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은행 창립 35주년의 저력과 원동력은 어디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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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석화 이사장

윌셔은행(행장 유재환)이 창립 35주년을 맞아 4일 오후 6시 LA다운타운 JW 매리엇 호텔에서 한미 VIP 인사 400여명을 초청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날 호텔 그랜드 볼륨에서 기념식, 축하공연, 기념만찬 등 장장 3시간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창립 35주년을 기념했다.  35년 전 불과 400여만 달러 자본금으로 출발한 윌셔뱅크는 오늘날 자산 44억 달러로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재미한인 사회의 최초의 한인계 은행이기도 한 윌셔은행의 창립 35주년 기념 잔치에는 초창기 윌셔은행의 이사 주주들과 고객들을 포함해, 한인사회 각계 단체들과 언론사 관계자들이 대거 초청됐다.
또한 윌셔은행의 전속모델인 차인표, ‘유리상자’의 감미로운 목소리의 주인공 가수 이세준 등도 초청되어 참석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이날 윌셔은행의 직원인 제니스 김씨는 영어로 MC를 보고, 윌셔 은행의 광고대행사인 ‘애드센스’의 정재윤 대표가 사회를 맡아 진행을 매끄럽게 이끌어 나갔다. 한편 이날의 기념잔치 행사는 윌셔은행의 박현정 홍보담당 부행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기획과 연출로 윌셔은행의 35년 역사를 조명하고 또 다른 35년의 비전을 제시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성 진 <취재부 기자>

역사적인 창립 35주년 기념행사의 서막은 흑인 커뮤니티의 합창단인 ‘크렌셔 엘리트 합창단’ (Crenshaw Elite Choir)의 경쾌한 율동과 함께 ‘Oh Happy Day!’로 장내의 시선을 모았으며, 이어 ‘아리랑’ ‘우리의 소원’ 등 한국노래들을 한국말로 열창해 열광적인 환호성으로 장내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이어 윌셔은행의 분신이기도한 고석화(Steven S. Koh, Chairman) 이사장은 환영사를 통해 “오늘 이 자리에서 윌셔은행을 키워주신 고객 여러분을 맞이하게 되어 감개무량하다”면서 “초창기부터 윌셔은행의 고객은 윌셔은행과 함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다”고 회고했다. 한인은행권에서 최장기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석화 이사장은 “35년 전 우리 은행은 단 15명의 직원으로 출발 했다”면서 “당시 한인 이민이 증가하면서 소수민족을 위하는 은행이 필요했으며 우리는 그 요구에 부응했다”고 말했다.
이제 ‘베스트 뱅크’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고석화 이사장은 “고객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었고, 고객의 성공이 우리의 성공이 되었다”면서 “고객의 비즈니스가 성장하면서, 윌셔은행의 성장도 함께 하면서 우리 모두는 위대한 동반자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또 다른 35년을 위해 윌셔은행은 창립이념을 살려 커뮤니티를 위해 최대한 봉사를 한다는 신념으로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35년을 위한 비전제시

윌셔은행의 사령탑인 유재환 행장은 인사말을 통해 “윌셔은행은 지난 35년 동안 쌓아온 역사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것”이라며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은행이 될 것”이라고 천명 했다.
그리고 유 행장은 “윌셔은행은 지난동안 수많은 금융기관들이 무너져 사라져 버린 수차례 금융 위기 속에서도 건실하게 이겨냈다”면서 “이모든 공은 전 직원들과 주주 이사진 그리고 특별히 고객들이 밀어준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한인사회를 대신하여 제임스 안 LA한인회장은 축사를 통해 “윌셔은행은 포브스 선정 ‘가장 신뢰할 수 있는 50개 기업’에 선정되어 미주한인사회의 자랑이 되었다”면서 “윌셔은행이  명실상부 한인사회의 대표은행으로 성장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안 회장은 “윌셔은행이 성장한 이면에는 탁월한 지도력과  경영능력을 지닌 유재환 행장이 커뮤니티와 함께 자리 잡고 있다”면서 “한인사회 단체 활동에서 유재환 행장이 함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좋은 예”라고 지적했다.

