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남매 모두 1944년 미 해군에 입대 복무
# 독립역사 앞장선 한인사회 정신적 지도자
생전 부친 도산 유지 받들어
‘미주 동포사회 헌신적 봉사’
민족의 지도자인 도산 안창호의 마지막 남은 아들 랄프 안 선생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LA한인회와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및 흥사단 등에 따르면 랄프 안 선생은 오랜 지병으로 병원 에서 지난달 26일밤 11시 11분쯤 향년 95세로 별세했다. 랄프 안 선생은 지난해 말부터 건강 상태가 고르지 못해 자택과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 왔다. 지난 2015년 도산의 맏따님 안수산 여사가 100세 일기로 별세 후 도산과 유가족을 대신하여 미주 동포 사회에 도산의 유산을 전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기여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조전을 보냈다. <특별취재반>
한인사회 최초로 사회장 거행
도산이 1938년 순국한지 3년 후, 일본은 진주만을 폭격했고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랄프 안 선생은 일본과 싸우기 위해 1944년 미 해군에 입대했다. 그의 맏형 필립 안도, 그이 누나 안수산 여상 등 3 형제가 참전했다. 그는 전쟁 기간 동안 복무한 것으로 추정 되는 100명의 한국계 미국인 중 한 명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랄프 안 선생은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 중 한 명인 그의 형인 필립 안의 영향을 받아 배우가 되었다. 1964년에서 1968년 사이에 연기를 쉬는 동안 그는 비즈니스 수학을 가르쳤고 캘리포니아 미션 힐스에 있는 Bishop Alemany High School에서 Varsity Football 팀의 수석 코치였다. 2017년 1월 1일, 랄프안 선생은 한국의 인기 버라이어티 쇼인 ‘무한도전 로스앤젤레스’의 출연진을 한인 커뮤니티의 대표자로 환영했다. 같은 해 3월, 그는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서 열린 한인 정착촌인 파차파 캠프를 기리는 행사에서 연설했다. 1926년 9월 28일 LA에서 출생한 랄프 안 선생은 칼스테잇 LA를 졸업한 뒤 초등학교 교사와 고등 학교 풋볼코치, 체육교사 등으로 재직했다. 또 미 해군에서 복무한 것과 영화배우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이후 랄프 안 선생은 부친인 도산 안창호 선생을 위한 기념 사업은 물론 한인사회와 함께 대한민국 독립 역사를 알리는데 앞장 서왔다. 이처럼 도산 안창호 선생의 직계 자손 3남 2녀 가운데 마지막으로 생존해있던 랄프 안 선생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LA한인회를 포함한 한인 단체들은 애통함과 함께 추모했다. LA한인회 제임스 안 회장은 랄프 안 선생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과 신념을 차세대들에게 알리기 위해 평생을 바친 정신적 지도자 가운데 1명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2019년 윌셔 블러바드에서 펼쳐진 3·1 운동 100주년 퍼레이드에서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며 행진하던 모습이 생생한 가운데 별세 소식을 접하게되어 애통하다고 덧붙이며 유가족과 협의를 통해 커뮤니티 차원의 최대한의 예우인 ‘커뮤니티 장례(사회장)’으로 준비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추모의 물결
제임스안 LA회장은 “먼저 고 랄프 안 선생님의 갑작스런 소천소식에 너무나 큰 충격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합니다. 랄프 안 선생님은 민족의 스승이신 도산 안창호 선생의 생존해 계신 유일한 직계 자손으로, 도산의 정신과 신념을 후세들에게 전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이셨습니다. 또한 지난 시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염원을, 세대를 넘어 현재 우리세대에 이어주신 시대와 역사를 살아가신 우리 시대 최고의 정신적 지도자이셨습니다. 지금도 지난 2019년 윌셔가에서 펼쳐진 3·1 운동 100주년 퍼레이드에서 한국이 이 석 황손과 더불어 태극기를 힘차게 휘두르며 행진하시던 감동적인 모습은 우리 세대가 절대로 잊지 못할 감동으로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로스앤젤레스한인회는 LA한인커뮤니티를 대표하여 랄프 안 선생님의 소천소식에 깊이 애통하고, 그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커뮤니티 차원의 최대한의 예우로 랄프 안 선생님을 떠나 보낼수 있도록, LA한인회는 유가족과 협의되는 대로 한인단체들과 협의하여 커뮤니티장례(사회장)으로 준비할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라고 추모했다.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의 윤효신 이사장은 “랄프 안 선생님은 선친 도산이 국민회를 이끌었다는 유지를 받들어 국민회기념재단 행사에 매번 열심이셨다”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고 애도했다.
단톡방에 애도와 추모의 글
한편 흥사단 LA 지부 이준석 지부장도 단톡방에 추모의 글을 남겼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합니다. 도산의 막내 아들인 랄프 안 선생께서 영면하셨습니다. 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식은 없고 추모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일정이 정해지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랄프 안 선생을 아래와 같이 추모했다.
<랄프 안의 한국명은 안필영입니다. 도산의 3남 2녀의 막내로 1926년에 태어나셨습니다. 아버지가 임정에서 활동 중 잠시 미국에 왔을 때 잉태가 되어 그후 부친이 상해에서 윤봉길 의거에 의해 체포된 후 옥고를 치루다가 별세하셔서 생전에 부친을 대면하지 못했습니다. 미해군에서도 복무하시고 박정희 대통령 당시 도산의 묘가 미아리 공동묘지에서 지금의 도산공원에 이장될 때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작년까지도 발렌시아에서 직접 운전하시며 행사에 참가하셔서 제가 모시러 가겠다고 해도 허락을 안하셨습니다.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거목이셨던 부친이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자식들은 어버지를 크게 평가하지 못하고 계신듯 보였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부친을 존경하며 그 정신을 이어 받으려는 단우들을 보시면서 아버지를 마음 속으로 재평가 하시는 듯 보였습니다. 생전에 못 뵈온 부친을 하늘나라에서 만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