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주한인 청년세대 선조 유산인 인권과 정의를 계승
◼ ‘스티븐슨 암살사건’은 미주한인사회 독립운동 효시
◼ ‘이철수구명운동’ 은 미주한인사회 민권운동의 시발
◼ 미주한인의 정체성은 조국 독립운동과 인종 간 정의
USC 한국학연구소(소장 박선영 박사)가 한국의 국립교류재단과 USC한국전통도서관(큐레이터 홍정은), UCLA한국학센터의 후원으로 관련 저명한 학자들을 초청하여 지난 4월 17일 USC 로널드 튜터 캠퍼스 센터(Ronald Tutor Campus Center, Room 450)에서 개최한 ‘미주한인과 한미 관계 심포지엄(Symposium on Korean America and the U.S.-Korea Relations)’을 개최했다. 이 심포지엄 첫번째 세션 주제는 “국가 및 국제 정치 속의 미주한인” 이었다. 1882년 5월 22일 체결한 한미수호조약 이래 140여년의 미주한인 이민역사에서 미주 한인들이 20세기 초 조국의 독립운동으로부터 현대의 시민권 정의운동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참여의 진화를 추적했다. 미주한인의 디아스포라 정체성이 국가 및 국제 정치와 어떻게 교차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성진 취재부 기자>
심포지엄 첫번 세션에서 리처드 김 교수는 “디아스포라 민족주의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정의로: 더럼 스티븐스 암살 사건과 이철수 법적 소송”이란 주제 발표에서20세기 초 미주에서 한인들이 독립 운동부터 현대의 시민권 정의 운동에 이르기까지 한인 미국인의 정치적 참여의 진화를 추적 했다. 그리고 크리스틴 홍 교수(UC 산타크루즈)는 “독립신문과 프리덤 신문이 본 경찰 국가, 경찰 행동, 경찰 폭력: 한국 전쟁”이란 주제 발표에서 국가의 폭력과 한국 전쟁에 대한 역사적으로 본 한인 미디어의 관점을 분석했다. 정가영 교수(UC 데이비스)는 “미결된 역사 시간 속에서, 제국주의적 미래, 그리고 서류미비자 한인이민자의 정의 운동”이란 주제 발표에서 정의 운동과 행동주의의 관점에서 서류미비자 한인 이민자들에게 영향을 준 법적·사회적 체계를 고찰했다.
독립운동과 소수인종 정의 운동
토론 사회자는 딜런 성 교수(USC)가 담당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미주한인 이민사에 정통한 리처드 김 교수(UC Davis)는 특히 1908년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제국 외교고문으로 일하며 친일 행각을 벌인 미국인 더럼 W. 스티븐스를 한국인 독립운동가 장인환, 전명운 의사가 저격하여 사살한 사건과, 1973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 타운에서 벌어진 갱 사살 사건에서 무고하게 구속된 한인 이민자 청년 이철수가 억울하게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가 이후 정의구명 운동을 통해 10년만에 무죄를 입증하고 석방된 사건을 조명 했다.
스티븐스 암살 사건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 이후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를 옹호하고 “일본의 통치가 한국에 유익하다”는 망언을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언론을 통하여 밝혀 당시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했던 미주한인들의 공분을 샀다. 스티븐스를 암살한 장인환·전명운 의사는 체포되었고, 이 의거는 미주한인 사회의 단결을 이끌어냈고, 이 사건은 해외 거주 한인 최초의 의열 투쟁이고, 독립 운동 역사상 최초의 무력투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사건은 나중 안중근의 이등박문 암살 사건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이철수 사건은 소수인종 이민자로 영어도 잘 못했던 한인 10대 청소년이 인종 차별적인 미국 사법 시스템과 증인들의 허위 증언으로 인해 살인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미주한인 사회와 아시안, 백인 그리고 흑인 등 다인종들이 처음으로 ‘이철수 정의구명 운동’을 벌였고, 결국 1983 년 10년 간의 옥살이 끝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되어 미국에서 최초 소수인종 인권 승리 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사건에서 당시 미국 언론사에서 활동했던 이경원 기자(작고 K.W. Lee)의 탐사 보도가 크게 기여했다. 스티븐스 암살 사건과 이철수 사건은 모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하여 미주 한인 사회와 국내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사건들이지만, 시대적 배경과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이번 심포 지엄에서 학자들은 미주한인의 독립운동과 소수인종 정의 운동의 맥과 오늘날 미주한인 사회에 어떻게 이 운동이 한 가닥으로 이어져 왔는가를 분석 평가했다.
