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말취재]본국 한국일보, 효성 기사 삭제 사건 왜 일어났나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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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첫째 조현준 회장에 불리한 녹취록 바탕으로 기사 작성
◼ 둘째 조현문의 홍보대행하는 변호사가 한국일보의 현 자문 변호사
◼ 둘째에게 유리한 국면 만들려고 녹취록 기자에게 흘렸을 가능성도
◼ 기사 삭제든, 변호사 윤리 위반이든 망가진 한국일보 현실 보여줘

지난주 본지는 효성가 형제 간 11년 분쟁을 집중취재한 바 있는데, 효성의 골육상쟁은 본국에서도 작지 않은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최근 형제간의 전쟁을 다룬 한국일보 기사가 삭제되면서(미주한국일보는 관련없음) 언론계 안팎에 큰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까지 쟁점은 한국일보 편집국장이 효성가 기사를 기자들의 동의없이 무단으로 삭제했다는 쪽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지만, 한국일보에서 입수해 보도한 녹취록의 배후에 대한 논란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어 사건의 국면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전망이다. 본지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첫째인 조현준 효성 회장에게 다소 불리하게 보일 수 있는 이번 기사에 등장한 녹취록은 지난주 본보가 보도했던 두 사람의 재판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이를 입수한 건 둘째 동생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의 홍보대행인 장모변호사로 알려져 있는데, 이 변호사는 한국일보의 자문변호사이기도 하다. 즉 자신의 클라이언트로부터 받은 녹취록을 자신이 자문으로 있는 회사로 하여금 보도하게끔 했을 가능성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랬다면 한국일보 측이 더 기사에 조심했어야 하는데, 한국일보 스스로가 이해상충 행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현재 한겨레 등 본국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한국일보에서는 지난달 28일 새벽 4시 30분<‘지분 압박’일까 ‘결별 통보’일까…효성 형제 녹취·편지 봤더니>단독 기사가 출고됐다. 이 기사는 약 6시간 만인 당일 오전 10시 12분 삭제됐다. 삭제를 지시한 건 강철원 한국일보 편집국장이다. 이 기사에는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의 조현준 효성 회장에 대한 강요미수 혐의 형사재판에 증거로 제출된 형제간의 대화 녹취록이 담겨 있다. 이 녹취록은 다음주 <선데이저널>이 관련 내용을 보도할 예정인데, 결국 두 형제의 갈등이 본보가 15년 전 보도했던 효성 일가의 미국 부동산 매입이 발단이 됐음이 드러나 있다. 어쨌든 보도 내용의 핵심은 둘째인 조현문 전 효성그룹 부사장이 첫째인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부동산 매입을 질타하고, 조 회장이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내용이다. 그룹의 위기가 첫째인 조 회장으로부터 왔다는 걸 암시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기사 삭제의 이면

어쨌든 이 기사는 출고 6시간 만에 편집국장의 단독적인 결정으로 삭제됐다. 기사를 승인한 사회부장과 법조팀장은 삭제 여부를 판단하는 자리에 끼지 못했고, 취재기자들은 사후에야 사실을 알았다. 이날 오후 비번이던 사회부장이 회사에 나와 직접 항의했을 정도라고 한다. 파장은 곧 조직 전체로 번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는 지난달 31일 강 국장과 만나 기사를 되살릴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이후 이달 1일 조합원 전체메일로 사태가 공유됐고, 2일 편집제작평의회를 거쳐 지부 산하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의 조사가 시작됐다. 4일에는〈취재기자 배제한 무단 기사 삭제, 뉴스룸 국장의 독단적 편집권 남용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이 나왔다.

