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불법 경영승계 ‘막전막후’ 기소되기까지 15년…마침내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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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에버랜드 전환사채…이재용은 삼성 바이오로직스…’

그 아버지의 그 아들…
‘불법의 피’까지 이어받았다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회계사기와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을 통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1년9개월에 걸쳐 수사한 끝에 지난 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재판에 넘겼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수사를 받기 시작한 지 약 3년 9개월 만의 일이다. 뿐만 아니라 에버랜드 전환사채로 시작된 경영권 불법 승계의 대단원의 마침표를 찍었다. 검찰 기소 내용을 보면 이 부회장은 불법 경영 승계 의혹과 관련해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의 기소에 대해 삼성 측은 “이 사건 공소사실인 자본시장법 위반, 회계분식, 업무상 배임죄는 증거와 법리에 기반하지 않은 수사팀의 일방적 주장일 뿐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수사 과정에서 행한 삼성의 행태를 보면 과연 삼성 측의 이런 주장에 설득력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삼성 측 변호를 맡은 로펌 측은 지난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회계장부가 저장되어 있는 컴퓨터를 공장 바닥에 숨기는 등 철저하게 범죄를 은닉해왔다. 또한 최근에는 재판이나 검찰 수사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평택 삼성 LCD 공장에 7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등 법리적 해결영역을 넘어서는 사실상의 로비를 벌여왔다. 본국의 대부분 언론들이 검찰의 기소 내용보다는 이재용 부회장 변호인단의 반박을 앵무새처럼 떠들어대고 있지만 이 부회장의 시장질서 교란행위는 많은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에버랜드 전환사채로 시작된 불법승계는 이건희 회장 주도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이번에 기소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통한 불법승계는 이재용 부회장 본인이 주도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야말로 불법의 행태까지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이재용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으로 시작해 장남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삼성 총수 일가의 승계 작업의 첫머리는 이 회장이 이 부회장에게 61억원을 증여한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부회장이 이를 종잣돈 삼아 삼성에버랜드 최대 주주가 되는 것으로 승계 대관식이 조용히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전환사채를 통한 불법승계는 결국 꼬리가 밟혔다. 이 부회장이 증여세 16억원을 내고 이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종잣돈 45억원은, 25년 뒤에 7조원대 상장주식과 그룹의 지배권 이득으로 마법처럼 불어났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손실은 계열사와 주주에게, 이익은 이 부회장에게 돌아가는 방식이 작동됐다고 봐야 한다. 심지어 승계 막판에는 국민연금까지 직간접적으로 동원됐다. 즉 전국민이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 과정에서 피해가 된 셈이다.

25년의 불법승계 과정에서 드러난 하나의 사실은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이어지는 경영방식이 놀랍도록 닮았다는 점이다. 본지가 처음 보도했던 최재경 전 민정수석의 삼성 영입설이 하나의 증거다. 이건희 회장은 자신이 직접 경영할 때 이종왕 전 수사기획관을 법무실장으로 영입하며 모든 대응을 맡겼다. 그런데 아들 이재용 부회장은 이번 수사에서 최재경 전 민정수석을 고문으로 영입해 모든 대응을 맡겼다. 또한 에버랜드 전환사채가 부친의 작품이었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통한 시세조종은 아들이 주도한 작품이었다.

승계계획안 ‘프로젝트 G’ 실체

이건희 회장에게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낸 세금은 16억원에 불과하다. 이 회장은 1994년부터 1995년 사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현금 61억원을 증여했고, 이 부회장은 증여세 16억원을 납부한다. 남은 45억원으로 비상장 삼성 계열사인 에스원 주식 12만주를 23억원에,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47만주를 19억원에 사들인다. 이 계열사들은 곧바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고, 이 부회장은 보유주식을 팔아 563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 이것이 바로 불법 승계를 위한 실탄이 됐다.

이 부회장이 에스원 상장주식 일부를 매각하기 바로 한 달 전인 1996년 10월, 에버랜드 이사회는 돌연 주주 배정방식의 전환사채(CB) 129만2800주 발행을 결의한다. 전환사채는 회사 주식으로 전환될 수 있는 채권을 말한다. 이사회가 결의한 전환가격은 주당 7700원으로, 당시 에버랜드 주식이 1주당 8만~23만원 정도로 거래되고 있던 점을 고려하면 시세보다 최소한 10배 이상 저렴한 헐값이었다. 발행규모도 당시 에버랜드 지분의 64.6%에 이를 만큼 대규모였다. 더 이상한 점은 이런 헐값 전환사채를 먼저 인수할 권리가 있는 에버랜드 주주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주주 배정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전환사채는 주주들이 배정을 포기하면 제3자에게도 배정될 수 있다. 당시 배정을 포기한 법인 주주들은 제일모직·중앙일보·삼성물산·신세계 등 삼성 계열사 또는 총수 일가와 혈연으로 연결된 회사들이었다.

1996년 12월 에버랜드 이사회는 전환사채의 절반을 주주들이 배당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이 부회장에게, 나머지 절반은 이 부회장의 여동생들에게 배정한다. 이 부회장이 한 달 전 에스원 주식을 팔아 확보한 118억원 중 48억원을 사용하는 것도 이때다.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은 에버랜드 지분 31.9%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2년 뒤 삼성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에버랜드는 1998년 한 해 동안 삼성 전·현직 임원들이 갖고 있던 삼성생명의 비상장 주식을 주당 9800원에 대량으로 사들이고, 몇달 만에 지분 20.7%를 보유한 대주주로 올라선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삼성물산 등의 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을 다수 보유한 핵심 계열사다. 이 부회장 등 4남매가 비상장사 삼성에스디에스(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시세의 8분의 1 정도 가격에 넘겨받은 것도 이 무렵이다. 이로써 이 부회장은 불과 45억원으로 ‘이재용-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으로 연결되는 지배구조를 구축해냈다. 이것이 바로 이건희로부터 이재용에게 넘어가는 불법경영권 승계의 전반전이다.