미국 이민역사는 독립 운동부터
김 교수는 1908년 스티븐스 암살 사건(민족주의적 독립운동)과 1970년대 이철수 사건 (미국 내 민권 운동)을 비교하며, 한인들이 점차 미국 내 시민권을 가진 정치세력으로 진화했음을 설명했다. 홍 교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당시 미국 정부가 추진하던 ‘모범적 소수계 (Model Minority)’라는 프레임이 실제로는 미주한인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억압하는 도구였다고 지적했다. 이철수 사건은 그 프레임을 깨고, 미주한인들이 흑인 민권 운동 등과 연대하여 미국의 제도적 인종차별에 정면으 로 도전한 상징적 사건으로서 두 교수의 논의에서 합일점을 찾았다.
두 교수는 ‘이철수 구명 운동’이 한국 내 민주화 운동 및 인권 담론과도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에 동의했다. 홍 교수는 미주 한인들이 미국 내에서 소수인종의 정의를 외치는 것이 결국 한반도의 평화와 군사주의 타파를 외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는 ‘상호 교차적 시각’을 제시했다. 김 교수가 제시한 역사적 사건들이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홍 교수가 강조한 현대의 ‘군사 화된 한미관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뿌리가 된다는 논리다. 요약하자면, 김 교수가 이철수 사건을 통해 미주 한인 정치 운동의 역사적 기원을 증명했다면, 홍 교수는 그 운동이 가졌던 반제국주의적·반인종주의적 성격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며 두 논의를 하나의 거대한 담론으로 엮어냈다.
김 교수와 홍 교수는 미주한인이 미국이라는 국가 시스템 내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정치적 자아를 확립해 왔는가라는 지점에서 강력하게 연결되었다. 김 교수는 1973년 이철수 구명 운동이 파편화되어 있던 미주 한인 사회를 하나로 묶어낸 ‘범동포적 정치 결집’의 시발점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했고, 홍 교수는 이 사건을 ‘인종 자본주의와 형사 사법 시스템의 폭력성’에 맞선 저항으로 해석했다. 즉, 이철수라는 개인이 겪은 비극이 단순한 오판이 아니라, 미국 내 아시아 계 이민자를 ‘잠재적 범죄자’나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하는 구조적 모순에서 기인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김 교수의 역사적 분석에 비판적 깊이를 더했다.
즉, 미주한인은 ‘희생자’에서 ‘정치적 주체’로의 전환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김 교수와 홍 교수의 논의가 정 교수의 현대 청년 운동 분석에 있어 중요한 역사적·이론적 가교 역할을 했다. 이들은 함께 역사적 생존에서 현대의 해방으로 이어지는 저항의 계보를 확립 했다. 이처럼 김 교수와 홍 교수의 학문적 성과가 정 교수의 연구에 토대로도 보여 주었다. 김 교수는 “역사적 선례”에서 “현대적 행동주의”로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그의 “이철수 사건”에 대한 역사적 분석은 미주한인의 정체성이 항상 정치적 투쟁을 통해 형성되어 왔다는 실증적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미주한인들이 “수동적인 이민자”가 아니라 대중 동원의 역사를 지닌 공동체임을 입증했다. 한편 이를 통해 정 교수는 현재의 “모든 이에게 시민권을(Citizenship4All )” 및 DACA 운동을 새로운, 고립된 흐름이 아니라 미주한인의 풀뿌리 조직화의 오랜 전통 속에서 이어 왔음을 강조했다.
‘이철수 구명운동’은 ‘정치 결집’시발점
이는 홍 교수가 지적한 국가(미국 정부)가 종종 “시민권”을 통제와 감시의 도구로 사용한다고 주장 한 것을 의미하며, 그의 미국 군사주의와 인종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단순한 법적 포용을 넘어서 는 시각을 제공하는 이론적 도구를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 교수는 서류미비자 한인 청소년들이 왜 현재 “모범 소수자” 신화를 거부하는지 를 분석했다. 그들은 단순히 “영주권”(법적 포용)을 요구하는 대신, 홍 교수의 논리에 따라 체제의 전면적 변혁을 요구하고 있는데, 즉, 신분에 관계없이 구금 시설의 폐지와 보편적 의료 접근권을 촉구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김 교수와 홍 교수의 연구를 종합하여 정 교수는 미주한인 선조들이(‘이철수 사건’처럼) 정의를 위해 싸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역사적 소속감과 힘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홍 교수가 분석한 것처럼 이민자 자신의 지위 결여가 미국의 대외 정책 및 군사 역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함으로써, 한인 이민 청년들은 다른 억압받는 집단(흑인 및 라틴계 커뮤 니티)과 “교차적” 연대를 모색해왔다는 것이다. 이처럼 김 교수는 미주한인 커뮤니티가 어떻게 정의를 위해 투쟁했는지, 그리고 홍 교수는 국가가 어떻게 권력을 정의하는지 보여주었으며, 정 교수는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시민권 그 자체를 재정의 했다.
