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반자 샌드라 정여사 ‘Glin-TV 또 다른PD’
◼ 보수성향을 대변한 LA원로언론인으로 기억
◼ 생전에 신세진 일은 꼭 갚아야 하는 ‘삶자세’
◼ 타운 원로들 한결 같이 ‘비보에 마음 아프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삶과 죽음을 읊은 시에서 “생(生)이란 한 쪼가리 뜬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사(死)란 한 쪼가리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도다. 뜬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듯이 나고 죽고 오고 감이 또한 이와 같도다.”라고 했다. 언론인 정진철(Jin Chul Chung) Glin-TV 대표는 미국에서만 50여년 기간 동안 거주하면서 한인 언론계에서 활동해 온 대표적인 한인 1세대 원로 언론인으로 꼽힌다. 한국일보 미주본사 라디오 서울 보도국장을 포함해 중앙일보 미주본사 편집국장 대리 등을 역임한 그는 지난 12월 23일 오전 6시 57분 LA 자택에서 숙환으로 영면했다. 고인의 장례예배는 새해 2025년 1월 11일(토) 오전 11시 LA한국장의사에서 이영성 목사(윌셔연합감리 교회) 집전으로 거행되고, 하관예배는 1월 13일(월) 오전 10시 로즈힐 공원 묘지에서 집전될 예정이다. <성진 취재부 기자>
2024년 12월 23일 월요일, 크리스마스 절기로 많은 사람들이 연말을 즐기는 때, “정진철 대표 소천” 소식은 특히 1세대 올드 타이머들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여러원로들은 “아니…엊그제까지 정 대표가 만든 유튜브 영상을 보았는데…. 이게 무슨 소식입니까!” 라고 기자에게 전화로 대화하면서 더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LA에서 남다른 교분을 지닌 조남신 전 한인영사협회장은 ‘정 대표가 임종이 가까이 왔다’라는 소식을 전해들을 때 기자에게 “정 대표를 만나거든 ‘하늘가는 밝은 길이(찬송가 493장)’를 들려 주시오”라고 했는데, 이날 부음 소식을 듣고 “참, 가슴이 아픕니다. 생명과 평강의 하나님 나라에서 눈물도 애곡도 죽음도 없이 인식하소서!”라고 조의를 담았다.
한국일보 미주본사 창립자인 장재구 회장은 서울에서 부음을 듣고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라 믿을 수가 없습니다”고 말했다. LA올드타이머협회 이한종 회장은 “80대 노장으로 짱짱하게 다니신 분이… 이렇게 가시다니요.”라며 슬퍼했다. 지난날 LA 이민 생활 중 정진철 대표와 연세대 동문으로 남다른 교분을 지녔던 서울에 거주하는 보험인 백형설 장로는 “지난번 서울에서 반갑게 만난 것이 어저께 같은데… 이런 비보를 듣다니 인생무상입니다…”라며 애석한 마음을 표출했다.
하와이 6‧25 참전유공자회 사무총장을 지낸 장광수 회장은 “정진철님이 하와이에서 활동할 당시 많은 성원과 후원을 받았는데 이렇게 떠나 시다니 가슴 아픕니다”라고 애석한 심정을 토로했다. 지난 10월 한국 부산에서 개최된 한미동맹 71주년 기념대회에 함께 동반한 김영구 목사(AKUS-LA회장)는 “부산에서 여러 이벤트를 미주 동포들에게 유튜브로 알려주기 위해 밤잠도 마다하신 분”이라며 “지난 동안 보수를 대변한 언론인이셨는데 매우 애석하다”고 말했다. 당시 부산대회에 참석한 그레이스 송 전미주3‧1여성동지회장은 “부산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LA에 돌아 와서 슬픈 소식을 듣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라며 슬퍼했다. 정 대표의 소천 소식은 타운 문화 교육계 인사들에게도 충격이었다. 한국자개예술을 전문하는 김경자 화백은 “듣고 싶지 않은 비보를 접하였습니다”면서 “고통보다 하늘에서 고마운 분들을 지켜 보실 것”이라고 조의를 표했다. 미주한국학교총연합회의 최정인 이사장은 “생전 우리 협회에 남다른 애정으로 동요합창대회를 취재하던 모습이 생생한데….”라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듣고 싶지 않은 비보를 접하다”
코리아타운의 대표적 일식당 ‘아라도’의 김용호 회장(남가주한인회외식업연합회장)은 정진철 대표와는 동서지간이다. 이민 생활에서는 둘이서 형제 이상으로 지냈다. 정 대표에게 중매를 선 것도 김 회장이었다. 특히 김 회장의 둘째 아들 샘은 어린 시절 한때 정진철 대표가 키웠다. 정 대표가 병원에서 퇴원하여 자택에서 죽음을 앞두고 물이나 아무것도 못 먹고 고통 중에 있을 때, 샘은 거의 매일 이모부인 정 대표를 찾았다. 정 대표는 샘이 찾아오면 물도 마시고, 차가웠던 손도 따뜻해지고, 대화도 부드러워 호스피스 간호사도 “샘이 오면 기적이 나타난다”라고 놀랠 정도였다. 이종선 호스피스 간호사는 정 대표가 운명하기 전까지 하루 3번씩 방문하였는데, 급할 때는 수시로 방문하여 마지막 가는 길에 육체적 고통을 다스려주고, 정신적으로도 위안을 안겨주어 정 대표의 하늘 길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호스피스 간호사의 중요성을 보여 준 좋은 본보기였다.
