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항소’ 대법원까지 가려면 트럼프 임기 말 돼야
◼ 캘리포니아, 뉴욕 포함 18개주도 행정 명령 위헌 소송
◼ 트럼프 사면에 71세 여성 “내 행동 잘못…사면 거부”
◼ 트럼프와 민주당-인권단체 간 논쟁 ‘격돌로 이어질 것’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이 시행 3일 만에 연방법원의 제동으로 중단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첫날 ‘빅원’(Big One)이라며 자신 있게 내놓은 이민 정책이 첫 번째 법적 장벽에 부딪힌 것이다. 1월 23일 AP·로이터 통신과 CNN 등에 따르면 시애틀 연방법원의 존 코에너 판사는 워싱턴·애리조나·일리노이·오리건주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제기한 소송에서 이 행정명령의 효력을 14일간 차단한다고 결정했다. 시애틀 연방법원의 존 코에너 판사는 “이 행정명령은 명백히 위헌 (blatantly unconstitutional)”이라며 2주간 효력 정지를 명령했다. 이 명령은 전국적으로 효력이 발생 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특별취재반>
시애틀에서 제기된 이 소송은 미 전역의 22개 주와 전국의 여러 이민자 권리 단체가 제기한 같은 내용의 소송 총 5건 중 처음으로 재판이 열린 것으로, 이번에 내려진 연방 판사의 결정은 전국적인 효력을 미친다. 소송을 제기한 17개주 법무장관들은 “트럼프의 조치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며, 수십 년간 유지되어온 시민권 부여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코에너 판사도 재판에서 트럼프 측 변호인단에게 “수정헌법 14조가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조치”라며 “변호사로서 어떻게 이것이 합헌적 명령 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이해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코에너 판사는 “자신이 40년 넘게 판사직을 수행해오는 동안 이렇게 명백히 위헌적인 사례가 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닉 브라운 워싱턴주 법무 장관은 “판사가 법정에서 ‘40년 동안 판사로 재직하면서 이렇게 명백하게 위헌적인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 이게 얼마나 심각한 건지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악 22개 주 위헌 소송
트럼프는 취임 첫날인 20일 서명한 이 행정명령을 통해 부모 중 어느 한쪽도 미국 시민권 자나 영주권자가 아닌 경우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불법 이민자는 물론 방문비자나 유학생비자 등 단기 체류자의 자녀도 포함하는 광범 위한 제한이다. 그러나 미국 수정헌법 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자, 그 사법권에 속하게 된 사람 모두가 미국 시민이며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라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어 즉각적인 위헌 논란이 제기됐다. 현재 민주당이 장악한 22개 주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위헌 소송을 제기했으며, 다수의 시민단체도 소송에 가세했다. 코에너 판사는 이날 4페이지 분량의 판결문에서 “원고 측이 소송의 실질적 쟁점에서 승소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히고, 이번 결정은 행정명령 시행을 당장 막아달라는 원고 측의 요청을 일부 받아들여 긴급 차단 명령을 내린 것으로, 이후 추가로 행정명령 시행을 막을지 여부는 오는 2월 5일 심리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행정명령 추가 차단 여부에 대한 다음 심리를 2월 6일 로 예정했다.
출생 시민권 제한 조치 2월 6일 결정
한편 캘리포니아, 뉴저지, 뉴욕, 메릴랜드 등 18개 주가 매사추세츠 연방지법에 제출한 또 다른 위헌 소송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당연히 항소할 것”이라며 “그들이 시애틀의 특정 판사 에게 이 사건을 맡긴 것은 놀랍지 않다. 출생 시민권 제도는 악용되고 있으며,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코에너 연방판사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임명한 40년 경력의 베테랑 판사로, 레이건을 롤모델로 삼는 트럼프에게는 예상 밖의 타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 성향 판사들이 다수인 대법원까지 법적 대응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보수 성향 대법관을 추가로 임명하면서, 장기적으로 출생 시민권 제한 조치가 시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번 법원 결정에 따라 미국 내 이민자 커뮤니티에서는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지만, 법적 공방이 계속될 것으로 보여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특히, 이번 조치로 시민권을 박탈당할 수 있는 이민자 자녀들이 약 25만 명에 달하는 것 으로 알려져 사회적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미국 사회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 강화 기조와 이에 맞선 법적 대응으로 인해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으며, 향후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정책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출생 시민권 제한 조치가 최종적으로 시행될지 여부는 2월 6일 열릴 심리에서 추가 결정될 예정이다. 법조계에서는 이 소송이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갈 경우 트럼프의 임기가 끝나갈 무렵에나 최종 판결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현재 대법원 판사 9명중 6명 이 보수계이기에 판결이 다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수정헌법 14조의 명확한 규정으로 인해 대법원에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승소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시애틀 소송 원고 측의 소장에 따르면 2022년 미국에 불법으로 체류하는 어머니에게 서 태어난 시민권자 자녀는 약 25만5천 명이었다고 AP는 전했다.
