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의 계곡을 탈출한 최전선 소총수 마이클 케인
◼ 두 번의 큰 부상 퍼플 하트 훈장 영웅 제임스 가너
◼ 신혼여행 제치고 영하의 한국전선에 마릴린 먼로
◼ 한국전 전투기 조종사 달 정복 우주인 닐 암스트롱
한국전 참전 용사들의 가슴 뭉클한 일화들은 언제 들어도 큰 감동을 준다. 그들 군인 중에는 훗날 은막계에서, 우주인으로 그리고 스포츠계에서 이름을 날린 유명 인사들이 있다. 청춘 시절에 한국전에 참전했던 헐리우드 유명 배우들은 ‘전장터에서 내 인생을 찾았다’면 ‘죽음을 이겨낸 그 전쟁에서 얻은 경험으로 전쟁 영화를 잘 연기 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전장 속 장병들의 유일한 위안이자 사기 진작의 핵심이었던 위문단의 배우들의 활약도 빼놀 수 없다. 20세기 최고 글래머 스타인 마리린 몬로는 한국의 혹한의 추위속에 두터운 외투를 벗어 버리고 보라색의 얇고 반짝이는 밀착 칵테일 드레스 만 입은 채 무대에 섰던 일화는 아직도 전설로 남아있다. 그녀는 “장병들이 나를 보러 왔는데 꽁꽁 싸맨 모습을 보여줄 순 없다”며 투혼을 발휘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유명 배우들은 상징적인 이름에 걸맞게 실제 전장에서도 목숨을 건 치열한 활약을 펼쳤다. 그래서 한국전 참전 배우들의 생생한 일화는 스크린 속 연기보다 더 영화 같은 감동을 준다. <성진 취재부 기자>
지금은 93세의 노장으로 말년을 보내는 할리우드 영화배우 마이클 케인(Michael Caine)은 영화 《킹스맨》, 《다크 나이트》 등으로 유명한 영국 출신의 세계적 명배우이며 “국민배우”로도 유명 했는데, 수산시장 배달원 아버지와 청소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나이 18세에 1951년 영국 육군에 징집되어 처음에는 서독의 이제르론에 주둔했다. 그는 한국전 파병부대에 지원하면 빨리 전역 시켜주겠다는 말에 육군 왕실 퓨실리어(Royal Fusiliers)연대 소속 소총수로 한국전에 파병되어 최전방 휴전선 인근 최전방 임진강 유역 등 전투 지역에서 싸웠는데 매일 죽음과 마주해야 했다. 당시 그는 최전방 초소에서 중공군의 무서운 인해 전술을 직접 마주했다. 밤마다 울려 퍼지는 중공군의 나팔 소리와 철조망을 몸으로 덮으며 돌격해 오는 치열한 진지전 속에서 살았다. 하루는 동료 4명과 함께 야간 순찰을 돌던 중 중공군 부대에 완전히 포위되어 고립되는 위기를 만났다.
죽음을 직감한 순간, 그들은 숨어 있는 대신 “어차피 죽을 거라면 적을 길동무 삼아 정면으로 돌파 하자”고 결의한 뒤 이들은 어둠 속에서 중공군을 향해 소총을 난사하며 정면으로 돌격했고, 적들이 당황한 틈을 타 기적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아군 진지로 생환했다. 훗날 케인은 자서전에서 “한국전쟁 최전선에서 매일 마주한 죽음의 공포가 내 성격과 삶의 방식을 바꿨다”며 “그때 이후로 인생에서 그 어떤 고난이나 연기 생활의 위기가 찾아와도 전혀 두렵지 않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한편 영화 《노트북》에서 노년의 노아 역을 맡았던 할리우드의 대배우 제임스 가너(James Garner, 1928~2014))는 미 육군 제5보병연대 소속 소총수로 참전하여 최전방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그는 한국전에서 두 번의 큰 부상으로 퍼플 하트(Purple Heart) 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이었다.
