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발굴 단독] 수미테리 기소사건 계기로 짚어본 외국대리인등록법상 한국대리인 전수조사

이 뉴스를 공유하기

◼ 미국 내 외국대리인등록법 1938년 제정 1942년 개정-시행
◼ 한길수 장기영 등 한국독립운동가 2명, 법 시행 첫날 등록
◼ 1942년 이후 한국대리인 개인 및 법인등록 건 431건 신고
◼ 한길수 장기영 선생 뒤이어 3호 역시 이승만보좌관 정운수
◼ 1942년 대한민국임시정부…1943년 하와이 동지회도 등록
◼ 미국 내 독립운동가들 미국에서 합법적활동 입증하는 기록
◼ 최근 한국인대리인등록은 7월29일 존리 우주항공청 본부장
◼ 북한 대리인등록은 3건…‘FARA위반’박일우도 대리인 등록

지난 7월 16일 백악관 등에서 근무한 대북전문가 수미 테리가 외국대리인등록을 하지 않고 한국정부를 위해 일한 혐의로 기소되자 한국 우주항공청의 연구개발책임자인 미국 국적의 존리 우주항공임무본부장이 지난 7월 29일 외국대리인등록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외국대리인등록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국인 중 가장 먼저 미국정부에 외국 대리인 등록을 한 사람은 독립운동가이며, 이승만대통령의 대척점에 선 인물로 잘 알려진 한길수 선생으로 확인됐다. 또 한 선생보다는 외국대리인 등록번호가 늦지만, 같은 날 이승만 전대통령의 보좌관 장기영선생도 외국대리인등록을 하는 등 미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과 단체들도 1942년부터 외국대리인 등록을 하는 등 최대한 미국 법을 지켜가며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안치용 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1945년 8‧15 해방이전, 미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당시에도 1938년 미국정부가 제정한 외국대리인등록법을 존중, 외국대리인으로 등록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가 외국대리인등록법, 즉 FARA 자료를 검색한 결과, 한국인이 한국을 위해 일한다고 가장 먼저 신고한 사람은 독립운동과정에서 이승만대통령의 대척점에 섰던 인물로 잘 알려진 한길수[미국명 케네스]선생으로 확인됐다.

진주만공습 알린 한길수 선생 1호

한길수선생은 1938년 이 법이 제정되고, 개정안이 발효돼 실질적으로 이 법이 시행된 첫날인 1942년 7월 9일 외국 대리인으로 등록했으며, 등록번호가 23번으로 밝혀졌다. 한 선생은 이날 외국대리인 등록 신청서에 하와이 소재 중한민중대동맹[SKPL]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신고했다. 한 선생은 또 같은 날, 중국 중경의 KOREAN NATIONAL FRONT FEDERATION을 위해서 일한다는 사실도 별도로 신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한길수 선생은 미국정부에 중한민중대동맹 등 2개 외국단체를 위해서 일한다고 신고한 것이다.

당시 1942년이므로 대한민국건국 이전이지만, 미국정부는 한선생의 외국대리인등록을 ‘한국 SOUTH KOREA’를 위해서 일하는 것으로 분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건국 전이지만, 미국 내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것이므로, 광범위하게 한국을 위한 대리인으로 분류한 셈이다. 현재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 이후 ‘한국 SOUTH KOREA’를 위해서 일한다며 등록한 건수는 개인 및 단체를 모두 포함, 430건으로 확인됐고, ‘북한NORTH KOREA’를 위해서 일한다며 등록한 건수는 4건으로 검색됐지만, 이중 1건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을 위한 대리인이 북한으로 잘못 분류된 것으로 드러났다. 즉 한국을 위한 대리인등록은 431건, 북한을 위한 대리인등록은 3건이었다. 이는 대리인등록기간이 종료된 경우와 현재도 효력을 가진 대리인을 모두 포함한 수치이다. 한길수 선생에 이어 한국을 위해 일한다며 두 번째로 등록한 사람은 이승만 전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독립운동가 장기영선생으로 확인됐다. 장 선생도 한길수 선생이 등록하던 날인 1942년 7월 9일 외국대리인등록을 했기 때문에 사실상 한 날 한시에 등록한 셈이다.

