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단독입수: 과거사 진실위 진상조사 보고서 국정원 진상조사로 본 대원각 외화유출사건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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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실소유주 <이태희-이경자>부부 외화유출사건

뉴저지 ‘킹사우나’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 2007년 보고서발간 사법농단 중요사건 규정
■ 안기부, 이태희 외화유출 사건 통해 ’검찰-법원‘비리포착 권력 장악
■ 청와대 검사 법원장 경찰까지 전 방위 돈 로비해 ‘혐의없음’ 면죄부
■ 이태희, 유태흥대법원장 비서 강건용에 청탁…연행 하루 만에 방면
■ 반전 또 반전 안기부 수사 뒤 강건용 가혹 행위…안기부 일부 인정
■ 중정창설이래 가혹행위시인은 최초…위해가하자 3천만원 수수 실토
■ 재수사로 이태희 부부 외화밀반출- 사건 확인…한달 만에 전격구속
■ 결국 이태희부부 항소심서 징역 1년 6월 실형 선고받고 미국 출행랑

뉴저지 킹사우나 실소유주인 <이태희-이경자>부부의 외화유출사건이 노무현 정권 때인 지난 2007년 국정원의 과거사 진실위가 조사한 주요사건 중의 하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의 과거사 진실위는 이 사건이 중정 및 안기부가 사법부의 기능에 악영향을 미친 사건중 하나라고 판단, 진실위보고서에 사건전말을 상세히 소개하고, 안기부가 이 사건을 악용, 검찰과 법원보다 우위에 서게 됐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는 외화유출의 전말과 보석을 위한 대법원장 비서관에 대한 로비내역, 재판에서 경미한 판결을 받게 된 경위 등은 물론, 이 사건에 대한 안기부 내부 보고서까지 담겨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의 주범격으로 한때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났던 안기부가 1983년 다시 최고 권부로 부활하게 된 전말, 영화보다 흥미로운 그 과정을 소개한다. <안치용 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노무현정권 당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뉴저지 킹사우나 실소유주 부부의 외화밀반출사건을 중앙정보부 및 안기부의 부당한 권력행사로 지목, 강도높은 조사를 벌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가 입수한 과거사 진실위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11월 2일 발족한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 취합한 90여건의 사건 중 예비조사를 거쳐 선정된 의혹사건 7건에 대해 다각도로 조사를 벌였다.

이 7대 의혹사건에는 김형욱 중정부장 실종사건, 김대중 납치사건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과거사 진실위는 이외에도 정치, 언론, 노동, 학원, 사법, 간첩죄확대적용 등 6개 분야에서 중정 및 안기부가 악영향을 미친 사건을 조사했으며, 특히 대원각 외화밀반출사건은 바로 사법 분야를 장악하려는 안기부의 불법권력행사라고 판단, 이 사건의 수사와 재판 등은 물론 안기부의 역할에 대해 샅샅이 조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과거사 진실위는 2007년 10월 이 같은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이라는 제목으로, 6권의 방대한 보고서를 발간했고, 대원각 외화밀반출사건은 보고서 제 4권에 수록된 것으로 확인됐다.

안기부 재부활 일등공신 이태희 부부

과거사 진실위는 ‘이 사건은 뇌물액수도 컸지만 안기부와 검찰의 대립으로 번져가며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켰고, 검사 2명이 파면되고, 서울지검장과 서울지검 남부지청장의 인책사임, 부장판사 2명의 사임, 변호사 3명의 제명 등 사법사상 전무후무한 파문을 낳았다. 이 사건의 처리과정은 군사 정권시절 검찰과 법원 구성원 일부의 비리를 포착한 안기부가 검찰과 법원에 대해 힘의 우위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과거사 진실위는 이 사건의 발단은 27만 달러 외화밀반출사건이라고 기재하고 있다. 1982년 6월 10일 김포공항 검색장에서 미화 34만 달러가 든 가방이 적발됐으며, 이 돈은 밀수자금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밀수주범인 일본인 하야마, 중국인 이서승 등 주범 4명은 검거하지 못했고 국내의 암달러상과 금괴판매책 등 16명을 검거했다. 바로 이 암달러상의 검거가 대원각 여주인의 외화유출사건 적발의 단서가 된 것으로 드러났다.

