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장관 감’ 멸종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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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는 지리산서 산삼 캐다 온 심마니 같은 기이한 외모의 ‘실세 위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위원이며, 9개 분과위의 선임간사 격인 총괄간사를 맡고 있는 유민봉 성균관대 행정학 교수입니다. 한 달 전 발탁 당시, 박근혜의 측근들도 존재 자체를 몰랐던 유 교수를 인수위의 핵심 요직인 총괄간사에 앉힌 것을 보면, 그에 대한 당선인의 신임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합니다.
유민봉은 깡마른 체구에 덥수룩한 수염, 여러 날 샤워도 안한 것 같은 반백의 ‘봉두난발’ 차림새로 TV에 나옵니다. 그는 국민이 얼굴을 알아보는 몇 안 되는 인수위원 중의 한 사람이지요. 비교적 자주 TV에 나오는데다, 범상치 않은 그 ‘심마니 룩’이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유민봉은 박근혜 정부의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 1순위로 꼽힙니다. 허지만 만약 예상대로 유민봉이 장관에 발탁된다면, 능력이나 인사청문회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의 ‘튀는’ 존재 자체가 많은 국민들에게 불편스럽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심마니 룩’ 때문이지요.  장관이 봉두난발을 한 얼굴로 국민 앞에 나타나면, 아무리 업무능력이 뛰어나도, 국민의 국정 이해도를 높여 광범위한 협조와 지지를 이끌어 내기는 어렵습니다. 이슬람 문화권이나 남미 국가들에 일반화된 ‘수염 문화’는, 한국 사회에선 특히 낯섭니다. 장관 후보자의 ‘봉두난발 패션’은, 인사 청문회에서, 아파트 위장전입이나 자녀의 병역비리 못지않은 결격사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김용준 파동은 예고된 참사


한국날짜로 1월 24일 낮 2시는, 이곳 LA 시각으로 1월 23일 밤 9시였습니다. YTN의 실시간 뉴스는 이 시각에,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후보를 당선인이 직접 발표한다는 브레이킹 뉴스를 자막으로 계속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내와 함께 매주 이 시간에 보던 드라마 시청을 포기하고, 8시부터 YTN에 채널을 고정시켰습니다. 초대 총리가 누가 되느냐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방향과 당선인의 용인술 내지 용병술을 엿볼 수 있는 첫 가늠자여서,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의 기대와 관심이 지대했습니다.
예정시간 보다 몇 분 늦게 마이크 앞에 선 박 당선인의 입에서 ‘총리 김용준’이 발표되는 순간, 나는 그만 빵 터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책임총리, 실세총리, 실질총리, 통합총리, 행복총리–. 별의 별 총리 얘기가 다 나와 국민들 침 꼴깍 삼키게 하더니, 김용준 총리카드는 결국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통령 당선인의 선거대책위원장과 인수위원장을 맡던 사람을 곧바로 총리를 시키는 일은 헌정사상 전례가 없던 파격입니다. 불과 4개월 전에 처음 대면했다는 사람을 이렇게 전천후-전방위로 중용해 써도 되는 건지, 과연 김용준 지명자의 무엇이 박 당선인에게 이 같은 ‘무한 애정’과 ‘무한 신뢰’를 줬는지, 아리송했습니다.
 선대위원장으로도, 인수위원장으로도, 김용준의 존재감은 사실 미미했습니다. 인수위의 실세는 진영 부위원장이었고, 선대위도 김무성 선대본부장 같은 열정적인 파워 맨들이 실제로 이끌었습니다. 김용준은 과오도 없지만 뚜렷한 업적도 없는 무색무취의 얼굴 마담격 인수위원장이며 선대위원장이었습니다.


반말 총리- 봉두난발 장관


그날 박근혜 당선인이 퇴장한 후 김용준 지명자는 기자들과 일문일답 회견을 가졌습니다.  아슬아슬하고 어질어질하고, 답답하고 속 터지는 10여분의 기자회견 도중, 나는 채널을 다시 드라마 쪽으로 돌리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지명자의 회견은 아예 반말 투였습니다. 젊은 기자의 질문에 “질문 요지가 뭐요? 뭐야–.”라고 핀잔을 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퉁명스레 대답했습니다. 총리와 경제 부총리의 역할 분담을 묻는 질문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않았다고”라고 거칠게 반응했습니다. 모든 질문에 모른다거나, 생각해 보지 않았다거나, 답변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응수했습니다. 총리 발탁을 며칠 전에 통보 받았다는 지명자가, 중요한 국정현안 모두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그 며칠 동안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기가 찼습니다.