즉 외국대리인등록법이 실질적으로 시작된 첫날, 독립운동가 2명이 등록한 것이다. 다만 장 선생의 외국대리인등록번호는 26번이어서, 23번인 한선생보다 조금 늦은 것으로 보인다. 장 선생은 등록신청서에서 ‘이승만박사’[이승만초대대통령을 의미]을 위한 대리인이라고 기재했고, 이승만전대통령의 주소지는 워싱턴DC의 ‘1766 호발트스트릿 노스웨스트’라고 기재했다. 이 주소지 부동산은 본보확인결과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여사 공동명의로 1940년 매입한 주택으로 밝혀졌다.

또 한길수, 장기영에 이어 세 번째로 등록한 인물은 이승만 전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독립운동가 정운수선생으로 확인됐다. 정 선생은 앞선 두 사람보다 약 20일정도 늦은 1942년 7월 27일 등록했고, 등록번호는 63번으로 조사됐다. 정 선생 역시 이승만박사를 위한 대리인이라고 밝혔고, 주소지는 장기영선생과 똑같이, 워싱턴DC의 ‘1766 호발트스트릿 노스웨스트’라고 기재했다. 이들 3명의 독립운동가외에도 독립운동단체들도 1942년에 외국대리인등록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KOREAN COMMISSION은 지난 1942년 11월 13일 중국 중경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위해서 일한다며 대리인등록을 마쳤으며 등록번호는 155번으로 밝혀졌다.

독립운동가들 외국대리인 등록

KOREAN COMMISSION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을 받아 워싱턴에 설립됐던 주미외교위원부의 영문이름이며, 이 기관의 대표가 이승만박사였다. 즉 주미외교위원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리인으로 등록한 것이다. 또 이로부터 약 한달 뒤인 1942년 12월 7일에는 KOREAN AMERICAN COUNCIL이 중국 중경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미국 워싱턴DC의 코리안커미션, 즉 주미외교위원부를 위해서 일한다며 대리인등록을 마쳤고, 등록번호가 161번으로 확인됐다. 이 단체의 대표 역시 이승만박사이다. 즉 해방 3년 전인 1942년 이승만 박사가 대표를 맡고 있는 2개 기관 및 이박사의 보좌관 2명, 그리고 이대통령의 대척점에 섰던 또 다른 독립운동가 등 2개 기관과 개인 3명이 외국대리인으로 등록하고 미국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합법적인 독립운동을 펼쳤던 것이다.

이 법이 제정된 것이 1938년이었지만, 본격적인 등록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1942년 시작됐고, 이때 미국 내에서 적국의 스파이를 색출하는 수사가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 미국에 거주하던 독일과 일본인 등을 겨냥한 조치였지만 동맹국을 비롯한, 오로지 미국만 제외하고 모든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신고 대상이었다. 특히 1940년대 미 국무부 비밀전문 및 FBI 기밀문서를 살펴보면 미국정부는 미국 내 한국 독립운동가 및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밀착해서 들여다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1942년 1월 미국무부관리들은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돕던 미국인들, 우리가 매우 잘 아는 미국인들에게도 외국대리인등록법 가입을 촉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배경 하에서 이승만대통령 등 독립운동가들은 외국대리인등록법을 존중, 에이전트로 등록한 셈이다.