안기부는 ‘34만 달러 사건조사 당시 암달러 환전자금중 이00[여 42세, 대원각 주인]명의 자기앞 수표 1매 발견’했고, 1982년 6월 26일 안00[여, 38세, 이00고종동생의 처], 이정자 등 3명이 미화 27만 달러를 굴비 뱃속에 넣어 밀반출(5.11)한 사건을 인지하게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대원각 여주인은 이태희 씨의 부인 이경자씨, 이경자의 고종동생은 미투리양화점을 운영했던 이재완 씨, 안OO은 이재완 씨의 부인 안효경 씨 등이며 이들은 5월 11일 외화를 굴비에 숨겨 밀반출했음을 안기부가 6월 26일에 알게 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중앙일보는 1982년 7월 20일 ‘검찰이 [34만 달러 외화밀반출수사 때] 모 부처 공무원 부인인 여00씨와 일명 청파동 아줌마로 불리는 김00등의 거물급 암달러상의 계보와 이들과의 거래를 통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이00등 이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소득을 얻기도 했다’고 보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즉 34만 달러 외화밀반출사건을 조사하다 부수적으로 대원각 외화밀반출사건을 적발한 것이다. 과거사 진실위는 K대법원장 비서관의 뇌물사건은 34만 달러 외화밀반출과 27만 달러 외화밀반출 중 27만 달러 외화밀반출, 즉 대원각 사모님 외화밀반출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상조사보고서는 ‘이 사건은 한국에서 가장 큰 요정으로 꼽히던 대원각 여주인이 사건의 주범이며, 대원각과 쌍벽을 이루는 삼청각의 여주인이 대원각 여주인의 언니여서 호사가들의 관심의 대상이 됐다’고 적고 있다. 진실위는 보고서에서 대법원장 비서관을 K씨로 표현했지만, K씨는 강건용이며, 해당대법원장은 유태흥 전 대법원장으로 확인됐다. 이경자 씨가 구속 1개월여 만인 1982년 8월 16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A부장판사의 보석결정으로 풀려나고, 이경자의 고종사촌동생인 이재완도 법원의 인사이동으로 A부장판사의 후임으로 재판장이 된 B부장판사의 보석결정으로 1982년 9월 13일 풀려난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확인결과 진실위 보고서가 A라고 기재한 부장판사는 당시 46세인 박준용판사이며, B라고 기재한 부장판사는 당시 41세인 정명택판사로 밝혀졌다. 또 1982년 10월 18일 선고공판에서 이경자 피고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이재완피고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며, 이례적으로 검찰이나 피고모두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는 것이다. 이 부분 본보의 보도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이 씨 부부 끝없는 전방위로비로 쑥대밭

그러나 이례적으로 대형요정주인이 보석으로 석방된 것과 관련, 대법원장 비서관이던 강건용에게 거액을 주고 사건을 청탁한 사실이 청와대 사정팀에 제보가 됐고, 청와대 사정팀은 이 제보를 검찰이나 경찰에 넘기지 않고 안기부에 넘겼다. 법원 인사과 관련된 만큼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검찰이나 경찰이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설 것을 우려해 청와대가 안기부에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안기부는 청와대 사정비서관실로 부터 이른바 ‘통보자료’를 받은 뒤 1983년 1월 4일 수사에 착수했다. 안기부는 1월 5일자로 사표를 제출한 대법원장 비서관 강건용과 사건 관계자 9명을 연행, 조사해 강건용이 이경자의 보석청탁 건을 포함해 8건의 사건에 개입해 4450만원의 뇌물을 받았으며 3만 4천 달러를 해외로 도피시킨 사실을 밝혀낸 것으로 드러났다.

