정된 무공훈장을 71년이 지난 뒤 가슴에 달아주자 정 박사는 전쟁터에서 사라진 전우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눈시울 을 붉혔다. 세월이 흘러도 무공훈장은 녹슬지 않고 밝은 빛을 띄우고 있었다. 무공훈장 전수식에서 판소리 예술인 심현정이 구성지게 부르는 <전우야 잘자라>를 함께 따라 부르던 정박사는 마지막 소절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야 잘 자라~ ~”에서는 목이메어 더 이상 부르지를 못했다. 노병의 눈앞에 70여년 전 그 전투에서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의 모습이 70여년 만에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LA한인 원로 노병 정박사에게 전해진 무공 훈장 소식은 국내외로 훈훈한 화제를 모았다.

정박사는 2년 전 2022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에 다음과 같은 간곡한 호소를 발표 했다. <1994년에 북한에 억류됐던 국군포로 조창호 중위가 처음으로 탈북하였으며, 2013년까지 78명의 국군포로들이 북한을 탈출하였습니다. 한국 국방부에 따르면 2004년 당시 약 500명의 국군포로들이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들 국군포로들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싸웠으며 한반도가 공산화로 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들은 UN 깃발아래서 싸운 영웅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북한 땅에 억류되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국군포로들의 실상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싸운 그들을 우리가 구하지 않으면 누가 할 것입니까? 날이 갈 수록 그들은 고향을 그리다 사라져 가고 있는데, 그들의 존재 또한 서서히 우리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전세계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들 죄 없는 포로들을 구해야 하며, 한국전쟁 70주년을 맞는 오늘, 이들 국군포로들의 역사를 잊지 않기를 간곡히 호소하는 바입니다.> 이제는 이 호소가 정박사의 유언이 되었다. LA에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UN 참전비 건립도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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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정용봉 회장님 영전에

평생을 국군포로 송환운동에 헌신해 오신 정용봉 회장님께서 LA에서 타계하셨다. 향년 95세.
정회장님은 6ㆍ25가 나자 육군종합학교에 입교해 졸업과 동시에 임관, 소대장을 하면서, 중공군에 쫓기는 과정에 부관과 헤어지게 되었다. 정회장님은 그 부관이 죽지않고 살아있을 것이라 믿고, 미국으로 유학와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무역과 금융사업을 하며 일군 자산을 전부 자신의 부관을 찾고, 국군포로들을 송환하는 데에 다 쓰셨다.
그 과정에서 많은 미국의 상ㆍ하원 의원들을 후원하셨고, 조창호 중위를 비롯해 탈북 국군포로 어르신 들을 초청해 미국 의회에서 증언하도록 주선하기도 하셨다.
그리곤 90이 다 된 연세에 국군포로 문제를 다룬 책, 메아리 없는 종소리를 펴내셨다.
내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늘 나를 응원해 주셨고, 물망초를 후원해 주셨으며, 서울 오실 때면 함께 생전의 백선엽 장군님을 찾아 뵈었다.
허전하다. 기운이 쭉 빠진다.
김동길 박사님에 이어 정용봉 회장님까지 떠나시다니…
뵈러 뛰어가고 싶다. 뷰잉이라도 하고 싶다. 대전 현충원에 모시기로 했지만, 그래도 그분의 마지막 모습을 뵙고 싶다.
회장님,
이 나라는 아직도,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국군포로를
단 한명도 송환해 오지 않았는데 이렇게 떠나십니까?
회장님…

2022년 10월 7일 서울에서 박선영 물망초재단 이사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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