정 교수는 “법적 시민권”(김 박사의 역사적 사례)과 “군사화된 시민권”(홍 박사의 비판)에서 나아가 “사회적·관계적 시민권”으로 논의를 확장했다. 이는 공동체적 돌봄과 활동주의를 통해 소속감을 획득한다는 개념이다. 요약하자면, 김 교수는 “무엇”(투쟁의 역사)을, 홍 교수는 “왜”(억압의 구조적 원인)을, 정 교수는 “오늘날”(청년들이 그 교훈을 활용해 새로운 미래를 구축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김 교수와 홍 교수의 논의는 정 교수가 분석한 ‘현대 청년 운동’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역사적 연속성과 구조적 필연성을 가진 활동임을 입증하는 학술적 토대를 제공했다.
김 교수는 ‘이철수 구명 운동’을 통해 미주한인 사회가 이미 1970년대에 인종 차별적 사법 시스템 에 맞서 대규모로 결집했던 범공동체적 저항의 DNA가 있음을 증명했다. 정 교수는 이를 통해 현재 서류미비자 청년들의 투쟁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선배 세대로부터 이어져 온 ‘정치적 주체성’의 전통 위에 서 있음을 학술적으로 정당화했다. 즉, 청년 활동가들을 ‘도움을 기다리는 수혜자’가 아닌 ‘역사적 투쟁의 계승자’로 격상시켰다.
한편 홍 교수는 한미관계와 이민 정책의 이면에 깔린 ‘미국 군사주의’와 ‘인종 자본주의’를 분석 했다. 그녀는 국가가 부여하는 ‘시민권’이 때로는 통제와 선별의 도구로 사용된다 고 비판했다. 정 교수도 이 이론적 틀은 청년들이 왜 단순히 “영주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모두를 위한 시민권”이라는 급진적 구호를 외치는지 설명해 준다. 국가가 정한 ‘착한 이민자’의 기준(군 복무, 고학력 등)을 거부하고 시스템 자체의 변혁을 요구하는 청년들의 논리는 홍 교수의 비판적 이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민 정책과 ‘군사주의’ ‘인종 자본주의’
김 박사의 ‘역사적 사건’과 홍 박사의 ‘제국주의 비판’은 미주한인 디아스포라 가 한국과 미국이 라는 두 국가의 경계에 서 있는 초국가적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정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서류 미비자 청년들이 왜 흑인 민권 운동이나 타 유색 인종 공동체와 그토록 강력하게 ‘교차적 연대’를 맺는지 설명했다. 이들의 운동은 단순히 ‘미주한인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홍 교수가 지적 한 구조적 억압에 맞서 김 교수가 보여준 저항의 방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김 교수와 홍 교수의 논의는 정 교수가 현대 미주한인 청년 운동을 “역사적 뿌리(김 교수)를 가졌으며, 구조적 모순(홍 교수)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가장 앞서 나가는 인권 운동”으로 정의할 수 있는 강력한 학술적 근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정 교수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모두를 위한 시민권(Citizenship for All)’이라는 주제를 통해, 미국 내 서류미비자(undocumented) 한인 청년 활동가들의 삶과 정체성 그리고 정치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정 교수는 서류미비자 청년들이 미국 사회에서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우수한 학생’이나 ‘법을 잘 지키는 이민자’라는 이분법적 틀을 비판했다. 청년활동가들은 자신들이 ‘시민권’을 얻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기보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주장하며 국가가 규정한 ‘이상적인 시민상’에 도전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정 교수는 서류미비자 한인 청년들의 운동이 단순히 한인 사회 내부에 머물지 않고, 다른 유색 인종 공동체(Black and Brown communities) 및 사회적 약자들과 어떻게 연대하는지를 분석했다.
이들의 운동은 단순한 법적 지위 획득을 넘어 교육, 주거, 의료 등 삶의 필수적인 요소들에 대한 조건 없는 접근권(Unconditional Access)을 요구하는 보편적 인권 운동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강조 했다. 정 교수는 시민권을 단순히 정부가 발급하는 ‘종이 한 장’이나 법적 신분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시민권을 ‘서로를 돌보고 공동체의 안전을 책임지는 실천적 행위’로 재정의 했다. 특히 추방 위협 속에서도 한국과 미국 사이의 경계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가는 청년들의 회복력(Resilience)을 조명했다.
또한 그는 한미 관계의 화려한 외교적 수사 뒤에 가려진 이민 정책의 폭력성과 그 희생자들의 목소 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국가 간의 거시적 관계가 개별 이민자의 삶, 특히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의 삶에 어떤 구체적인 고통과 제약을 가하는지를 학술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심포지엄 세션 1에서 학자들은 미주 한인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 세대의 변화와 그들이 꿈꾸는 해방적인 미래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서류미비자 한인 청년들이 단순 히 법적 신분 획득을 넘어, 보편적 인권과 사회적 정의를 위해 투쟁한다는 점이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