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 단소 사적지 신청서 오류 책임론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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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main‘흥사단 단소 철거’를 취소시키고 사적지로 변경시키기 위한 제2차 LA 공청회가 11월 4일로 예정 된 가운데 이를 두고“역사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2차 공청회에는 도산의 외손자인 필립 커디(Flip Cuddy, 안수산 여사의 아들)씨가 참석해 한인사회에서 제기한 흥사단 단소 사적지 신청서(CHC-2021-5125-HCM)에 나타난 오류를 증언할 것으로 보여, 이를 두고 미주한인 이민사 논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성진 취재부기자>

지난 2003년 미주한인 이민 100주년 행사가 LA와 하와이를 주축으로 전미국에서 개최되면서 <미주이민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한인사회에 퍼지면서 잘못된 이민사에 대한 역사고증에 대한 연구가 국내외로 일어났다. 특히 한 예로 도산이 오렌지 농장에서 일했다는 리버사이드 한인 이민 역사를 두고 “파차파 캠프 (Pachappa Camp)가 미국 최초의 ‘코리아타운’Koreatown)’이다”를 두고 역사 학자들이나 커뮤니티 활동 관계자들이 계속 논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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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산의 가족사진(왼편), 시청에 도산 부인과 자녀라고 올린 가짜 사진

사적지 새로운 검증작업 착수

최근 흥사단 단소 철거 위기로 점철된 단소 보존 운동이 일어나면서 LA시 사적지 신청과 관련되어 신청서 자료에 대한 검증 문제가 촉발되면서 미주 이민사에 대한 새로운 검증 의식이 요구되고 있다. 본보가 이번에 수집한 ‘흥사단 단소 사적지 신청서’(CHC-2021-5125-HCM)를 분석한 결과 실제로 여러 곳에 오류가 발견되었다. (지령1286호 2021.10.31). 지난호에서 본지는 <도산이 1938년에 순국해 당시 USC 옆 교회에서 추도회가 거행된 것을 사적지 신청서에는 LA시청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거행됐다고 잘못 설명을 했다>라고 밝혔다. 이번 발견된 또 다른 오류는 더 심각했다. 신청서 사진 자료로 제출된 사진(본보 사진 참조) 중에 ‘도산의 부인 안혜련(헬렌 안(Helen Ahn)여사와 자녀들’ 사진이라고 설명했는데, 필립 커디씨가 지적하기를 “이는 헬렌 안 할머니도 아니고, 자녀들 사진도 도산의 자녀들이 아니다”라고 항변 했다. 본보가 수집한 도산과 부인(이혜련) 자녀들이 함께 한 사진(별첨 사진 참조)을 보면 신청서에 있는 사진과 전혀 달랐다. 커디씨는 “신청서에 ‘도산의 부인’이라고 제출된 사진은 도산의 부인이 아니고 도산의 동지인 이암의 부인과 자녀 엠마, 포웰 등의 사진이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필립 커디씨는 ‘흥사단 단소 철거’ 공청회와 관련해 사적지 신청서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 하면서 이를 검증없이 접수한 LA시 도시계획국 문화전통위원회(Cultural Heritage Commission)에 항의했다. 이에 LA시 담당 켄 번스타인 담당관은 ‘오류가 발견되어 유감’이라며 ‘검증을 새로 하겠다’라고 답변했다. 이 신청서는 한인사회에서 직접 신청한 것도 아니고, 신청서에 나타난 신청인은 ‘아시아태평양역사보존회 회장 미셀 마가롱’(Michelle Magalong, Asian & Pacific Island Americans in Historic Preservation)과 ‘LA 보존회 로사린드 사가라’(Rosalind Sagara, Los Angeles Conservancy)로 되어 있었다. 일부 학자들이나 사회운동가들은 종종 역사를 ‘신화’로 만들려고 한다. 역사는 누군가 혹은 어떤 집단의 사람들이 원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학자라고 하면 논픽션과 소설을 구분하는 점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흥사단 공청회 두고 역사논쟁 재연?

작가가 개인이나 집단의 동기를 추측하거나 자신의 편견에 따라 사건을 해석할 때, 그것은 소설이라고 불린다. 특히 일부 교수들이나 역사 학자들이 그 구별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 가끔 혼란을 야기시킨다. 역사는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선전(Propaganda)이 될 뿐이다. 우리 미주 한인이민사를 두고도 이런 행태가 많아 이를 두고 심지어 커뮤니티 내에서 파벌투쟁 으로까지 발생하는 예가 한두번이 아니다. 미국에서 ‘코리아타운’을 두고도 여러 곳에서 ‘여기가 최초의 코리아타운’이다라고 주장하는 인사 들이나 그룹들이 있다. 한 예로 “코리아타운”이라는 단어는 공식적으로 1978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 불리워졌다. 미국에서 발행된 국가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 안에 118페이지에 따르면, LA의 한인 비즈니스맨들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으로 ‘코리아타운’을 조직했다고 수록했다.
도산의 둘째 아들 필슨 안(Philson Ahn)은 리버사이드에서 태어났는데 몇 년 전 한국의 한 TV 프로 그램에서 “노동 캠프”로서의 파차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그곳이 ‘코리아타운’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리버사이드에 대해 논문을 쓴 엘렌 툰은 파차파를 ‘코리아타운’이라고 하지 않고 “노동 캠프”라고 불렀다. 리버사이드 파차파 캠프가 “코리아타운”이라는 역사 고증 개념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왜 우리는 리버사이드 지역 파차파 캠프를 두고 여전히 이러한 혼란 속에 있을가? 도산의 외손자 필립 커디씨는 한국의 연세대에서 수학한 적이 있고, 도산 연구나 미주한인 이민사 에도 남다른 연구를 한 인물이다. 그는 어머니 고 안수산 여사가 평생 수집한 방대한 이민사 자료도 연구한 인물이다. 그는 한인사회가 역사 논쟁이 일어나는 사태도 “도산에 대한 진정한 연구가 없기 때문”이며 “도산 의 유산을 남용하고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진실에 대한 용기나 충성심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미주한인 이민사를 새롭게 보아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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