이건희 쓰러지며 불법승계 후반전 막 열어

불법경영권 승계의 후반전은 이건희 회장의 건강 악화로 시작됐다. 여기서부터는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이 모든 과정의 주도권 내지 최소한 결재권은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 회장이 건강 악화로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워진 2012년 12월,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한다. 이 부회장과 삼성 미전실이 ‘프로젝트 지(G·거버넌스의 준말)’라는 이름의 ‘승계계획안’을 마련한 것도 이때다. 그런데 2014년 5월10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서울 이태원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려졌다. 이 갑작스러운 와병은 이재용 부회장으로 하여금 경영권 승계 작업을 앞당기게 만들었다. 언제 사망할지 모르는 부친의 상태는 급하게 증여세를 마련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만들었다. 게다가 이틈을 노리고 엘리엇 펀드가 경영권을 빼앗기 위한 공격에 나섰다.

경영권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이번에는 삼성물산이 중요해졌다. 이 부회장은 ‘전환사채 편법’으로 에버랜드 대주주에는 올라설 수 있었지만,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에는 지분이 없었다.
두 회사가 합병하게 된다면, 이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의 대주주로 올라서면서 그룹 지배력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이 부회장과 미전실은 이미 2012년 12월 ‘프로젝트 지(G)’에서 합병의 얼개를 마련해놓은 상태였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지 한 달만인 2014년 6월 삼성에버랜드는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바꿨다. ‘전환사채 편법’ 이미지가 탈색된 것이다. 기존 제일모직의 패션 부문은 삼성에버랜드가, 나머지 부문은 삼성에스디아이(SDI)가 인수하는 형식으로 분해된다. 그해 11월 삼성에스디에스가 상장하면서 이 부회장이 신주인수권부사채 편법으로 106억원에 넘겨받은 주식이 3조2000억으로 불어난다. 그리고 12월18일에는 제일모직도 상장한다. 이 부회장이 48억원에 사들였던 에버랜드 전환사채는 제일모직 상장을 통해 7조원가량의 상장주식으로 불어났고, 이 부회장은 단숨에 한국 2위의 주식부호에 올라섰다.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 이사회는 합병 결의 사실을 알린다. 경기 김포시의 물류창고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제일모직이 280억원 규모의 피해를 본 다음 날, 1시간 논의를 거쳐 결정된 전격적인 합병 체결이었다. 합병 결의와 함께 알려진 합병비율은 ‘1:0.35(제일모직:삼성물산)’. 자산과 매출이 제일모직의 3∼4배에 이르는 삼성물산이 합병비율에서는 3분의 1 수준으로 평가된 셈이다.

합병 결의 뒤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분위기를 주도하자, 삼성은 긴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6월10일 삼성물산은 보유 중이던 자사주 전량을 케이씨씨(KCC)에 넘긴다. 7월1일 제일모직은 손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2일 제일모직은 용인 에버랜드와 캐리비안베이 인근 유원지에 호텔과 생태공원·아쿠아리움을 건립하기 위해 용인시와 업무계약을 체결하며 8000억원대 개발 계획을 밝힌다. 삼성증권 직원들은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전화를 돌려 의결권 위임을 부탁하고, 언론에는 ‘엘리엇의 삼성 침략’을 규탄하는 기사와 저명인사들의 기고문이 실리기 시작한다. 결국 7월17일 합병안은 마지노선인 66.66%를 가까스로 넘긴 주주 69.5%의 동의로 통과됐다.

회계장부 담긴 PC까지 공장바닥에 은닉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은 9월 1일 이 부회장 등 삼성 관계자 11명을 재판에 넘기면서 삼성물산 이사회가 아무런 ‘경영상 판단’ 없이 미전실의 지시로 합병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6조원의 합병 시너지는 허위로 산출된 숫자고, 국민연금 등 주주를 설득하는데 쓰인 굴지 회계법인의 ‘합병비율 보고서’는 삼성의 요구로 조작된 것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케이씨씨 등 주주들에게는 ‘경제적 이익’을 약속한 뒤 합병 찬성표를 얻었고, 통합 삼성물산의 손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에버랜드 개발 계획도 합병 뒤 무산된 ‘허위 호재’였다고 밝혔다. 검찰은 합병안 통과 뒤 ‘주식매수청구기간’에는 제일모직이 수만 건의 시세조종성 주문으로 자사주를 사들이는 등 ‘주가조작’에 나섰다고 발표했다. 훗날 시세조종·부정거래·회계사기 등 혐의를 받게 되는 숱한 탈법 의혹 끝에 성사된 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 17.23%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과 삼성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싸움을 벌였다. 삼성은 회계장부 등이 담긴 PC를 공장 바닥에 숨겼다가 내부 직원이 검찰에 이 사실을 제보하며 PC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문제가 될 것이 없는 합병이었으면 PC를 숨길 이유도 없었다. 또한 삼성 장학생으로 유명한 최재경 전 민정수석까지 동원해 수사심의위원회로 사건을 끌고 가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이 모든 전략을 짜고 검찰수사 대응인원까지 구성한 건 모두 최 전 수석의 몫이었다. 최 전 수석은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통해 불기소 권고까지 이끌어 냈으나, 결국 검찰은 이 부회장을 기소하고 말았다. 이 부회장으로서는 현재 진행 중인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 이번 검찰 기소로 이어질 추가적인 법정 다툼까지 앞으로 최소 3~4년은 사법 리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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