한국 전선에 투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의 박격포 공격을 받아 온몸에 파편상을 입었다. 이후 복귀하여 전투를 치르던 중, 아군의 오폭(전투기 오인 사격)으로 인해 전우들이 목숨을 잃는 아수 라장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그는 참호로 뛰어들며 대피하다가 허리와 하반신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처럼 전장에서 입은 두 번의 치명적인 부상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전투 부상자에게 수여하는 ‘퍼플 하트(Purple Heart) 훈장’을 두 차례나 수여 받았다. 그는 탁월한 연기력과 제작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1977년과 1987년에 에미상을 수상했고, 1985년 영화 ‘머피의 로맨스’로 아카데미 남 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2005년에는 미국 영화배우 조합(SAG)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으며 거장으로서의 영예를 안았다. 제임스 가너는 실제 참전 용사 출신 답게 전쟁 영화에서 유독 사실적이고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그가 출연한 대표적인 전쟁 영화로 대탈주 (The Great Escape, 1963)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군 포로수용소를 탈출하려는 연합군 비행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시대를 초월한 명작이다. 그는 수 용소 내에서 필요한 물건을 무엇이든 구해오는 조달 책임자 ‘헨들리(The Scrounger)’역을 맡았는데 실제 한국전쟁 참전 당시 부대 내에서 필요한 물품을 기가 막히게 구해오는 실제 조달병으로 일한 경험이 있었다. 이 때문에 캐릭터에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었고,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소품 활용법이나 당시 군인들의 행동 양식을 직접 조언하기도 했다.
한국전 참전 전투 경험이 새 인생을 창조
오스카 상을 수상하고 영화 ‘대부’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 등에 출연해 많은 이들의 인기를 얻은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듀발(Robert Duvall)도 6.25 전쟁에서 싸웠던 참전용사이다. 원래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학 졸업 후 입대했다. 1953년 휴전 직전인 8월에 배치 되어 1954년 8월까지 미 육군 병사로 한국에서 복무했는데 제대 후 미국으로 돌아가 연기 수업을 받았고,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로 불리며 할리우드 전설적인 명배우로 자리 잡았다. 미 연예 전문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대부’·‘지옥의 묵시록’, ‘앵무새 죽이기’, ‘텐더 머시스’ 등에서 여러 캐릭터를 연기한 그를 두고 “독보적인 만능 배우”라고 기렸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는 빌 킬고어 중령으로 존재감을 과시했고, 1983년 영화 ‘텐더 머시스’에서 알코올 중독 컨트리 가수를 연기하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이 영화에서 그는 직접 노래도 불렀다.
그는 한국에서의 군 생활을 떠올리며 “언제 다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던 시기였으며, 당시 최전방에서 보낸 시간들이 훗날 군인 역할을 연기할 때 엄청난 자양분이 되었다”고 밝혔다. 1960~70년대를 풍미한 할리우드 최고의 액션 스타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
1930-1980)은 미 해병대 소속으로 한국전쟁 기간 동안 군 복무를 수행했다.(다만 맥퀸은 한국 본토 전선에 직접 투입되지는 않고 한국전 출병 훈련 및 함대 작전 중 공을 세웠다.) 얼어붙은 바다에서 전우를 구한 의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서양과 북극해 인근에서 진행된 군사 훈련 중 그가 탑승하고 있던 탱크 수송함 이 결빙 지역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동료 해병대원들이 얼어붙은 바다로 휩쓸려 내려갔다. 맥퀸은 매서운 추위와 얼음물 속으로 주저 없이 뛰어들어 물에 빠진 동료 해병대원 5명을 직접 물 밖으로 끌어내어 목숨을 구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명예로운 대통령 경호 부대에 배정되기도 했다.
“최전방 전투 훗날 연기에 엄청난 자양분”
한국전쟁 전후 한국을 찾았던 세기의 아이콘, 마릴린 먼로의 가슴 뭉클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는 1954년 2월, 정전 협정 직후 여전히 삼엄한 긴장감이 감돌던 한국을 방문하여 4일 동안 무려 10차례의 폭풍 같은 위문공연(공연명: ‘Anything Goes’)을 펼쳤다. 당시 마릴린 먼로는 전설적인 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Joe DiMaggio)와 결혼해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상태였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미군 사령부의 위문공연 요청을 받은 먼로는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겠다”며 홀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 사건은 두 사람 이 불화를 겪고 결국 이혼하게 된 결정적인 도화선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 한국의 겨울은 온통 눈이 내리고 영하 10도를 밑도는 혹한이었다.