안기부가 밝혀낸 강건용비서관 개입사건 도표를 보면 대원각 요정 여주인 이경자 보석과 관련, 1982년 7월 하순 전 법률공론사 총무부장 오모씨로 부터 1천만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고, 이 씨의 고종사촌 동생인 이재완의 보석과 관련, 1982년 9월 초순 전 법률공론사 총무부장 오모씨로 부터 2천만 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오 씨로 부터 3천만 원의 뇌물을 받은 강건용비서관은 박준용부장판사와 정명택부장판사에게 이경자 등을 보석으로 풀어달라고 청탁을 해서 이들이 풀려나게 해준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특히 안기부가 이사건 조사과정에서 대원각 사모님 이경자 씨의 남편인 이태희도 연행해 조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 과거사진실위 조사결과 ‘이경자의 남편 이태희(49세)’는 1983년 1월 8일 오후 6시 30분 연행돼 1월 9일 낮 12시 20분 방면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결과 이경자 변호사비용 천만원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본 건 관련 혐의 없음’으로 기재돼 있다. 또 대원각 상무인 ‘김00 53세’도 1월 7일 낮 12시 25분 연행돼 1월 9일 오후 2시 20분 방면됐고, 이경자의 보석허가 금품제공 등 개입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또 법률공론사 총무부장 오모씨는 1월 9일 밤 11시 연행됐으며, ‘외화도피사건 구속자 이경자 보석허가 주선, 사례금 3천만 원 전달’ 등의 사실이 드러난 것으로 기재돼 있다. 안기부 요원 출신인 이태희가 안기부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지만, 변호사비로 1천만 원을 제공했을 뿐, 이 돈이 강건용비서관에게 뇌물로 전달하려 한 것은 아니므로 혐의가 없다는 판단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안기부는 불과 1개월 뒤 이태희가 혐의없음이 아니라 불법을 행사했다고 판단을 바꾸게 된다.

강건용은 유태흥 대법원장이 군법무관으로 재직 중이던 1957년 000변호사의 사무원으로 종사하면서 유태흥 대법원장과 군법회의 변론관계로 알게됐으며, 사교춤 실력이 탁월했던 강 씨가 유태흥대법원장에게 춤을 가르쳐 주면서 친해졌다고 적고 있다. 또 강씨는 ‘유대법원장 부인 사망 뒤 스스로 집안일을 돌봐주는 등 개인비서 격으로 계속 추종했다’고 진술했다. 강 씨는 유태흥이 1973년 서울형사지방법원장에 취임해 6급상당 비서로 특채된 이후 서울고등법원장, 대법원 판사, 대법원장 비서관으로 근무했다. 강 씨가 안기부에서 작성한 진술서에 따르면 ‘유태흥의 자녀들은 나를 삼촌이라 부르고 아이들의 졸업식에도 유태흥을 대신해서 내가 참석하는 사이였다’고 밝혔다. 대법원장과 각별한 인간관계가 최고의 정보망을 동원할 수 있는 요정경영자인 이경자 측에 포착돼 보석청탁을 위해 3천만 원이란 거금이 전달됐다는 것이다. 진실위는 대원각을 최고의 정보가 유통되는 곳이며, 여주인은 이를 캐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단정했다. 그만큼 그 시절에는 요정정치가 판을 쳤고, 그 오너는 중정이나 안기부 못지않게 중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돈과 로비로 얼룩진 대원각 외화밀반출사건 전모

안기부 재부활 일등공신이 그들 부부

34만 달러 밀반출사건 관련자 보석

안기부는 1983년 1월 5일 수사를 시작, 기본적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9일부터 관계자 9명을 소환, 그로부터 사흘만인 12일 수사를 종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불과 1주일 만에 전모를 파악했으니 얼마나 강도높은[?] 수사를 벌였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안기부는 ‘본명 [강건용비서관을 의미]의 비위사실 중 외화 34만 달러 밀반출사건 관련자 보석과 관련한 3천만원 금품수수 및 재산해외도피 혐의사실에 대해 1983년 1월 12일 오후 4시, 대검 중앙수사부에 신병 및 증거품 공히 이첩, 여타 비위사실에 대해서는 관계기록 첨부해 청와대 사정실에 통보, 종결처리’라는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안기부가 강건용비서 관 뇌물사건을 조사, 대원각 사모님 이경자 씨가 관련된 외화 밀반출사건은 다시 대검 중수부에 이첩함으로써, 사건이 재수사되고 결국 이 씨의 남편 이태희의 구속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 뒤 강건용비서관이 안기부 조사과정에서 폭행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안기부가 자정 차원에서 자체조사에 착수했고, 1983년 2월 ‘전 대법원장 비서관 강건용조사 경과보고’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기부는 이 보고서에서 ‘1 개요, 당부에서 지난 1월 5일부터 1월 13일까지 전 대법원장 비서관 강건용의 사건개입 및 금품수수 혐의사실을 조사, 처리하였는바, 강건용의 범죄사실로 1, 금품수수-사건개입 8건 4450만원, 인사청탁 2건 210만원, 계 4660만원, 2, 해외재산도피 미화 3만 4천달러(한화 2720만원상당)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구타사실도 일부 확인했다고 기재함으로써 안기부 스스로 가혹행위를 인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기부는 ‘동건 수사과정에서 담당수사관이 피의자 강건용을 침상목으로 둔부 3회, 손바닥으로 따귀 5회 등 구타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이에대한 수사경위 및 관계관 처리보고 보고서를 작성한다고 밝혔다.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중정이나 안기부가 내부보고서 형태로나마 연행된 피의자에게 구타 등 가혹행위를 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은 이 보고서가 유일하다는 것이 과거사 진실위 조사결과이다. 안기부는 이 보고서에서 강건용비서관 연행과 신문과정도 자세히 언급했다.