정 대표의 장례식이 치루어지는 한국장의사의 임성혁 사장은 유족 측이 장례 상의차 방문했을 때 유족보다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상담 시간이 길어 지기도 했다. 임 사장은 한국장의사에 영입 되기 전 한국일보 라디오 서울 기자였는데 당시 정 대표가 보도국장으로 임 기자를 성의껏 지도하였기 에 임 사장은 마치 ‘스승이 별세했다’는 심정을 지니고 있었다. 정진철 대표와 남다른 교분을 지낸 이하성 박사(소아과)와 부인 이형숙 여사(전연세대남가주 동문 회장)는 누구보다 정 대표의 소천을 애석해 했다. 정 대표가 헐리웃드 차병원에 입원할 때부터 퇴원하여 임종 때까지 가족처럼 도욌다. 정진철 대표는 남에게서 아주 작은 도움을 받더라도 ‘꼭 은혜는 갚아야 한다’는 신조를 삶의 한 가닥으로 생각하여 왔다.
그가 하늘나라로 가기 수 주 전 타운에서 이영송 전 LA평통회장이며 코리아타운 시니어센터 이사장의 국민훈장 수훈잔치가 열렸다. 당시 정 대표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자택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힘들게 본 카톡에서 이영송 이사장의 수훈 잔치 소식을 보고 동료 언론인 로버트 김 회장(재미 MBC사우회)에게 “수훈 잔치를 꼭 카메라에 담아 달라’고 신신당부 했다. 김 회장이 수훈잔치 영상을 찍어오자, 정 대표는 아픈 몸을 마다하고 죽을 힘을 다하여 그 영상을 수시간에 걸쳐 편집하여 유튜브 영상으로 올렸다. 이를 본 로버트 김 회장은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보고 너무 깜짝 놀랐다. 물도 음식도 못 먹는 상태에서 그것도 수시간에 걸처 편집을 해서 구글 인터넷에 올려 모든 사람들이 시청할 수 있게 만들다니… 그것이 정 대표의 마지막 작품이었습니다.”며 울먹였다.
그후 기자가 정 대표에게 다구쳤다. “아니 몸도 가누지 못할 상테에서…어찌…그런 일을…”라고 하자, 그는 아주 힘들게 말했다. 오래 전인 40년전 중앙일보 기자 시절에 자신의 치아가 많이 나빠진 당시 치과의사 이영송 이사장이 무료로 정성을 다해 망가진 치아를 완전히 고쳐 주었다면서, “언젠가 그 은혜를 갚고 싶었는데…죽기 전에 할 수 있었다.”며 힘들게 말했다. 그것이 기자가 정 대표와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박용필 전중앙일보 미주 본사 편집국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는데, 지난12월 23일 정 대표의 부음을 박 국장에게 전하자 망연자실로 아무런 말도 없었다. 1주전 정 대표와 함께 박용필 국장과 기자가 스마트 폰으로 찍은 사진이 생전의 그의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
“40년전 은혜를 갚을 수 있어 행복”
정진철 GlinTV대표는 오랜 동안 국내외 신문사와 라디오방송사 경험을 살려 인터넷과 디지털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시대에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혁신적인 인터넷 방송 매체(Glin-TV, Global Internet TV(www.gli-ntv.us)를 2013년부터 운영했다. 그의 삶과 인생의 동반자 샌드라 정 여사는 Glin-TV에서는 보이지 않은 PD였고, 카메라 우먼이고 리포터이고 성우였다. 샌드라 정 여사가 없었다면, Glin-TV도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 정 여사는 선교여행으로 전세계를 다니면서도 옆에 카메라를 꼭 지니고 다녔다. 그 덕택에 Glin-TV 시청자들은 안방에서 세계 오지나 유명 관광지를 보고 즐길 수 있었다. Glin-TV는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서 시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유튜브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빠르고 재미있는 방송을 제공하는 스미트폰을 포함한 모바일 기기에 최적화된 방송이었다.
