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는 鳥足之血
최경환 게이트…‘저주가 시작됐다’
■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충격적인 이유
■ 이재용, 8조 원 상당 삼성전자 지분 4% 간접적인 지배력 확보
■ 삼성 일가는 7900억 원 실이득 국민연금은 500~1200억 손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검찰이 현 정권에 등을 돌리면서 수사팀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난주 보도한대로 검찰이 최순실 게이트의 진짜 실체를 드러내려면 최순실 씨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간 보이지 않는 고리를 밝혀내야 한다. 지난주만 해도 검찰이 여기까지 칼을 들이댈 수 있을지에 대한 검찰 안팎의 회의적 시선이 존재했지만, 검찰의 스탠스가 어느 정도 바뀐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검찰이 정의로워서라기보다는 정권 말이 되면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 으레 주인을 무는 못된 습관을 표출하는 집단이 검찰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권력 핵심부의 비리 행위가 도저히 눈감아주려야 줄 수 없는 정도의 수준인 이유가 크다. 박근혜의 칼잡이를 자처했던 최재경 민정수석이 임명 20일 만에 전격적으로 사표를 낸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지난 일요일 최순실 게이트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전후해 검찰이 이전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찬성한 것에 대해 수사에 나선 것이다. 이 사건의 끝에는 박근혜 정부 실세인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이 있다. 본지는 그동안 최경환 의원을 중심으로 한 대구고 인맥이 이 정권 핵심 요직을 차지해 호가호위하고 있다고 보도해왔는데 결국 대구고 인맥에 검찰이 칼끝을 겨눈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잘됐다고 칭찬을 받으려면 ‘최순실 – 박근혜’ 두 사람을 넘어서 ‘우병우-최경환-김기춘’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가 동반되어야 한다. 삼성물산 수사의 이면을 추적해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검찰이 지난해 5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한 국민연금공단의 의사결정 과정을 둘러싼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공단과 삼성 미래전략실을 11월 23일 동시에 압수수색했다.
삼성물산 최대 주주이던 국민연금은 삼성 지배구조 개편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던 두 회사 합병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만약 이 때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했으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불가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이 두 회사 합병에 찬성하면서 이재용 일가가 가장 큰 이득을 봤다.
합병 이후 삼성은 ‘이재용의 삼성’이란 공식 직함을 가지게 됐다. 오너 승계에 성공했다는 찬사도 이어졌다. 이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을 통해 무려 8조 원에 해당하는 삼성전자 지분 4%에 대해 간접적인 지배력을 확보하게 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또한 삼성 일가는 7900억 원의 실이득을 챙겼다는 분석도 나왔다. 삼성물산 합병 비율이 낮게 조정된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500억~1200억의 손실을 입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삼성물산의 주식가치를 낮게 평가하면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인 이재용 부회장 등 오너 일가의 지배권 강화에 유리하지만, 반대로 삼성물산 주주들은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검찰 칼끝 ‘최경환·이재용’으로
검찰 수사에서 청와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직·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 측에 제3자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가 검찰 안팎에서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이날 압수수색이 제3자 뇌물 혐의 적용 검토를 위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등 주변 인물들의 직권남용·강요 등 비위 혐의를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이날 오전 8시 40분께부터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검사와 수사관 10여명을 보내 전격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은 이 건물 5∼10층에 있는 기금운용본부장실, 운용전략실 등에 들어가 작년 삼성물산 합병 관련 문건, 관련자들의 업무용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휴대전화, 내부 문건 등을 확보했다.
또한 검찰은 전북 전주에 있는 국민연금 본사와 삼성 미래전략실, 전 기금운용본부장인 홍완선 한양대 특훈교수의 사무실 등지에서도 동시 압수수색을 벌였다. 지난 8일에 이어 두 번째로 이뤄진 삼성 압수수색은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사무실 등 1차 압수수색 당시 수사관이 들어가지 않은 곳을 대상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작년 5월 26일 합병 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당시 시가를 기준으로 결정된 합병 비율이 제일모직 최대 주주인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총수 일가에게 유리하고 삼성물산 일반 주주들에게는 불리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런 가운데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합병 반대 세력 결집에 나서면서 삼성은 그룹 지배구조 재편 과정의 일대 고비를 맞았다. 그해 7월 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은 가까스로 가결됐는데 당시 10%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의 찬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작년부터 자본시장에서는 삼성물산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진 과정을 두고 여러 뒷말이 나왔다.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여러 시장 참여자들의 예상을 깨고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전문위원회를 경유하지 않고 직접 찬성표를 던졌다. 국내외의 의결권 자문사들이 모두 삼성물산 합병 반대를 권고했지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의결권전문위를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찬성표를 낸 것이다. 그 직전 국민연금은 SK C&C와 SK의 합병 안건을 판단이 곤란한 중대 안건으로 분류, 의결권전문위에 넘겼다. 여기서 ‘반대’ 의견이 나오자 실제 그대로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와 관련해 최 광 당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홍 전 이사장을 경질하려 했으나 정부 고위 관계자의 압력이 들어왔다고 폭로했다. 최 전 이사장은 “홍 전 본부장을 뽑아놓고 보니 500조원의 거대 기금을 운용하기에는 리더십이나 전문성이 부족해 연임에 반대했던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정부 관계자가 홍 전 본부장을 연임하도록 요청해 왔다”고 말했다.