안기부는 ‘청와대 사정비서관실 통보자료를 단서로 1983년 1월 5일 수사에 착수했고, 같은 날 오후 8시쯤 강건용비서관의 집을 급습, 압수수색을 실시하자 강건용비서관은 안방 장롱에 숨었고, 부인인 39세 김모씨는 드러누워서 심장병 발작으로 위장하는 등 수색을 방해했으나, 수사관들의 집요한 설득으로 밤 11시 30분 검거해서 연행했다’고 밝혔다. 또 강건용비서관은 연행 때부터 허위로 혈압이 90/60의 저혈압이라며 신병을 이유로 조사에 비협조적이었으나 의사의 건강검진결과 정상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 ‘수사관 심문 때 자신의 결백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할 뿐, 범죄사실에 대해 ‘악의에 찬 중상모략’이라고 전면 부인하고 교활한 행동으로 범죄사실 은폐기도를 일관타가 계속하여 1월 6일 오후 8시 30분께 진술내용의 모순점과 혐의사실 등을 집중 추궁했으나 묵비권을 행사하며 조사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특히 강비서관은 1월 6일 사표 제출뒤 자신의 혐의사실을 알고 공범인 오00[법률공론사 총무부장을 의미]와 범행일체를 부인하기로 사전 모의했다고 기재하고 있다.

안기부 가혹행위로 모든 자백 받아내

안기부는 대원각 사모님 이경자 측으로부터 보석허가 주선명목으로 돈을 받은 사실은 각목을 동원한 후에 밝혀냈다고 스스로 밝혔다. 강비서관을 엎드려 뻗쳐 시킨 뒤 침상목으로 둔부를 1회 때리고 손바닥으로 뺨을 2회 때리자, 대원각 여주인 이경자[42세]의 보석을 위해 1천만 원 받은 사실을 일부 시인했다. 하지만 강 씨는 사법부에서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비위에 비하면 ‘이 정도는 깨끗한 편’이라고 강변했던 것으로 드러났으며. 강비서관은 이경자의 사촌동생 이재완의 보석과 관련해 금품을 받은 것은 계속 부인했다. 안기부는 1월 9일 밤 11시, 공범으로 체포된 오00로부터 이경자 씨의 사촌동생 보석과 관련해 강 씨에게 2천만 원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받아낸 뒤 이를 추궁했지만 강씨는 ‘하늘에 맹세코 알지 못하는 중상모략이며 오00이 착각하고 허위 진술한 것’이라고 시치미를 뗀 것으로 드러났다.

이때 검찰이 다시 엎드려 뻗쳐를 시킨 뒤 침상목으로 엉덩이를 2회 대리고, 뺨을 3회 더 때리자 2천만 원을 받은 사실을 비로소 시인했다고 밝혔다. 안기부는 이같이 가혹행위를 일부 인정한 뒤 지휘책임을 물어 수사책임자인 담당과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고 밝히며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전두환정권은 이 사건을 계기로 1983년 2월 1일자로 안기부에 법률담당관으로 검사를 파견됐으니 그가 바로 정형근 검사였다. 검사의 지도를 받으라는 전두환의 지시는 안기부의 수치가 됐고, 안기부는 27만 달러 외화밀반출사건과 관련, 이경자-이재완 보석허가 결정과 집행유예선고 등의 과정에서 검찰과 법원이 뇌물을 받은 단서를 포착, 사법부 비리라며 대대적 반격에 나서게 된다. 특히 안기부는 1983년 2월 12일 외화 34만 달러 및 27만 달러 밀반출 사건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법처리과정에서의 부당사항 유무, 진상조사에 착수, 2월 26일 이태희와 1982년 9월 중순 보석으로 석방됐던 이재완 등을 전격 구속하게 된다. 이태희는 1983년 1월 안기부 조사 때 ‘혐의 없음’이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약 1개월 만에 다시 혐의가 입증돼 구속된 것이다.