그가 설립한 Glin-TV는 지구촌 식구들의 의견을 영상이나 댓글을 통해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도록 가교를 틀고 세계적인 토론 광장을 만들어 갔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동포들의 본국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분야를 객관적인 관점에서 종합해 소통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이 매체를 통해 각종 뉴스와 사회적 이슈를 동시에 세계 곳곳에 보내는 재미로 열심히 영상을 다루어 왔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한 생방송이 가능한 기능을 십분 발휘해 커뮤니티의 각종 행사를 실시간으로 시청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가 제작한 GlinTV 프로그램 중 가장 인기 프로는 시사저널 프로그램이다. 국내외 다양한 이슈를 주제로 5분 칼럼을 통해 어떤 경우는 2시간 짜리까지 제작해 사회를 비판하고 평가했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그는 지난 50여 년간의 현직 언론 생활의 경륜을 살려 냉철한 비판의식을 불어 넣었다. 그는 보수 성향의 언론인으로 그는 라디오코리아 시사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해 우익적인 시각으로 한국 상황 등에 대해서 평론을 했다. 서울에서 1938년 7월 30일에 출생한 정진철 대표는 수송국민학교, 중앙중고등학교, 연세대 정외과 졸업 후 언론계에 투신하여 1962년 민국일보 견습기자로 입사, 2년후 1964년 방송에 진출하여 MBC 문화방송에서 1969년까지 보도국 기자, 보도제작부(TV) 다큐멘터리 PD로 활동했다.
그후 괌, 홍콩, 하와이, 알라스카를 거쳐 LA로 이주했다. 그후 1977년부터 중앙일보 LA지사 편집국장 대리, GM-TV, KACB-TV, 1988년부터 동아일보 LA지사 편집국장, 1990년 IBS-TV 보도제작국장, 1992년 라디오서울 전신인 KCB 한인 방송 보도국장 겸 이사, 1995년부터 한국일보 미주본사 라디오 서울 보도국 앵커, 미주한국일보 몽골 지사장(2013) 등을 지냈다. 그는 2013년부터 Glin-TV(유튜브 방송)를 설립하여 영면하기 전까지 무려 총 1,600여편을 제작 했다. 저서로 미국의 정치 사회를 심층분석한 ‘미국, 그 속 좀 보자구요’가 있으며 연방의회 및 LA 시의회 표창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샌드라 정, 딸 마리안 정과 아들 도널드 정이 있다.
영면전까지 총 1,600여편 제작
하늘나라로 가기 일주일 전, 정 대표는 기자의 손을 힘겹게 잡으며 “5년을 더 타운을 함께 누비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자는 그 손을 꽉 잡고 “그래… 적어도 10년을 가 보도록 하자”고 답했다. 기자보다 더 오래 살 것으로 함께 지내왔는데 이처럼 훌쩍 빨리 갈 줄은 2개월 전까지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고 ‘인생무상’이라고 한 말이 새삼 의미있게 들린다. 기자는 남은 인생이 무상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몇 번이고 다짐해 보지만 정말 그럴 자신이 있는지 계속 자문해야 할 판이다. 40년 언론지기 정진철 대표의 죽음을 정리하는 기사를 써 내려가는 기자에게 친우 조남신 전영사협회장은 이런 글로 위로를 전해왔다.
<<티베트 히말리아 산맥 해발 5,000 m 이상 고지에 사는 네팔 사람이나 티베트 사람들은 불교의 우주관이나 인생관이 수 백 년 동안 대대로 뼛속 깊이 염색되어 있어 죽는 것을 두려워 하거나 슬퍼하지도 않고, 그냥 삶의 한 부분이라고 여기고 살아간답니다. 참말로 겁나게 훌륭한 사람들이여…한 해가 저물어 가고 새해가 오는 겨울 하늘에 떠나가는 친구를 바라보는 남은 자의 눈물이 어른 거립니다. 생명은 하나 뿐이고 이 땅의 삶도 한 번 뿐인 편도여행이기에, 떠나는 사람의 울부짖음 도, 보내는 사람의 마음도 공허하기는 마찬가지이외다. 구주 예수를 믿어 영생의 복된 신 소망을 사는 우리 일지라도 죽어 떠나고 나면 더 이상 볼 수 없기에 허무의 건너편에 있는 영원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