군인들은 두꺼운 파카를 입고도 몸을 떨었지만, 먼로는 무대 위에 오를 때마다 외투를 벗어 던지고 보라색의 얇고 반짝이는 밀착 칵테일 드레스만 입은 채 무대에 섰다. 그녀는 “장병들이 나를 보러 왔는데 꽁꽁 싸맨 모습을 보여줄 순 없다”며 투혼을 발휘했다. 그녀는 대구, 포항, 춘천, 인제 등 최전방 기지를 돌 때마다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미군들이 바리 케이드를 부수고 무대로 돌진하는 등 통제 불능 상태가 벌어졌다. 헌병들이 무기를 들고 최전선을 막아서야 했을 정도였으며, 너무 위험해 오프닝 무대가 취소되기도 했다. 당시 먼로는 극심한 무대 공포증을 앓고 있었으나, 한국에서 자신을 연호하는 10만 명의 순수한 함성을 들으며 이를 완벽히 치유했다. 그녀는 미국으로 돌아간 뒤 “한국 공연은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겉모습이 아닌 나라는 존재 자체를 진심으로 환영해 준다고 느꼈다”는 감동적인 회고를 남겼다.
최전선 포화 속을 누빈 “움직이는 사기 진작기”라는 명성을 지닌 미국의 전설적인 코미디언 밥 호프(Bob Hope)는 제2차 세계대전에 이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1950년 10월, 가장 먼저 한국행을 자처했다. 밥 호프는 안전한 후방 기지에만 머물지 않았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아군이 북진하자, 그는 당시 막 수복된 원산, 평양, 수원, 부산(독패치 비행장) 등 최전방 전선을 직접 찾아갔다. 1950년 10월 부산 인근 비행장에 도착했을 때의 일화는 유명한 코메디였다. 장병들에게 웃음을 주러 온 밥 호프를 환영하기 위해 기지에 있던 미군 장병들이 오히려 그에게 깜짝 가짜 공습경보 장난을 쳤고, 밥 호프가 혼비백산해 참호로 뛰어들자 장병들이 폭소를 터뜨리며 그를 맞이했다. 그는 트레이드마크인 골프채를 들고 무대에 올라 전쟁의 공포에 질린 장병들을 특유의 촌철살인 풍자로 웃겼다. 공연의 마지막에는 항상 그의 시그니처 송인 ‘Thanks for the Memory’를 부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미군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재즈의 거장 냇 킹 콜(Nat King Cole)은 한국전쟁기 USO 위문공연단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미군 장병들에게 고향의 향수를 달래주는 감미로운 음악을 선물했다.
특히 그는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시초가 되는 인물이었다. 그의 한국전 방문과 미군 기지 위문 공연은 당시 황무지 같았던 한국 대중음악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미군들을 위로하기 위해 연주되던 스탠더드 재즈와 팝 음악 은 고스란히 한국의 ‘미8군 무대’ 시스템으로 이어졌고, 이는 대한민국 현대 대중음악(K-POP)이 태동하는 결정적인 자양분이 되었다. (냇 킹 콜은 종전 후인 1963년에도 방한해 서울시민회관에서 위문 및 내한 공연을 펼치며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배우 이외에도 세상을 놀라게 한 유명 인사들도 있다. 인류 최초로 달을 밟은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은 미 해군 항공모함 에식스(USS Essex) 함대 소속의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에 참전하여 총 78회의 전투 임무를 수행했다.
한국전 위문공연에서K-POP 태동
1951년 9월, 21세의 젊은 소위였던 암스트롱은 북한 정찰 임무 중 적이 설치한 공중 방어용 철책 케이블에 부딪혀 f9F 판서 전투기의 한쪽 날개 끝이 약 2m가량 뜯겨 나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그는 조종 불능 상태에 빠진 전투기를 끌고 아군 진영인 포항 비행장 인근까지 필사적으로 비행한 후 비상 탈출(사출)을 감행했다. 다행히 안전하게 낙하하여 인근에 있던 미 해병대 동료들에게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전설적인 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선수 경력의 전성기였던 1952년 미 해병대 항공대 대위로 소집되어 37회의 combat mission(전투 비행 임무)을 수행했다. 그는 평양 인근 공습 도중 적의 대공포에 맞아 전투기(F9F Panther) 엔진이 폭발하고 화염에 휩싸였다. 그는 무전기가 고장 나고 유압 시스템이 마비된 상태에서 조종간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훗날 우주비행사이자 미국 상원의원이 된 존 글렌(John Glenn)이 그의 윙맨(동료 조종사)으로 함께 비행했다. 존 글렌은 “테드는 비행기에 불이 붙은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활주로에 동체 착륙(Belly Landing)을 성공시켰고, 비행기가 멈추자마자 조종석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건졌다”며 그의 탁월한 조종 실력을 극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