이는 안기부 스스로 1월초 조사 당시 중정요원 출신의 이 씨를 봐줬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안기부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검사 판사 등 현직 관련공무원을 제외한 변호사, 중요 피의자 및 그 가족 등 총 21명을 조사했으며, 반사회적 인물 경영기업 특별세무조사 및 가택수색을 단행해 대원각 등 11개 업소에 국세청 정예요원 112명을 투입, 특별세무조사를 실시했고, 중요관련자 가택 9개소를 수색했다’고 밝혔다. 특히 연행대상자 21명을 살펴보면 외환 34만 달러보다는 대원각이 밀반출한 27만 달러사건에 집중돼 있었음이 드러난다. 연행대상자 리스트에 따르면 대원각 주인 이경자[42세]가 27만 달러 환전 및 밀반출 혐의로, 이경자의 남편인 삼호개발고문 이태희[49세]가 사건수습책 등의 혐의로, 이경자 씨의 고종사촌 동생인 이재완[37세, 미투리 양화점 주인]이 27만달러 밀반출 주범으로, 또 이재완의 부인인 안효경[38세] 역시 27만 달러 밀반출 주범으로 연행됐다. 또 이경자씨의 친언니인 삼청각 주인 이정자[43세]가 외화 밀반출 때 동행 출국한 혐의로, 이정자의 남편인 한태규 기원관광 사장 등도 연행조사를 받았다. 이경자 부부, 이정자 부부, 이재완 부부 등 이 씨 일가 6명이 몽땅 연행됐다.

풀려난 뒤 재조사 움직임에 미국행

이들 외에도 구로세관 관세담당 주사보였던 이태희의 동생도 연행됐고, 변호사들이 향응을 받았던 룸살롱 대원의 마담도 소환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경자 씨에게 보석결정을 내린 A부장판사, 즉 박준용판사도 법관직을 사임한 상태여서 안기부에 연행돼 조사를 받은 반면 이재완의 보석을 허용한 B부장판사, 즉 정명택판사는 사퇴압력을 받았지만 현직을 고수해 현직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연행을 모면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판사도 만약 사퇴했다면 안기부로 연행돼 강도높은[?] 수사를 받았겠지만, 비록 시골로 좌천이 될 망정, 사표를 내지 않아 화를 모면한 셈이다. 특히 이경자의 남편인 이태희는 1월8월 연행됐다가 1월 9일 ‘혐의없음’으로 풀려난 뒤, 수사가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1월 23일 미국으로 출국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앞서 이경자도 1월 7일, 이재완의 부인 안효경은 1월 4일 각각 미국으로 출국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안기부는 이 보고서에서 이들 3명을 미국도피자라고 기재했고, 미국도피자 3명 중 이태희 이경자 부부는 2월 16일, 안효경은 2월 17일 귀국했다고 밝혔다.

당시는 한미사법 공조협정에 체결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이들이 미국에 눌러 앉았다면 소환이 힘들었겠지만, 한국에서 대원각, 삼청각 등 큰 사업체를 운영했으므로 자진 귀국한 것으로 보인다. 안기부는 또 현직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조사를 하지 않은 ‘본사건 처리담당 관련자’ 명단도 작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담당검사와 검사장 등 5명, 검찰 수사관 3명, 법원 판사 2명, 경찰 1명 등 11명이지만, 이중 판사 1명은 퇴직함에 따라 조사를 받았기 때문에 실제로 미조사자는 10명이다. 본보 확인결과 담당검사는 이진녹검사, 담당부장검사는 박혜건 부장검사로 드러났다. 또 피의자 가족, 즉 이태희 일가는 담당검사인 이진녹검사에게 90만원 상당의 소파, 230만원 상당의 비디오 및 카메라세트, 26만원 상당의 갈비 등 406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했으며, 서울지검장 L씨에게도 제주그랜드호텔 숙박티켓을 제공했다는 것이 안기부 보고서의 내용이다. 이태희-이경자 부부가 판사는 물론 검사까지 구워삶았다는 것이다. 또 담당부장 검사 박혜건의 입회서기에게도 피의자 가족이 현금 25만원, 남부지청 수사관에게도 피의자 가족이 현금 25만원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피의자가족은 자신들의 변호사를 통해서도 검찰 쪽에 뇌물을 전했으며, 피의자가족이 직접 현금, 선물 외에도 식사, 주연, 골프 등의 접대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기부는 이태희 일가가 이 같은 로비를 통해 밀반출 주범인 이재완의 부인 안효경은 입건하지 하고 불문처리를 받았으며, 지나치게 관대한 처벌이 내려졌다고 평가했다. 또 법원이 중요사건 피의자에게 보석을 허가하면 검찰은 즉각 항고하는 것이 관례지만, 이경자씨, 이재완 등은 보석으로 석방된 데 대해서는 검찰이 항고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검찰이 1982년 7월 10일 대원각 여주인 이경자씨가 임신을 하지 않았음에도 임신을 한 것으로 조작해 신문조서를 작성, 보석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줬다고 지적했다. 검사는 진단서 등 객관적 입증자료 확인없이 임신사실을 인정했으며, 변호사는 한양대 내과과장이 7월 27일 이경자씨에 대해 불임진단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7월 28일 임신을 이유로 보석을 신청했고, 박준용부장판사는 8월 16일 확인없이 보석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검찰, 이경자를 임신으로 조작해 풀어줘