민실위가 가장 무겁게 문제 삼은 대목은 삭제의 타이밍이다. 기사가 나간 그날 오전 효성 측 임원들이 한국일보를 찾아 국장과 사장을 차례로 만났고, 그 직후 기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민실위는 대기업의 강한 항의가 있었던 직후 벌어진 일인 만큼 경영적 판단이 개입했다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고 했다. 이진희 지부장은 조합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이미 법정에 제출된 녹취록을 중립적인 제목으로 정리한 기사가 어떻게 재판을 불공정하게 만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쪽에 치우쳐 읽힐 우려가 있다면 반론을 더 채우면 될 일이라는 취지다. 민실위 역시 삭제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는지 되물었다. 오보가 아닌 데다, 해당 녹취는 공판에서 증거로 채택된 자료여서 한쪽 당사자의 일방적 재료로만 볼 수 없고, 취재 과정에서 효성 측에 여러 차례 사실관계와 입장을 확인했다는 것이 민실위의 반박이다. 민실위는 △삭제 절차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기사를 복구할 것△취재기자와 데스크의 의견 청취 및 결정 근거 기록을 의무화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보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강 국장은 성명 다음 날인 5일 사내 게시판에 입장문을 올렸다. 그는 오랜 법조 취재 경험에 비추어 해당 기사가 특정 취재원에 기울어 있고 재판에 부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균형을 잃은 기사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근거로는 피고인 측이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피해자를 공격하는 구성이라는 점, 출고 당일 오후 조현준 회장이 증인으로 법정에 서기로 예정돼 있었다는 점, 단독 입수 자료이긴 하나 조 전 부사장의 혐의와 직접 연결되지 않아 공익적 보도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절차 위반 지적에 대해서는 삭제에 앞서 사회부장과 법조팀장에게 전화와 카카오톡으로 방침과 이유를 알렸으며, 가이드라인이 기자의 동의를 의무화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다만 “충분히 소통하지 못한 점은 유감”이라며 당일 오후 2시 공판이 잡혀 있었고 취재기자들이 삭제에 동의하지 않으리라 예상돼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전날 출고 자체를 막지 못한 것이 자신의 가장 큰 불찰이라고도 했다. 효성 임원들의 방문에 대해서는 카카오톡을 보낸 뒤 일방적으로 찾아와 곧바로 돌려보냈다며, 삭제 결정은 이와 무관하고 전혀 영향받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녹취록 누가 줬나?

여기까지가 현재 한국일보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항이다. 하지만 사건의 이면을 보면 반드시 이 문제가 기사 삭제의 문제로만 볼 수 있는지가 자리잡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둘째 조현문 전 효성그룹 부회장의 홍보 대행을 하는 장모변호사가 현재 한국일보 자문 변호사란 점이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이번 녹취록의 입수 경위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이 변호사가 녹취록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만에 하나 그렇다면 이것은 둘째 측 변호사가 자신이 자문하고 있는 언론사를 움직여 첫째에게 불리한 보도를 사주한 모양새가 된다.

전형적인 이해충돌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일보 편집국장이 이번 기사 삭제 이유로 ‘특정 취재원에게 경도된 기사’라고 지적한 것도 이 부분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번 녹취록이 나가고, 기사가 삭제되면서 둘째인 조 전 부회장은 그동안 불리하던 여론을 뒤집을 계기를 마련했다. 삭제된 기사를 마치 효성그룹이 움직인 결과로 묘사한 것도 그렇고, 한때 그룹의 위기가 첫째로부터 비롯됐다는 내용이 기사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특히 이 기사가 조현준 회장과 조현문 전 부회장이 재판장에서 마주치는 날 아침에 공교롭게도 보도됐다는 점에서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형제간 갈등은 조 전 부사장이 2013년 회사를 떠나고 2014년 조 회장 등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하면서 수면으로 떠올랐다. 조 회장도 반격에 나섰다. “조 전 부사장이 보도자료 배포를 강요하고 자신이 보유한 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고가에 매입하지 않으면 각종 비리 자료를 검찰에 넘기겠다고 협박했다”라면서 2017년 맞고소한 것이다. 검찰은 관련 혐의가 있다고 보고 2022년 조 전 부사장을 강요미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현재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 이성열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 중이다.

조 회장은 법정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고소는 아버지 故 조석래 명예회장이 할 수밖에 없는 고소였다”며 “아버지가 ‘이것밖에는 조 전 부사장을 뉘우치게 할 방법이 없다’고 하시며 피 토하는 심정으로 선택한 소송”이라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조 전 부사장이 제기한 민형사 소송 80여 건을 상기하면서 “고소만능주의에 빠져 회사와 100명 넘는 임직원을 재판받게 만드는 일이 그만 됐으면 좋겠다. 제발 각자 갈 길을 가자”고 호소했다. 조 회장은 “(13년간 분쟁을 거치며)나의 잘못도 충분히 이해했고 회사의 잘못도 충분히 고쳤으니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면서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명심해 더는 우리를 고소로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 재판이 생기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에게(고소를) 취하할 생각이 있으신지 여쭤봤는데, 절대로 없다고 하셨다. 이 방법밖에 없다고 하셨다”며 유지를 받들어 동생이 처벌받게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11년 간을 지속해 온 골육상쟁이 결국 기업을 넘어 한국일보라는 언론사의 내부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다시 한번 복잡한 국면을 맞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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