김용준 후보자는 청력이 약해 이날 기자들의 질문 7개중 3개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질문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해 동문서답식 답변을 자주 했습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은 그의 몸놀림도 생각보다는 많이 힘들어 보였지요. 대통령을 대신해 자주 나가야 하는 해외순방과, 매주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며 열리는 국무회의 참석등 고되고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야할 총리로서, 75세의 병약한 노인인 그는 결코 적임자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김용준은 좀처럼 웃질 않는 사람입니다. 늘 찌푸리고 불편해 보이는 인상은, 참여정부 때의 이해찬 총리를 빼 닮았습니다. 지금은 힐링시대입니다. 삶이 팍팍하고 짜증날 때, 대통령이나 총리, 장관 같은 고위 공직자들이 TV에 나와, 부드럽고 진솔한 ‘민 낯’으로 나랏일 얘기를 하며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면, 국민의 아픈 마음은 어느 정도 힐링(치유)이 됩니다. 세상의 온갖 것이 짜증스럽다는 듯 잔뜩 찌푸린 얼굴의 총리나, 지리산 심마니나 TV에서 깨방정을 떠는 노홍철 같이 봉두난발을 한 장관이 TV에 나오면, 채널은 당연히 돌아가고 사람들 마음에는 힐링은 커녕 서리가 쌓입니다.


박근혜식 인사 계속되면


김용준 총리 지명자가 5일 만에 결국 자진사퇴했습니다. 김 지명자의 사퇴는 두 아들의 병역문제와 부동산 투기의혹이 직접적인 빌미가 됐지만, 애당초 그는 총리가 돼서는 안 될 사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75세의 고령, 병약하고 불편한 신체조건, 강퍅해 보이는 인상과 성격,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 경력, 의문시되는 국정수행 능력–.
 만약 박근혜 당선인이 국정경험이 풍부한 원로인사 몇 명한테 만이라도 자문을 구했다면, 그리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기본적인 검증자료만 건네받았다면, 김용준이 총리로 지명되는  불상사는 없었을 겁니다. 박근혜 스타일의 밀봉인사, 깜깜이 인사, 구멍가게식 나홀로 인사가 부른 참변이지요. 많은 정치 전문가와 야당, 그리고 진보언론 보수언론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언론이 나서 박근혜의 위험한 ‘역주행 인사’에 경고 사인을 보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박근혜식 철통보안 인사는 인사 청탁을 막고, 하마평에 따르는 잡음과 혼선을 피하면서, 인사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고 자신만 아는 인사를 ‘짜잔-’하고 발표했을 때, 임명권자는 희열을 느끼고 국민들도 잠깐의 신선한 충격을 맛볼 수 있습니다. 허지만 득보다는 실이 훨씬 많습니다. 미국은 정부의 조각과 개각내용을 일부러 사전에 언론에 흘립니다. 언론을 통한 이런 식의 반공개적 후보 검증은 170년 동안이나 관행으로 이어져 왔고, 성공적으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박근혜의 독불장군식 인사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게서 물려받은 정치유산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아버지를 존경하며, 그의 치세를 완벽한 성공시대로 믿고 있는 한, 박근혜식 인사 스타일의 근본적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박정희의 인사는 거의 전횡 수준이었습니다. 인사청문회도 물론 없었고, 감히 누구도 그의 인사를 용훼하지 못했습니다. 인사나 정책에 대해 당정 어느 쪽에서든 조직적 반발이 나오면 정보부가 나서 콧수염도 뽑고 그랬습니다. 지금은 그런 시절이 아닙니다. 국가 경영은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고, 국민의 정치적 눈높이도 엄청 높아졌습니다.
김용준 키드가 못내 아쉬운 듯 어제 박 당선인은 인사청문회 제도 자체를 비판했습니다. 후보에 대한 신상털기식 검증에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깨끗한 고위 공직 후보자가 거의 ‘멸종상태’인 한국에서, 검증은 신상털기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게 현실입니다.  김용준 파동이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사회 전반이 새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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