안기부는 검찰이 ‘임신 아닌 자를 임신으로 조작’한 조서의 일부내용도 공개했다. 안기부는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이경자씨는 임신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고 밝혔다. ‘문: 신체는 건강한가요? 답: 현재 임신 6개월로 몸이 불편합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경자씨는 안기부에서 1983년 재조사를 받으며, 조작된 조서가 작성된 경위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기부는 ‘임신유도신문정황[이경자진술]’ 이라는 문답에서 ‘문: 신체는 건강한가요 답: 아프지는 않고 몸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문: 임신했나 보군요[조사관이 힐끔 봄] 답: 예정[월경]이 좀 지나서 몸이 다른 것 같습니다. 문: 뭐 아주머니 많이 된 것 같애요. 똑바로 대[큰소리], 답: 많이 되긴 뭐가 많이 돼요. 문 : 5-6개월 된 것 같은데 똑바로 대[큰소리], 이경자는 창피해서 긍정적 수긍’이라고 적고 있다. 검찰이 스스로 임신으로 조작, 보석으로 풀려나게 했다는 것이다. 안기부는 사건지휘책임자인 서울지검장 L씨가 이태희의 00상고 동기동창이었기 때문에 지검장에게 직접 로비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때 서울지검장은 이창우 지검장이었다. 이태희는 사건발생 직후인 1982년 7월 17일, 00상고 동창회 총무에게 자신의 자가용과 여비 20만원을 줘서 당시 경주보문단지 내 코오롱호텔에 투숙, 휴가 중이던 서울지검장을 접촉, 이경자 기소 유예 등을 청탁하며, 동창회 기금 1천만 원을 내겠다는 제의를 했으며, 이때 지검장은 기소유예는 어렵다며 휴가가 끝난 뒤 알아보겠다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그 뒤 이태희는 동창회 총무와 함께 지검장을 직접 방문, 기소유예를 요청하기도 했고 10월 20일 지검장에게 호텔숙박티켓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서울지검장은 1982년 10월 31일 수원의 한 골프장에 사건담당인 말단 검사를 초청해 피의자의 남편인 이태희와 골프를 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태희의 부인 이경자에 대해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은 10월 18일, 골프를 친 것은 10월 31일로, 집행유예가 선고된 이후 골프를 쳤기 때문에 형량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검찰이 집행유예임에도 불구하고 항소를 포기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또 검찰이 대원각 주인 이경자씨에게 특별면회를 허용해 주는 등 우대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담당검사실에서 이경자씨가 남편 이태희와 10분간 특별면회를 했으며, 수사 중에 대원각 고용사장인 박영찬와 3-4회 특별면회를 했고, 같은 피의자인 사촌동생 이재완, 사촌동생의 처 안효경과 특별면회를 했다고 밝혔다.