이건희 이어 이재용도 불법의 제왕
법조계에서는 국민연금 수사가 삼성의 최씨 모녀 지원 의혹과 관련한 대가성 내지 부정한 청탁 여부를 규명하기 위한 차원일 가능성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삼성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 탄생으로 이어진 작년 합병은 경영권 승계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이벤트였다. 따라서 만일 삼성 측의 ‘민원’이 청와대에 전달되고 다시 국민연금의 결정에 영향이 끼친 것으로 밝혀진다면 제3자 뇌물수수 혐의 적용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
삼성은 미르·K스포츠재단 외에도 승마협회 지원 프로그램 형식으로 최씨 측에 35억원의 돈을 보냈다. 이와 별도로 삼성은 최씨 조카 장시호씨가 실소유주로 의심되는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5억원을 지원했다. 삼성은 훈련비 지원 외에 정유라씨를 위해 승마장을 구입한 의혹도 받는다.
문구업체 모나미의 해외 계열사가 5월 230만 유로를 들여 독일에 승마장을 샀는데, 삼성전자가 모나미를 앞세워 사들였다는 것이다. 검찰은 최씨를 20일 구속기소 하면서 삼성의 최씨 모녀 지원 의혹 부분 내용은 공소장에 넣지 않고 수사해왔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전날 최 전 이사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검찰은 최 전 이사장을 상대로 합병 찬성 결정 과정과 청와대 외압 여부 등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만간 홍 전 본부장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아직까지 본국 언론에 이름이 거론되지 않고 있지만 이번 삼성물산 수사의 끝에는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이 있다. 국민연금이 합병안에 찬성안을 던지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홍 전 본부장이다. 홍완선 본부장은 지난해 6월 9일 삼성합병과 관련해서 “의결권 전문위원회에서 결정하면 그것으로 최종 결정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불공정한 합병 비율에 관해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합병 찬반 결정의 최종 권한은 외부 전문가 9명으로 이뤄진 의결권 행사전문위 소관이라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홍 본부장은 7월 7일 이재용 부회장을 만났고 앞의 발언을 번복했다. 7월 10일 내부 인사 12명으로 구성된 투자위원회를 열고 8명이 찬성했다며 두 회사의 합병에 찬성키로 입장을 정했다.
투자위원회 회의에서 국민연금기금에 손해가 발생할 수 있음이 거론됐으나 홍 본부장이 표결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홍 전 본부장이 최 전 이사장과 알력 다툼에서 이길 수 있었고, 의결권 행사에도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정치적 배후에는 최경환 의원이 있다. 두 사람이 대구고 동문이라는 사실은 이미 본지가 몇 차례 지적했던 적이 있다. 실제로 홍 전 본부장은 최 의원의 대구고 15회 동기동창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대구고가 얼마나 많은 요직을 차지했는지는 입이 아플 정도다. 홍 전 본부장 역시 500조원을 움직이는 국민연금 본부장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란 말이 적지 않았으나 임명이 강행됐던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홍 전 본부장의 임명과정이나 그가 무리하게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배후에는 최 의원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권의 사인 없이 홍 전 본부장이 독자적 결정을 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최경환이 최순실 게이트의 종착역
검찰의 칼잡이에서 박근혜의 호위무사를 자처했던 최재경 민정수석이 사표를 낸 것도 결국 이와 관련 있을 가능성이 높다. 본지 발행인이 지난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를 천거한 인물은 최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최 의원은 자신과 가까운 최재경 수석을 통해서 자신에게 향해오는 검찰의 칼끝을 막아보려 했으나 최 수석이 실상을 들여다보니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최 의원은 오늘의 최순실 게이트를 초래한 대우해양조선에 수조원의 대출이 나가게 압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그것도 모자라 롯데그룹으로부터 50억을 수뢰하는 등 온갖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불원간 ‘최경환 게이트’가 터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박근혜 게이트는 사실상 지금부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 드러난 최순실게이트는 서막에 불과하다.
지금부터 무서운 ‘박근혜-최경환’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조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