이날 안 회장은 자신도 윌셔은행의 고객이라며, 이 자리에 오기 전 윌셔은행의 마감된 주가를 알고 왔다며 이 주가를 알아맞추는 사람에게 금일봉을 부상으로 내놓는 깜짝쇼를 벌이기도 했다.
이어 영상으로 윌셔은행의 35년 역사와 앞으로의 비전이 펼처졌다.
1980년 12월 윌셔가 빌딩 한 구석에서 10여명의 직원들로 ‘윌셔스테이트뱅크’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윌셔은행의 35년 역사를 시대별로 주마등처럼 비추었다. 한인사회의 발전과 함께 윌셔은행의 동반자적인 역사의 자취들이 참석자들의 감흥을 더해주었다.
영상이 끝나면서 윌셔은행의 광고 모델 차인표가 등단해 “동포사회의 신임을 얻고 있는 윌셔 은행의 모델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객은 꿈을 꾸고 윌셔은행이 이루어 드립니다”라는 윌셔은행의 캐츠 프레이즈의 주인공인 차인표는 이날 참석자들과 일일이 기념 촬영을 하면서 팬들과의 인연도 돈독히 하였다.
이날 영상에서는 2016년에 방영될 윌셔은행의 새로운 광고 영상도 소개되어 주목을 끌었다.

수많은 뱅커 행장들 배출 산실

윌셔은행은 35년 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윌셔가에 첫 둥지를 틀었다. 당시 코리아타운의 중심지는 올림픽가였다. 언젠가 윌셔 거리가 한인 금융권의 중심지가 될 것이란 예견을 했던 것이다. 윌셔은행이 문을 열 당시 한인경제는 가발이 주력 업종이었을 때였다.
당시 한인이 이용한 은행은 1974년 9월에 문을 연 가주한국외환은행이 있었다. 그러나 이 은행은 전액 한국의 외환은행이 출자한 것이다.
처음 ‘윌셔스테이트뱅크’라는 이름으로 탄생할 때는 은행의 주도권은 비한인계였다. 이들은 비록 한인상권을 겨냥하고 한인 고객을 우선했지만, 발족 당시 한인 이사는 부동산업인 정완영(당시 44)씨와 남가주한인상공회의소회장을 지낸 윤병욱(당시 40)씨 등 2인 뿐이었다.

그다음에 지금도 윌셔가에 자리 잡고 있는 명품 양복점 ‘하이소사이어티’를 운영하는 임윤영(당시 47) 씨와 나중 미주동아일보 사장인 사진작가 황규태(당시 42)씨 등이 이사로 합류했다.
1980년 12월 3일 윌셔은행이 처음 영업을 시작했을 때 이사 15명 중 한인은 4명, 창업주주 66명 중 한인은 22명이었다. 직원도 15명 중 한인은 4명이었다. 윌셔은행은 처음 문을 열면서 다른 은행과 달리 했다. 당시 다른 은행들보다 영업시간을 3시간이나 더 근무해 고객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 당시 처음 여성 직원 중에는 나중 한인은행 의 최초의 여행장이 된 민 김(오픈뱅크 행장) 행장이 대학을 막 졸업하고 입사했다. 그리고 나중 새한은행장이 된 김주학 씨와 김영덕 부행장 등이 론 오피서로 활동했다.
윌셔은행은 그 후 성장을 하면서 한인금융권에서는 최초로 시도하는 작업이 많았다. 우선 1984년에 최초로 웨스트 올리피아 뱅크를 인수합병 하였으며, 한인금융권으로서는 최초로 ATM(현금자동인출기)를 설치했다.
1986년 윌셔은행은 오늘날의 이사장인 고석화 회장을 이사로 영입했다. 1990년에 윌셔은행은 처음으로 자산이 1억대를 돌파했다. 이때부터 윌셔은행은 한인금융권 중에서 최초로 에스크로부 를 설치했으며, 순이익도 1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이 같은 성장에 핀들이 리포트는 윌셔은행을 ‘A급 은행’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1992년 4월 29일 LA폭동으로 윌셔은행 코리아타운 지점도 약탈을 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위기를 극복하면서 윌셔은행은 고석화 이사장 체제로 들어서면서 새로운 도약기를 구축하게 된다. 이 당시 약관 30대 피터 안 씨가 윌셔은행의 최초 한인 행장으로 취임하면서 윌셔은행은 체제정비와 함께 SBA 융자 실시라는 획기적 프로그람을 추진하게 된다.
그래서 1995년에는 한인은행 중 최초로 ‘SBA 우대은행’으로 선정된다. 이듬해인 1996년에는 한인은행 중 최초로 타주에 대출사무소를 개설했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50대 은행 선정