또 담당검사는 처음에는 이경자씨에게 ‘이년 저년’ 하다가 ‘걱정 말라’고 위로를 하고, 사식을 넣어 달라고 하라, 대원각 놀러 가면 만날 수 있느냐는 등의 말을 건네고, 감방도 좋은 방으로 이감 등의 특별우대를 해줬다고 밝혔다. 특히 안기부는 1983년 2월 19일 오전 10시 30분을 기해 이태희-이경자부부 및 주변인물들의 반사회적 반국민적 행위응징을 위한 특별세무조사와 가택수색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세무조사 11개 업체, 가택수색 9개소로 수사결과 탈세가 발견돼 예상추징금이 약 10억 원에 달하며, 대원각 주인 이경자는 특가법에 의거 가중처벌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이태희–이경자 부부는 탈세에 의하지 않고도 뇌물공여 등으로 처벌이 가능한 상태이며 가택수색이 검찰의 수사이후 늦게 실시됨에 따라 외화 등을 다른 곳에 은닉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태희와 이경자부부는 탈세와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찾았고, 이재완에게는 여권법 위반을, 이재완의 부인으로 1982년 불기소 처분을 받았던 안효경에게는 외국환관리법을 적용해 처벌하라는 의견을 달아서 검찰로 이첩했다. 이들 4명은 모두 ‘입건 구속가능’ 이라고 기재돼 있었다. 반면 삼청각 주인인 이정자 부부에 대해서는 세금포탈이 발견돼 거액세금추징이 가능하지만 형사 입건될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정자부부 또한 검찰수사과정에서 불법이 발견돼 기소되고 실형판결을 받게 된다.

밀반출 외화로 킹사우나 기반 마련

또 미국으로 밀반출 된 27만 달러는 미국 뉴저지 미드랜틱은행에 정기예금으로 예치돼 있으며, 이중 4만 5천 달러는 이미 사용했으므로 나머지 돈의 국내회수를 추진해야 한다고 안기부는 주장했다. 이태희 등이 돈을 예치한 미드랜틱은행은 1995년 PNC뱅크에 인수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PNC뱅크는 현재 뉴저지 주와 펜실베이니아주 등에서 가장 큰 은행 중 하나로 꼽힌다. 안기부는 이 건과 관련 검찰이 1억 9179만원을 추징, 징수했지만, 밀반출외화는 이와 별도로, 국익차원에서 국내로 원상 회수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이후 이 돈이 회수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이 씨 부부는 외화밀반출적발 3년 만인 1986년 최소 1천만 달러이상을 투자, 뉴저지 주 팰리세디움 대원을 인수했다. 외화밀반출과 팰리세디움 대원 인수,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 추정이다.

안기부가 1983년 2월 검찰과 법원의 사건처리과정을 조사한 뒤 이태희 부부 등을 구속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함에 따라 대검 중앙수사부가 재수사에 착수, 2월 26일 이태희, 이재완, 안효경과 이재완에게 여권을 만들어 준 전태일 세일관광사장, 최명규 세일관광부사장 등 5명을 구속하고, 대원각 주인 이경자씨, 대원각 고용사장 박영찬, 이경자의 언니인 삼청각 주인 이정자, 이정자의 남편 한태규 등 5명을 불구속입건했다.이에 대해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는 ‘안기부가 2월 19일 대대적 세무조사와 가택수사를 실시한 것을 감안하면, 중간보고서는 2월 19일 이후에 작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며, 대검 중수부가 2월 26일 이들을 구속했기 때문에 대검은 길어봐야 7일간 수사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등 독자적 수사를 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다’고 분석했다. 검찰은 사실상 안기부 중간보고서를 받아쓰기하고 집행하는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특히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는 안기부가 대원각 외화밀반출사건이 관대한 처벌을 받았다며 법원을 공격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기부는 34만 달러외화 밀반출사건과 비교하면 27만 달러 외화밀반출사건이 ‘과도한 경미처리’라고 주장했지만, 실제 범죄내용을 살펴보면 34만 달러 외화밀반출사건이 죄가 무겁다고 주장했다. 과거사 진실위는 27만 달러 외화밀반출사건은 단순 외화밀반출사건인 반면 34만 달러 외화 밀반출사건은 한국-일본-홍콩이 연결된 국제삼각밀수 사건이며, 이들이 금괴 52킬로그램을 밀수입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34만 달러사건은 단순 외화밀반출사건보다 구형량도, 선고 형량도 높았다는 것이다. 또 안기부가 34만 달러 외화밀반출사건은 보석된 사람이 1명도 없는 반면 27만 달러 외화밀반출사건은 3명이나 보석됐기 때문에 매우 부당하게 처리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34만 달러 외화밀반출사건의 주범격인 암달러상 여모씨도 이경자가 보석으로 풀려나던 날 함께 풀려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태희부부가 선임한 변호사는 변갑규, 윤태방, 나정욱 등 3명으로, 형사사건에서 손꼽히는 변호사로 알려져,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한 것도 상대적으로 낮은 처벌을 받게 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안기부, 이씨 부부 덕에 5공 헤게모니