이듬해인 1943년에도 한국단체들의 외국대리인등록이 이어졌다. 하와이에서 결성된 동지회는 1943년 1월 22일 중국 중경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위해 활동한다며 대리인등록을 했고 등록번호는 171번으로 확인됐다. 동지회는 1921년 7월 이승만대통령 주도로 만들어진 독립운동단체로서, 대한인동지회로 불리기도 한다. 또 유나이티드코리안커미니티도 1943년 4월 23일 각각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주미외교위원부를 위해 활동한다며, 189번으로 등록을 마쳤다, 그로부터 약 5개월 뒤인 1943년 9월 13일에는 LA소재 코리안내셔널레블루션파티가 중국 중경의 코리안러블루셔너리파티[한인혁명당]를 일한다며 207번으로 등록했다. 또 1943년 10월 29일 민중대회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위한다며 등록했고 등록번호 266번으로 조사됐다.

이승만 측근 로버트 올리버 1949년 등록

한국의 독립을 도운 미국인이며 이승만대통령의 측근으로 잘 알려진 로버트 올리버도 1949년 1월 23일 이승만대통령을 위해 일한다며 파라에 등록했고, 1949년 2월 21일에는 코리아퍼시픽프레스를 위해 일한다며 역시 등록을 마쳤다. 코리아퍼시픽프레스는 하와이에서 발행됐던 ‘태평양잡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건국 뒤 대한민국 준정부기관으로는 1963년 한국관광협회가 가정 먼저 외국대리인등록을 했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1974년 1월 30일, 그 외 마이애미, 시애틀,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각 지역의 무역센터 역시 1974년 초와 1975년 외국대리인등록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한미경제연구소는 1982년 2월 1일, KBS의 미국자회사인 KTE[KBS LA INC]는 1986년 3월 11일 등록했고, KBS아메리카는 2005년 5월 17일 외국대리인등록을 했다.

대한민국 및 대한민국의 기업 등을 위해서 일한다고 등록한 대리인 중 대부분은 미국로펌 등이며, 최근에는 한국지방자치단체의 업무를 대리하는 단체들도 등록을 마쳤다. 또 2022년 7월 16일 한 로펌이 ‘머니투데이’를 위해 일한다며 등록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KBS 아메리카는 6개월에 한 번씩 수입–지출 내역을 상세하게 보고하고 있으며, 인터넷 등의 보급에 따라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졌던 비디오시장이 얼마나 빨리 축소되고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또 지역별 KBS방송 송출업체에 대한 방송료 수입, LA에서의 자체 방송국운영을 위한 대여료 지출 현황 등도 알 수 있다. 그 외에 한국 KBS로 얼마를 보냈는지도 드러나는 등 한마디로 손바닥 들여다 보 듯 상세한 파악이 가능하다.

최근에 가장 독특한 사례는 권영해라는 한국인물을 위한다는 로비스트가 외국대리인등록을 했다는 점이다. 권영해라는 인물은 김영삼정부시절 국방부장관과 안기부장을 지낸 인물과 이름은 동일하지만, 주소지 호수 등을 밝히지 않아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동일인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동일인일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에 주소를 둔 제이슨 호씨는 지난 2023년 11월 28일 권영해씨를 위한 에이전트로 등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등록신고서상 권 씨의 주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시 탑실로의 모아파트단지로 기재돼 있으며 호수 등은 적혀있지 않았다. 즉 아파트단지 주소만 기재돼 있다.

이 신고서에는 권영해씨가 2023년 11월 27일 서명한 확인서도 첨부돼 있었다. 제이슨 호씨는 2023년 10월 25일 권영해씨와 반도체 등에 대해 권 씨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두계약을 맺었으며 반도체 등과 관련한 미국 정계인사 및 재계인사와의 통신, 만남 등을 주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영해라는 인물은 김영삼정부시절 국방부장관과 안기부장을 지낸 인물과 이름은 동일하지만, 주소지 호수 등을 밝히지 않아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동일인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제이슨 호씨는 지난 2022년 4월 18일에는 경기도 화성 시 동탄소재 정우주식회사[ JUNGWOO CO LTD]를 위해 일한다며 외국대리인등록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요시아키 하라다씨가 정우를 대리해서 확인서에 서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대리인등록목적은 한국, 일본, 다른 나라와의 반도체개발관련 국제적 협력증진을 위한 것이며 2022년 4월 10일 대리인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제이슨 호가 대리하고 있는 권영해씨와 정우주식회사는 모두 반도체관련이므로, 권 씨와 정우가 긴밀한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 2023년1월 1일 플로리다 주 RMT SPV유한회사가 한국의 정치단체 대리인으로 등록하는 등 2023년에는 단 1건이 등록됐고, 올해는 지난 7월 29일 한국 우주항공청 우주항공임무본부장으로 임명된 미국시민권자 존 리씨가 등록을 하는 등 8월 12일 기준 단 1건으로 나타났다.