시민권 박탈위기 약 25만 명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실시한 대규모 사면으로 징역 22년형을 받았던 중범죄 자까지 석방돼 현지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 사면을 거부한 71세 여성이 나타나 화제가 되고 있다. 22일 뉴욕타임스 등 외신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사면 조치로 무려 1500여명이 사면됐는데, 유독 1·6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에 가담했던 한 70대 할머니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면을 거부하며 “그날 우리는 잘못했 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당시 폭동에 가담했다가 60일의 징역형과 3년의 보호관찰을 선고받은 파멜라 헴필(71)은 “사면을 받아들이는 것은 의사당 경찰과 법치주의, 그리고 우리 국가를 모욕하는 일”이라고 했다.
헴필은 자신이 폭동과 부정선거(Stop the Steal) 규탄 활동에 가담했던 것에 대해선 “비판적 사고를 잃었었다”며 “이제 그것이 광신적 집단(cult)이었고, 내가 그런 집단에 있었다는 것 을 알게 됐다”고 했다. 폭동 사태 당시 폭도에게 스턴건을 맞고 의식을 잃었던 전직 경찰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미국 국민이 투표한 결과”라며 “가해자들을 사면하는 것은 저를 두렵게 한다”고 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사면에 따라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스’ 전 대표 엔리케 타리오와 ‘오스키퍼스’ 창립자 스튜어트 로즈가 최근 석방됐는데 이들은 1·6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를 주도한 혐의로 각각 징역 22년과 18년을 선고받은 중범죄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에 가담한 자신의 지지자 1500여 명을 사면하고 14명을 감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결과에 불복 했다. 이에 트럼프 지지자들은 조 바이든 당시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인준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21년 1월 6일 의사당으로 난입해 폭동 사태를 일으켰다. 당시 폭동 사태로 시위대 중 여성 1명이 경찰에게 총을 맞아 사망하는 등 폭도 4명과 미 의회 소속 경찰관 1명이 숨졌다. 중범 선고로 복역중 사면으로 석방된 스튜어트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나는 그가 (사면을) 약속했기 때문에 사면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었다. 약속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편 폭동 당시 연방하원의장이었던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전 의장은 성명을 내고 “우리 사법 제도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고, 그날 국회의사당을 보호했던 법 집행관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 펠로시 전 의장은 “대통령이 권력의 평화적 이양을 방해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선 경찰관들을 배신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기로 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대통령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킨 영웅들의 용기를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당 폭도 사면 ‘사법제도 모욕’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뒤 처음 서명한 행정명령들은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의 행정명령 78개를 폐기하는 것이었다. 그는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고 이를 유엔에 알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해 공식화했으며, 자신의 행정부가 안착할 때까지 연방정부 내 추가 인사 조처 및 규정시행을 금지했다. 예고했던 2021년 1월 6일 미국 의사당 난입 폭동 주동자와 관련자들에 대한 사면도 빼놓지 않았다.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지난 1월 20일 워싱턴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지지자들 앞에 선 트럼프 대통령은 거침이 없었다.
미 동부를 덮친 북극 한파를 이유로 취임식 뒤 진행하는 야외 퍼레이드 대신 열린 실내 행사에서 트럼프는 9개의 행정명령에 서명 했다. 무대에 책상을 설치하고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관중 앞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인 것이다. “조 바이든이 이렇게 하는 것을 상상 가능한가?” 세번째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그가 말하자 장내는 웃음과 “유에스에이” 환호로 가득 찼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세 때 강조해왔던 대로 “당장 일하라”(Work immediate)며 연방정부 직원들이 모두 사무실로 출근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러한 행정명령들이 트럼프 대통령 의지대로 될 것인가? 정치 전문가들은 그렇게 보고 있지 않다. (특집-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