1983년 안기부의 재조사와 대검 중수부의 재수사로 결국 이태희 등 일가는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 1983년 5월 23일 검찰은 이재완에게 징역 1년, 이재완의 부인 안효경에게 징역 5년, 이경자-이태희 부부에게 각각 징역 3년, 이정자-한태규 부부에게 각각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서울형사지방법원은 같은 해 6월 8일 선고공판에서 이재완에게 징역 10월, 안효경에게 징역 3년, 이경자에게 징역 1년 6월, 이태희에게 징역 2년, 이정자-한태규 부부에게 각각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이태희일가는 1심 선고 뒤 이에 불복, 즉각 항소를 했고, 이태희 등은 형량이 조금 낮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1983년 10월 25일 서울고법은 항소심선고공판에서 이재완에게는 1심과 동일한 징역 10월, 부인 안효경은 1심 3년에서 1년 6월로 낮춰졌고, 이경자는 1심과 동일한 징역 1년 6월, 이태희는 1심 2년에서 1년 6월로 감형됐고, 이정자는 1심과 동일한 1년 6월이 선고됐다.

결과적으로 안기부는 중정요원출신의 이태희, 대원각 사모님 이경자씨의 외화밀반출사건 당시 관대한 처벌 등 검찰과 법원의 뇌물수수와 부적절한 처리 등의 비리를 포착, 이를 빌미로 공권력의 대명사인 검찰은 물론 법원보다 우위에 서게 된 것이다. 안기부가 사실상 이 씨 부부 덕택에 검찰-법원을 제치고 5공 정권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셈이다. 국정원 과거사진실위는 이 사건을 계기로 검찰은 시국 공안사건에서 안기부에 눌리게 됐고, 안기부가 법조계를 견제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또 ‘그때까지 팽팽하게 맞서왔던 안기부와 검찰의 힘겨루기에서 안기부가 검찰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계기를 만든 분수령이며, 1026이후 침체돼 있던 안기부가 5공 중반기 이후 권력의 중추기관으로 재등장한 것도 이 사건의 여파’라고 분석했다. 이는 과연 안기부가 당초 건의한 밀반출한 외화 국내회수가 제대로 진행됐을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이 사건이 안기부의 면을 세워주는 바람에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결국 이 씨 부부의 미국 진출의 편의 등 이들 부부에게는 화가 복이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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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각, 국내최대요정 한때 호스티스만 3백여명 대원각, 이경자가 월세 영업 – 종업원이 150명

성북동 요지에 자리한 국내 최대요정

삼청각은 국내 최대 요정으로 서울 성북구 성북동 330번지에 자리 잡았으며, 수많은 정객과 재계 인사들의 사랑을 받은 곳이다. 삼청각은 6천여 평의 넓은 대지에 4층짜리 한옥본관과 별관 4개를 갖추고 있으며, 지난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가 서울에서 열릴 때 신축한 요정이다. 본관에는 6백 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대형홀이 있으며, 각종 대소연회석을 완비하고 있고 상주하는 호스티스만도 3백여 명에 이른다. 특히 삼청각은 각종 수목이 들어서 있어 서울도심에서 이곳처럼 경치가 수려한 곳은 드물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청각은 대지 및 건물과 운영권이 모두 이정자씨 소유였다. 대원각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 15-86소재 고급요정으로 삼청각 주인 이정자 씨의 친동생인 이경자씨가 운영했다. 대원각은 대지 및 건물 주인은 따로 있고 이경자씨가 보증금 1억 원에 전세를 얻어, 일부는 갈비집, 일부는 요정으로 운영했다. 대원각 역시 대지와 임야를 합쳐 만평에 이르며, 자유당시절 정계거물인 이모씨 소유였다가 김영한씨가 매입했고, 이경자씨는 1970년 5월부터 보증금 1억 원에 월세로 영업해 왔으며, 종업원이 한때 150명을 넘는 거대기업이었다. 대원각은 일제시대에는 백인기 씨의 별장이었으며, 해방직후 청암장이라는 이름으로 이승만박사의 별장으로 이용됐으나 이 박사 하야 뒤 김영환 씨 소유가 됐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김 씨는 지난 1996년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기증해 화제가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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