북한 대리인등록은 법제정이후 3건

한편 북한을 위해 일한다는 대리인 등록은 모두 4건으로 검색됐으나, 이중 1건은 한국기업을 위한 대리인을 북한대리인으로 잘못 분류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대리인은 지난 2003년 12월 1일 추남훈 씨가 평양 모란봉구역의 북한을 위해 일한다고 등록했고, 2004년 9월 21일 유로아시아경제개발연구소가 영국의 북한대사관을 위해서 일한다고 등록했다. 또 평양소주 등을 미국에 수입했고, 한국 국정원 요원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던 박일우 씨가 2011년 12월 2일 북한 평양의 모란봉구 연개소문동소재 금강산 관광특구관련 정부기관을 위해 일한다며 외국인대리인 등록을 했다. 또 프라임팔리시그룹이 2016년 9월 19일 파킹턴인터내셔널을 위해 일한다고 신고하자, 국무부가 이를 북한을 위하는 대리인으로 분류했으나, 파킹턴인터내셜은 대비로비스트로 유명한 박동선 씨가 설립한 기업이며, 주소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36길 16번지이며, 이 기업이사는 박대식 씨로, 박 씨는 박동선회장의 조카로 확인됐다. 국무부가 북한기업으로 잘못 분류한 것이다.
————————————————————————————————————————————————————

한국대리인등록1호 한길수 선생은 누구?

한길수선생은 1900년 경기도 장단에서 출생한 뒤 4살 때 하와이로 이민가서 오아후 설탕회사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했고 1919년 하와이방위군에 입대했으며, 한인구세군활동 등을 통해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1932년 한중민중대동맹 하와이대표로 활동했다. 특히 일본의 진주만공격을 사전에 탐지, 미국정부에 8차례나 알렸으며, 진주만 공격 및 태평양전쟁관련 외국서적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한국인이다. 1941년 4월 이승만전대통령과 별도도 대미외교활동에 나섰고 결과적으로 이전대통령의 대척점에 섰던 인물로 낙인찍혔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지만 1936년 하와이주재 일본총영사관에서 1년 남짓 근무한 것이 일본을 위한 스파이활동으로 간주돼 2005년 서훈이 보류됐다.

한국대리인등록2호 장기영 선생은 누구?

장기영선생은 1903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다. 일본유학 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가담했고, 안창호, 김구 선생의 권유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1930년 버틀러대학교 정치학부를 졸업했고, 인디애나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했다. 특히 1932년 겨울, 이승만의 부름을 받고 워싱턴DC소재, 대한민 까지 서울특별시장을 지냈으며 1990년 대한민국 건국에 공이 컸음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한국대리인등록3호 정운수 선생은 누구?

정운수선생은 1903년 경북 의성군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로서 대구 계성학교, 서울 경신학교,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으며, 한때 경남 마산에서 교편을 잡다 미국으로 유학, 1937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내에서 애국단체인 동지회, 교민회 등을 조직했다, 특히 1942년 3월말부터 워싱턴DC에서 이승만전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임명돼, 임병직, 장기영선생등과 함께, 이대통령을 보필했다, 정선생역시 1943년 6월 OSS 요원으로 활동했다, 대한민국정부는 건국에 대한 지대한 공로를 인정,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선데이-핫이슈