윌셔은행은 1998년 나라은행 다음으로 상장은행이 되면서 본격적인 성장세로 들어선다. 여기에 국내외로 은행 경험이 풍부한 민수봉 은행장 시대가 8년을 계속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에 들어갔다.
한인사회 최초로 인터넷 뱅킹 시대를 열었고, 주식도 2003년과 2004년에 두 번이나 2대1 스프릿(분활)을 하는 등 고속성장세를 가속화시켰으며 민 행장이 사임한 2007년에는 자산이 2억 달러에서 무려 2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막강한 세를 과시했다.
특히 2007년 5월 15일 고석화 이사장이 나스닥 클로징 벨을 울리는 주인공이 되었고 다시 2010년에는 나스닥 개장을 알리는 타종으로 윌셔은행의 이미지는 월가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2012년에는 사상 최고 순익 9,300만 달러를 기록한 윌셔은행은 2013년에 모바일 뱅킹서비스도 시작했다.
윌셔은행은 인재양성에도 힘을 쏟아 1990년대부터 실시한 인재양성교육의 전통을 따라 2014년에는 ‘윌셔대학’과 ‘멘토쉽’ 프로그램으로 전문 뱅커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월셔은행의 자랑거리는 포브스지 선정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50대 금융기업”이다. 이같은 선정은 한인은행 중에서는 유일하게 선정되어 더욱 값지다.  포브스지는 은행 보험회사 등 미전역의 8,000여개의 금융기업을 대상으로 기업 실적과 재정 건정성 경영진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업들을 선정하는데 윌셔은행은 특히 기업의 투명성을 평가하는 AGR 평가에서 100점 만점을 받았다.
그리 또 다른 자랑스런 실적은 매년 미국 내 5000개가 넘는 커뮤니티 은행의 전년도 자신 수익률과 자본수익률을 비교 분석하여 최고의 커뮤니티 은행을 선정하는 독립은행가협회의  ”2015년 최우수 커뮤니티 은행”으로 선정된 것이다. 윌셔은행의 ROA는 1.6%로 미국 내 자산 10억 달러 이상인 커뮤니티 은행 중 5위로 이는 캘리포니아주 내 은행 중에서 유일하며, 한인 은행들 중에서는 단연 1위이다. ROE는 11.97%로 21위였는데 한인은행 중 ROA(당기순이익)와 ROE(자기자본 이익률) 두 부문 모든 순위권에 든 은행은 윌셔은행 뿐이었다.
금융전문조사매체인 SNL 파이낸셜이 2014년 4분디 기준 자산수익률 순위에서도 윌셔은행은 LA카운티에 본점을 둔 55개 은행 중 5위에 올랐다. 한인은행들 중 가장 높았던 윌셔은행의 자산 수익율률은 타민족 커뮤니티 은행, 특히 자산 규모가 훨씬 큰 중국계 대표은행들보다도 더 높았다.
그리고 윌셔은행은 또 자본수익률에 있어서도 한인은행들 중 1위다. 금융전문지 ‘아메리칸 뱅커’가 미전국의 자신 20억-100억 달러 규모 중형은행 191개를 대상으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에 걸친 ROE, 대출성장률, 순이자 수익 등을 분석한 결과 윌셔은행은 평균 18.19%로 4위를 차지했다.

BBCN은행과 합병이 최대 관심사

윌셔은행은 Wilshire Bancorp Inc. (Nasdaq: WIBC)의 자회사로서 1980년에 주류사회로부터 소외된 다양한 민족의 자영업자들을 위하여 개점하게 되었다. 윌셔은행은 초창기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임원들과 고객을 기반으로, 다양한 커뮤니티에 명성과 실적을 성공적으로 쌓아 35년이 지난 오늘 날은 재미한인 금융인들이 주도하는 한국계 은행으로 성장했다.
윌셔은행은 LA 윌셔가에 본사를 두고 텍사스, 뉴저지, 뉴욕을 걸쳐 37개의 지점과 전 미주에 융자 사무실을 운영하며 모든 한국계 은행 중에서 가장 넓은 지점망을 가지고 있는 은행이다.
윌셔은행의 경영 이념은 미국에서 다양한 인종의 자영업자들이 선도하는 공동 사회의 은행이 되는 것이다. 전문성, 팀워크, 우수한 서비스에 중심을 두고 윌셔은행은 고객을 위한 최고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하며 은행의 성공으로 고객, 직원, 주주 및 공동 사회에 널리 기여할 것을 표방 하고 있다.
윌셔은행이 현재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는 기업과 개인 고객 서비스 (Business and personal banking), 상업 융자 (Commercial lending), SBA융자 (SBA-preferred lender nationwide),무역금융업무 (Trade finance), 건설 / 개발 융자 (Construction lending),주택 융자 (Home mortgage) 등이다.
특히 한인커뮤니티 최대은행인 BBCN은행과 합병 추진 결정으로 대장저의 길을 나서고 있는 윌셔은행은 만약 합병이 성사된다면 무려 120억 달러의 대형은행이 탄생되기에 초미에 관심사가 되고 있어 다음 행보에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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